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진무가 갑작스러운 오한에 고뿔이 든 것은 아닐까 의심하던 중, 갑자기 황신이 귀를 쫑긋거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폈다.
“천주님!”
“…….”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사박거림.
진무의 귀에도 들리는 소리를 황신이 못 들을 리가 없었다.
공동산 초입의 산자락에 다다른 그들은 일부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물색해 자리를 잡았다.
인적 드문 산자락, 그것도 야밤에 이 많은 발소리가 들린다면 필시 미리 소식을 전해 찾아오라 한 유장 일행일 터였다.
“소동보, 각출, 대궁!”
“예!”
진무의 부름에 소동보와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고 충성심이 바짝 오른 각출이 순서대로 대답했다.
“황신을 따라가 봐. 주변에 따르는 놈들이 없는지 면밀하게 살피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있다고 해도 제압만 해. 죽이지는 말고.”
“옙!”
짧게 대답한 넷이 어둠을 향해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들에게 명을 내린 것은 혹여 꼬리가 붙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능서현과 괴충은 은신이 주가 아니니 보내 봐야 괜히 민폐만 될 터였다.
산서상회와 진무의 관계는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나 있는 데다, 정무맹은 진무가 곤륜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유장이 아무리 은밀하게 행동했다고 해도 개방의 거지새끼들이라면 그가 양풍현을 찾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니,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그쪽에 따라붙었을 것이 분명했다.
진무보다는 그쪽을 추격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테니까.
기껏 곤륜에 허위 정보를 흘려 놓았는데 여기서 걸려 버리면 말짱 헛일이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소식은 끊어야지. 괜히 귀찮아지니까.
“천주님.”
한참을 기다리는 사이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어둠 속에서 유장이 상단의 호위 무인 몇몇과 함께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님.”
“…….”
아, 참. 양진이가 있었지?
잠깐 잊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이 유장을 따라갔었나?
진무가 멀뚱히 우양진을 쳐다보자 유장이 웃으며 답했다.
“그때 다들 곤륜의 산문으로 뛰어가실 때, 우 공자가 그 무시무시한 기관 앞에서 머뭇거리시길래 제가 모시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냐?”
진무가 머쓱한 표정으로 우양진을 바라보았다.
하긴, 그 기관은 아직 우양진의 실력으로는 감히 뚫을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녀석, 쓸데없이 우직해서는. 말이라도 하지 않고.
원체 시키는 족족 군말 없이 하는 녀석이다 보니 좀처럼 존재감을 느끼기도 힘들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교를 떠난 이후로 너무 등한시했나…….
풍환의 끝을 옆에서 지켜보고 난 탓일까, 녀석이 왠지 애틋하게 느껴졌다.
먼저 유월청이 있었으나 자신의 뜻을 어겨 파문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이제 진무에게 제자라 부를 만한 녀석은 우양진뿐이었다.
진무의 머릿속에 오래전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가 떠올랐다.
모두가 욕을 했었지.
잘 죽었다며 수군거리는 그 소리가 생생하다.
사파의 무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자신에게도 진심으로 슬퍼하고 울어 줄 누군가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앞으로는 좀 더 잘 대해 주자.
다른 놈들과 함께 훈련을 시켰음에도 불평불만 한번 없지 않았는가? 제일 힘들었을 놈이 말이야.
어찌나 기특한지.
고작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녀석, 애썼구나.”
“아닙니다. 스승님.”
진무가 온화한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우양진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따르는 이들은 없었고?”
진무가 묻자 유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명하신 대로 신분을 감추고 움직였기에 그러한 기척은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예. 아마 모두가 호위를 대동해 여행하는 부자지간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
“우 공자의 연기력이 어찌나 출중하신지 혼인도 하지 않은 제가 깜박 속을 지경이었지요.”
유장이 한껏 추켜세우며 너스레를 떨자 우양진이 부끄러운 듯 볼을 붉혔다.
이런 가지가지 기특한 녀석을 보았나.
착한 걸로도 모자라 연기력마저 출중하단 말이더냐?
