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서안부 도심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단봉문의 지붕 위.
따갑게 내리쬐는 땡볕 아래 대충 걸터앉은 진무의 굳은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햇볕으로 인해 눈이 찡그려져 있기 때문인지 기분이 몹시도 언짢아 보였다.
위소를 찾아가 자신을 가로막은 군사 백여 명을 때려눕히고 갈천벽을 갑옷째로 구겨 놓고 나서야 방만평을 만났다.
이번 비리로 상관의 모가지가 날아가 버린 터였고, 치부책으로 비리를 밝힌 공을 인정받은 그는 정식 교지를 받지 않았음에도 도지휘사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진무를 알아본 그는 동림전장의 비리와 관련된 놈들을 잡는다는 말에 더 이상 들어 보지 않고 위소의 전 병력을 급파했다.
덤으로 도찰원이 부리는 관부의 고수들까지 합류한 터다.
그런데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설마하니 벌써 빠져나간 것일까?
양소방과 약속도 약속이지만 종남파의 병신 짓거리에 한바탕 휘저어 놓기까지 했는데 놓친다?
대가리가 깨져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이제는 자존심 문제다.
“저, 진무 도장?”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앉은 진무의 눈치를 살피던 호현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이곳은 저희가 맡을 테니 잠시 내려가서 쉬시는 것이.”
“…….”
쉬어? 이 거지새끼가 미쳤나, 지금 이 마당에 쉬자는 말이 나오냐?
진무의 따가운 눈총에 호현개가 찔끔하면서도.
“날밤을 꼬박 새우셨습니다.”
그래, 한숨도 안 잤지.
분해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시는 것이.”
“…….”
“지금 천라지망을 이루었던 정무맹의 무인들이 관의 협조를 받아서 서안부에 있는 이들의 팔오금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안다.
그런데 넌 도대체 옆에 딱 붙어서 뭐 하는 거냐?
일손이 부족한 이 마당에 가서 뭐라도 좀 해라. 아무나 붙잡고 조사 좀 하라고.
저기 가는 행인 놈의 얼굴이 인피면구는 아닌지. 일부러 무공을 숨기고 다니는 놈은 없는지.
안 그래도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타 버릴 지경이거늘.
위소의 군병 오천이 투입되었다.
천라지망을 구성했던 무인 오백도 함께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위소의 군병들은 서안부 외곽의 출입을 감시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들 역시 진무처럼 교대도 없이 밤을 꼬박 지새웠으니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고작 세작 몇 놈을 잡기 위해 투입된 인원이 상상을 초월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증원이 필요하다.
정무맹에 요청을 한다 해도 몇 놈이나 올지 모른다.
양소방에 의해 이미 소식이 전해진 지금 그들 역시 서안부 이외의 지역에서 세작들을 솎아 낼 준비를 하느라 바쁠 것이다.
망할, 종남 놈들을 살살 꼬드겨서 데려올 것을 그랬나?
괜히 화를 내었나?
답답한 마음에 지나간 일이 후회되고 있었다.
어찌한다.
“진무 도장, 이미 혹시나 해서 하오문 서안지부의 비선을 통해 은밀하게 정보 요청을 해 두었습니다. 허니 걱정 말고.”
그래 하오문, 이럴 때 꽤나 도움이 되겠…… 응? 뭐?
하오…… 어?
진무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서 호현개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는지?”
당황한 호현개가 눈을 멀뚱하게 뜨자 진무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어린다.
그래! 하오문!
이런 젠장, 왜 지금까지 이 생각을 못 했지? 정파에 몸 좀 담고 있었기로서니 아주 머리까지 정파로 절여진 건가?
서안의 최고 주루라는 진회루에 두 번이나 갔었는데. 어째서 그들을 잊고 있었단 말인가?
하오문.
개방에 필적하는 아니, 그보다 훨씬 정보망이 뛰어난 중원 최대의 정보 단체.
