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좋습니다! 가십시다.”
“……?”
“뭐 해요? 얼른 일어나요.”
호박이 넝쿨로 왔으면 남들이 채 가기 전에 호박전부터 부쳐 먹어야지, 뭘 꾸물거린단 말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진무의 태도에 양소방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에헤이, 또 뭘 그리 멍청하게 쳐다보나?
일 년이라며?
그거 긴 시간 아니다.
니가 아직 나보다 몇 년 덜 살아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정월 초하룻날 세배드리면서 눈 감았다 뜨면 어느새 섣달그믐이라니까?
“자, 서둘러요. 놈들이 예상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어디 보자. 일단 마교에 서신을 보내 연합을 맺고 사패천의 적 총사를 부른 다음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척후조를…… 흠, 은위단이 좋을까? 아니면 삭월천? 개방? 어디로 하지? 이참에 정보 조직을 통합해 버려?”
“…….”
양소방은 벌써부터 해야 할 일을 나열하며 중얼거리는 진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실소를 머금었다.
중원 정보 조직의 통합이라니. 진무가 아니면 누가 저리 쉽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단강구였나?
궁의 행적을 쫓던 양소방은 그곳에서 진무를 처음 만났다.
갓 때를 벗은 어린 도사라고 여겼던 첫인상은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단강구 제갈분가에서 일어났던 골치 아픈 세력 간의 마찰.
진무는 그 안에서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빛나는 존재였다.
당시 진무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던 양소방은 도사답지 않은 그 자유로움에 놀랐고, 한번 본 무공을 흉내 내는 것으로 모자라 파훼까지 하는 식견에 감탄했다.
와중에 제갈무린을 휘둘러 대던 거침없는 말발은 도무지 무당 제자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파락호처럼 시시껄렁하지만, 누구보다 뛰어났던 도사.
양소방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무당의 어린 도사가 마음에 들었기에 자신의 협전까지 주며 연을 맺으려 했었다.
직접 추천서까지 써서 정무맹 최강의 고수라 불리는 검성 철지량의 제자로 천거하려 했을 정도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양소방은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철지량의 제자?
그건 지금의 진무에겐 동네 무관의 제자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 생각했다니.”
양소방은 턱을 만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누군가의 제자로 남을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그저 무당 도사라고만 불려서도 안 될 인물이었다.
그간의 행보가 워낙 중원 무림사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들투성이다 보니 다음에 벌일 일들을 예측할 수도 없었다.
무림에 나온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어린 도사는 정파의 그늘에 있는 유수의 문파들을 넘고, 사패천을 발아래 두었으며 종내에는 마교까지 삼켜 버렸다.
와중에 비무를 통해 풍환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 등선까지 시키지 않았던가?
모두가 홀로 해낸 일이다.
세력을 이끌되 그들을 이용하지 않았고, 비열한 책략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지도 않았다.
항상 정면 승부로 겨뤄서 이루어 냈고, 그 결과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하 무림의 정점이 되었다.
그가 뱉어 낸 허무맹랑한 말들은 언제나 진실이 되었고, 내디딘 발걸음마다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이른바 진무의 시대인 것이다.
출신이 다르고 근본이 달랐으나 양소방은 그를 위해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았다.
아니,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여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내공? 그가 필요로 한다면 이제 그까짓 것은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이봐요, 어르신!”
“……으응?”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요?”
“아, 잠시…… 그냥 대견해서…….”
“…….”
진무는 양소방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정사마의 연합을 구성할 방안을 이야기했더니 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야?
그리고 니가 나를 평가할 깜냥이나 되냐? 누가 누구보고 대견하대?
“내 말은 들었어요?”
“응? 뭐라고 했나?”
“…….”
이 노인네가 진짜.
이 몸께서 향후 무림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진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거늘.
각출이도 그렇고 니들 개방 거지들은 귓구멍 막힌 게 문파 특색이냐?
이참에 이놈의 거지도 등선을 시켜 버려야 하나.
게슴츠레한 눈으로 양소방을 째려보던 진무는 문득 입술을 꾹 물었다.
아니야, 참자.
협전은 물론 내공마저 헌신적으로 빨려 주었던 그가 아닌가. 한 번 정도는 용서해 주는 것으로 하자.
