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98
498화
후우우웅!
사람을 육신을 모조리 찢어 내고 거친 욕설을 내지르며 날아드는 진무의 모습에 한무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빠르다.
하나 뻔히 보이는 공격으로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한무화가 여유롭게 뒤로 물러나며 반격을 가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라진 진무의 몸이 그의 측면에서 튀어 올랐다.
“……!”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피할 새조차 없었다.
황급히 교차해 막은 팔뚝에 진무의 주먹이 때려 박혔다.
쩌어어억! 콰아아앙!
동시에 터진 강기가 거센 충격파를 일으켰다.
“크으윽!”
몸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온통 진탕되는 충격에 한무화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이, 이런 충격이라니.
얼굴을 일그러뜨린 한무화가 손날을 세워 허공을 잘라 낼 기세로 빠르게 그었다.
슈아악, 슈악, 슈우우!
날을 세운 반월형의 강기가 진무를 향해 날아갔다.
허리를 꺾으며 강기를 피해 몸을 낮춘 진무가 곧장 용수철처럼 몸을 튕겨 내달렸다.
한무화는 계속해서 강기를 내쏘았고, 진무는 한무화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달려 공격을 피했다.
쾅! 콰쾅! 쾅쾅!
연신 폭발하는 강기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허!”
지켜보던 누군가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땅히 싸움에도 기승전결이라는 순서가 있어야 하고, 절초는 항상 뒤로 감추는 법이었다.
내력이 무한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싸움은 진무가 흑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주먹을 날리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둘은 마치 막바지에 이른 싸움처럼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있었다.
전력과 전력이 격돌했다.
주먹은 대기를 찢어발기고, 발은 그들이 디딘 대지의 모든 곳을 터트렸다.
쿠웅, 쿠쿵!
요동치는 대지의 진동과 폭발하는 충격의 여파가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진 탓에, 내력이 약한 홍건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히이이잉!
본시 짐승의 본능이라는 것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것.
말들이 두 사람이 내뿜는 기운에 놀라 앞다리를 들고, 두려움에 질려 뒷걸음질 치자 양소방이 태자를 향해 말했다.
“진형을 뒤로 물리시지요.”
“음…… 그래야겠습니다.”
태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진무 도장도 그렇고, 저 대궁주라는 자도…….”
그는 진무가 전력을 펼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그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누구도 전력을 다하는 진무를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이 가진 경계를 아득히 초월한 듯한 둘을 지켜보던 모두의 가슴에 경외심이 싹텄다.
“청상 도장. 무엇 하는가? 어서 물러나게.”
“…….”
모두가 물러나는 와중에도 청상은 우뚝 선 채 전방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청상 도장!”
“……예?”
재차 이어진 외침에 청상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되물었다.
“어찌 그리 멍하게 있단 말인가?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내상이 다시 도지면 큰일이니 어서 뒤로 물러나세.”
“예…….”
청상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나는 내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사숙의 모습이 평소와 너무나 다르다.
대궁주라는 이에 대한 분노가 그토록 거셌던가?
아니면 자신이 사숙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화가 나도 언제나 냉철하고 기민하게 싸우는 사숙이었다.
약한 상대를 만나도 최대한 도발하고, 철저히 그를 이용하는 사숙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의 싸움은 다르다.
너무 흥분해 있었다.
수십, 수백 초가 오고 가는 전투.
대궁주라는 자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하긴 하지만, 계속해서 상처를 입는 중이니 진무가 우위에 있음이 확실한데 어째서 걱정이 드는 것일까?
사숙…….
입술을 깨물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애써 떨친 청상은 두 사람의 싸움에 다시금 집중했다.
혹여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서 언제든 뛰어들 수 있도록 검의 손잡이를 힘껏 움켜쥔 채.
콰아아앙!
또 한 번의 거센 충격파가 터져 나와 전장을 뒤흔들었다.
충격파가 일으킨 돌풍이 먼지를 휘날리고, 진무가 지면을 낮게 스치며 대궁주의 몸 안쪽으로 섬전처럼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장 솟구치는 주먹.
쩌어어억!
“……!”
막은 와중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충격에 한무화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상황이 팽팽하게 당겨진 끈과 같으니, 한쪽 손이 놓이는 순간 승부가 기울 터였다.
고통을 씹어 삼킨 한무화가 손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진무를 향해 휘두르자, 이내 강기를 머금은 손발에 의한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스거거거걱!
새하얀 궤적이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진무의 몸과 머리가 깨끗하게 분리되었다가 흩어졌다.
빠르게 고개를 젖혀 뒤로 공중제비를 넘으며 남긴 잔상이었다.
휘리릭!
하지만 한무화의 공격이 곧장 이어졌다.