정식으로 하오문에 소속된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고, 비슷하게 정보를 취급하는 개방의 거지 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뒷골목 배수, 부랑아, 술집의 기녀와 객점의 점소이, 도박장에 드나드는 투전꾼, 대갓집 노비들에다 표국에서 부리는 쟁자수에 이르기까지, 돈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하오문에 정보 한번 팔아먹어 보지 않은 자들이 없다.
즉, 그들 모두가 하오문의 정보원인 것이다.
하오문은 삶의 밑바닥에서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을 보호해 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가진 정보를 적당한 가격을 주고 사들였다.
일명 매(買)꾼이라 불리는 자들. 쉽게 말해 정보를 사는 이들이다.
매꾼들은 앞서 말한 직업인, 혹은 비천한 자들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첩보를 사들인다.
이것이 모여 종도(㨑睹)에게 전달되고, 분석과 분별을 거쳐 하나의 정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오문의 체계다.
첩보를 물어 오는 자들은 하오문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
매꾼들은 그저 거간꾼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도부터는 하오문의 하급 문도에 들어간다.
그들을 찾으면 하오문의 실체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종도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뛰어난 은신자들이다. 지금껏 하오문이 있음을 알면서도 쉽게 찾지 못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사패천주였던 진무조차도 하오문의 진정한 실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가 부리던 명세찬과 은위단이 하오문에서 선발된 정예였지만, 그들을 안다고 해서 하오문의 비밀스러운 조직 체계까지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누대를 걸쳐 그들 나름대로 지켜 온 비밀이기에 지켜 주어야 했고, 딱히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찾을 방법을 진무가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것을…….
아마 서안부의 종도라는 놈을 굳이 찾지 않더라도 직접 찾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원공후와 천우명에게 찾으라 했던 은위단주 명세찬이 직접 올 수도 있다.
그래, 잘됐다.
어차피 종남에 숨어 있던 세작 놈들을 소탕하면 더 이상 정파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양소방에게 한 약속도 지키고 이 기회에 하오문도 다시 얻는다.
철지량의 무공 초식까지 탈탈 털어 왔던 그들의 정보력이면 세작 놈들이 빠져나갔든, 아니면 아직 서안부에 숨어 있든 찾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원 천지에 하오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을 테니까.
“크크, 크하하핫!”
“…….”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파안대소를 터트리는 진무의 모습에 호현개가 기괴한 표정을 짓는다.
잠을 안 잔 채로 햇볕을 오래 쬐더니 정신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
내내 굳은 표정으로 화만 내고 있었으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호현개 님!”
“……예?”
“놈들이 이곳에 아직 있을지 모르니 최선을 다해 살펴 주시오.”
“혹, 좀 쉬시려고?”
호현개의 물음에 진무는 그저 웃기만 했다.
부르면 달려오는 거지 놈이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분타에 말해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
지랄은.
쉴 생각도 없거니와, 쉰다 해도 내가 왜 거지 소굴에서 쉰단 말이냐?
진회루 같은 편안한 곳도 있는데.
하지만 진무는 마음과 달리 호현개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호현개 님만 믿겠습니다.”
“……아!”
신뢰(?)가 담뿍 담긴 진무의 한마디에 호현개의 표정이 꿈을 꾸는 듯이 변한다. 감격? 대충 그딴 표정.
“맡겨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세작 놈들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열심히.
진무는 호현개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곧바로 진회루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서안의 중심 관도에 위치한 진회루.
이미 한 번, 아니 두 번이나 와 보았던 곳이다. 한 번은 황각수를 조지러 왔고, 한 번은 청상과 청우와 함께 밥을 먹으러 왔었다.
진무는 혹시나 그간 유명해진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하여 머리를 헝클어 턱 위까지의 얼굴을 가렸다.
차르륵.
진회루 입구의 주렴이 걷히는 소리에 비단옷을 입은 중년의 접객원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복장을 훑어 낸 접객원이 진무를 향해 말했다.
