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황신과 소동보는 보는 것만으로 오한이 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고 있는 각출의 고통이 간접적으로 전해진 탓이다.
미친 개천주.
몇 번이나 당해 봤고 지켜보았지만 역시 너무 무섭다.
황신은 절대로 진무의 돈에 손을 대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소동보는 할머니 말씀이고 뭐고 절대 진무에게 개기지 말아야겠다고 맹세했다.
“허! 저, 저럴 수가!”
양소방은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가 진무와 겨루어 본 것은 두 번이었다. 한 번은 단강구 외곽에서, 또 한 번은 일해상단에서.
그때 개방의 비공이며 자신의 독문무공이었던 쇄심파를 부순 진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후 엄청난 성취를 보인 진무의 무위에 대해서 수도 없이 들어왔으나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양소방이 놀란 것은 진무의 경지가 이미 자신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각출을 향한 진무의 구타.
“……와, 완벽하다.”
“……?”
양소방의 감탄에 황신과 소동보가 홱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본다.
뭐? 완벽하다고? 제자를 줘 패는 게 그렇게 감탄이 나올 만큼 좋아할 일이야?
하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양소방이 놀라는 이유.
개방의 타구봉법.
세인들은 그저 개를 개패는 무공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누대를 거쳐 오며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서 발전시켜 온 개방의 모든 비전절학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다름 아닌 효과적인 구타의 기술.
“아…….”
양소방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 진무의 주먹에는 타구봉법의 발전형이 모조리 들어 있었다.
각출이 아닌 자신이 배우고 싶을 정도로 고매한 구타의 묘리가 그곳에 있었다.
안 때린 곳을 찾아 가며 때리는 세밀함, 때린 곳을 또 때리는 잔인함, 강약을 조절하는 적절한 힘의 안배는 물론이거니와, 때리는 와중에도 간간이 혈도를 자극해 주니 맞은 상대로 하여금 절대로 정신을 잃지 않게 한다.
상대의 전의를 철저히 말살시키고 오롯이 구타당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완벽한 구타의 기예.
“끄어어억!”
각출은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새된 비명을 질렀다.
“하아, 하아…….”
각출을 거의 짓이겨 놓다시피 한 진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두어 번 털었다.
“사, 살려…… 주시오……. 개평이든 뭐든…… 내가 잘못했소…….”
더는 한 대도 맞고 싶지 않았던 각출이 진무의 바짓단을 부여잡으며 구걸신공까지 발휘해 애걸복걸했다.
“또 당할 줄 알아, 이 새끼야? 이미 눈 감았거든!”
“……!”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굳이 눈까지 감을 필요도 없었다.
처음 당한 그때 양소방이 한 말로 미루어 파악한 구걸신공의 치명적인 약점.
아예 보지 않거나 내공을 운용하면 먹히지 않는다.
콰직, 콰직.
각출은 괜히 내기의 패배를 떠올리게 한 죄로 또다시 짓밟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양소방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진무, 그는 각출을 통해서 개방의 타구봉법을 더욱 발전시켜 줄 것이다.
타구봉법은 이제 그저 개 잡는 방법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중원 무림사에서 가장 위대한 절학 중 하나로 재평가받으리라.
“각출아…… 기연이다. 기연인 게야.”
감동이라도 한 듯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연 타령을 하는 양소방을 지켜보던 황신과 소동보의 몸에서는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아주 아랫사람 고통은 생각도 안 하지. 사패천이고 정무맹이고 다 똑같다. 망할 노인네들 같으니.
“후우……. 황신, 소동보.”
“옙!”
각출을 영혼까지 짓밟고 나서야 속이 시원해진 진무가 황신과 소동보를 불렀다.
“데려가서 치료해.”
“예!”
황신과 소동보가 번개처럼 움직여 구타가 끝난 뒤에서야 정신을 잃어버린 각출을 부축해 물러났다.
* * *
“으으으…….”
정신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각출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위로 밀어 올렸다.
“…….”
희뿌연 시야를 환하게 물들이는 빛 너머로 누군가 자신을 흔들며 내뱉는 말소리가 들려왔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나를 데리러 온 저승차사?
목소리가 다른 것을 보니 둘인가……? 사이좋게도 왔네.
그래, 가자. 비록 거지였으나 좋은 삶이었다. 열심히 살았어.
모든 것을 체념한 각출이 정신의 끈을 놓으려는데 저승차사들이 다시금 무언가 두런거리더니…….
푸우!
얼굴에 확 뿌려진 차가운 느낌이 가물가물하던 정신을 단번에 일깨웠다.
“깨셨습니까?”
“……?”
정신이 든 각출의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찬 얼굴 둘. 사패천에서 진무를 따라온 황신과 소동보였다.
