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수년.
장문인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오룡궁을 재건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그런데.
주요 실무를 보는 일대제자 놈이 모두 다섯이다.
표주를 나간 놈들까지 합하면 모두 일곱이었다.
만약 오룡궁이 재건되는 수년 사이에 다른 놈이 대제자가 되면?
양의심공은?
진무를 다시 절대의 경지로 만들어 줄 묵룡혼원공은?
무당을 타락시키고 나아가 정무맹을 타락시키는 원대한 꿈은?
이런 젠장!
무공만 세면 되는 줄 알았다.
진허를 쓰러뜨렸고 진혜의 약점을 잡았으니 이제 다섯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제자가 되는 자격이 따로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스승과 함께 재건될 오룡궁의 터를 다녀온 뒤로 걱정이 되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삼공암묘에 수련을 위해 앉았지만, 도무지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안 돼.
서둘러 오룡궁이 재건되어야 해.
잘못하다가는 닭을 놓치고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된다.
기껏 불로초로 돌아온 삶을 평생 무당의 제자로 보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룡궁 재건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었다.
나무야 산에서 구한다지만 나머지 자재를 사고 인부와 목수를 고용하자면 엄청난 양의 자금이 필요했다.
“제길, 전장에 맡긴 황금을 쓰기는 아까운데…….”
까드득.
생각할수록 조급해지는 마음에 진무가 제 손톱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어떻게 한다.”
지금 수련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자금을 구해 오룡궁을 재건하지 않으면.
아!
그 순간 진무의 머릿속에 한 곳이 번뜩 떠올랐다.
그래. 그놈들이 있었지!
굳이 전장에 있는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풍진강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생각이 미친 진무는 한껏 밝아진 얼굴로 충허암으로 달려갔다.
“스승님!”
“응?”
“제자, 단강구에 잠시 내려갔다 올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해 주십시오.”
“단강구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명진이 피식 웃었다.
“원 녀석, 혹 술이라도 한잔 생각난 게냐?”
이미 청상과 청우에게 지난번 단강구에 갔을 때 진무가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알겠다. 딱히 허락은 필요하지 않느니라. 아직 건물은 없으나 구두상으로 오룡궁주가 되었고, 내 허락만 구하면 너는 그 실무가 되었으니 딱히 자소궁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아!”
이런 좋은 일도 있구나.
하면 앞으로는 좀 더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인가?
스승의 허락만 받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더 이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다녀오너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진무가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는데.
“진무야.”
“예?”
“올 때…….”
명진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술 한 병…….”
으이구, 타락한 도사 놈아…….
“예! 맛나게 숙성된 놈으로 사 들고 오겠습니다.”
그까짓 술 한 병이 무에 대수겠는가?
진무는 다시 한번 명진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딱히 준비할 것이 없었다.
그저 검 한 자루면 충분했다.
그런데.
“니들은 뭐 하냐?”
“예? 사숙께서 내려가시는 것 같아서.”
청우와 청상이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지랄하고 있네. 열심히 수련이나 해. 스승님 식사 잘 챙기고.”
“……예.”
청우와 청상은 펼쳐질 즐거운 모험을 빼앗겨 버린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진무는 그들을 뒤로하고 날듯이 무당산을 내려갔다.
* * *
“그래. 얼마쯤 되는가?”
“한 궤짝은 족히 넘습니다.”
“호오? 그래?”
“예.”
조방의 말에 우문흠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척이 사라진 뒷골목.
그곳에는 그가 운영하고 있던 도박장이 있었다.
평소 공사척 패거리와 제법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우문흠은 관에 의해 밝혀지지 않은 한 곳을 은밀하게 급습했다.
이미 공사척과 함께 그 패거리가 참수를 당해 아는 자는 없었다.
우가장은 이미 단강구에서 제법 알려진 무관의 한 곳이니 직접 운영할 수는 없었지만, 도박장이 보유하고 있던 돈을 회수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수금할 때가 아니었는지 도박장이 보유하고 있던 금액은 어마어마했다.
