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8
38화
땅! 땅!
망치질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올수록 명진의 입가에 지어진 흐뭇한 미소가 커졌다.
공사가 시작된 지 한 달.
오룡궁이 들어설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목수들은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했고, 벌목꾼들이 잘라 낸 아름드리나무 기둥이 인부들에 의해 무당으로 옮겨졌다.
우가장의 후원을 무당은 한사코 거절하였으나.
이미 인부들과 목수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후원금을 전달한 우문흠이 충허암으로 몇 번이나 찾아왔으나 때마침 진무가 자리를 비웠기에 만날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때마침이다.
일부러 피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공사가 시작된 지 한 달.
“어이, 거기! 기둥을 들어!”
“거기 좀 더 조이고!”
재건 총책임을 맡은 대목수의 고함이 산정을 울리고, 조용하던 도관이 연일 작업하는 소리로 시끄러워졌으나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좋으십니까?”
진무의 물음에 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오래도록 기다려 왔음이다. 그리도 염원하였으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일이었느니.”
명진의 눈가에 또다시 습막이 차올랐지만, 이전과 달리 그 눈물이 진무의 가슴까지 먹먹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의 기분이 감격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진무야.”
“예.”
“우가장의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암요. 잊지 말아야지요.
진혜를 반드시 무당 장문인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니까요?
주춧돌에 ‘증(贈) 우가장’이란 글귀도 넣어 주기로 했구요.
하지만 진무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스승님, 그만 내려가시지요.”
“아니다. 내 어찌 이 역사적인 순간을 방 안에서 귀로 듣기만 할까? 직접 보아야 함이다. 오룡궁의 기둥이 다시 오르고 지붕이 얹히는 것을.”
명진의 마음은 알 것 같았으나 괜스레 무리하다 건강이라도 악화되면 진무만 고생스러울 뿐이었다.
“스승님. 날이 아직 찹니다. 혹여 고뿔이라도 드실까 제자는 우려됩니다.”
진무의 말에 명진이 아쉬운 눈빛으로 공사 현장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알았다. 가자꾸나. 청우에게 일러 인부들이 작업함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히 챙기라 하거라. 도관에서 먹는 것과는 다르니 저들의 음식에도 각별하게 신경 쓰라 하고.”
“예. 사부님. 이미 원화관에 협조를 구해 놓았습니다. 또한, 청우에게 술과 고기를 끊기지 않게 대라 하였으니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오냐. 오냐.”
명진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우가장의 도움으로 공사는 진행되고 있다만 궁을 채울 제자들이 문제로구나. 이대제자들은 이미 다른 궁에 자리를 잡았음인데.”
“그도 이미 실무 회의에 참석하여 각 궁에서 협조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청상이 이대제자들 중 몇몇을 선별해 오기로 하였습니다.”
“오, 그랬더냐? 흠, 그래도 우리 오룡궁은 무당의 검이니 뛰어난 아이들로 선별하여야 할 터인데.”
“그 또한 걱정 마십시오. 현기에 이른 청상이니 보는 눈이 있을 것입니다.”
“진무야.”
“예, 스승님.”
“이대제자들이 기거할 장소가…….”
“…….”
“진무야.”
“…….”
“진무야.”
그만, 제발 그만!
이젠 환청까지 들릴 것 같았다.
제 스승이 이렇게나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명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진무를 찾아 이것저것 묻고 지시를 했다.
이게 누굴 종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진무야?”
“예!”
“응? 왜 그리 화가 났느냐?”
“화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난 또.”
명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접혀 있는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내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필요한 무공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장서각으로 가서 찾아 오너라.”
“무공이요?”
진무가 명진이 건넨 종이를 펼쳤다.
“어디 보자. 양의문검(兩儀紋劍), 삼재검(三才劍), 오행검(五行劍), 칠성검(七星劍), 신문십삼…….”
진무는 잘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작은 글씨로 적은 무공서 목록에 눈을 부릅뜨고 명진을 쳐다보았다.
흐뭇하게 웃고 있다.
진무는 점점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 아니 잠깐만.
이보시오 스승님.
장서각을 통째로 옮길 생각이오?
“이런!”
명진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비틀거리자 진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건?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내 생각이 짧았구나. 십단금(十段錦)을 빼먹었어!”
“…….”
“그러고 보니 호조절호수(虎爪絶戶手)도…….”
아, 정말 싫다.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둘러 거처로 돌아가 추가로 작성을 해야겠다. 필요한 검진도 몇 가지 있고. 일단 너는 다녀오거라.”
명진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충허암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분명 그냥 뛰는 건데 보기엔 제운종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망할 도사 놈, 다 나은 게 분명하다.
하지만, 신이 난 명진의 뒷모습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것이 도동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도동의 몸에 동화되어 조금씩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구분하기가 좀 어려웠다.
“휴, 젠장. 이게 뭔 짓거리인지.”
진무는 피식 웃으며 계율원의 임무와 함께 장서각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영은궁으로 향했다.
* * *
“아니! 이걸 전부?”
영은궁주 명공 장로가 왕방울만 하게 커진 눈으로 탁자에 놓인 서신과 진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예.”
그래. 나만 미쳤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음, 알겠다.”
응? 뭐? 알겠다고?
순간 진무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만 알았다.
본산의 비급을 내주는 일을 어찌 이리도 쉽게 결정한단 말인가?
더구나 이렇게 많은 양을?
“밖에 진혜 있느냐?”
“예, 사부님.”
명공의 부름에 진혜가 안으로 들어왔다. 진무를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무와 함께 장서각주에게 이 서신을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사부님.”