진무는 연이어 공중제비를 넘어 피했고, 한무화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손날을 휘둘렀다.
하나 계속 피할 수만은 없다.
뒤로 넘음과 동시에 몸을 둥글게 만 진무가 한무화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발을 뻗었다.
슈아악!
허공에서 곧게 뻗은 발에 담긴 묵직한 기운, 묵룡혼원공 용보.
콰아아앙!
피육이 부딪혔음에도 화탄이 폭발하는 듯한 충돌음과 함께 한무화가 세차게 튕겨 나갔다.
쿠당탕, 퉁퉁!
땅바닥에 처박혀 구른 한무화가 곧장 몸을 튕겨 허공으로 솟구쳤다.
흙투성이가 된 그의 두 눈에 거머리처럼 따라붙는 진무가 보였다.
이 개자식이!
기운을 급격하게 끌어 올려 손안에 모은 한무화가 곧장 진무를 향해 내쏘았다.
“죽어라! 무당지검!”
슈아아악!
피가 흘러 붉게 물든 한무화의 입가에 짙은 살기가 떠오르고,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유성처럼 꼬리를 달고 진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
발밑까지 따라붙어 솟구치려 무릎을 굽혔던 진무가 곧장 지면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콰콰콰콰!
진무가 있던 땅바닥에 강기 다발이 한여름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놓칠 것 같으냐!”
한무화가 폭발 범위에서 벗어나는 진무를 향해 손을 휘젓자 쏟아지던 강기가 지면에 닿을 듯 말듯 스치며 휘어져 진무를 쫓았다.
생명이라도 가진 듯 자신을 향해 다시금 쏘아져 들어오는 강기 다발에 진무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성가신 놈이다.
벌써 몇 번의 공격을 성공시켰는데도 좀처럼 충격을 입지 않았다.
그의 경지는 대충 함강의 끝자락.
비교하자면 북리도천보다 조금 더 강한 경지였다.
강기에 자신의 뜻을 담고, 초식마저 벗어난 그의 전투 능력은 무공이라는 범주를 초월해 있었다.
절세의 무공이니 필살의 초식이니…… 그건 경지 낮은 놈들에게나 중요하지,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손짓과 발짓 모두가 곧 절세의 초식이고 무공이 되니까.
그런데 청상이 이런 무지막지한 놈의 허벅지에 검을 꽂아 넣었다고?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건 운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막 성강에 오른 놈이 함강의 고수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망할 청상 자식.
천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새 또 성장한 것인가?
젠장, 쪽팔리게시리.
어쩔 수 없지. 사숙이 되어서, 와중에 나이를 팔십을 넘게 처먹어 놓고 약관의 핏덩이에게 질 수야 있겠는가?
“젠장!”
짧은 욕설과 함께 멈칫하는가 싶었던 진무가 지면을 힘껏 짓밟았다.
그의 신형이 엄청난 수로 늘어나며 사방에 족적을 새겼다.
꽈과과과광!
잔상 하나하나에 직격한 한무화의 강기에 대지가 일제히 폭발했다.
그리고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잔상 속에서 실체를 드러낸 진무가 뒤쫓는 강기의 폭발을 피해 크게 원을 그리며 한무화의 주위를 돌았다.
바닥에 내려선 한무화는 끈질기게 강기를 조종하며 마치 꼬리잡기를 하듯이 진무의 뒤를 따라붙었다.
잡힐 것 같으냐!
순간 진무의 발이 땅을 거칠게 짓밟으며 속도를 더했다.
“놓치지 않는다!”
쫓고 쫓기는 싸움.
한무화가 더욱 악을 쓰며 기운을 높이는 순간, 진무가 만든 원이 안을 향해 빨려드는 나선으로 변했다.
원이 안을 향해 말려 들어가고, 거리가 좁아지니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나선의 끝자락에서 하나의 점이 되었다.
“하합!”
턱 밑까지 치고 들어온 진무가 양손을 활짝 펼치자 그 손안에 생겨난 검은 구체가 한 마리 흉포한 용이 되어 솟구쳤다.
묵룡혼원공 천교열이 한무화의 옆구리를 향해 잔혹하게 아가리를 벌렸다.
쿠아아악!
“……!”
순간 진무의 노림수를 깨달은 한무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의 공격을 피하며 멈칫하는 순간, 진무를 뒤쫓던 자신의 강기 다발이 고스란히 자신을 덮칠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따위 얄팍한 수작에 순순히 당할쏘냐.
자세를 낮춰 천교열을 피한 그가 곧장 강기에 쏟아부었던 기운을 끊고 몸을 솟구치려는 순간……!
콰드득!
“크으윽!”
강렬한 충격에 그의 몸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신의 허벅지.
