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진무가 장로들과 싸우고 있는 동안 돌격조가 동문과 서문의 무인들을 괴멸시키고 문을 열었다.
때를 기다린 천우명과 명세찬이 무인들을 이끌고 성의 내부로 들이치자 전황은 순식간에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사이 진무는 천중전을 향해 걷고 있었다.
호법부의 무인들이 그 뒤를 줄지어 따르는 모습은 마치 진무를 호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천중전을 앞에 두고 걸음을 멈춘 진무가 고개를 들어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본다.
열린 창으로 진무를 내려다보는 얼굴, 유월청이다.
분노에 얼굴이 온통 붉으락푸르락해진 그를 가만히 응시하던 진무는 오랜 기억에 빠져들었다.
월청아.
너를 볼 때마다 참으로 장하다 생각했다.
약벽, 공후, 우명, 세찬……. 그들과 함께 맞을 때도 너는 언제나 끝까지 참아 내었고, 무얼 시키더라도 묵묵히 완수했더랬지.
심하게 멍청했던 우명이나 너무 똑똑했던 세찬, 고집이 쇠심줄인 공후나 나이 많은 약벽. 너는 언제나 그들 사이에서 중도(中道)를 걸었기에 다음 대의 천주는 너였으면 했다.
너라면 치우치지 않고 나의 뜻을 가장 잘 이을 것이라 생각하여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계로 정했거늘, 어찌하여 그랬단 말이냐?
사파라 하더라도 무인이라면 반드시 긍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 않았더냐. 어찌하여 고작 쥐새끼들에게 휘둘려 돈 몇 푼에 아이들을 유괴하였단 말이더냐?
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면 모르되 직접 보았으니 어찌 너를 가만히 둘 수 있을까.
내려오너라.
괜히 안에서 싸우다가 천중전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아까우니.
과거 그를 부를 때처럼 검지를 세워 들고 까딱이는 진무의 모습에 유월청의 눈동자에 핏발이 돋아났다.
아, 이런 미안. 화났니?
내가 경솔했다. 네 신분이 지금 천주였지?
호법부의 무인들도 보고 있는데…….
그에 생각이 미친 진무가 나름 예의를 다해 준다고 손가락에서 손바닥으로 바꿔 까딱대자 이제 콧구멍까지 벌렁거리며 씩씩대는 유월청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오만하기 짝이 없는 애송이에게서 그간 묻어 왔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망할 사황 혁련무강, 그는 언제나 자신을 저렇게 불렀다.
기르는 똥개 새끼를 부르는 듯이 손가락만 까딱거려서…….
빌어먹을 자식. 전인이면 전인이지 제가 무슨 사황이라도 된 양 자신을 저리 부른단 말인가?
뿌드득.
절로 어금니가 갈리고 눈에 핏발이 솟구친다.
유월청의 시선이 진무를 떠나 사패천의 내부를 향한다.
천중전. 사패천의 모든 곳을 살필 수 있을 만큼 높은 곳에 자리한 유월청의 거처.
그는 그곳에서 전쟁이 시작될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전세가 기울고 있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이나 다름없는 사패천의 본성이 망할 사패오왕 놈들에 의해 안팎에서 공격을 당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유월청의 시선이 다시금 아래로 향한다.
짝다리를 짚고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약관의 핏덩이, 사황의 전인.
무당의 도사 놈이 어째서 그의 무공을 익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묵룡의 기운은 진짜였다.
하지만 기껏해야 사패오왕의 비호를 받은 핏덩이. 그 모진 세월을 이겨 내고 천주의 자리에 오른 자신에 비하면 막 잎사귀를 드러낸 새싹에 불과하다.
그래, 모두의 앞에서 짓밟아 주마. 재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저 녀석의 머리를 잘라 모두에게 보일 것이다.
사패천주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혁련무강에게 지목받은 자신뿐이라고.
유월청은 열린 창틀을 밟고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우우우우!
길게 내지른 장소성과 함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려 자신의 존재감을 사방으로 퍼트린 유월청이 천천히 허공을 계단처럼 밟고 걸어 내려온다.
화려한 장포를 휘날리며 거만한 모습으로 한 걸음씩 내려서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무가 픽 웃었다.