“조용한 곳으로 모실까요?”
“…….”
역시 이름난 곳의 접객원은 눈치부터가 다르다.
검을 들었으니 무인이라 예상했을 것이고, 어떠한 표식도, 특징도 없는 흑의에 머리를 온통 헝클어 얼굴을 가렸으니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 짐작했을 것이다.
진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후원이 있나?”
“……후원이라 하시면?”
접객원이 의아한 표정이다.
그래, 그렇겠지.
후원은 비싸니까.
진무가 품에서…… 젠장, 야명주를 제외하곤 방만평에게 받았던 금원보밖에 없네.
잔돈으로 좀 바꿔 놓을걸.
슬쩍 금원보 하나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리자 접객원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놀람이 스친다.
하지만 당황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청실(靑室)이 좋을까요? 홍실(紅室)이 좋을까요?”
두 가지 선택지.
딱 봐도 뭔지 알겠다.
생각 같아서는 혼자 온 김에 눈치 안 보고 홍실에서 흥청망청하고 싶었지만.
“청실로 하지. 번잡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준비하는 동안 잠시 다원에서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알겠네.”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접객원이 손짓해 어린 소동을 불러 안내하게 하였다.
복도를 따라 걷자 진회루의 전경이 드러났다.
과연 서안부 최고의 기루라 할 만했다.
외부에서 본 것은 그저 입구와 창문이 달린 삼 층짜리 전각의 모습이 전부였는데,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마치 작은 마을처럼 이루어져 골목이 있고, 그 안쪽으로 정원 딸린 여러 개의 전각이 있었다.
지나치는 전각마다 흥겨운 비파 소리가 흐르고, 웃음 섞인 기녀의 콧소리와 흥취 오른 취객들의 술주정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 흥청망청이다.
소동은 진무를 외따로 떨어진 전각으로 안내했다.
“예서 잠시 기다리시면 준비가 끝난 뒤에 뫼시러 오는 시비가 있을 것입니다.”
어린놈이 자세와 말투가 제법이다.
“차는 무엇으로 올릴까요?”
“엽차면 족하다. 그보다.”
진무가 손에 쥐고 있던 금원보를 건넨다.
소동의 눈에 살짝이 탐욕이 스치지만 이내 사라진다. 벌써 무욕할 줄도 알고, 제법이다.
“바꿔다 줄 수 있겠느냐?”
“어찌 바꿔 올까요?”
“반은 전표로, 나머지 반은 각각 은원보와 은전이면 되겠구나.”
“알겠습니다.”
소동이 공손하게 대답하며 금원보를 받아 들었다. 그를 기특하게 여긴 진무가 빙그레 웃으며.
“바꾼 은원보 중 하나는 네 것이다.”
“……예?”
고개를 쳐든 소년의 눈빛에, 얼굴에 처음으로 동요라는 감정이 떠오른다.
은원보 하나면 은 오십 냥에 달하는 금액이다.
은 한 냥에 쌀 두 가마니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 무려 오십 가마니.
소동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루, 객점 등에서 일하는 아이들.
그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아이들은 아비와 어미의 수입이 얼마 되지 않고, 형제자매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언제나 가난에 지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칠십 년 전의 진무 또한 그러했으니까. 진무의 주위에 알던 아이들 역시 그러했으니까.
이 시대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우니까.
물론 진무는 그 바늘구멍을 뚫고 지나왔지만.
“오늘은 운이 좋은 하루라 생각하거라.”
“…….”
“뭐 하는 게냐? 아직 차를 내오지 않았잖느냐. 서둘러 가지 않고.”
“……가, 감사합니다! 대인!”
소동이 힘차게 인사를 하고 뛰어갔다.
왠지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
“…….”
진무가 퍼뜩 든 생각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놈의 정파 정신머리.
돈을 퍼 주고 뭘 좋아하고 있는 것인지.
주고 나니 왠지 아깝다.
무를 수도 없고…… 내 귀한 은원보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