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0
50화
“대주!”
“조장님!”
허벅지를 잡고 쓰러지는 둘의 모습에 참새 떼처럼 흩어지던 녀석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젠장!”
그러곤 곧바로 수장들을 잡기 위해 다가가는 진무를 향해 검을 뻗어 왔다.
무척이나 충성스러운 녀석들이었다.
상대를 잘못 파악했을 뿐.
퍼억!
일 보를 내디디며 허리를 숙여 횡으로 그은 검격을 피하고 복면인의 복부 깊숙이 주먹을 박아 넣는다.
“커억!”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숙어진 얼굴을 향해 진무의 무릎이 솟구친다.
콰직!
이어 교차해 날아오는 두 개의 검격.
빠바박!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피해 내고 연이어 양발이 그들의 턱을 부쉈다.
뻑! 퍼억! 콰직!
그들은 스무 명에 달했지만, 진무와 실력의 격차가 너무 컸다. 검을 놓고 나오긴 했지만 상관없다. 주먹과 발에 가득히 머금어진 선기면 충분했다.
자비는 없다.
주먹은 뼈를 부수고 발은 짓밟아 으스러뜨린다.
콰앙!
뒷머리를 잡은 채 담벽 위로 세차게 찍어 내렸다.
무너진 담에 깔려 정신을 잃은 복면인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우드득.
“끄악!”
손에 잡힌 팔을 여러 각도로 꺾어 몸 기(己)자를 만들자 경쾌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또다시 사정없이 이어지는 구타.
정신을 잃어도 멈추지 않는다.
“으으으.”
그쯤 되니 복면인들이 진무를 공격하지 못하고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열 명 이상이나 남았지만, 숫자로 어찌해 볼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모양이었다.
격이 다른 강함을 가진 무인.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
아직 해가 뜨려면 먼 시간이었지만, 이런 소란에 멍청하게 잠이나 자고 있을 정도로 무당의 제자들은 약하지 않았다.
특히나 탄기의 경지에 다다른 진궁이 아닌가?
남들보다 몇 배는 잠귀가 밝다.
더구나 상단의 경계를 위해 번을 서고 있던 호위 무인들도 졸다가 깬 모양인지 타종을 때려 대었다.
무당의 제자들을 필두로 상단의 호위무사들까지 쏟아져 나와 복면인들을 포위했다.
누가 봐도 진무가 스물 가까운 괴한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모양새.
“이놈들, 무기를 버리지 못할까!”
진궁이 눈에서 불길을 토하며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 자식, 또 이런다. 싸움은 진무가 했는데 마치 제가 다 했다는 양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어지간히 주워 먹길 좋아하는 얄미운 놈이었다. 잠이나 처자고 있었으면서.
하지만 진궁의 외침은 효과가 컸다.
포위된 복면인들이 즉시 무기를 버리며 투항했다.
“제자들은 이들을 제압해 안으로 옮겨라!”
“예, 사숙!”
제압은 무슨, 멀쩡한 놈이 몇이나 된다고.
하지만 이미 이대제자들이 복면인들을 데리고 장원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괜찮으냐?”
“뭐.”
“들어가자.”
웬일이지?
이 꼬장꼬장한 놈이 나한테 괜찮냐고 묻다니.
걱정? 그럴 리가…….
그리고 그런 말을 해도 좀 포근한 표정으로 해야지.
진궁을 따라 장원 안으로 들어가자 다리가 부러진 이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무릎이 꿇려져 있었다.
“벗겨라!”
진궁의 명에 이대제자들이 각기 자신의 앞에 앉은 이들의 복면을 벗겼다. 이미 잡혀 있는 터라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그대는?”
진궁이 그들 중 하나의 얼굴을 알고 있는지 놀란 표정을 했다.
아니, 놀람보다는 의아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진무의 지풍에 허벅지가 꿰뚫린 자였다.
“개방이 어째서?”
개방?
개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진무는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양소방, 이 노인네가 진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개방의 오결제자인 철골개께서 어찌 진무와 싸우고 있단 말이오? 그것도 복면까지 쓰시고.”
진궁의 말에 철골개가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렸다.
양소방이 시켰겠지, 뒷조사 좀 하라고.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저들이 개방이라면 나머지 한 패거리는 누구란 말인가?
대답은 진궁이 해 주었다.
“아니! 당신은 여위강?”
여위강?
그건 또 누구지?
“허, 점점. 아니 제갈분가의 무인인 당신은 또 어쩐 일이란 말이오?”
진궁의 추궁에 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개방은 그렇다 치더라도 제갈분가에서 복면을 쓰고 일해상단을 찾아온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 대답도 진궁이 해 주었다.
“허! 제갈각입니까? 아니면 제갈무린 가주께서 직접 시키신 일입니까?”
“가, 가주님께선…… 모르십니다.”
진궁의 추상같은 호통에 여위강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리 이번 일해상단의 일로 꼴이 부끄럽게 되었기로서니, 그대를 시켜 진무를 노리다니요!”
“그, 그건.”
“닥치시오!”
“…….”
진궁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노려보자 여위강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감히 수치도 모르고 본문의 제자를 노리다니! 내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소이다. 당장 본산에 알려 제갈분가와 개방의 잘못에 대해 따지겠소!”
“지, 진궁 도장.”
“진궁 도장.”
철골개와 여위강이 당황스러워하며 진궁을 바라보았다.
“변명은 꿈도 꾸지 마시오! 감히 진무를, 우리 무당의 검을 노리다니!”
“예? 무, 무당의 검이요?”
“…….”
