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39
39화
검기(劍氣).
기운을 검에 담아 사용하는 것.
하지만 꼭 검일 필요는 없었다.
기운을 도에 담으면 도기가 되고 주먹에 담으면 권기가 된다.
취릿!
진혜는 푸른 기운이 겹겹이 둘러싸인 주먹을 연거푸 뻗어 냈다.
진무는 주먹이 닿지도 않았음에도 뒷걸음질하며 물러났다.
주먹에서 연장된 권기의 간격을 피해 내고 있는 것이다.
“놈! 이런 곳에서 피할 수 있을 듯싶으냐!”
코끝을 일그러뜨린 진혜가 일 보를 길게 뻗어 거리를 좁히며 재빨리 무공을 바꾸었다.
주먹이 활짝 펼쳐지고 날카롭게 세워진 손이 사라졌다.
촤자자작!
그 빠른 움직임에 공기가 찢기는 듯한 소음이 만들어졌다.
무영신나수(無影神拿手).
무당이 자랑하는 금나수 중 하나로 그림자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을 가진 무공이었다.
그 속도로 인해 기운을 머금은 무영신나수가 펼쳐지면 푸른 선기가 남긴 흔적이 마치 그물처럼 보인다고 했다.
‘놈!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진혜는 자신의 손을 피해 물러나는 진무의 모습을 비웃으며 손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화악!
교차된 손이 사라지고 거대한 푸른 그물이 진무를 사로잡을 듯이 덮쳐 왔다.
하지만.
상대는 진무였다.
무영신나수?
그림자가 없기는. 다 보인다. 얼마나 다 보였는지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진혜가 신이 난 듯이 열심히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되지도 않을 걸로 애쓴다, 애써. 아, 진짜 상대할 가치도 없네.’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여유롭게 피하고 있는 동안 진혜는.
‘놈! 어떠냐? 이것이 격의 차이니라! 제법 사력을 다해 가까스로 피하고는 있다만! 그것도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점점 더 그 생각에 변화가 오고 있었다.
한 치.
벌써 수십 차례 모든 손의 간격을 한 치 앞에서 피해 내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그 한 치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진혜의 손속이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멍청하긴. 아무리 기운의 범위가 길어졌다고 해도 거리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뭐?’
“어차피 이리 소모해도 그만 저리 소모해도 그만인데 뭐 하러 잡고 있는지.”
진무의 말에는 탄기로 가는 현묘한 깨우침이 담겨 있었으나 진혜에게는 그저 자신을 비웃는 개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닥쳐라! 네놈쯤은.”
더 열이 뻗친 진혜가 사력을 다해 봤지만.
아무리 빠르고 화려해도 베지 못하면 쓸모없는 검이고, 잡지 못하면 그저 헛손질에 불과할 뿐이었다.
‘젠장. 빨리 비급 받아다 놓고 내공을 모아야 하는데.’
진혜와 드잡이를 하는 시간이 아까워져 짜증이 치민 진무가 물러나던 뒷발에 힘을 주었다.
그저 멈춘 것이었으나 진혜의 눈에는 포기하는 것으로 보였다.
“놈, 잡았다!”
진혜가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진무의 맥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잡는 순간 당겨 절벽 아래로 떨어뜨릴 것.
“……!”
순간 흐릿해지는 잔상과 함께 진무의 모습이 사라지고 진혜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피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이런!’
진혜는 재빨리 전후좌우를 살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뒤에도 없었다.
“뭐 찾냐?”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진혜가 기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머리 위의 절벽 면.
사라졌던 진무가 마치 그곳이 평지인 양 팔짱을 끼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웃었다.
“자, 이제부터 발을 헛디디게 되는 건 누굴까?”
진무의 송곳니가 당장이라도 진혜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새하얗게 빛나며 드러났다.
진혜가 다급하게 물러나려는 순간 낮은 자세로 절벽을 스치듯이 움직인 진무가 뒤편으로 이동했다.
“사, 사술!”
“병신, 제종술(提縱術)이다.”
“그, 그런!”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진무의 손이 진혜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잡아당기는 순간.
“으악!”
진혜의 발이 절벽 면의 길에서 벗어났다.