거 새끼, 겉멋만 들어서는.
그냥 뛰어내리면 될 것을 뭐 하러 싸우기도 전에 내공을 소모한단 말인가?
얼굴을 찌푸린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허세 가득하게 바닥에 사뿐히 내려선 유월청이 호법부의 무인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칼을 내리고 길을 열어 줘? 묵룡의 전인이라 하니 마음이 동하더냐? 나와 저 핏덩이를 두고 저울질이라도 해 보려는 게야?”
유월청은 호법부의 무인들을 향해 싸늘한 비웃음을 날렸다.
“네놈들도 다른 사패오왕 녀석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게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도 천한 신분인 내가 천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 분명해.”
한차례 호법부의 무인들을 노려본 유월청이 진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네놈이 사황의 전인이라고?”
“…….”
“참으로 재미있군.”
유월청이 진무를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웃는다.
“간악한 늙은이 같으니. 내게는 자신의 무공을 한 글자도 가르쳐 주지 않더니 너 같은 핏덩이를 남겼을 줄이야. 그것도 무당이라니…….”
간악한 늙은이…… 간악…… 뭐어?
유월청이 누구를 지칭해 말하는지 금세 깨달은 진무가 눈에 쌍심지를 돋웠다.
이런 망할 놈이. 무공을 배울 때는 평생 은혜를 잊지 않네 마네 하더니 죄 거짓말이었냐?
“그래, 하긴 언제나 그랬지. 나는 항상 뒷전이었어.”
유월청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제 말이면 끔뻑 죽는 천우명에게는 제 무공을 가르쳐 주면서 나에게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었지.”
“…….”
유월청의 말에 진무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진다.
내가 무공을 안 가르쳤다고?
이런 개자식을 봤나.
원공후, 소약벽, 명세찬. 그 셋은 원래부터 제 문파의 독문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들의 성취에 도움을 주긴 했으나 진무가 사패오왕 중에서 기초부터 무공을 가르친 것은 천우명과 유월청 둘뿐이다.
더구나 신력을 타고난 천우명에게는 고작 붕권만 가르쳤었다. 머리가 나쁜 천우명이 다른 무공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반면에 유월청에게 가르친 것은 붕권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상승절학인 현명신공(玄冥神功).
대성하면 묵룡혼원공과 비슷하게 검은 강기를 뿜어낼 수 있었거니와, 애초에 묵룡혼원공은 체질에 맞지 않는 자가 익히면 극독을 삼키는 것과 다름없기에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와중에 후계라고 그 비싼 영약까지 처먹여 가며 강의 경지까지 올려 주었거늘, 천우명에게만 채기법을 익히게 했던 것을 시기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면서 나더러 간악하다고 해?
“그래, 맞아. 그랬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놈에게는 줘 패 가면서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나에게는 그저 무공 구결만 알려 주었지. 홀로 외롭게 깨닫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어.”
“…….”
“무공 말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지. 천웅방이라는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공후 녀석은 그렇게 고집을 부려도 이해하고 받아 주었어.”
“…….”
“명세찬과 살막도 마찬가지였다. 세력을 가진 그들에겐 너무도 관대했지. 출신이 비천한 나에게는 연일 호된 꾸지람만 내리면서.”
아, 그러니까 내가 편애를 했다?
듣자 듣자 하니까 진짜 별……. 야, 이 새끼야, 우명이를 패서 가르친 건 걔가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고.
너는 알아서 잘 알아듣기에 그런 것인데 그걸 그렇게 꼬아서 받아들여?
“하지만 나는 버티고 인내하면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럴수록 그 망할 놈들의 뒤치다꺼리는 전부 내 몫이었지.”
거기까지 들은 진무는 기가 찬다는 듯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뒤치다꺼리라고?
그건 후계이기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사패천을 세운 것은 자신이었으나 이어 가야 하는 것은 유월청이었다. 정마의 틈바구니에서 버텨 내야 했고, 사패천이 더 강성하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저 개성 강한 나머지 사패오왕을 통제해야 했다.
그렇기에 다른 사패오왕에게 주지 않았던 권한을 유월청에게만 주었다. 철검단을 제외한 모든 무인대를 그가 통솔할 수 있도록 하고, 능력 좋은 장로들을 뽑아서 그의 옆에 붙여 주고…….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었는데 못 알아들었던 것인가?
