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33
433화
“그, 그게…… 죄송하게 되었으나 그럴 수는 없소.”
“……뭐?”
친근하게 굴기만 했지, 명백한 위협에 방만평이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했다.
뭐야. 왜 앞뒤가 달라. 죄송하면 비켜.
감사하고 존경한다며?
금원보 서른 개는 안 받겠다……는 말은 한 적 없지만, 어쨌든 그건 해결된 거 같고.
“내 길을 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상명하복에 충실한 군인의 신분인지라 받은 명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
“도독께서는 그대가 실력을 입증하기를 원하시오.”
“입증?”
“그렇소. 그대가 아무리 전 무림을 발아래 꿇렸다고 하나 듣기만 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전부 믿을 수는 없는 사실. 좌도독을 만나시려면 우리를 모두 뚫고 가셔야 할 것이오.”
“…….”
방만평의 말에 진무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지창파가 만들어 낸 폐허와 만신창이로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군병들.
니 눈엔 저게 안 보이냐? 이걸로는 모자라?
진무가 어이가 없어서 방만평을 쳐다보는데 그의 주위로 열 명의 무장이 열을 지어 섰다.
“이들은 적장의 목을 베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거친 좌군의 특임대 참장영(斬將營)의 무관입니다. 도독께서 군진이 무너진 뒤, 이들마저 넘는다면 길을 열라 하셨소이다.”
“…….”
방만평의 자신에 찬 표정.
설마 믿고 있는 건가?
대치창파의 충격을 줄일 정도로 견고한 방패와 같은 재질의 갑주와 무기를 들었다고?
너 뭔가 착각하나 본데, 아까 그거 내가 힘 최소로 쓴 거거든?
“자,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시작합시다.”
“…….”
방만평이 무책임하게 허허거리며 물러나자 무장들이 위풍당당하게 진무의 주위에 자리를 잡고 포진했다.
각기 다른 자세를 잡는 걸 보면 뭔가 검진 같은 것을 수련한 것이 틀림없는데.
“하아…….”
진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땅이 꺼져라 숨을 내쉬었다.
위협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신세가 처량하다 싶어서였다.
동네 골목대장쯤 되는 놈들이 단체로 덤빈다고 어른이 진심으로 싸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른만 등신 되지.
아무리 단단한 갑주를 입었다고 해도 진짜로 때리면 죄 뒈질 텐데.
진짜 니들…… 나중에 절대로 딴말하면 안 된다.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검을 쓰지 않으려는 것인가?”
“…….”
진무의 행동에 무장 중 하나가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당연하지. 멍청한 것들이 제 분수도 모르고.
내가 여기서 일휘까지 쓰면 니들 시체도 못 찾아요, 이놈들아.
피식 웃은 진무가 몸을 꼿꼿이 세우고 한 손을 허리춤에 얹은 채 나머지 손을 가볍게 뻗었다.
그러곤 최대한 가지런하게 네 손가락을 모아 접었다 폈다.
까딱까딱.
“와 봐.”
“……!”
나름 준비할 시간을 주었음을 알 리 없는 무장들의 얼굴이 투구 아래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칼을 내려놓은 것도 모자라 뒷짐을 지고 손을 까딱거려?
모멸에 가까운 무시와 전형적인 도발 아닌가.
“오만한 놈! 후회하게 해 주겠다!”
“…….”
내가 뭘 어쨌다고 저 지랄인지.
별안간 화를 내면서 달려드는 무장의 모습에 진무가 다시 한번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슈가가각!
화가 난 무장의 검이 허공에 하얀 궤적을 직선으로 그리며 찔러 오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무장들이 일제히 진무의 목, 허리, 다리를 동시에 노렸다.
“……!”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화를 이룬 합격진.
훈련이 꽤 잘된 녀석들이다.
검의 궤적 또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간결함을 극도로 추구하는 실전 검술.
과연 좌군이 키워 낸 최정예 고수라고 할 만했다.
