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예. 도장.”
나루에 선 진궁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일해상단의 총관 곡우량이 힘없이 대답했다.
미곡 운반을 위해 떠난 배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단강구를 떠난 지 벌써 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계획대로라면 정주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미 몇 차례 정주에 전서구를 띄웠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런…….”
진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무에게 맞아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속히 후발대로 출발했어야만 했다.
걱정되었으나 한 줄기 희망을 걸고 믿은 것이 실수였다.
만약 진무가 이대제자 일곱만으로 수적들의 위협을 뚫고 상행을 이루어 낸다면 무당의 이름을 높이는 데 그만큼 좋은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타오른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 생각했다.
단강구 상계뿐 아니라 무림 전체에 무당이 건재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리라 여겼다.
“아…….”
하지만 너무 시간이 흘러 버렸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면 필경 수적들의 습격에 당한 것이리라.
최악의 경우 더 이상 진무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진궁은 답답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내가 멍청하였다. 멍청하였어. 도사 된 자가 이익에 눈이 멀어 전도유망한 사제를 사지로 몰아넣은 꼴이로다. 이제 스승님과 장문인을 어찌 뵌단 말이냐.’
“사숙!”
청강이 급히 진궁을 부축했다.
“괜찮다.”
진궁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으나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청강.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구나. 본산에 전서구를 띄워라. 서둘러 구출대를 꾸려야겠다.”
“알겠습니다.”
청강이 굳은 얼굴로 전서구를 보내기 위해 뛰어가는데 나루를 향해 한 떼의 인물들이 들어섰다.
“아니, 이게 누구요?”
그의 목소리에 진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청삼을 걸친 학사 차림의 사내.
‘제갈각.’
그는 다름 아닌 단강 제갈분가의 대공자였다.
“내 청운검룡께서 산문을 내려오셨다는 말씀은 들었으나 공사가 다망하여 인사가 늦었소이다.”
청운검룡(靑雲劍龍)은 푸른 검기가 마치 구름을 닮았다 하여 무림에 알려진 진궁의 명호였다.
“그나저나 상황을 보아하니 일해상단의 배가 아직 안 돌아온 모양입니다.”
“…….”
진궁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저런, 정말이었구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겠소.”
제갈각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상인을 바라보았다.
“듣자 하니 수로 이용권을 놓고 분쟁이 있었다 하던데?”
“아, 예.”
제갈각의 말을 비대한 체구를 가진 중년인이 받았다.
이성상단의 외총관 두억기였다.
“거, 조금만 양보를 해 주지 그러셨소.”
“죄송합니다. 저희도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하도 급하여 부탁해 사들인 것이 일해상단의 이용권인지 몰랐습니다. 설마하니 그들이 위험을 안고 상행에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여.”
뒷머리를 긁적이며 송구한 표정을 짓는 두억기의 모습에 진궁은 끓어오르는 화를 인내했다.
급해?
거짓말이다.
일해상단의 배가 떠나고 매일을 나루에 나와 있었다. 이성상단의 배는 단 한 척도 나루를 떠난 적이 없었다.
“천수채주인 두낙통이 제법 악랄한 자라 들었는데.”
“허리를 잘라 버리기로 유명해서 요절도라 불립니다.”
“저런, 어쩌자고 순시선이 도는 시간이 아닌 때에 배를 출발시켰단 말이오. 쯧쯧.”
혀를 차며 말하는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라곤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되레 고소하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속을 긁기 위해 온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무당에게 대놓고 쪽을 주기 위해 온 것이다.
‘수치라고는 모르는 것들.’
진궁은 매서운 눈빛으로 제갈각을 쏘아보았다.
몰랐다고?
그럴 리가 없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일해상단은 진즉에 관으로부터 수로 이용권을 받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뜻이었다.
비록 법적인 문제가 없었다고는 해도 그것을 방해한 것이 이성상단이고, 그 뒤에 제갈분가의 입김이 있었음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단강구 상단들조차 그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무당과 연을 맺은 나머지 두 곳도 자신들이 일해상단처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궁은 예와 도를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고지식한 도사였다.