청상이라는 어린 도사 놈에게 당한 상처에 진무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네놈의 강기, 그대로 돌려주마!”
스산하게 웃은 진무가 급격하게 몸을 비틀어 방향을 바꾸었다.
“이, 이런……!”
몸이 멈췄다.
비열하게도 자신의 약점을 노려 몸이 솟구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내 한무화의 강기 다발이 그의 몸에 닿아 폭발했다.
콰콰콰쾅!
“끄으으…….”
자신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 버린 한무화가 피투성이로 변해 폭발의 중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우웩!”
울컥거리며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셨다.
으드득.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낸 한무화가 원독에 찬 눈빛으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진무는 멀찍이 선 채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한무화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감히 나를…… 그따위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냐?
한무화의 눈에 불길이 솟았다.
비겁한 수를 써 놓고 언제든 이길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한 저 표정.
마치 자신이 약자가 된 것 같지 않은가?
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까닥, 까닥.
“…….”
“뭐 해? 아직 멀었어. 다시 와 봐.”
슬쩍 들어 올린 손을 까딱이며 이죽거리는 진무의 모습에 한무화의 한쪽 눈이 씰룩거렸다.
고수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격.
진무에게서는 그것이 보이질 않았다.
경박하기 짝이 없다.
중원의 운명이라는 거대한 것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마치 파락호처럼 응대하는 그 모습이라니.
“비열한 놈. 너 따위 파락호가 어째서 중원 최강의 무인이란 말이냐?”
“…….”
한무화가 불같은 노기를 토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지랄하고 있네. 파락호는 중원 최강이 되면 안 되냐?”
“…….”
하지만 진무는 마주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었다.
“그래, 나는 파락호다. 아마 죽을 때까지 파락호일 테지. 비열하고 비겁하고 비정해. 누구보다 돈을 좋아하고, 탐욕스럽지. 하지만 적어도 너 같은 놈보다 백배는 나은 것 같은데?”
“…….”
“그리고 뭐, 장엄한 결전이라도 기대한 거야? 웃기는 소리 마. 싸움은 어디까지나 싸움. 그 상황에 맞춰서 적절한 방법으로 이기면 땡이야.”
진무의 빈정거림과 비웃음에 한무화가 원통하단 듯 울부짖었다.
“어째서…… 어째서 네놈 따위가 그리 강할 수 있지?!”
“……?”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의 절대자였다.”
“…….”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모두가 나의 강대한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왕이었고, 신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네놈 따위에게 나의 무공이 닿지 않느냔 말이다!”
진무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새끼…… 명색이 한 세력의 수장이라는 놈이 정신머리하곤…….
“야.”
“……?”
진무의 부름에 한무화가 넋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중원을 노린다는 놈이 뭔,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온 애새끼처럼 징징거리는 거냐?”
“뭐라고?”
“무림이라는 곳은 네가 살았던 동토의 웅덩이가 아니라 대해(大海)다.”
“…….”
“고작 웅덩이에서 왕 노릇 좀 했답시고 바다를 먹으려 들어? 미친 소리 하지 마.”
진무의 차디찬 비웃음이 한무화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 무림에 사는 사람들은 말이야. 너처럼 권좌에 앉아서 아래만 내려다본 놈이라는 달라. 동토가 어쩌고, 살기 위해서 어쩌고…… 뭐가 그리 잡설이 많아? 변명하기 전에 칼부터 들어야 하는 곳에서?”
“…….”
“사방이 암수와 암계투성이고, 문만 열면 칼질하는 놈이 수두룩하단 말이야. 힘만으로 왕이 될 수 있는 곳 같아? 웃기는 소리.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졌다고 해도 내일 아침에 어찌 될지 모르는 아귀다툼의 전장이 바로 이 중원이야.”
“…….”
“내가 이곳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려고 얼마나 악착같이 노력한 줄 알아? 너보다 더욱 많은 싸움을 해 왔고, 더 많은 사지를 지나왔어. 애초에 넌 내게 상대가 되지 않아. 무공이든, 살아온 삶의 치열함이든.”
진무의 말에 한무화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들을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 년간이나 준비했던 야심 찬 계획이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네놈이 가진 모든 것을 꺼내서 도망치는 것이 좋을 거다.”
“……그게 무슨?”
“철저하게 부숴 버릴 생각이거든. 네놈의 모든 것을.”
“……!”
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진무의 모습이 아로새겨졌다.
온통 검게 물들어 번들거리는 눈과 땅을 박차고 쏘아져 들어오는 신형, 살짝 벌어진 입 밖으로 삐져나온 새하얀 송곳니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미소까지.
콰아앙!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졌다.
진무가 만들어 낸 포악한 묵룡이 세상이 아닌 단 한 사람을 부수기 위해서 날뛰고 있었다.