진무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뿌득, 뿌드득.
머리 가죽이 통째로 벗겨질 것 같은 고통은 그렇다 쳐도.
“머리카락이 제법 질긴 놈일세.”
“……!”
뽑히거나 뜯기는 순간.
‘주, 죽는다.’
식겁한 표정이 된 진혜가 양손으로 진무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힘을 주어 비틀어도 보고 기운을 주입해 꺾어 보려고도 했지만 진무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채가 잡힌 고통보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더욱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진무의 손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놔라. 이놈아!”
이를 갈며 소리를 치는 진혜의 말에 진무가 어이없이 웃었다.
“놔?”
놓으면 죽을 텐데?
진혜 또한 금세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놓으라는 말은 못 하고 열심히 버둥거리며 손을 움직였다.
진무의 손을 이용해 몸을 비틀어 튕기듯이 솟구치고 싶었으나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진무의 손에 들어간 힘이 너무 강했다.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사, 살려 다오!”
“응? 뭐라는 거야? 안 들리네.”
“살려 달란 말이다!”
진혜가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발악하듯 소리쳤다.
“내가 왜?”
“뭐?”
“넌…… 그냥, 발을 헛디딘 거야.”
진무의 나지막한 말에 진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힘이 약해진다.
진무가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슬며시 놓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손목을 비틀며 자신이 잡은 손을 떨쳐 내려 하고 있었다.
눈을 깔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진혜가 진무처럼 절벽을 밟고 달리는 경공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떨어지면?
상상만 해도 섬뜩했다.
“뭐, 흔하잖아. 발을 헛디디는 일 따위는.”
“자, 잠깐!”
“잠깐이고 나발이고, 힘 아껴 뒀다가 떨어질 때 비명이나 질러.”
진무의 목소리에 동정심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당의 일대제자.
열다섯에 무당에 입문.
나름 재능을 인정받아 도명을 받고 스물다섯에 명공의 문하로 일대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 서른.
은혜로운 스승의 가르침으로 현기를 깨달아 무당칠자 중 한 명이 된 진혜였지만.
원래 야비한 놈일수록 제 목숨 알기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이다.
또한.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산중에 처박혀서 무공만 죽자 사자 익혀 온 진혜는 단 한 번도 목숨이 경각에 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죽음이란 겪어 보지 못한 미지의 공포.
그런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와 인사하는 통에 오줌을 지릴 것처럼 겁에 질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뭐? 잘 안 들리는데?”
“살려 주십시오!”
어떻게 할까?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고, 살려 달라면 죽여 버리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었다.
지금 진혜는 진무에게 언제든 날개를 뜯으며 가지고 놀다 버리는 잠자리에게 불과했다.
그리고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차피 우가장은 이용할 만큼 이용했고, 기회를 줬음에도 자신을 죽이려고 한 놈이니 지금 죽인다 해도 그다지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
“아닙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진혜는 산중에 메아리를 만들 정도로 열심히 외쳤고 진무는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
“후우, 난 정말 너무 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까. 이런 건 그냥 죽어 버려야 하는데.”
뿌드득!
한 움큼 잡은 풀이 뿌리째 뽑히는 소리와 함께 진혜의 몸이 확 당겨지며 던져졌다.
텅!
잔도에 처박힌 고통에 뼈마디가 온통 욱신거리고 죄 뜯긴 머리털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에 진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어 댔고, 떨리는 손발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옥의 문턱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돌아온 심정이었다.
“야.”
“……!”
“대답 안 해?”
“네, 넵!”
진무가 눈살을 찌푸리자 진혜가 다급하게 답했다.
“마지막 기회였어.”
꿀꺽.
무섭다.
자신의 앞에 다가와 쪼그려 앉은 진무가 너무도 무서웠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사제로 보이지 않았다.
천하디천한 도동 따위로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라도 자신의 목을 따 버릴 수 있는 사신처럼 보였다.
“한 번만 더 까불면 너는 물론 우가장까지 모조리 작살 내 버릴 거야.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휘둥그레 뜬 눈으로 진혜가 사색이 되어 대답했다.
“좋아. 자, 앞장서.”
“옙!”
