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쾅! 콰쾅! 쾅!
서안부를 뒤흔든 세 번의 벽력성.
종남의 대숙수 목춘으로 위장해 있었던 검은 그림자, 묵영의 얼굴은 갈수록 일그러졌다.
벽력성의 정체를 알고도 남는다.
자신을 따라온 네 명의 수하들. 자신에게 활로를 뚫어 주기 위해 적들의 시선을 돌렸고, 종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뚫고 나아가야 했다. 수하들이 만들어 준 소중한 기회를 의미 없게 해서는 안 된다.
이곳을 빠져나가 영은당에 알려야 했고, 궁에 경고를 해 줘야만 했다. 그들이 자신들을 찾아낼 단서를 얻었음을. 표식의 존재가 드러났음을.
그렇기에 묵영은 사력을 다해 베고, 또 베며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추격의 범위가 길게 늘어지게 되었고, 자신들에게 폭약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터였는지 포위망이 쉽사리 좁혀지지 못하고 있었다.
기회를 노려야만 했다.
틈을 찾아내기만 하면 모든 힘을 쏟아부어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
“놈이 좌측을 노린다!”
포위망의 수좌인 듯한 화산 매화검수 놈의 외침.
일단은 놈을 죽여 포위망이 가진 유기적인 힘을 줄여야 한다.
꾸우우.
지면을 힘껏 짓밟은 묵영의 허벅지가 터질 듯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단번에 끝내야 했다.
일격에 모든 힘을 담아 매화검수의 목에 구멍을 뚫어 버리고, 놈들이 흔들리는 순간을 노려야 한다.
허벅지와 종아리에 뭉쳐진 근육이 부풀어 비명을 지르고, 용천혈에 때려 박은 기운이 폭발하는 순간 묵영의 신형이 섬전처럼 쏘아졌다.
파앙!
그가 검을 곧게 뻗으며 날아들자, 예상하지 못한 매화검수가 경악한 표정으로 쳐 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따앙!
튕겨 나간 매화검수의 검이 바닥에 떨어지고, 묵영이 들고 있는 비수의 끝이 기세를 잃지 않고 그의 목젖을 노린다.
“……!”
뭐지?
일순간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것처럼 느려지고, 목이 꿰뚫려야 했던 매화검수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또 다른 인물.
까가강!
“큭!”
턱!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으나 비명을 온전히 지를 수도 없었다. 자신의 검을 후려친 상대가 곧바로 손을 뻗어 턱을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그의 손을 피할 수도 없었다.
쑥!
양쪽 턱 언저리를 누른 힘에 벌어진 입 안으로 또 다른 손이 쑥 들어왔다.
우드득!
이런 종류의 고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입 안으로 들어온 손이 묵영의 아랫니를 잡아 그대로 뽑아 버렸다.
“크아악!”
묵영은 생전 처음 느껴 본 아픔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크으으…….”
고통으로 온통 얼굴을 일그러트린 그의 앞에 서 있는 인물.
무당지검 진무.
그가 나타나는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자신을 뒤쫓던 추격자도, 뒤따라 움직이던 포위망도 모두 멈춰 선 채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무 도장!”
묵영을 쫓아 뒤따라온 호현개가 반색하며 소리쳤지만, 뒷덜미를 잡아 패대기치는 것으로 매화검수를 구해 낸 진무는 그저 싱긋 웃으며 제 손을 내려다본다.
“일단 자결은 못 하겠네?”
피범벅이 된 그의 손 위에 놓인 자결용 독 주머니. 묵영의 입 안에 있었던 그것을 아랫니와 함께 뜯어내 버린 그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당지검.”
“어, 나야. 목춘, 이 씹새끼야.”
욕설을 누가 저렇게 실실 웃으며 내뱉는단 말인가? 더구나 방금 뽑아낸 자신의 이빨을 장난감 가지고 놀듯 이리저리 굴리면서.
“야, 대충 다 뒈진 것 같은데, 투항해라. 그럼 적당히 곱게 끝난다.”
“…….”
투항하라고? 미친 소리.
“되지도 않는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묵영이 검을 역으로 움켜쥐고 자세를 낮춘 채 진무를 노려보았다.
“개소리라니, 말이 심하네. 엄청 생각해 준 건데.”
“뭐?”
“난 그냥 니들을 잡아 주기만 하면 되거든. 그게 약속이니까. 그리고 하수오계탕. 그거 꽤 맛있었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란 말인가? 이런 급박한 상황에 그따위 요리 품평이나 하고 있다니.
