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93
293화
진무를 노려보는 남궁무휴의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져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었다.
절대의 경지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개처럼 땅바닥을 굴렀다.
입고 있던 의복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고, 주먹에 맞은 갈비뼈가 부러져 욱신거리는 느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모두 물러나지 못할까!”
남궁무휴의 외침이 다가서는 무인들의 걸음을 멈춘다.
“형님! 그의 무공입니다. 지금이라도 그를 잡아 죄를 물어야 합니다.”
“닥쳐라!”
“……형님?”
팽의방의 말에 남궁무휴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이것은 나의 싸움이다. 누가 함부로 나서라 했더냐! 그리고 뭘 익혔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예?”
“무공은 그저 무공인 법!”
“…….”
남궁무휴가 팽의방을 뒤로하고 진무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네놈이 어찌하여 그것을 익혔는가에 대한 것은 나중에 추궁하면 될 일.”
“…….”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남궁무휴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는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참 다행이다.
역시 정무칠성이라는 이름을 딱지치기로 딴 것은 아니구나.
그래, 무공은 그냥 무공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무당의 제자, 진무일 뿐 혁련무강이 아니다.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방금의 삼 초는 좋았다. 아주 제법이었어. 이 나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다니 말이지.”
“…….”
“인정하지. 네놈은 충분히 자랑할 만큼 강하다. 하지만 불시의 공격이 성공하였다 하여 나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 아니다.”
“…….”
“자, 다시 한번 보여 보려무나. 남궁의 제왕검(帝王劍)을 상대로.”
남궁무휴가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힘껏 말아 쥔다.
남궁의 검.
양날을 가진 검신은 무려 두 자 반에 달할 정도로 길고, 그 폭은 반 뼘에 이른다.
여타의 검보다 훨씬 더 두텁고 큰 그것만 보아도 남궁의 검이 중검(重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거움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뛰어난 검형. 남궁무휴는 그 정점에 올라 있는 자였다.
톡톡.
진무가 발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차고 히죽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다시 삼 초를 주시는 겁니까?”
“삼 초? 무슨 소리! 너 같은 강자를 상대로 그럴 수는 없지. 이번엔 내가 먼저 선공을 하겠다!”
“그러시든지!”
아까는 개무시를 하더니 처맞고 나서는 강자 어쩌고 하는 것 좀 보게.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태세 전환 하나는 빛보다 빠르지, 아주.
진무가 움켜쥔 주먹의 거리를 벌리자 남궁무휴가 지면을 밟는 즉시 몸을 날렸다.
파아앙!
가죽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 중검이 횡으로 무겁게 그어진다.
슈아악!
동시에 남궁무휴의 검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채찍처럼 휘둘러져 진무를 노려 왔다.
“이까짓!”
진무가 묵룡을 담아 검게 변한 주먹으로 강기를 후려쳤다.
콰쾅!
비껴 난 강기가 바닥을 때리며 폭발하고 묵직한 충격파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 떨림이 멈추기도 전에 높이 솟구쳐 오른 남궁무휴가 곧게 들었던 검을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개천(開天)!”
고개를 쳐든 진무의 눈에 순간적으로 하늘이 갈라지고 거대한 틈이 생긴 듯한 환영이 보였다.
콰콰콰!
동시에 갈라진 틈이 유성우와 같은 강기를 미친 듯이 토해 놓는다.
한 점을 향해 오차 없이 쏟아지는 강기의 비에 진무가 히죽 웃으며 빠르게 측면으로 달렸다.
“어딜!”
남궁무휴의 손이 가볍게 움직이자 지면에 닿을 듯했던 유성우가 호선을 그리며 진무를 뒤쫓는다.
팍!
갑자기 멈추는가 싶었던 진무가 가볍게 발을 놀리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여러 개의 잔영을 만든다.
쾅! 콰콰쾅! 쾅!
잔영 하나하나마다 강기가 꽂히자 거센 폭발을 일으키고, 대지가 순차적으로 터져 올랐다.
그 위력의 여파가 사방을 집어삼키자 북진의 무인들이 사력을 다해 물러난다.
강기의 고수들이 싸우는 곳에 휘말렸다가는 부상은 물론이거니와 목숨마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성 같은 강기를 피해 쉬지 않고 잔상을 만들어 내던 진무의 신형이 일순 쭉 늘어나는가 싶더니 막 바닥으로 내려서는 남궁무휴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합!”