물론 자신이 오래 해 먹긴 했지만, 그저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패천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 탓도 아주 조금 있으나, 무엇보다 유월청이 마음 놓고 넘길 정도로 준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죽어 가는 순간에 빨리 죽으라며 욕하던 유월청과 장로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저들끼리는 잘 뭉치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얻어 낸 사패천의 주인 자리다. 그 모진 세월을 참고 또 참아서 얻어 낸 보상이란 말이다.”
“…….”
“사황의 무공을 익힌 전인이 나타났으니 넘겨 달라고? 개소리하지 말라고 해라. 내가 주인이다. 오직 나만이 앉을 수 있어.”
진무는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월청아, 이 멍청한 녀석아.
그 자리에 앉아서 고작 한다는 것이 남의 탓이란 말이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째서 지금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그래, 이 모든 것이 내가 널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그 수습도 내가 해야 할 터.
“……월청. 할 말은 그게 다냐?”
“뭣이?”
반 토막 난 말투에 유월청의 눈에 불길이 토해져 나왔지만 진무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너는 모두가 피땀으로 세운 자리에 앉아 충성 어린 조언에 귀를 닫고 감언이설을 일삼는 장로들로 주위를 채웠다.”
나지막한 말과 함께 진무가 유월청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재정을 충당한다며 무리한 요구로 휘하의 충성을 저버렸으며.”
“…….”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진무의 말이 이어진다.
“사패천을 저속한 무리로 채우고 상단 따위에게 휘둘려 이용당했고, 민가에 피해를 끼쳐 무인으로서의 긍지마저 버렸다.”
진무의 눈빛에 서늘함이 담기고 몸에서 별안간 거악과 같은 무거운 투기가 흘러나와 사방을 채운다.
숨 막히는 그 기세에 유월청이 입을 떼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유월청의 마음속에 이상한 불안감이 차오른다.
“욕심이든 탐욕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너의 불만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나를 설득해야만 할 것이다. 내 뜻을 버리고 너의 뜻을 세웠으니까.”
순간 유월청의 눈이 찌푸려진다.
자신의 뜻?
의문에 사로잡혀 생각에 잠기는 사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 진무에게서 뻗어 나오는 투기에 유월청은 자신도 모르게 발을 살짝 물렸다.
“그래. 지금의 주인은 너다. 그러니 되지도 않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그만 칭얼거리고 그곳이 너의 자리라는 것을 입증해 보거라.”
“……피, 피해 의식이라고? 치, 칭얼거려?”
“아니더냐?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냐?”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진무의 차가운 말에 내내 들끓던 유월청의 분노가 거대한 살심이 되어 휘몰아친다.
“이런 개자식이!”
평정심을 잃고 눈이 돌아가 버린 유월청의 주먹이 시커먼 기운을 머금고 휘둘러졌다.
쿠아악!
현명신공, 묵빛을 드리우는 그 모습이 묵룡혼원공과 닮았기에 전했던 절학이었다.
그런데 월청아. 그건 아니?
그거 가르친 게 나란다.
거센 강기를 휘감고 날아오는 주먹을 바라보던 진무가 그의 주먹을 향해 일휘를 검집째로 뻗는다.
부드럽게 닿은 손목을 검집으로 휘말아 흘리자 유월청이 눈을 부릅떴다.
짜아악!
“…….”
불이 번쩍 이는 순간 고개가 한쪽으로 꺾였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유월청이 눈을 끔벅거린다.
얼굴에 화끈함이 찾아오고 나서야 깨닫는다.
지금 따, 따귀를 맞은 건가?
강기의 고수에 환갑이 넘은 자신이 새파랗게 어린 핏덩이에게?
“월청아.”
“…….”
“지금 것은 참으로 허접했다.”
진무의 한마디가 기어이 유월청의 이성을 끊어 버린다.
“크아아!”
크아아는…… 짐승 새끼도 아니고.
아니, 지금부터는 짐승 새끼여야만 할 거야.
네 말대로 나는 간악하고! 이제부터 세상에서 제일 간악하게 널 때려잡을 예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