와중에 보검에 보갑까지 더해졌으니 그 무위는 고강한 무림인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뭘 믿고 뻐기나 했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네.
순식간에 다가온 첫 번째 검이 진무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슈우웅!
하지만 찌르고 들어갔어야 할 검 끝은 허공을 꿰뚫었다.
“……!”
닿았다 생각한 순간 사라져 버린 목표에 무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놀라고 그래?
그래, 대단하긴 했어. 군문치고는 말이지.
상체를 슬쩍 젖힌 것만으로 칼을 피해 버린 진무가 도발적으로 까딱이던 손을 가슴까지 당겼다가 빠르게 비틀며 뻗었다.
턱…… 터억?
“……?”
진무의 손바닥이 무장의 갑주에 부드럽게 안착하자 한껏 충격에 대비했던 무장의 눈동자가 당황한 듯 흔들렸다.
충격이 없는 이유가 궁금한 거야?
뭐 다른 이유는 아니고, 몸이야 나으면 그만이지만 저 비싼 갑주는 흠집이라도 나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그래서 준비했다.
진무가 무장의 가슴에 닿았던 손에 힘을 실어 짓눌렀다.
“큽!”
짧은 신음과 함께 무장이 몸을 비틀었다.
어때, 짜릿하지?
이게 바로 갑옷은 보존하고 안의 내용물만 작살내는 무당의 십단금이다, 이거야!
“크으억!”
닿음과 동시에 빠르게 손을 회수한 진무가 재빨리 허공으로 솟구쳤다.
슈가가각!
뒤늦게 도착한 검의 궤적이 허공을 잘게 쪼개고, 십단금에 격중당한 무장이 핏물을 분수처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 정도로 끝날 줄 알고?
피윳!
허공을 밟고 섬전처럼 쏘아져 검진을 벗어난 진무의 주먹이 쓰러지는 무장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톡, 톡톡톡, 토톡.
보이지도 않는 주먹이 여인이 분을 두드리듯 가벼운 타격음을 내며 지나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무장이 몸을 거칠게 들썩였다.
갑주는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크아아악! 끄아악!”
실력이 낮은 군병들은 도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광이 모습을 가리울 정도로 난무하는 가운데 언뜻언뜻 보이는 진무의 쾌속한 움직임이 대단하기는 했으나 딱히 별다른 것은 없었다.
손이 닿는다. 떨어진다.
그게 다였다.
진무의 주먹에서 난 소리는 그냥 톡톡톡인데, 어째서 맞은 자들은 귀청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르는 것인지.
그러나 지금 진무의 구타는 외부에 타격을 주는 일반적인 구타가 아니었다.
주먹마다 십단금의 묘리를 담았다.
보기에는 솜방망이지만 내가중수의 묘리가 담겨 닿는 곳마다 근육을 짓뭉개고 뼈를 아스러뜨리며, 오장육부를 모조리 때려 부수는 것이다.
결국 무장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했고, 어느새 검진 밖으로 빠져나온 진무는 남은 무장들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일단 하나, 남은 것은 아홉.
참장영? 좌군에서 가장 센 놈들?
염병들 떨고 있네.
도가의 무공이 막 선하고 그런 거 같지?
기대해라. 십단금이 얼마나 잔인한 무공인지 뼈저리게 알게 해 주마.
무장들이 공격을 개시하고, 진무가 빠르게 그 안을 누볐다.
* * *
“음…….”
군막 밖으로 들려오는 비명에 영왕에게 호언장담했던 곽종산의 얼굴이 갈수록 딱딱하게 굳었다.
어째 들리는 것이 죄다 휘하 장수의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거친 진동음이나 충격파는 없었다.
와중에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도무지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러곤 어느새 비명마저 잔잔해지고 고요가 찾아왔다.
어찌 된 것이지?
귀를 한껏 기울여 봤지만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던 곽종산이 밖을 향해 외쳤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 지금 즉시 바깥 사정을…….”
“지, 진무 도장!”
“…….”
다급한 목소리가 곽종산의 외침을 끊었다.
펄럭! 우당탕탕!