좌우로 활짝 펼쳤던 손을 합장하듯이 모은 진무가 남궁무휴를 향해 빠르게 뻗어 낸다.
쿠아악!
거친 용음과 함께 해일 같은 장력이 남궁무휴를 향해 날아갔다.
“흥! 놈, 쪼개 주마!”
진무가 방향을 바꾼 순간 곧바로 검을 사선으로 들었던 남궁무휴가 온 힘을 다해 아래로 내려 베었다.
제왕검형 벽검세, 산 가르기.
양손으로 움켜쥔 그의 검이 수직의 호선을 그리다 중단에 멈춘다.
후우웅!
검이 만들어 낸 풍압이 폭풍처럼 뿜어지고, 진무의 장력을 반으로 쪼개며 다가왔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장력을 쪼개 놓으면서도 검강의 위력이 조금도 줄지 않다니.
하지만 멍청한 짓이다. 까짓 피해 버리면 그만…… 어?
재빨리 몸을 틀어 피한 진무의 시야에 그의 뒤편에 자리한 무당 도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남궁무휴가 쏘아 보낸 강기는 이미 그의 검에서 떠난 뒤였다.
회수 불가의 상태에서 진무가 피하고 나면 강기가 그대로 무당을 덮칠 터였다.
“저, 저런! 위험한!”
혜조와 몇몇 수뇌부들 역시 무당의 위험을 느낀 것인지 재빨리 몸을 날리고 있었다.
설마 이 자식, 일부러?
남궁무휴의 입가에 맺힌 잔인한 미소와 거침없이 지면을 낮게 스치며 달려오는 그의 모습.
그럼 그렇지. 강의 경지가 완숙에 이르러 있는 남궁무휴가 실수를 범할 리가 없지.
얼굴을 일그러뜨린 진무가 피하던 걸음을 돌려 강기의 앞을 막아섰다.
쿠우우.
급격하게 끌어 올린 기운이 몰려 진무의 양손에 흑빛 구체를 만들어 냈다.
응축된 두 개의 구체를 강제로 합해 버린 진무가 세상을 가르며 다가오는 남궁무휴의 강기를 향해 그를 내뻗었다.
광룡, 천교열(天咬裂).
콰아아앙!
묵룡의 이빨이 검강을 집어삼키며 진무의 눈 앞에서 폭발했다.
“놈! 죽어라!”
동시에 지척까지 다가온 남궁무휴가 진무의 허리를 향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스걱!
“진무야!”
반으로 갈라지는 진무의 모습에 명현이 주먹을 움켜쥐며 외쳤다.
남궁무휴의 입가에 떠오른 득의양양한 미소.
이걸로 끝이다.
그는 진무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은 이미 몇 차례의 공수 교환으로 충분히 알았다.
그렇기에 일부러 무당의 도사들을 노려 피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무당지검의 죽음?
어차피 사악한 무공을 익힌 놈이었다. 죽여도 어느 누구 하나 자신을 탓하지 못할…….
스아아아.
그 순간 반으로 갈라졌던 진무의 신형이 신기루처럼 흩어진다.
이게 어떻게 된……? 분명 검날에 베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남궁무휴가 불신으로 가득 찬 눈으로 급히 좌측 하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거대해져 오는 검은 눈동자.
“이, 이런 젠장!”
횡으로 그었던 검을 당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남궁무휴는 곧바로 팔꿈치를 꺾어 진무를 향해 세차게 내리쳤다.
쩌어어엉!
팔꿈치에 느껴지는 시큰한 충격.
다음 순간 남궁무휴의 표정이 급박함으로 일그러진다.
팔꿈치를 막은 손과 자신의 옆구리에 닿은 손.
그리고 진무의 입가에 맺힌, 섬뜩하기 짝이 없는 미소.
“감히 너 따위가 무당을 노려? 죽이진 않겠지만, 한참은 누워 있어야 할 거다, 이 새끼야.”
“……!”
소름 끼치는 진무의 속삭임에 남궁무휴가 급히 몸을 빼려는 순간, 진무의 손에서 거친 기운이 느껴졌다.
대지를 꿰뚫는 용, 곤룡(袞龍) 통파(通破).
옆구리로 파고든 진무의 기운이 남궁무휴의 몸 안에서 거칠게 폭발했다.
쩌어어엉!
“커어억!”