진무에게 임명된 최초의 거지 노예로서 앞으로 써먹어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자리 깔고 누우면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아까울 것 같다.
“하아, 자, 들어 봐요. 그러니까 다시 설명하자면…….”
“…….”
깊은 한숨과 함께 재차 입을 여는 진무를 가만히 보던 양소방이 빙긋이 웃었다.
이 얼마나 사려 깊은가?
궁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벌써 저리도 자신의 생각한 바를 말해 오지 않는가?
흐뭇함에 흐뭇함을 더하여 고개를 끄덕이던 양소방이 진무에게 말했다.
“진무 도장.”
“아, 잠깐만요. 일단 제 말을 좀 들으시고.”
“그게 아니라 나는 지금 대군사가 부탁한 다른 급한 일을 해야 한다네. 그러니 정사마의 연합에 관한 것은 자네가 정무맹으로 가서 맹주나 대군사와 함께 논의해 주게.”
“……?”
이게 지금 말이야 방구야?
그 대궁이라는 놈이 무림의 전복을 노리고 달려오는 마당에.
어서 정사마의 힘을 이용해 놈들을 처리하고 황궁에 큰 상을 받으러 들어가야지.
그래야 황제랑 단독 면담을 할 게 아닌가, 이 말이다.
“무림의 상황이 풍전등화 같거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마땅히 무림의 큰 어른이신 무풍개 어르신께서 선두에 서 주셔야지요.”
“…….”
마음이 급해진 진무가 혼신을 다한 연기력으로 열변을 토했다.
“아, 그것이…….”
노력이 통한 것일까?
양소방이 한숨을 내쉬며 난감함을 드러냈다.
음,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지금 양소방이 하고 있는 일은 황실, 아니 정사를 피로 물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계모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 구사일생으로 도주한 태자.
그에 관한 사실이 만에 하나 밖으로 새어 나가면 큰 혼란이 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것은 태자의 목숨을 노렸던 귀비 쪽에서도, 그를 구하고자 하는 영왕 측에서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네라면 괜찮겠지.]양소방이 굳은 얼굴로 다시 전음을 보내오자 진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다른 일이 있었나? 굳이 전음?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양소방은 기운을 풀어 주변의 일정 공간에 작은 막을 만들었다.
태극을 이룬 이후 기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진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소리까지 통제해?
[실은 나는 사라진 태자를 찾고 있다네.]“……!”
생각지 못한 말을 들은 진무의 눈이 커졌다.
이건 또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란 말인가?
궁 어쩌고 하더니 이야기가 왜 갑자기 그쪽으로 튀어?
태자씩이나 되는 놈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해 제 엄마랑 싸우고 가출했을 리도 없는 일인데.
황당한 표정을 짓는 진무를 향해 양소방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전음으로 전했다.
동창과 서창, 황실의 핏줄을 독살한 귀비의 악행…….
현 황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과 좌초가 전해 온 태자의 신상 명세에 관련된 이야기.
“허!”
“그런!”
“내 참…….”
진무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연신 토했다.
[현재 태자의 종적을 찾기 위해 정무맹의 개방, 사패천의 하오문이 태자와 신상이 비슷한 열다섯 살 정도의 소년을 수소문 중일세. 물론 그것이 태자를 찾기 위함이라는 것은 오직 나와 맹주, 대군사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고.]“…….”
하오문에서도 찾고 있다고?
명세찬이 마음대로 도와주었을 리는 없고, 적생의 협조를 구했나?
그나저나 엄청난 일을 들어 버렸다.
태자라니.
설마하니 진짜로 집을 나갔을 줄이야.
이건 황당함을 넘어선 내용이었다.
하지만 진무는 이내 머릿속에서 황자에 관한 이야기를 떨쳐 버렸다.
이런 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서 좋을 게 없었다.
자고로 시댁과 관부는 멀면 멀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와중에 관부의 정점에 있는 황가니만큼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태자 쪽은 무시하고 대궁이라는 놈들을 처단해 금군의 방해 없이 황성의 내부로 진입한 다음 황제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네. 그는 다음 대의 보위를 이어 갈…….]이어진 양소방의 말에 진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음 대의…… 보……위?
“어르신, 잠깐만요.”
“응?”
“혹, 다음 대라는 게…… 설마 황제를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부주의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양소방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렸다.