상대의 잘못은 매우 확실한 정황이었으나 실질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귀공의 걱정에 감사드릴 뿐이오.”
진궁은 근엄한 표정으로 제갈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라니요. 모두가 정무맹에 속한 한 식구 아니오. 필요하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도 있으니 뭐든 말만 하시오. 내 같은 정파의 일원으로 어찌 돕지 않겠소.”
진궁의 인사에 제갈각이 화답을 해 왔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맺힌 것은 명백한 조소였다.
‘이런 망할 자식이.’
속으로 욕설이 나왔지만 드러낼 수는 없었다.
무당이 호위해서 출행한 상단이 수적의 습격을 받았다.
이를 제갈분가에서 해결을 해 주겠다 손을 내민다면?
안 봐도 훤한 노릇이다. 망할 놈들이 대놓고 무당의 이름에 똥칠을 할 생각인 것이다.
“다시 한번 귀공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리오. 하나 무당에게 아직 그 정도의 힘은 있으니 마음만 받도록 하겠소.”
안 그래도 진무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진궁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언제든 말하시오. 우리 제갈분가가 자랑하는 무인들이 상시로 대기 중이니.”
제갈각이 다시 한번 비웃음을 머금으며 몸을 돌렸다.
하지만 제갈각의 비웃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진무야. 부디 살아 있기만 해 다오.’
진궁의 마음속에는 사제와 이대제자들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그가 한숨을 쉬며 아련하게 멀리 강을 바라보는데.
“총관님! 진궁 도장!”
누군가 나루로 급히 뛰어왔다.
일해상단의 인물이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나 좋지 않은 소식이라면 어쩐단 말인가?
만약 상선이 침몰하고 모두가 죽었다는 소식이라면.
진궁은 굳은 얼굴로 남자가 곡우량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진궁 도장!”
곡우량이 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도착했습니다.”
“예?”
“상선이 무사히 정주에 도착하였습니다.”
“…….”
그의 말에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무슨.”
“보십시오. 정주에서 온 전서입니다.”
곡우량의 말에 진궁이 전해 받은 전서를 급히 펼쳤다.
“아!”
진궁의 표정이 밝아지자 막 의기양양하게 떠나려 했던 제갈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됐군요. 됐어요.”
곡우량이 마치 제 일처럼 기뻐했지만, 진궁은 애써 표정을 감추고 무뚝뚝한 척을 했다.
하지만 마음속은 달랐다.
살았다. 산 것이다.
진무와 무당의 제자들은 무사히 상선을 호위해 정주까지 간 것이다.
가득 졸이고 있던 가슴이 펴지자 내내 막혀 있던 숨이 한 번에 쉬어졌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
“천수채를 토벌했다고 합니다.”
곡우량의 말에 진궁이 아닌 제갈각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너무도 놀랐기 때문인지 대놓고 반말을 하고 말았다.
“……예. 전해 온 서신에 따르면 천수채주 두낙통을 비롯해 천수오걸과 수적 서른을 생포했다고 합니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에 제갈각은 참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반대로 진궁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얼마나 걱정했던가?
처음에는 혹여 상행을 완수하지 못하여 일해상단이 피해를 입고, 단강구 상계에서 무당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칠까 걱정되었다.
그 후에는 돌아오지 않는 제자들이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상행을 문제없이 호위한 것뿐 아니라 수채를 토벌해 승전보까지 울리다니.
‘진무야. 너 이 녀석.’
기특한 마음이 절로 든다.
고작해야 약관을 넘은 녀석이 어찌 이리 무당의 이름을 드높인단 말인가?
무당의 ‘검’임을 자처한 것을 그저 치기로만 여겼거늘, 진정으로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다니.
‘허허, 이 녀석, 이제 말투만 고치면 되겠구나.’
진궁이 기쁨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곡우량의 말이 이어졌다.
“허허, 상단주님의 전언에 따르면 수채를 토벌해 막대한 재화를 취득한 것은 물론, 정주 관아에서 현상금까지 두둑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제갈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자, 진궁이 싸늘한 눈으로 물었다.