도박 빚에 저당 잡힌 각종 패물과 집, 땅문서는 둘째 치고, 은전만 해도 한 궤짝을 넘었다.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구만.”
“예. 덤으로 청양상단이 숨겨 두었던 비자금도 찾아냈습니다.”
“청양상단이?”
“예.”
“얼마나 되던가?”
“많지는 않습니다. 은으로 작은 궤짝이 하나입니다. 한데 손가락만 한 야명주가.”
“야명주라고?”
“예. 몰래 숨겨 둔 모양이었습니다.”
“야명주라니. 헛헛.”
야명주는 황궁에서조차 쉽게 구경할 수 없는 희귀한 물건이니 그 가치가 엄청났다.
“그래, 어디에 두었나?”
“일단 장주님의 거처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집무실에?”
“예. 확인은 하셔야 할 것 같아서.”
“흠. 잘했군. 아주 잘했어. 진무 그놈으로 인해 근래 속이 답답했는데 체증이 내려가는 듯해.”
우문흠은 품에서 전낭을 꺼내 조방에게 던져 주었다.
“고생했네. 오늘은 이 길로 퇴청해서 수하들과 술이라도 한잔하게.”
“예? 아니,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묵직한 전낭에 조방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흐흐흐, 일부를 삥땅 친 건 눈치 못 채겠지?’
조방의 생각이었고.
‘설마 뒤로 챙겨 간 것은 아니겠지?’
우문흠의 생각이었다.
“자, 그럼 좋은 시간 보내게.”
“예. 장주님.”
조방이 나간 뒤 우문흠은 재빨리 탁자 위의 문서들을 정리하고 자신의 거처로 뛰어갔다.
혹시나 시비가 방을 치우다가 손을 대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어쩌면 그의 부인이 발견하고 패물을 챙기기 전에 치워 버려야 했다.
‘진무 그놈이 약속을 어기지는 않겠지?’
우문흠은 만약 자신이 대제자가 되면 진혜를 무당 장문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떠올렸다.
그놈의 실력을 봤을 때 어차피 대제자는 물 건너갔다.
어떻게 무당 장문인으로 만들어 줄지는 모르지만, 약점을 잡힌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진짜로 놈의 말대로 진혜가 무당 장문인이 된다면 문파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터였다.
그때를 위해서 자금을 모아야 했는데 때마침 매우 적절하게 돈이 생긴 것이다.
‘이 기회에 영약이라도 하나 구해야겠다. 진혜가 진무 그놈보다 강해져야 할 것이니.’
벌컥!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거처에 도착한 우문흠은 주위를 면밀히 살피며 문을 열었다.
“어이, 우 장주.”
“…….”
“오랜만이야.”
순간 자신의 의자에 앉아 반갑게 손을 흔드는 놈은.
니가 왜 여기 있냐?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당황으로 굳어 버린 우문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들어와, 들어와.”
제 놈이 방 주인이라도 된 양 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진무였다.
그리고.
조방이 금은보화를 담아 가져다 놓은 궤짝이 모조리 열려 있는 통에 불을 켜져 있지 않았음에도 방이 환했다.
“놀래기는. 거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내와야 하는 거 아냐?”
“…….”
“그나저나 우가장이 제법 수완이 좋은가 봐? 이게 다 얼마야?”
음흉하게 웃는 진무.
우문흠은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고 웃는 얼굴을 때려 버리고 싶었다.
실력만 된다면.
“잘됐네. 안 그래도 부탁할 게 있었는데 이 정도라면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되겠어.”
“…….”
“어이, 우 장주.”
“…….”
“이번에 우리 무당에서 오룡궁을 재건하려고 하거든?”
“…….”
“당신이 좀 도와줘야겠어.”
우문흠은 순간 울컥해서 고함을 내지를 뻔했다.
왜! 어째서! 뭣 때문에!