진혜는 명공을 향해 공손하게 대답하고 서신을 받아 들었다.
“따라오너라.”
말이 좀 짧은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진무는 진혜를 따라 장서각으로 향했다.
무당의 장서각은 영은궁이 있는 납촉봉(臘燭峰) 아래 절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출입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영은궁에서 연결된 잔도뿐이었고 깎아지른 절벽의 중턱에 그 입구가 있어 딱히 경계가 필요하지 않은 천혜의 장소였다.
“조심하거라. 발을 헛디뎠다가는 허공답보의 경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이니.”
진혜의 말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실력도 달리는 놈이 누굴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
진무의 비웃음에 심기가 불편해진 진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자신의 아비로부터 서신을 전해 받았고, 진무와 우가장 간의 밀약(?) 또한 알고 있는 터였으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놈이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둘 사이에서 맺은 밀약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사실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진무의 성취.
우문흠이 보낸 서신에는 진무의 경지가 분명 탄기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었다.
지금의 일대제자 중 탄기 이상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둘뿐이었다.
우진궁의 진궁.
그리고, 표주를 나가 있는 무당칠자의 우두머리 진명.
그들의 실력은 이미 보아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진무가 그들과 같은 경지에 있다는 사실을 진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이다. 이런 놈이 어찌. 아버님이 잘못 보신 거야. 진허 사형을 이겼던 것도 순전히 운 때문일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 말이 된다.
고작해야 일 년 전까지 도동이었던 놈이었다.
아무리 장문인과 장로들의 도움이 있어 육양신공의 내공을 거저 얻다시피 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탄기에 이를 수는 없었다.
‘감히 무당 장문인 자리를 운운해? 이런 천한 놈이 탄기의 벽을 넘었다고? 나도 이르지 못한 경지를? 개가 웃을 일이지.’
이미 몇 년째 탄기의 벽 앞에 가로막혀 있었던 진혜였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무력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이니 진무가 탄기의 경지라는 아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뭘 그리 꼬나보냐?”
“…….”
“아주 눈깔로 사람 잡아먹을 새끼네.”
진무의 이죽거림에 진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놈이! 감히 사형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사형? 염병하네.”
“뭐라고?”
“야, 넌 널 죽이려고 했던 새끼를 사형이라고 생각하겠냐?”
“뭐, 뭣이!”
“우문흠한테 못 들었어?”
“우, 우문흠? 이놈이 감히!”
“닥치고, 들었으면 똑바로 해라. 초 치지 말고. 기껏 실력도 없는 놈 장문인 만들어 줄랬더니. 고마운 줄은 모르고.”
“뭣이?”
“진정이나 하지? 거기 발 헛디디면 그냥 골로 간다며?”
“…….”
진무의 이죽거림에 진혜의 미간에 자리 잡은 주름이 더욱 깊어지고 쌍심지가 솟구쳤다.
“뭐? 왜? 해보려고? 아서라. 네 아비가 그리 열심히 노력 중인데 장문인 되기도 전에 죽어 버리면 되겠냐?”
“닥쳐라. 이놈!”
급기야 참지 못한 진혜의 몸에서 시퍼런 기운이 솟구쳐 나왔다.
사문의 위계를 무시하는 놈이다.
고기나 처먹고 삼류 시정잡배처럼 말하며 도사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천하디천한 놈이다.
진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무처럼 질서를 어지럽히는 버러지 같은 놈이 앞뒤 구분 없이 나대는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오냐, 이놈. 네놈은 오늘 발을 헛디딘 것이다.’
진혜는 진무를 죽일 생각이었다.
얼마 전, 아비가 진무의 수결을 받아 놓으라 신신당부하며 주고 간 약조문이 가슴에 있었으나 이제 그따위 건 필요하지 않았다.
죽어 버리면 그만 아닌가?
영은궁에서 장서각으로 가는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
지킬 필요가 없는 곳이니 보는 눈도 없다.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를 곳이고, 목격자라고는 진혜뿐이었다.
그저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 하고 거짓으로 통곡을 하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이거 봐라? 아예 죽일 생각인데 지금? 죽이고 발이라도 헛디뎠다 하려고?”
진혜의 눈동자에서 번들거리며 피어나는 살기에 진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냐. 죽일 생각이다. 이미 한번 떨어져 본 경험이 있으니 새롭지도 않을 터. 너 같은 놈은 차라리 이곳에서 죽는 것이 무당에 훨씬 좋은 일이리라.”
진혜의 손에 시퍼런 선기가 맺히자 진무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맺혔던 비웃음은 어느새 스산하게 변했다.
“하, 이것 봐라. 도사라는 새끼가 비열하기가 사파 뺨치네.”
진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뜨자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너,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
“선을 넘으면 우문흠과의 밀약이고 뭐고…… 죽는다.”
진무의 미소.
서늘하다.
아니 그저 서늘함이라고는 표현하기 모자랐다.
주변의 공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아 피부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진무의 웃음은 사신의 미소 같았고, 그의 말은 죽음에 대한 선고처럼 차가웠다.
진혜는 순간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계속할래?”
하지만 진혜가 머뭇거리는 사이 진무의 몸에서 새어 나오던 차가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꿀꺽.
자신이 있었다.
진무 따위, 라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은 저절로 마른침이 울대를 움직이며 넘어갔다.
하지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일순간이라곤 해도 진무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사실이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사술이다. 사술일 것이다.
사람의 눈빛과 목소리에 이리도 위축될 리는 없었다.
“놈! 감히 방문좌도의 술수를 익혔구나!”
진혜가 노성을 토하며 살기로 물든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손을 뻗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