암, 그래야지. 그렇고말고.
남을 속이는 연기력 하면 이 중원을 통틀어 빠질 수 없는 내 제자이니만큼 응당 청출어람(靑出於藍)하여야지.
진무가 다시 한번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째 황 호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소 공자도 그렇고…….”
“걔들? 곧 돌아올 거야.”
“……?”
그사이 무슨 다른 임무라도 맡긴 걸까?
다른 설명 없이 돌아올 거라고만 하니 되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오면서 술도 넉넉히 받아 왔으니까 요기도 좀 하고.”
“예.”
진무의 말에 유장과 우양진이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고 있는 청상과 청우의 옆으로 다가갔다.
청상은 서둘러 자리를 내주었지만 청우는 혹시나 제 먹을 것을 빼앗길까 봐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들고 있던 고기를 감췄다.
이놈의 자식.
그래도 사숙의 제자와 휘하 상단의 주인인데 먹어 보라는 소리도 안 하고.
“처, 청우야. 많이 먹었으니 좀 나누어 주지 그러냐?”
진무의 눈치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청상이 재빨리 청우를 달래 겨우 자리를 양보하게 했다.
꾸역꾸역 자리를 양보하면서도 들고 있던 고기를 입 안에 욱여넣고 양손 가득 다른 고기를 드는 꼴이라니.
정말이지 저놈의 식탐은 하늘조차도 막을 수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그래. 그냥 먹어라.
또 누가 아느냐? 많이 처먹으면 나중에 등선할 때 때깔이라도 좋을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진무가 갑자기 숲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건 또 뭐야?”
미세하게 느껴지는 강력한 기운의 정체.
황신, 소동보, 각출, 대궁, 넷 중 누구도 아니었다.
이 느낌은 분명히…….
“젠장, 망할 노인네. 뭐 하러 또 여기까지 기어왔어?”
기운의 주인을 확신한 진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확실하다. 그 노인네다.
혹여 유장의 뒤를 밟은 이들이 있을까 싶어 넷을 보낸 것인데…… 빌어먹을, 제압은커녕 처맞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하쑥, 으에요?”
“…….”
진무는 고기를 입에 가득 문 채 웅얼웅얼 묻는 청우를 향해 혀를 찼다.
말이나 똑바로 하든가…… 그냥 고기나 처먹어라, 이놈아.
어차피 가 봐야 헛일이다, 그 노인네라면.
그리고 잠시 뒤, 진무의 불편한 추측을 확인시켜 주듯 익숙한 얼굴 하나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숲을 빠져나왔다.
“여어!”
“…….”
망할, 내공이나 충전해 주는 거지 노인네가 어디서 반가운 척을.
“아니? 무풍개 어르신!”
청상이 벌떡 일어나 노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허헛, 청상, 잘 지냈느냐? 청우는 여전하구나. 여전히 잘 먹고…… 어째 더 찐 것 같은데.”
“헤헤,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어요?”
어느새 입 안에 있던 고기를 삼킨 청우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목을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무풍개의 뒤로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넷이 줄줄이 따라왔다.
여전히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역시 수련의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정무칠성 모가지 정도는 거뜬히 딸 수 있을 정도로.
“이 사람, 아는 척도 안 하는 건가?”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자네가 이쪽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 급히 달려온 게지.”
“…….”
양소방의 말에 진무가 각출을 향해 눈빛으로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망할 새끼가 귀, 아니 몸 구멍이 처막혔나. 그렇게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도 못 알아 처먹었어?
내가 니네 사문의 어른이 있으면 참아 줄 줄 알지?
이리 와라. 다시 대화를 나누어 보자꾸나.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곤륜 이후부터 단 한 차례도 연락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세요! 정말이에요!”
각출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며 마구 말을 쏟아 냈다.
당장이라도 울 듯한 것이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강조하려는 모양이었다.
“쯧쯧, 역시나.”
“…….”
“각출이 연락이 한 달 동안 뚝 끊긴 것이 이상하다 여겼는데, 자네가 시킨 게로군.”
“…….”