“제갈분가의 대공자께서는 어째 표정이 좋지 않소이다?”
“…….”
“우리 무당파의 ‘자랑스러운 진무’가 천수채를 토벌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지요?”
진궁의 말에 제갈각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했다.
“아니, 그, 그게…….”
“뭐, 됐소. 딱히 따지려 한 것은 아니니.”
“…….”
“진무 사제가 아직 어려서 호기가 넘친다오. 수적들을 보고는 그대로 둘 수 없었던 모양이오. 혹여 다른 상단도 피해를 볼까 봐 말이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대제자 일곱으로 수채를 토벌하다니. 쯧쯧, 도사라는 녀석이 어찌 이리도 무모한가.”
짐짓 화를 내는 듯했으나 말이 긴 것을 보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아니, 기분이 좋은 게 틀림없었다.
진궁의 눈동자와 얼굴에 자부심이 쏟아져 나올 듯했으니까.
“그리고 이 녀석들. 별 무리 없이 잘 해낼 줄은 알았으나 이리도 연락을 늦게 하다니. 내 돌아오면 아주 혼쭐을 내야겠구먼!”
진궁의 말에 곡우량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방금까지 오만 걱정에 제 사제에게 사죄까지 하고 있던 사람이.
하지만 제갈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궁은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있는 대로 구겨진 제갈각의 그 얼굴이 어찌나 고소한지 십 년 묵은 체증이 단번에 내려가는 것 같았다.
물론 무당파 도사의 체면이 있기에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듣자 하니 제갈세가에서 그 천수채라는 곳을 몇 번이나 토벌하려 했다가 실패했다 들었소. 저런, 미리 말했으면 우리가 좀 도와줬을 터인데.”
담담하지만 은근히 약 올리는 듯한 어조에 제갈각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그나저나 제갈세가에서는 단강구 상계의 어려움을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우리 막내 사제도 해내는 일을 못 할 정도로 약한 무인들을 수채 토벌에 보낸 것을 보면?”
“…….”
진궁의 말에 제갈각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입장이 뒤바뀌었다.
망할 도사 놈이 자신과 제갈분가 전체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근엄하고 차분하게.
“본인은 다른 일이 있어 먼저 가 보아야겠소. 그럼 이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선 진궁은 한바탕 크게 웃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속이 다 시원한 게 한 며칠 과식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에 제갈각이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일해상단을 무너뜨리려는 음모를 꾸민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이성상단으로 하여금 일부러 수로 이용권을 빼앗게 하고, 단강구의 상단에 은밀하게 명해 일해상단이 매집한 미곡을 아무도 되사지 못하게 만들었다.
몇 번을 고민했고,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일해상단은 결국 막대한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상행을 나가야 하는 외통수에 걸린 것이다. 순시선 없이 나갔다가는 수적에게 당하게 될 것이 자명함에도.
더욱이 그들이 마주칠 천수채의 우두머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두낙통.
제갈세가는 이미 그의 무위를 알고 있었다.
단강구 상단을 장악했던 제갈세가와 이미 여러 차례 마찰을 빚어 왔고, 그의 손에 허리가 잘려 죽은 제갈세가의 무인이 수 명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당에서 장로급 무인을 호위로 보내거나 청운검룡 진궁이 직접 나선다면 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도 없다.
제갈각은 무당이 절대로 장로급의 무인을 호위로 보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수적 따위를 두려워해 무당의 장로가 움직인다면 상행은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당은 무림 전체에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그 사실을 아는 무당은 예상대로 진무라는 일대제자와 이대제자 일곱을 내려보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무림에 그 명성이 자자한 진궁이 호위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불렀던가?
그런데 상행을 성공한 것도 모자라 천수채를 토벌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일성.”
“예. 대공자.”
“서둘러 정주에 서신을 띄워 확인을 해라. 정말로 두낙통이 맞는지.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소상하게 알아 와라.”
“알겠습니다.”
일성이 달려가는 모습에 제갈각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무.”
그 이름을 곱씹던 제갈각이 무서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공사척을 잡아들이고, 청양상단의 밀거래를 박살 낸 것이 요행은 아니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