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진무 일행이 도착한 곳은 가옥이 백여 채 정도 될 법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노려 주인 되는 이가 투자를 많이 한 모양인지 방을 잡고 쉴 수 있는 객점의 시설이 제법이었다.
“어, 좋다!”
막 목욕을 마친 진무가 개운한 표정으로 객점의 식당으로 나왔다.
지금쯤 그 거지들은 모닥불 피워 놓고 개고기나 먹고 있으려나. 아니면 마을로 들어와서 제발 마구간에서 잠만 자게 해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려나?
대충 살펴본 바로 마을에는 무관의 무 자도 보이지 않았다. 무림인이란 존재를 알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시골 마을.
그들에게 양소방은 늙은 거지, 각출은 어린 거지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고생할 생각을 하니 왠지 고소한 것이, 기분도 좋은데 모처럼 황신이랑 소동보를 데리고 거나하게 술이나 마셔 볼까.
기세 좋게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힌 진무의 시선이 황신과 소동보를 찾…… 어?
진무가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며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어 대고 있는 두 마리의 거지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소방과 각출. 쟤들이 왜 저기 있지?
설마, 이것들이 그렇게 말했는데 기어이 나한테 엉겨 붙으려고?
진무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 자네 왔는가?”
양소방이 기름이 번들거리는 입으로 진무를 향해 웃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뭐?”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사패천에서 받은 돈을……?”
툭.
진무가 쏘아붙이려는데 각출이 보자기에 든 물건을 탁자 위로 척 올린다.
“이게 뭐…… 응?”
진무의 앞에 활짝 펼쳐진 보자기 안에 담긴 것은…… 돈?
수두룩한 철전에, 드문드문 은전까지 있다고? 아니, 대체 이게 어떻게?
한순간 말문이 막혀 버린 진무가 황당함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여기!”
각출이 보란 듯이 손을 들어 객점 주인을 부르더니만…….
“아이구 나리, 부르셨습니까요?”
“오리구이 하나 더!”
“옙. 감사합니다!”
객점 주인이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숙이고는 횅하니 주방으로 뛰어가 주문을 넣는다.
“……돈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응? 아닐세, 핫핫.”
“그럼 대체 어디서 이 많은 돈을.”
“허헛, 전부 우리 각출이 덕일세. 과연 후개 출신이야. 이런 능력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지 뭔가? 괜히 나의 제자로 삼게 한 것이 아니었단 말일세.”
“…….”
양소방이 싱글벙글 웃으며 각출을 칭찬하자 각출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깃점을 입 안 가득히 쑤셔 넣는다.
근데 양소방의 저 표정 뭐지?
흐뭇함, 대견함, 자랑스러움, 뿌듯함?
그리고 어떤 능력을 말하는 거지? 후개 출신은 다른 뭔가가 있는 건가?
순식간에 머릿속을 잠식하는 물음표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무의 귀에 한술 더 뜨는 각출의 외침이 들렸다.
“여기 여아홍도 한 병!”
“예이!”
여……아홍? 이런 시골 객점에 여아홍이 있다고?
아니, 어쨌든 그게 얼마짜린데 돈이 대체 어디서 나서? 땅에서 파낸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닐 것인데.
이 새끼들이 설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갈취를 했……을 리는 없고.
외면해 버리고 싶지만 이 궁금증이라는 놈이 도무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 난 겁니까?”
“벌었네.”
“벌어요?”
진무가 양쪽 눈썹을 기이하게 휘며 묻자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출이가 동냥질을 좀 할 줄 알더구먼.”
“…….”
도, 동냥이라면…… 구걸?
아니 그래, 구걸이야 거지들의 전유물과 같은 돈벌이 수단이긴 하다.
근데 양소방과 헤어진 지 고작해야 두 시진 정도 지났다. 그사이에 구걸을 해서 저 많은 돈을 벌었다고?
이 양반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시지?
대충 봐도 은 열 냥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액수다.
쌀 스무 섬이나 되는 돈을 두 시진 만에 구걸로 벌었다는 소리다.