“닥쳐라!”
“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넌 투항이나 해.”
“개소리.”
“거참,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계속되는 욕설에 진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야, 너도 좀 양심이 있어라.”
“뭐?”
“너 하나 잡으려고 지금 몇 명이 동원된 줄 아냐? 위소의 군병 오천에 관병 일천, 정무맹의 무인 오백이야.”
거기다 하오문까지.
“이만하면 무지하게 대접해 준 거야.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마교주 북리도천 그 자식도 이 정도 대접은 못 받는다고.”
이건 또 뭔 뻔뻔한 소리인가? 지들이 잡으려고 동원해 놓고 대접?
“보아하니 더 도망치기도 글렀고, 이제 선택은 하나밖에 없을 거 아냐? 뒈지는 거.”
“…….”
“그러니까 그냥 투항해라. 좋은 기회잖아. 그냥 묻는 말에 대답이나 좀 하고, 이참에 전향해서 재능을 살려. 객잔 같은 거 하나 열어서 하수오계탕 만들어 팔면 대박 난다, 너. 떼부자 될 거라니까? 미식가인 내가 장담해.”
진심 어린 진무의 충고에 묵영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었다.
“놈, 감히…….”
빠드득 소리가 울리도록 이를 간 묵영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포, 폭약입니다!”
호현개의 외침과 동시에 묵영의 손이 심지를 당기고, 그 찰나에 진무의 손이 벼락같이 뻗어 나간다.
쩌억!
“큭!”
묵영은 손을 다친 고통보다 조금 전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더욱 놀랐다.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심지를 당기던 손이 흉물스럽게 뭉개지고, 폭약의 상단부가 심지와 함께 부서졌다.
묵영은 잘게 떨리는 눈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처음 서 있던 자리. 그 자리에서 단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놀라긴. 이거 꽤 유명한 건데. 무당 십단금(十段錦)이라고 들어 본 적 없냐?”
“…….”
무당의 십단금.
격공장법의 최고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던 무당의 기예.
면장이 서른여섯 개의 변화를 일으켜 마지막 순간에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연환장이라면, 십단금은 발출되는 느낌도 없이 일어나 모든 것을 제압한다는 희대의 장법이었다.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인 절대의 무공.
“대단하군. 무당지검이라 하여 검공이 뛰어난 인물이라 여겼는데.”
“응, 검공이 특기야. 근데 주특기는 권장이거든.”
빙글거리며 웃는 진무.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냐? 부하에게 비밀을 발설하면 죽이겠다고 고독을 먹이지 않나. 잡히면 자결하라고 교육을 하질 않나. 정상은 아니잖아?”
“흥, 나를 회유하려는 거냐?”
“오해하지 마.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오늘이 마지막이거든. 그래서 아량 좀 베푸는 거야. 너를 넘겨주는 것을 끝으로…….”
정무맹을 떠날 생각이다, 이거야.
얼마나 기념비적인 날이냐. 그러니까 잘 생각해라, 기회 줄 때.
“네놈이 뛰어난 것을 인정하지. 네놈 하나로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 한순간에 무산되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나의 죽음으로 네놈은 사는 동안 내내 쫓기게 될 것이다. 네놈은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을 암살자들에 의해!”
묵영의 눈동자에 짙은 살기가 어리고, 그의 검이 수직으로 솟구쳐 오른다.
그의 턱을 향해.
슈가각! 서걱!
“……!”
자신의 턱을 뚫고 정수리로 튀어나왔어야 할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자신의 손과 함께.
잘린 손목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묵영의 눈에 보이는 것은 허공에 뜬 검 하나.
조금 전 화산의 무인이 떨어뜨렸던 것이다.
“허, 허공섭물?”
“수준 낮기는. 이기어검이야, 이기어검.”
“이기…….”
“말했잖아. 특기가 검공이라고.”
미친.
이기어검씩이나 되는 게 고작 특기라고? 십단금씩이나 하는 장법이 주특기고?
“그나저나 자꾸 죽으려고 해서 안 되겠네.”
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린 진무의 손가락이 가볍게 튕겼다.
퓻, 퓨퓻!
순간 느껴지는 찌릿함과 함께 몸의 제어력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묵영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진무가 내쏜 지풍에 마혈을 제압당한 것이다.