이미 거래는 끝났잖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후원 좀 하지?”
내려갔던 체증이 다시 올라왔다.
목 뒤가 뻣뻣해지는 게 당장이라도 혈압이 올라 쓰러질 것만 같았다.
“어, 얼마나?”
“많이는 말고, 오룡궁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오, 오룡궁을? 저, 전액 말인가!”
한두 푼이 아니다.
평지도 아니고 산에다가 도관을 새로 만들자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럼, 전액이지. 내가 무슨 뒷골목 무뢰배도 아니고, 고작 몇 푼 뜯어 가려고 직접 찾아왔겠어?”
무뢰배보다 더한 놈! 네놈이 도사냐? 도사야?!
“그리고, 후원금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자네 아들을 위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문흠은 신경질적으로 진무를 째려보았다.
“생각해 보라고. 무당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오룡궁을 재건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을 일대제자인 진혜의 가문에서 전액 지원했다.”
“…….”
“그 가운데 진혜의 이름과 우가장의 이름을 음각으로 새겨 넣는 거야. 다른 곳도 아니고 주춧돌에 말이지. 내부의 기둥에 새겨도 되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진 않다.
“아마 대대손손 그 이름을 보게 되지 않겠어?”
당연한 말이었다.
“그 전시 효과가 어떨 것 같은가? 진혜를 보는 사문 어른들의 눈빛을 상상해 봐. 다른 제자들은 또 어떻게 보겠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진혜의 평판이 지금보다 배는 올라갈걸?”
“으음.”
틀린 말은 절대 아니었지만 말하는 대상이 대상인지라 딱히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장기적으로 봐. 이건 투자야.”
진무의 감언이설에 딱딱하게 굳어졌던 우문흠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진혜가 무당 장문인이 될 거라니까?”
“그, 그게…….”
솔깃해졌으나 여전히 불신이 가시지 않은 우문흠이 머릿속으로 수많은 계산을 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대제자는 내가 되더라도 무당 장문인은 당신 아들이 될 거야.”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대제자가 아닌 제자가 장문인이 된 경우는…….”
“거참, 필요하면 약조를 기록하고 수결(手決)이라도 할까?”
수결이라는 말에 우문흠이 넌지시 지필묵의 위치를 힐끗거렸다.
그런데.
“대충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그만 가 볼게.”
“아, 잠시, 약조서를…….”
갑자기 진무가 일어나자 우문흠이 서둘러 지필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일필휘지로 약조문을 쓰기 시작했다. 말 나온 김에 반드시 수결을 받아 두어야 했다.
은밀한 약조에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아 참!”
“…….”
나가려던 진무가 우문흠이 든 지필묵을 향해 다가오지는 않고 돌연 몸을 돌려 궤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전낭을 꺼내 은전 한주먹을 퍼담았다.
“살 게 있어서.”
그래, 가져가라.
대신 약조서에 반드시 수결을.
우문흠은 마음이 급해졌다.
이제 몇 자만 더 적으면 된다. 어서 빨리 수결을 받아야 했다.
“아, 그리고.”
“…….”
“이거 들고 무당파를 찾아와 전달하는 과정에서 말이야. 내 이름을 슬쩍 거론해 주면 좋겠는데?”
진무는 대제자가 되기 위한 본인의 평판에 신경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뭐, 지난번 청양상단이나 공사척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진무가 도와주었다든지. 위기에 처한 우가장의 무인을 구해 주었다든지. 그럴싸한 이유 많잖아. 알지?”
“…….”
진무가 말하거나 말거나 우문흠의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정말로 몇 글자 안 남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자, 그럼 또 보자고.”
“…….”
“나중에 충허암에 한번 들러. 내 꿩탕이라도 맛나게 끓여 줄게.”
“됐다!”
약조서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우문흠이 고개를 들었을 때 진무는 없었고, 그가 활짝 열고 나간 문이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수, 수결을…… 망할.”
우문흠은 완성된 약조서를 들고 방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