튕겨 나가는 일도 없이 아예 움직임을 멈춰 버린 남궁무휴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핏발이 선 눈으로 진무를 노려보던 남궁무휴가 갑자기 검은 피를 왈칵 토해 낸다.
“우웩!”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렸던 검이 짜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끄으…… 네, 네놈…….”
“…….”
진무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남궁무휴가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힘없이 허물어졌다.
그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진무의 주위로 무거운 침묵이 찾아들었다.
정파의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던 정무칠성의 일인, 창천 남궁무휴.
첫 삼 초는 방심에서 비롯되었으나, 이후의 대결에서 남궁무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선보이고도 쓰러졌다.
고작 약관을 넘은 무당의 도사에 의해…….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망연히 진무를 바라볼 뿐이었다.
“혀, 형님!”
급하게 달려온 팽의방이 남궁무휴를 안고 물러나더니 진무를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뭐, 뭣들 하느냐! 저놈을 잡아라! 간악한 놈의 종자다! 어서 잡으란 말이다!”
막상 본인은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는 주제에, 팽의방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새끼, 아까 분명히 무공은 무공일 뿐이라고 남궁무휴가 말했건만.
그가 쓰러지니 이제 와서 또 꼬투리를 잡는다.
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진무가 승리한 것이다. 그 어떤 비열한 방법도 없이,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무인 대 무인으로서 당당히 겨루었으니 설사 그가 무당 도사가 아닌 사파의 무인이라해도 그 사실은 인정해야 했다.
정당한 승리를 비난하는 것은 정파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놈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냐! 사파의 악적이다! 어서 잡으란 말이다!”
어쨌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팽의방의 노력으로 인해 북진의 무인들에게서 조금씩 움직임이 생긴다.
“멈추시오!”
“……?”
무당의 도사들이 어느새 다가와 진무를 감싸듯 둘러쌌다.
“모두 물러나시오! 어찌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고 이런단 말이오!”
명현이 진무의 앞을 가로막으며 주변을 향해 외쳤다.
“이놈들, 비키지 못할까! 어디서 감히 악적의 종자를 감싼단 말이냐!”
“…….”
저 고양이 새끼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지랄이네.
“본파의 진무가 사황의 무공을 익힌 것은 나도 의외이나 악적의 종자라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소이다!”
“닥치시게! 혁련무강 그 개잡놈에게 그리 당하고도 어찌 그의 무공을 익힌 제자를 감싼단 말인가! 당장에 잡아 꿇리고 사지근맥을 잘라 파문을 해도 모자랄 판에!”
콧김까지 내뿜으며 여론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팽의방의 악다구니에 이제는 화산과 소림의 수뇌와 제자들마저 얼굴이 굳어졌다.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정파의 무인이 사파의 무공, 그것도 가장 극악하다 칭해지던 무공을 익힌 것이.
그 모습에 명현이 날카로운 기세를 뿜으며 검을 뽑아 들며 겨눈다.
“무당의 제자들은 들어라!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진무에게 다가서는 이들을 막으라!”
“예!”
명현이 그리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 다가서던 이들이 주춤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서로의 대치에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는 와중에 어울리지 않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흠, 왜 다들 그의 무공이라며 화를 내시는가 했더니. 이게 사황의 무공이었군요? 하필이면…….”
“……응?”
“…….”
“모, 몰랐단 말이냐?”
“예.”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도 당당하기 짝이 없는 진무의 대답에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화산의 금룡협 밑바닥에서 얻은 무공인데…….”
턱을 어루만지며 심각하게 중얼거리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어디서 얻었다고?
화산…… 금룡……협? 사황의 무공을?
이 무슨 희대의 개소리란 말인가?
화산의 금룡협에서 사황의 무공을 얻다니.
“닥쳐라, 이놈! 위기를 모면하려고 어디서 그따위 거짓말을 내뱉는단 말이냐! 너는 분명 사패천의 반란 세력을 돕고 있다 했다. 그들이 아무 말 하지 않았을 리 없어!”
“안 하던데요?”
“……뭐?”
“어쩐지 너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었지요.”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팽의방의 얼빠진 반문에도 진무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이 사황의 무공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만약 알았다면…… 익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무가 일부러 후회막급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굳혔다.
정사를 모조리 집어삼키기 위해 미리 세운 특단의 사기, 모른 척 발뺌하기.
난 몰랐는데? 왜? 어쩔 건데? 증거 있어?
난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