“하, 말도 안 되는…….”
지나가는 사람이 전부 돈을 가져다 바쳐도 어려운 일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당장에 진무도 헐벗고 거리로 뛰쳐나갈 일이었다.
“신기하지?”
“…….”
“혹, 걸신(乞神)의 삼위체(三位體)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거지 신의 몸을 세 개나 가졌다고?
별 거지 같은…….
기가 찬 진무가 그딴 이름을 들어 봤을 리가 있냐고 쏘아붙이려는데, 양소방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간다.
“병약하고 힘이 없어 보임으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니 채신지체(瘥身之體)요. 마주쳐 상대의 경계를 풀고 주머니를 열게 하는 눈을 가졌으니 휼안지체(恤眼之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여 고성지체(呱聲之體)라 하지.”
“…….”
“그 셋을 타고난 이가 있으면 중원에서 제일가는 걸인이 된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개방에서 전해 내려온다네.”
“…….”
정……말 지랄도 염병이다.
그딴 게 전설씩으로나 전해져 온다고?
문곡성이나 천살성 같은 건 들어 봤어도 걸신이라니…….
살다 살다 거지 팔자를 타고난 놈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처음이다.
그게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할 말이냐?
“그래서 저 각출이라는 애가 그…… 말하자면 타고난 거지란 뜻입니까?”
“그렇네. 거지들의 영웅 같은 존재지.”
“…….”
하아, 됐다. 말을 말자.
심력이 절로 낭비되는 기분이다.
그냥 황신과 소동보를 데리고 술이나 마셔야겠다.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진무의 모습에 양소방이 자랑스러움으로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아마 자네도 삼 초를 못 버틸걸?”
“…….”
“내 장담하지.”
양소방이 제 가슴을 탕탕 소리가 나도록 치며 자신했다.
아, 정말이지 상대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다음 순간 양소방이 내뱉은 말이 진무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내기를 해도 좋네.”
“……내기……요?”
거 보자 보자 하니 말씀이 심하시군요. 이딴 걸로 지금 제게 내기를 거시겠다고요?
“만약 삼 초 안에 자네 주머니가 열리지 않으면…… 내 패배를 인정하겠네!”
“…….”
진무의 눈가가 씰룩거렸다.
오호라? 그래?
“뭘 걸어야겠죠?”
“협전이라도 원하는가?”
미친 소리.
그건 이미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겨우 두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그런 하품(下品) 따윌 원할까?
이런 경우엔…… 묻고 배로 간다.
“개방의 팔결 매듭 어떻습니까?”
“……미친!”
진무의 말에 양소방이 눈을 번쩍 떴고, 각출이 욕설을 내뱉는다.
설마하니 그가 팔결의 매듭을 요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지금의 개방에 팔결의 매듭을 가진 이는 양소방뿐. 팔결을 가진 자는 개방의 호법에 준하는 지위와 권한을 가진다.
말이 팔결이지 개방을 통째로 내어달라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그건…… 방주의 허락만으로는 안 되네. 장로들의 회의에서 결정되어야만.”
당황해서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양소방의 모습에 진무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비웃는다.
“걸신의 삼위 어쩌구 하시더니……. 아, 뭐, 쫄리면 뒈지시든가요.”
“……으음.”
사실 양소방은 진무를 다시 만났을 때부터 꼭 요구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각출의 능력을 알고 나서 잘되었다 싶었는데 팔결이라니…….
양소방이 고개를 돌리자 각출이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고.
절박하기까지 한 그의 표정에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양소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
“……걱정 마라, 각출아. 나는 너를 믿는다.”
“하지만…….”
“너는 분명 걸신의 삼위체이니라. 무공이나 학식은 몰라도 구걸로 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스승님…….”
사제지간의 눈물겨운 모습에 진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제일 구걸인이라니……. 저게 저렇게 심각해도 되는 거냐?
“그럼 나도 내기에 이겼을 때 원하는 바를 말하겠네.”
“말씀하시죠.”