동시에 군막의 휘장을 뚫고 무언가 들어와 바닥에 처박혔다.
“…….”
영왕과 곽종산은 벌떡 일어나 처박힌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시퍼렇게 부은 얼굴로 코와 입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혼절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곽종산 휘하 참장영의 무관이었다.
“아니 이게 어찌?”
그리고 둘의 의문을 풀어 주듯 두 명의 인물이 들어왔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도독동지 방만평, 그리고…….
“오래 기다렸나 보네? 차가 다 식은 걸 보면.”
“…….”
예의 따위는 밥을 말아 먹어 버린 듯이 반말지거리를 하며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당찬 사내, 진무였다.
“…….”
너무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준비한 시험을 통과하고 왔다면 좌군의 군병 수백을 뚫고 온 것이 분명한데.
어디 하나 베인 곳 없이 온전한 옷차림은 물론 호흡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대충 보니 이쪽이 좌도독인 것 같고, 당신이 영왕이야?”
“…….”
“그래, 날 찾으셨다고?”
영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 진무의 모습에 멍하니 쳐다보던 곽종산이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외쳤다.
“이, 이놈! 전하께 예의를 갖추지 못할까?”
“…….”
곽종산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자 진무가 얼굴을 찡그렸다.
“예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서로 예의 차리기에는 좋지 못한 상황 아냐?”
“뭣이!”
“말 같은 소리를 해. 목 따라고 군병을 잔뜩 깔아 놓은 주제에 어디서 예의 타령이야?”
“그, 그건 네놈을 시험하기 위해서…….”
“핑계가 좋지. 핑계가. 군사 수백으로 군진을 깔고는 시험을 운운해? 니가 뭔데 나를 시험해? 그리고 나나 되니까 이렇게 뚫고 온 거야, 알아?”
“…….”
띠껍게 눈을 뜨고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진무의 거침없는 태도에 곽종산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극히 의롭고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도사라고 들었는데……?
“좌도독, 그만하시오. 배우지 못한 무뢰배에게 예를 가르친다 하여 알겠소?”
“하, 하오나 전하.”
“됐소.”
영왕이 손을 들어 막자 곽종산이 입을 닫고 진무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분노야 어찌 되었건 진무는 영왕을 꼬나보았다.
뭐? 배우지 못한 무뢰배?
이 자식이 얻다 대고.
영왕이고 나발이고 여기서 끝장을 봐 버려?
진무가 양 눈썹을 치켜세우며 노려보자 영왕이 차분히 시선을 맞춰 왔다.
“그래, 자네 말대로 내가 영왕일세. 자네가 진무겠지?”
“…….”
“앉았으니 차라도 한잔하겠는가? 원한다면 다시 데워 오라 하겠네.”
난데없는 방문에 놀랐던 표정은 어느새 지워지고 없었다.
그 차분함에 언짢은 기색으로 입맛을 다신 진무가 자세를 고쳐 앉고 정식으로 인사를 청했다.
상대가 먼저 고개를 숙여 왔는데 계속해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할 수는 없었다.
그래. 거지 같아도 황족인데.
“진무요. 당신 말대로 태생이 무인인지라 목숨을 노린 상대에게 예를 갖추고 싶지 않은 점 양해하시오.”
기세를 누그러뜨린 진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배우지 못한 무뢰배라는 사실을 인정한 바에야 새삼 예의를 갖추기는 싫었다.
거기다 따지고 보면 이쪽도 어른 아닌가. 외관이 젊지만 그 속은 팔십이 넘은 노인이다.
“허허, 좋을 대로 하시오. 아무래도 좋으니까.”
“…….”
되레 예의를 갖추며 웃는 모습이 지극히 담담하고 차분하다. 위협적인 눈빛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과연 황실의 핏줄.
지배자로 태어났으나 하늘의 뜻이 닿지 못해 천자가 되지 못한 자.
이런 자들에게 원하는 바를 얻어 내기란 꽤나 어렵다.
젠장, 어떻게 구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