음, 각출이 아니면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각출밖에 없는데.
어째서 양소방인지도 의문이었다. 말단 거지 몇 놈 정도면 몰라도 굳이 이 노인네가 직접?
“그나저나 어쩐 일입니까? 이 머언 곳까지.”
언짢음 때문이었는지 진무가 다소 도전적인 어조로 물었다.
“운암과 함께 오던 길일세.”
“운암…… 아!”
그 한마디로 대충 이해가 될 것만 같았다.
곤륜에서 소식을 전했다 했으니, 제 스승의 죽음을 지키지 못한 운암이니 불원천리를 마다치 않고 급히 뛰어왔을 것이다.
하면 양소방은 정무맹을 대표하여 곤륜으로 가는 길이었나?
“그런데 운암은 어디 있습니까?”
“운암과는 천웅방 인근에서 헤어졌네.”
“왜요? 응당 같이 가 보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왜?”
“예?”
“듣자 하니 등선을 했다는데, 부러움을 어찌 참으라고 내가 거길 간단 말인가?”
진무는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하는 양소방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이런 망할 거지 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놈도 아니고 한때 풍환자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무림을 주유하기까지 한 놈이 그걸 말이라고?
악연이었던 나도 그 죽음 앞에서 숙연해졌던 마당에?
허, 땅에 떨어져 버린 강호의 도의를 어찌 다시 세운단 말인가?
“하하, 농일세. 농이야.”
“…….”
“실은 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있어서라네.”
“풍환 어른의 죽음보다 더 급한 일이었던 모양이네요.”
“흠, 그런 셈이지.”
“……?”
갑자기 심각해진 양소방의 표정에 진무가 째려보던 눈빛에 의아함을 담았다.
뭐지? 혹시 또 궁이라는 놈들이 나타났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네에게는 이야기를 해 줘도 되겠지.]“……?”
갑자기 전음?
[실은 얼마 전 영왕을 만났다네.]양소방이 진무를 향해 전음으로 한 달여 전 영왕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오래전 건국의 과정에서 축출되었던 한씨의 핏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활약한 청무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은 이유.
진무는 청무에 관한 이야기에는 관심을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외의 이야기에는 시큰둥했다.
과보침사건 황가의 치부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이 대체 이 세상에 몇이나 된단 말인가?
사파에서 주인의 등에 칼을 꽂는 일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다.
비일비재, 종종, 왕왕 있어 온 일이었다.
하물며 건국 과정에서 별 치사하고 더러운 수법이 난무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 대궁주라는 놈이 복수의 칼날을 들고 중원을 향해 오고 있다고? 황궁을 전복시키기 위해서?
이런 망할 자식. 복수심이건 뭐건 간에 왜 자꾸만 자신이 침 발라 놓은 것에 손을 대려고 한단 말인가?
양의심공을 시작으로 사패천에 마교, 이제는 황궁까지. 전생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었던 걸까?
[언제 오는데요?] [일 년 정도를 예상하네. 더 빠를지도 모르고.]“…….”
일 년, 시간은 충분했다.
궁이야 공동의 적이니 정사마가 하나로 뭉치면 무슨 문제가…… 아!
진무는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이제야 동창 놈들이고 정무맹이고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무당지검, 사패천주에 이어서 진무에게 새롭게 생긴 직함. 마교의 교주.
즉, 진무가 명하면 정무맹은 몰라도 사패천과 마교는 확실하게 움직인다.
원래 관과 친한 정무맹 놈들이야 영왕이라는 놈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 뻔하고, 나머지를 움직이자면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
곰곰이 생각을 이어 가던 진무의 입가에 서서히 음흉한 미소가 피었다.
이거 또 이렇게 애원하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지. 내 큰 선심을 써서 도와주도록 하마.
니들이 그렇게 원한다는데 내 기꺼이 정사마의 수장이 되어 궁을 막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거참, 진작 그리 말했으면 행적을 지우지도 않았을 것인데.
안 그래도 그 많은 금군을 뚫고 황궁에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이었는데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구나.
으하핫,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