진무가 그를 앞서게 했지만, 도무지 다리가 떨려서 걸을 수가 없었다.
힘겹게 한 발 한 발 옮겨 걷는데.
“빨리 안 갈래? 그냥 확 밀어 버리고 갈까?”
진혜의 걸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빨라졌다.
당연했다. 그의 뒤에서는 사신이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 * *
진혜와 함께 긴 잔도를 지나 장서각에 도착하자 초로의 노인이 입구의 문을 열고 나왔다.
주름이 얼굴을 가득 덮은 통에 도무지 나이를 알 수가 없었다.
“운공 어르신을 뵙습니다.”
“오냐, 진혜로구나. 한데 네 꼬락서니가 어찌 그러누?”
“아, 그, 그게…….”
진혜가 머뭇거리자 진무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형께서 잔도에서 떨어질 뻔하신 것을 제가 구했습니다. 하필이면 잡은 곳이 머리카락이었어서.”
하긴 이상할 만도 하지.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고 뜯긴 모공에서 피가 흘러 얼굴을 가득 물들이고 있었으니.
“끌끌, 잔도에서 떨어질 뻔했다?”
운공 노인이 고개를 들어 진무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드는 순간 주름을 뚫고 나온 눈에서 엄청난 신광이 드러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진무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안광이 자신의 몸을 꿰뚫는 것만 같았다.
운공.
운자는 현 무당에서 쓰지 않는 항렬이었다.
현 무당의 항렬은 명진청의 순이었다.
‘그 위로 현자, 영자, 옥…… 다음이 운……자? 에이…… 설마?’
말도 안 된다.
운자 배의 도인이라면 최소로 잡아도 백이십은 족히 되었을 텐데.
정말로 운자 배라면 이미 등선을 했거나, 땅속에서 백골이 진토되어 넋조차 사라져 가고 있을 터였다.
진무는 생각이 너무 멀리 가 버렸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고놈, 웃는 것이 꼭 사파 놈같이 비열하구나.”
“…….”
“훔, 그나저나 네놈 몸에 쌓인 것은 분명 무당의 도력이 맞을진대 어찌…… 거참 별일이로세. 내 모르는 사이에 뭔 일이라도 있었던 겐가?”
서신을 받아 든 노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진무의 눈동자에 짙은 이채가 어렸다.
뭐지? 이 노인네?
만난 순간 이미 내력을 발출해 노인을 살폈던 진무였다.
분명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난번 무월루에서 만난 노인네도 그렇고 이번 무당의 노인네도 그렇고…….
“사형.”
“예? 아니, 으응?”
“누구십니까? 저분은?”
진무가 서신을 읽고 있는 노인을 가리키며 소곤거렸다.
“아, 운공 어르신은 오랫동안 장서각을 지켜 오신 분……입니다.”
“얼마나?”
“그게.”
그러고 보니 진혜도 알지 못했다.
딱히 그에 대해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고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몰라?”
“예. 사부님께서도 딱히 말씀해 주지 않으셔서.”
“흠, 그렇군요.”
칭하는 말이 어르신인 것을 보면 무당의 도명을 받은 제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랬다면 사숙조니, 몇 대조니 하면서 불렀겠지.
그러고 보니 십수 년 전 무당을 찾아왔을 때도 저런 노인을 본 적은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는 노인네임이 틀림없는데.
노인의 정체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던 진무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씨! 머리만 복잡하네. 뭔 상관이야.’
평소 ‘생각은 먹물들이나 하는 것이지.’라는 인생관을 가진 진무였다.
그에게 고민은 쓸데없이 뇌를 혹사하는 일이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눈앞에 닥치는 대로 처리한다.
그것이 그의 오랜 성격이었다.
어차피 대제자만 되면 되는 일이었다.
양의심공만 익히고 나면 딱히 무당에 남아 있을 생각도 없었다.
노인이 뭐든 간에 자신의 일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끌끌, 제법 양이 많구나. 필사(筆寫)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테니 그만 돌아가 있거라. 다 되면 연락하마.”
“예, 어르신.”
노인의 말에 진혜가 공손하게 인사를 했고 진무는 연신 노인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며 장서각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