진궁의 말에 둘의 눈에 불신이 잔뜩 어렸다. 검? 무당의 주먹이 아니고……?
“청강!”
“예. 사숙!”
“무당의 팔궁인 우진궁 실무자로서 명한다. 지금 즉시 본산에 전서구를 띄워라!”
“예.”
“지금 이 사실을 장로님들과 장문인께 알리고, 조속히 우진궁주이신 명충 장로님을 청한다 하여라!”
“예, 사숙!”
손바닥으로 막았을 것을 넉가래(눈삽)로도 못 막게 생겼다. 진궁의 명령에 여위강과 철골개는 하늘이 무너진 표정으로 애원했다.
“도, 도장. 그렇게까지 하실…….”
“닥치라 했소! 그대들은 본산의 제자를 노렸소. 그 의미를 모른단 말이오? 지금부터 그대들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겠소. 모든 사건의 정황은 명충 장로님께서 판단하실 게요.”
“…….”
무당의 제자를 노린 것에 대한 의미.
간혹 산문을 떠난 제자가 횡액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만약 개인적인 실수나 전투에 나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음모나 습격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리고 무당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무당의 산하의 모든 제자에게 비상 소집령이 떨어지고 문파의 이름을 건 대규모 보복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무당의 분노였다.
“이들을 가두고 철저하게 감시하라!”
“예, 사숙!”
진궁은 이대제자들에게 끌려가며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여위강과 철골개에게서 싸늘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진무.”
“예?”
“새벽잠을 설쳤을 테니 가서 쉬도록 하여라.”
“아, 예.”
진무를 향한 진궁의 목소리는 여전히 근엄했지만, 그 안에 따스함이 가득했다.
……어째 사건이 좀 커진 것 같긴 한데. 뭐, 그러거나 말거나.
* * *
일해상단에서 일어난 소란은 순식간에 단강구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소식을 들은 제갈세가와 개방에서 찾아왔지만, 아직 무당에서 사건을 확인할 장로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짜악!
“이런 멍청한 놈!”
“…….”
제갈무린의 분노에 뺨을 얻어맞은 제갈각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감히 허락도 없이 암천대를 움직여?”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
뻐억!
내질러진 발에 제갈각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게 지금 죄송하다 해서 될 문제란 말이냐!”
“죄송합니다.”
급히 일어나 무릎을 꿇은 제갈각은 그 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확인만 하고자 했다고 변명하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멍청한 놈! 꼴도 보기 싫다! 썩 꺼지거라!”
“…….”
축객령이 떨어졌으나 제갈각은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후후, 형님. 어찌 일을 이리 만드셨소.’
지켜보는 제갈근은 속으로 고소하게 웃었다.
이로써 그는 대공자의 자리에서 밀려날 것이고, 다시 한번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망할!”
제갈무린은 치미는 분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일해상단의 일로 본가에서 자중하라는 서신이 도착하였는데 하필이면.
“여위강 이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한단 말인가!”
제갈각도 제갈각이지만 암천대주가 그리 행동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제갈무린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청화대주!”
“예.”
“지금 즉시 무인들을 소집해서 일해상단의 장원을 포위하라!”
“포위입니까?”
“그래! 포위다.”
“알겠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청화대주 모익상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금세 깨달았다.
가주는 이른바 무력시위를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시작은 애들 싸움이었으나 이제는 어른 싸움일 수밖에 없다. 무당의 제자를 노렸다는 사실이 들통난 시점에서 이 일이 문파 간의 싸움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근래 단강구의 이권으로 작은 마찰이 있었으니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을 구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제부터는 무당과 제갈 간의 자존심 대결로 치달을 것이 틀림없었다.
무림 문파 간의 기 싸움.
유혈 사태로까지는 번지지 않겠지만 어떻게든 제갈의 힘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기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단강구의 모든 여론이 승자에게 손을 내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무당과 제갈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되면 정무맹에서 절대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중재에 나서는 순간 제갈세가는 무당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서 일을 마무리 짓게 될 것이다.
제갈세가는 산중에 틀어박혀 도나 닦는 무당보다 이해관계에 밝으며 계략을 꾸미는 일에 훨씬 능숙했으니까.
‘무당,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싸움이었다.’
충분히 우위를 점하고 들어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제갈무린은 언뜻 스치는 불안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앉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멍청한 자식.”
* * *
“사숙! 사숙!”
청강이 급히 안으로 뛰어들자 상단주 강유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진궁과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뭐?”
청강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진궁은 굳은 표정으로, 진무는 짜증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뒤따랐다.
진무는 지금의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잡혀 온 자들의 주리를 틀어서 입을 열게 하고 싶었으나, 진궁이 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입 열게 하는 데는 고문이 최고다. 일단 입만 열고 나면 이놈들의 멱살을 잡고 제갈세가를 찾아가 정문을 부수고 따지면 될 일을, 뭐 하러 명충 장로까지 오라 가라 한단 말인가?
이놈의 정파는 역시나 일 처리가 글러 먹었다.
그놈의 절차, 절차.
하지만 착하게 ‘네’ 하면서 따라 줄 진무가 아니었다.
가장 처음에 잡혀 온 놈. 그놈을 몰래 청상에게 맡겨 놓았다.
그때 봐서는 양소방의 수하도, 그렇다고 어설픈 사파인도 아니었다.
아직 정체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보면 지금의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제갈세가 놈일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뒤를 캐 보면 필경 도움 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정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묘한 위압감이 가득히 느껴졌다.
백을 헤아릴 정도로 많은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품고 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제갈?”
진궁이 눈을 씰룩거리는데.
“청운검룡이 아니시오.”
“…….”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모익상.’
진궁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