그 잔혹한 이빨이 스칠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가고 둔중한 꼬리가 휘둘러 질 때마다 뼈마디가 아스러졌다.
한무화는 분노한 진무의 공격 앞에 너무도 무력했다.
와중에 자신의 약점인 허벅지를 노리는 비열함까지 적절하게 선보인다.
퍼억!
전면을 막아 내는 사이 어느새 측면으로 파고든 주먹이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끄어…….”
갈비뼈가 우드득 부서져 나가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척추가 끊어지는 듯한 충격이 쩡하니 골을 울렸다.
“이런 아픔은 처음이지?”
“…….”
진무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앞이 흐릿해져 갔다.
자금성이 코앞에 있는데.
세상의 주인이 될 날이 머지않았었는데.
모든 권력이 자신의 손안에 잡힐 듯하였는데.
그 모두가 아스라이 흩어졌다.
이루어 낼 것이라 자신했던 그 모든 것이, 꿈꾸어 왔던 그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려 했다.
쩌어어억!
휘돌려 찬 발에 몸이 꺾이고, 피가 솟구쳤다.
빠박!
후려친 주먹에 땅바닥에 처박혔다.
다시 몸을 일으킨 한무화의 멍해진 눈동자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진무가 보였다.
무당지검.
저놈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저놈 때문이다.
과거의 조상들은 청무라는 놈에게 막혀 피눈물을 흘려야 했고, 자신은 저 망할 놈 때문에 끝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손에 넣지 못했다.
죽여 버렸어야 했다.
놈의 이름을 들었을 때, 무당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때 죽였어야만 했다.
무당을 불태우고, 놈의 싹을 잘라 놓았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은 자만했고, 그러지 못했다.
자랄 대로 자란 놈을 짓밟아 과거 무당이 행한 잘못을 뼈저리게 깨닫도록 하려 했는데, 그것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으드득.
한무화가 주먹에 맞아 온전치 못한 어금니를 갈아 댔다.
후회가 밀려오고,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원한이 쌓여서 끝내 독이 되었다.
독중지독(毒中之毒).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은 사람이 품은 악한 마음이다.
원한이 뼈에 사무치고 골수에 스며들면 인간은 그 무엇보다 강렬한 독기를 내뿜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바로 원독(怨毒)이었다.
원독을 머금은 한무화의 눈빛이 다시 변했다.
혈광이 귀기로 바뀌고, 귀기가 사무쳐 그의 뇌를 범했다.
쩌어어억!
또다시 땅바닥을 뒹굴었지만,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암흑으로 가득 찬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듯했다.
어딘지도 모를 그 땅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한무화의 눈이 칠흑보다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그 눈동자에 비친 것은 오직 진무였다.
자신을 삼킨 암흑을 비집고 들어온 자.
죽여 버릴 것이다.
네놈의 피로 술잔을 채우고, 네놈의 살점을 안주 삼아 씹을 것이다.
한무화의 눈빛이 이상하리만큼 잔잔히 가라앉았다.
“……!”
진무는 한무화를 향해 재차 공격을 가하려다 걸음을 멈추고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구부정하게 몸을 세운 한무화가 칙칙한 눈빛을 발함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붉은 수증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입마(入魔).
이루지 못하는 한이 골수에 사무쳐서 기어이 마성에 빠져든 것이다.
폭증하는 기운이 대기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먹구름을 하늘 가득 채워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그의 기운을 따라 일어난 돌풍이 솟구쳐 회오리가 되고, 이윽고 폭풍으로 변했다.
“뭐야, 원정까지 뽑아내는 거야? 미친 새끼…… 고작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마성에 빠져들다니.”
진무가 한무화의 변화에 한쪽 눈을 찡그리며 짜증을 드러냈다.
참 한결같다.
악인들은 어째서 마지막 끝자락에 항상 마성에 빠져든단 말인가?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죄 골라서 하고는 삶에 뭐 그리도 미련이 많단 말인가?
그래, 끝을 내 주마.
네놈의 육신은 물론, 허무맹랑한 야욕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 정신 상태까지 뜯어고쳐 주마.
진무의 송곳니가 번뜩 빛났다.
나, 무당 도사다.
네놈이 품은 마기의 상극은 선기.
몸에 무리가 가서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네놈에겐 특별히 태극의 힘을 선사해 주마.
계도는 없다.
네놈에게 어울리는 곳은 지옥뿐이니까.
“크아아!”
완전히 마성에 잠식당해 버린 한무화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진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우우웅!
서서히 기운을 끌어 올린 진무의 몸이 은은한 푸른빛으로 빛나고, 그의 눈이 햇살보다 밝은 신광을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