“……각출이를 데리고 다니며 가르침을 주게.”
순간 진무의 눈이 팍 찡그려지고 각출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아니 팔결 매듭과 비교될 만한 요구를 해야지. 겨우?
하지만 양소방의 뜻은 확고했다.
용봉관에서 보았던 청상과 청우의 엄청난 실력 향상.
그 성취가 너무도 놀라워 물었을 때, 그들은 모두가 진무의 덕택이라 말했다.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불과 삼 년 전만 해도 현기에조차 이르지 못했던 청상이 지금은 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삼 년. 더욱이 영약 같은 것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양소방은 깨달았다.
진무, 그는 분명 타인의 경지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물론 천재성을 가진 청상이라 가능한 일이겠으나 자신이 본 각출이라면 절대로 그 재능이 뒤질 리 없었다.
스승은 자신이지만 진무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면?
개방은 또 다른 고수를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뭐, 그럼 내기 성립인가요?”
“……그렇네.”
진무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각출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라고? 그것참 좋은 생각이다. 안 그래도 이미 거지 노예 이 호로 낙점했었는데.
“좋습니다. 그럼 삼 초를 양보하지요.”
“알겠네. 대신 각출에게서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아서는 안 될 것이네. 물론 내력을 운용해서도 안 되네.”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각출아!”
양소방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맹렬히 내젓는 각출의 양어깨를 턱 잡았다.
“네게 개방의 미래가 달려 있다.”
“……스승님.”
“최선을 다하거라. 나는 네가 이기리라 믿는다.”
“…….”
확신을 주는 한마디에 각출의 표정이 변한다.
결연한 눈빛을 하고 진무의 앞으로 척척 다가오더니만 별안간 몸에 힘을 쭉 빼는 각출.
그마저도 어이가 없다. 이게 무슨 무공 대결도 아니고, 환장하겠네.
“하아, 빨리 시작하자.”
“좋습니다. 개방의 각출이 무당지검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그냥 빨리 세 번 구걸해라, 이 자식아. 술 마실 시간도 모자라거든?
공손하게 인사를 마친 각출이 가슴이 부풀렸다가 천천히 숨을 내뱉기를 반복한다.
팔짱을 낀 진무가 그 모습을 가당치도 않다는 눈빛으로 꼬나보는 와중이었다.
각출이 춤과 같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손을 움직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잘게 떨기 시작하는데…….
“흡!”
순간 진무는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럴 수가? 이게 뭔?
없던 동정심이라도 생긴 걸까? 갑자기 각출이 하염없이 약해 보인다.
너무나 힘겹게 움직이는 모습에 가슴이 아리고 쓰리고 저릿해지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미친 듯이 샘솟는다.
걸신의 삼위체, 대, 대단하다.
이 정도일 줄은…….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내었다.
순간 십만 년은 걸릴 듯한 속도로 고개를 들어 올린 각출의 눈동자가 진무의 뇌리를 관통한다.
“커억!”
마, 망할. 이건 마안이다.
엄청난 위력의 눈빛에 동요되어 손이 전낭으로 움직일 뻔했다.
“흑흑흑…….”
혼란에 빠진 진무의 귓가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툭, 툭.
옆에 있던 황신과 소동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각출의 앞에 전낭을 통째로 가져다 바친다.
망할, 소림의 부동심결이라도 익혔어야 했다.
하지만 겨우…… 다시 버텨 내었다.
이 새끼, 내가 누군 줄 알아?
비열함의 표상, 사패천주 혁련무강이었다!
부들부들 떨며 전낭으로 가는 손을 겨우 멈춘 진무가 핏발이 선 눈으로 각출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그때 각출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었으니…….
“한 푼 줍쇼오.”
“…….”
대결은 끝났다.
진무가 전낭의 배를 처참하게 갈라 바치는 것으로.
“고맙소. 잘 쓰리다.”
“…….”
불쌍하던 그 모습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거만한 표정으로 전낭 세 개를 탁자에 올려 두는 각칠의 미소가 보인다.
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