혹시 누군가 들었을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보게. 어찌 그 위험한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낸단 말인가? 전음으로 하게, 전음으로!”
“…….”
그새 바보가 됐나. 지가 이미 기막을 쳐서 소리를 차단해 놓고는 뭘 그리 불안해해?
이쯤 되면 황신이도 못 들어, 이 노인네야.
뭐,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이해를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양소방을 탓하기보다는 들어야 할 말이 중요했던 진무가 손을 휘휘 저어 양소방의 기막에 자신의 기운을 겹겹이 덧씌웠다.
“이만하면 됐죠?”
“에…… 뭐…….”
“다음 대의 보위라는 게 태자가 황제가 된다는 뜻이 맞는 건가요?”
“당연한 말일세.”
“형제가 하나도 없어요?”
“말하지 않았던가? 이미 귀비에 의해 황제의 핏줄은 모두 독살되었다고. 살아남은 것은 오직 도망쳤다는 태자뿐이라네.”
오직 태자뿐.
그가 횡액을 당하면 대신 자리를 이을 형제도 없는 상황이란다.
물론 황제에게 자식이 없으면 다른 황실의 자제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차선책.
태자가 살아 있기만 하면 다음 대의 황제가 될 인물은 무조건 그인 것이다.
“그렇단 말이죠?”
“……그, 그렇네만…… 어째 자네 표정이?”
양소방이 새삼 놀랄 정도로 진무의 표정은 음흉했다.
세상에 이런 노다지가 자신을 찾아오다니.
굴러온 게 호박인 줄 알았더니 호박 모양의 금덩이가 아닌가?
태자를 찾아 황가에 은혜를 입힌다.
이건 대궁 놈들을 처단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문제였다.
현 황제는 물론이거니와 대대손손 황가를 내 발아래 꿇릴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다음 대의 보위를 이어 갈 황제를 구하는 것은 나라를 구하는 것과 진배없다. 능히 구국(救國) 공신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일에는 마땅한 대가, 즉 평생을 가도 쓰지 못할 재물이 보상으로 주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무려 천하의 주인이라는 황제가 아니던가?
어쩐지. 정무맹의 제갈 얌생이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그 와중에 양소방을 보내 내 관심을 다른 쪽에 돌려놓으려 했단 말이지?
대궁의 처단과 다음 대의 보위.
누가 봐도 후자의 떡고물이 훨씬 더 크지 않은가?
망할 얌생이 놈, 니가 나를 아주 정의감 넘치는 도사쯤으로 본 모양인데, 전생에선 몰라도 이생에서는 절대로 네놈의 노림수에 당하지 않는다.
태자, 존재만으로도 자신에게 기쁨을 줄 그 이름이여.
대궁의 처단은 물론 다음 대의 보위까지 내가 가진…… 아니 내가 지킬 것이다!
대궁이 오기까지 앞으로 일 년.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세월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기도 하지만, 때로 영겁의 시간처럼 느리게 가기도 하니까.
일단 양소방을 떼 버려야겠다.
이놈의 노인네는 제갈 얌생이 편이니 가까이 두어서 좋을 것이 없다.
“크크크.”
“……자, 자네 왜 이러는가?”
음흉을 넘어 음산한 웃음을 흘려 대는 진무의 모습에 양소방이 오한이라도 든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헛헛, 어르신은 어르신이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저는 지금 즉시 정무맹으로 가서 대궁에 관련된 일들을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그래 주겠는가?”
“암요, 암요. 걱정 말고 볼일 보세요.”
“고맙네. 헛헛, 내 자네가 혹여 정무맹으로 오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여 찾아온 걸음이었는데 이제 한시름 놓았어. 그럼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나는 이대로 곧장 떠나도록 하겠네.”
“예, 예. 당연히 그러셔야지요.”
빨리 가라. 할 일이 많다.
뭘 이리 미적대?
진무가 양소방을 떼어 내기 위해 열심히 입을 놀리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양소방은 그러고도 한참이나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에야 겨우겨우 떠났다.
진무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자신의 일행을 불러모아 스산한 눈초리로 훑었다.
“왜, 왜 그러세요?”
“…….”
왜는?
이놈들아, 언제까지 쉴 것이냐?
할 일이 많다.
이제부터 너희들을 마소처럼 부려 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