당신들이 어찌?
“이틀.”
“예?”
“그대가 정신을 잃고 있었던 시간이오.”
“……아.”
각출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욱신거리는 온몸을 겨우 일으키며 주위를 살폈다.
다르다.
자신이 구타당했던 곳이 아니었다. 벽에 족자도 두어 개 걸린 것을 보니 잘 꾸며진 방 같은데……. 어찌 된 일이지?
“황신 형님과 번갈아 가면서 업고 뛰었소.”
형님? 곱상한 소년 쪽이 훨씬 더 어려 보이는데……. 생각보다 심하게 동안인 건가?
하긴 사파에는 주안공을 익히는 자들도 있다고 했으니.
“쓰벌, 살 좀 빼라. 빌어먹는 놈이 뭐가 그렇게 무거워? 천주님이 말을 얼마나 빨리 달리는 줄 알아?”
찰지다. 역시 사파인의 욕설.
각출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업고 왔다고? 말과 똑같은 속도로?
“그니까 애초에 개평을 줬어야지, 병신아. 그랬으면 이틀이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맞지는 않았을 거 아냐!”
“…….”
아, 개평…….
어쩐지 주먹에 분노가 잔뜩 서려 있더라.
“그런데 여긴?”
“단강구의 해월각.”
“…….”
단강구라면 그들이 야숙을 했던 곳에서 하루는 족히 될 거리가 아닌가?
그 거리를 둘이서 번갈아 업고 왔다는 말인가?
각출도 뛰어 봤기에 알고 있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미안하오.”
“괜찮소. 이해하오.”
소동보의 말에 각출의 표정이 묘해진다.
“이해……하신다고요?”
각출의 의문에 친절한 소동보와 욕쟁이 황신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시부랄…….”
그렇구나, 이들도 계속 그렇게 구타를…… 크흡.
동시에 각기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에 절절하게 담긴 서글픔에 각출은 진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고 울컥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보아하니, 그대도 계속 우리를 따라다녀야 할 것 같더이다.”
“…….”
자기가 생각해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얼마 전 스승으로 모시게 된 양소방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했으니.
“잘해 봅시다. 나 소동보요.”
“황신이야. 잘하자. 괜히 죄 없는 사람까지 피해 보게 만들면 모가지에 없던 바람구멍 내 버릴라니까.”
비록 말투는 달랐으나 이심전심으로 통한 셋은 도원결의를 다지듯이 결연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정사의 구분이 철저한 탓에 서로가 적이 되어 칼을 겨눈 적은 있어도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껴 본 적은 없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구타로 인해 대동단결을 이루는 분위기라니.
그러다 문득 황신이 귀를 쫑긋거리며 문 쪽을 바라본다.
“젠장, 또 찾네, 또 찾아.”
황신이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며 몸을 돌리자 각출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주님께서 부르시는 모양이오.”
“……?”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황신 형님은 귀가 밝소.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한 열 배, 아니 스무 배쯤?”
“……아.”
특이한 능력이긴 했으나…… 걸신의 체질을 타고난 자신도 있는데.
“빨리 와! 또 맞고 싶어?”
“……!”
“……!”
먼저 나간 황신의 외침에 소동보와 각출이 재빨리 뒤따라 튀어 나갔다.
* * *
“와!”
객실을 나와 식당 안으로 들어선 각출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단강구에 이런 화려하고 큰 객점이 있었다니.
그들이 들어온 일 층만 해도 족히 백여 명이 앉아서 한 번에 식사할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더욱이 곳곳에 새겨진 고풍스러운 장식들이란.
해월, 바다에 뜬 달.
객점 크기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뭐 해! 빨리 올라와!”
위층에 앉아 내지르는 진무의 짜증 섞인 외침에 후다닥 뛰어 올라가는 황신과 소동보를 따라 각출도 허둥지둥 뒤따라 올라갔다.
“먹어! 식는다.”
“…….”
진무와 양소방이 앉아 있는 거대한 원형 식탁에는 생전 보지도 못했던 음식들이 가득했다.
“카야! 대단하구만. 대체 이 술 이름이 뭐란 말인가?”
술을 들이켠 양소방이 감탄하자 옆에 서 있던 화려한 복색의 인물이 거든다.
“은인을 위해서 특별히 공수해 온 천일취선(千日醉仙)입니다.”
“오! 이게 어주로 진상된다는 그 술이란 말인가?”
천일취선, 천 일 동안 취해 있다 신선이 되어 떠난다는 이름이 붙은 술. 말이 좋아 신선이지, 술 먹다 뒈질 수도 있을 만큼 독하다는 이야기다.
“이 귀한 것을!”
“은인께서 오셨는데 이 정도는 대접해야지요.”