그때껏 손에 쥐고 있던 묵영의 이빨을 아무렇게나 내던진 진무는 호현개 쪽을 힐끗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지혈해 줘요.”
“…….”
그러나 정작 지혈해야 할 호현개는 진무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그럴 만도 했다.
십단금도 놀라운데, 이기어검이라니.
둘 다 전설적인 장공에 검공이 아닌가? 어찌 한 사람이 둘 모두를 사용한단 말인가?
이건 뭐, 검으로 최고인 검성과 장법에 최고라는 진룡을 합해 놓은 것 같지 않은가?
도무지 믿을 수 없건만, 자신만 본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모두가 보았고, 들었다.
“호현개 님!”
“……예?”
“지혈하라고. 죽일 셈이야?”
진무의 짜증에 호현개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묵영에게 급히 다가갔다.
어느 정도 지혈이 끝나고 천을 찢어서 상처를 봉하자.
“어디 보자, 심문하다가 뒈질 수도 있으니까.”
진무가 묵영의 옆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
손목을 잡은 진무가 자신의 기운을 묵영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뜨거운 열기? 설마?
“내가 얼마 전에 고독을 한 마리 잡아 봤거든. 그래서 벌레 새끼의 습성을 대충 알아.”
“…….”
부릅뜬 묵영의 눈.
진무의 기운이 마치 사막의 길잡이처럼 묵영의 몸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이익!
갑작스러운 열기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던 고독이 고통스럽게 녹아내렸다.
물론 그 소리는 묵영과 진무만 알고 있으리라.
“자, 끝!”
손을 탁탁 털면서 일어난 진무가 호현개를 향해 히죽 웃었다.
묵영에게서 기운을 빨아낼 필요는 없었다. 가능은 하지만 이젠 채기법으로 기운이 쌓이지 않는 데다 보는 눈도 많고, 필요한 내공은 양소방에게서 다 얻었으니.
“호현개 님.”
“예. 무당지검!”
그 신위를 본 터라 호현개의 대답과 자세는 더욱 공손했다.
“이 녀석만 있으면 나머지 녀석들도 금방 잡겠죠?”
“암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모두가 진무 도장께서 이루신 위업입니다.”
칭찬이 과하다.
어쨌든 약속은 지켰으니 양소방이 준 내공에 대한 대가는 치른 셈이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난 것이다.
“자, 그럼 이놈은 알아서 처리하시고, 그만들 해산하죠.”
“예? 해산이요?”
당연한 소리를.
“세작도 잡았고, 심문은 개방에서 알아서 하실 일이고. 또 뭐가 남았습니까?”
“……아, 아닙니다. 같이 가시죠. 어르신께서 종남의 무인들과 함께 오고 계십니다.”
그래서 뭐?
굳이 양소방을 다시 만날 필요는 없다.
만나면 분명히 ‘내공을 준 대가로’, ‘비밀을 유지하는 대가로’ 따위 이야기를 하면서 또 부려 먹으려 할 것이 틀림없었다.
양소방은 그저 거지 노예일 뿐,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 바빠서요. 이만 가 봐야 합니다.”
“예? 하지만.”
하지만이고 상지만이고. 간다는데 뭘 이리 질척거려?
“그럼 이만!”
파앙!
진무는 호현개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호현개는 물론 모든 무인들이 진무가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 정말 대단한 인물이야. 진정한 도사가 아닌가? 적을 측은하게 여겨 객점을 차리라는 등의 회유를 하지 않나. 고독을 죽여 목숨까지 소중하게 여기시다니. 정무맹의 모든 무인들이 보고 배워야 해. 암!”
호현개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동의하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심을 모른 채 오해만 쌓여 갔다. 정말로 하수오계탕이 맛있어서 한 말인데, 요리 솜씨가 안타까워서 한 말인데.
* * *
파삭.
“……!”
미끈할 정도로 잘생긴 외모의 중년 사내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자기병에서 퍼져 나온 소리에 미간을 찌푸린다.
묵(墨)이라는 글자가 쓰인, 한 손아귀에 들어올 만큼 작은 자기병.
퐁.
입구를 막고 있던 마개를 열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지독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그 안에 있던 고독이 죽은 것이다.
“묵영.”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씁쓸한 목소리.
오랫동안 자신의 수족이었던 수하의 죽음이었으나 사내의 표정은 너무도 담담했다.
“무당지검. 또 네놈인가?”
마치 흉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는 삼궁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영은당의 수좌 무영(無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