“허허, 참. 무당지검은 무림뿐 아니라 세간에서도 대접을 톡톡히 받는구만.”
“암요. 이 단강구에서 진무 도장의 위명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큰 은혜를 입은 것을요.”
화려한 복장의 사내와 양소방이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에 각출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진무가 은인?
“저희도 처음엔 깜짝 놀랐습니다. 객점주가 천주님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답니다.”
“……?”
귓가에 소곤거리는 소동보의 설명에 각출의 의문은 더욱 깊어져 갔다.
“원래 고기를 무제한으로 파는 외곽의 작은 객점이었는데, 무인들 간의 다툼으로 부서진 뒤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서 새로 지었다더군요. 와중에 무당지검이 다녀간 집이라고 소문이 나, 이제는 중원 각지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고급 주루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 그 정도로요?”
“예. 원래 한 달씩 예약이 밀리는데 천주님이 오시는 바람에 있던 손님을 웃돈을 주고 내보냈다네요.”
“…….”
각출은 심드렁하게 술과 고기를 퍼먹고 있는 진무를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파락호라 해도 믿을 위인인데…….
그러고 보니 객점의 벽에 걸려 있는 족자의 내용이 희한하다.
누구누구 다녀감, 이 집 정말 맛있어요, 무당지검이 다녀간 집이라니 등등의 글귀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무가의 자제들의 수결이 적혀 있었다.
“저…… 은인, 괜찮으시다면 방명록을…….”
때마침 화려한 복색의 인물, 객점주가 진무에게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에이 씨, 귀찮게…….”
진무가 짜증을 내며 무언가를 휘갈겨 건네자 객점주는 세상 다 얻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게 뭐지?
각출은 그저 의아하기만 했다.
원래 객점이나 주루의 주인들이 무림인들과 사이가 좋은 경우는 없었다.
원체 밥 먹다가 눈만 마주쳐도 싸우기 일쑤였고, 그 때문에 의자며 탁자가 성할 날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저리도 환대를 받다니.
더욱이 아까부터 객점 밖의 창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다.
얼핏얼핏 들려오는 말소리의 핵심은 ‘무당지검을 보기 위해서’였다.
거 희한하네. 아주 희한해.
“아, 참! 황신!”
“예!”
“그동안 정신없어서 물어본다는 걸 잊고 있었는데, 화양이는 어떻게 됐냐?”
진무의 물음에 밥을 먹던 황신의 얼굴이 와락 찌그러진다.
“그, 그게…….”
“못 찾았어?”
“아, 아닙니다. 하오문의 정보원들을 가동해서 확인한 결과 중원에 화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녀가 모두 스물, 일반 민가에 서른이었습니다. 개중에 나이가 서른 정도 된 인물은…… 열두 명……으로…….”
기이하게 일그러지는 진무의 표정에 황신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작아진다.
“이런 멍청한 놈이!”
“……예?”
“사패천에서 확인하면 될 것을 무슨 전 중원을 대상으로 찾고 지랄이야!”
“그게 아니라, 세부적으로 말씀을…… 커억!”
“오호? 말대꾸를 해? 이게 돌았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직 수련이 부족했지?”
“……!”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신이 급히 은신술을 써 도망치려다 허무하게 잡혔다.
그리고 결과는 뻔했다.
콰직, 콰직, 투악!
무지막지한 구타.
“…….”
각출은 사색이 된 얼굴로 황신이 맞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렇게 맞았다고?”
“그럴 리가요. 한 세 배쯤? 아니 네 배?”
“…….”
소동보의 친절한 귀띔.
맞고 있을 때는 차라리 몰랐는데 지켜보자니 더 무섭다.
“때리는 것을 잘 보아 두거라. 타구봉법에 대입한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룰 것이다.”
“…….”
와중에 남이 맞는 것을 세세하게 살펴 대입하라는 스승의 귀띔.
미친 건가?
어쨌든…… 말대꾸는 절대로 하면 안 되겠다.
그렇게 얼마나 맞았을까?
잠시 숨을 고르는 진무를 향해 객점주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 은인.”
“……뭐요?”
“포목점 주인 왕척이 왔습니다.”
“…….”
객점주의 말에 진무가 바닥에 뻗어 꿈틀거리던 황신을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포목점 주인이 널 살렸다. 엄살 그만 피우고 일어나.”
“……가, 감사합니다.”
각출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패고 엄살? 그리고 맞고 나서 감사하다고?
세상이 아주 미쳐 돌아가고 있구나.
각출은 두려움에 젖은 눈길로 양소방을 응시했다.
“잘 배워야 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각출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야속한 한마디뿐.
스승님……. 그냥 안 따라가면 안 될까요?
너무…… 너무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