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49
49화
“뭣이?”
암천대주 여위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학이 일해상단으로 끌려갔습니다.”
뿌드득.
수하의 말에 여위강이 이빨을 거칠게 갈았다.
대공자 제갈각의 부탁은 무당 일대제자 진무의 실력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탄기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은신과 변장이 가장 뛰어난 수하인 일보십변 주학을 보냈다.
그런데 감시 중에 들킨 것도 모자라 잡혀 갔다고 한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런 병신 같은 놈. 제갈분가의 최정예라는 놈이 고작 일대제자 하나를 당해 내지 못하고 임무에 실패해?”
속이 끓다 못해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어찌할까요?”
“…….”
수하의 말에 여위강은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일해상단은 무당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대공자의 부탁인지라 가주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진행한 일이었다.
“지금 일해상단에 머무는 무당의 제자가 누구인가?”
“진무를 제외하고 청운검룡 진궁 이하 이대제자 아홉입니다.”
“음.”
만만하지 않은 전력이었다.
이대제자들이야 몇이라도 상관없었으나, 진궁의 존재는 무척이나 성가셨다.
‘망할.’
여위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안 그래도 천수패 토벌과 관련해 제갈분가가 뒤에서 음모를 꾸몄다는 소문이 단강구에 퍼진 참이었다.
제갈무린은 본가의 호된 질책을 받았고, 외당의 사람들이 불철주야로 뛰어다니며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제갈분가의 암천대가 수적 토벌의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는 진무를 은밀하게 감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불호령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무당에서 이를 문제 삼게 되면 단강 제갈분가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약 이로 인해 본가의 장로직에 거론되고 있는 분가주 제갈무린의 앞길이 막힌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제갈각은 물론 자신의 모가지까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주학이 제갈세가 소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또한 그는 현기 초입의 무인. 그런 주학을 잡아갔다면 어중간한 무인으로는 턱도 없을 터였다.
“암천십호를 불러라. 내가 직접 움직여야겠다.”
“예? 가주님의 승인도 없이 말입니까?”
“멍청한 놈. 이 마당에 승인을 받잔 말이냐?”
“하지만…….”
“시끄럽다. 오늘 밤 자정을 기해 곧장 일해상단에 잠입한다.”
“예. 대주님.”
수하는 못내 꺼림칙했으나 명령이 내려졌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책임은 본인이 질 테니까.
* * *
달이 구름에 가린 밤.
단강구 도심에 자리 잡은 일해상단의 장원이 깊은 잠에 빠져든 사이.
‘대주! 이상한 놈들이 접근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철골개는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
방금까지 일해상단을 향해 은밀하게 다가오던 자들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뛰어난 자들이다. 기척을 감추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자들이었다.
‘설마 일해상단을 감시하는 자들이 우리 말고 또 있나? 아니면 적?’
일해상단의 담벼락에 은신하고 있는 자들.
그들은 단강구 개방 분타의 감시조였다.
중원 거지들의 우상인 무풍개 양소방의 명령으로 분타주는 곧장 개방의 거지들에게 비상 동원령을 내렸다.
거의 백여 명에 가까운 거지들이 ‘진무’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하는 사이, 철골개와 감시조는 일해상단 외곽에 배치되었다.
진무의 무위가 뛰어남을 고려해 오결인 자신은 물론 분타 내에서도 선별된 자들만 끌고 온 참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진무는 곧바로 잠을 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인물들로 인해 철골개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뭐 하는 놈들이지? 감시하라는 명령 외에는 듣지 못했는데.’
야행복을 입고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으니 정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자신들이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그들 역시 자신들을 발견할 것 같았다.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직 저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일단 상대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검은 야행복을 입고 일해상단으로 접근하던 인물들.
그들은 다름 아닌 여위강을 비롯해 암천대에서 가장 뛰어난 열 명의 고수였다.
그중 현기에 오른 자만 셋.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모두가 잠에 빠져 있을 테니 신속히 담을 넘어 주학을 구해 빠져나온다. 때마침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져 있으니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지!’
담을 넘으려던 여위강은 섬뜩한 느낌에 재빨리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신호에 암천십호라 불리는 무인들이 순식간에 어둠에 몸을 숨겼다.
‘이, 이게 뭐지?’
그의 기척에 걸린 미세한 느낌.
동류의 냄새다.
은신자.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일해상단의 담벼락 곳곳에서 느껴져 왔다.
고수다.
그것도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고수들이 분명했다. 여위강조차도 그들의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열 명 이상?’
설마 함정에 걸린 것인가?
무당의 도사들이 자신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무당의 도사들이 은신을 할 리는 없는데.
갑작스러운 긴장감에 여위강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급한 것은 자신들이었다. 주학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해 구해야 했기에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망할. 어쩔 수 없지.’
여위강은 곧바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속히 처리한다.’
퓨슛!
짙은 어둠 속, 날카로운 예기를 머금은 빛이 사방에서 번뜩였다.
땅!
쇳소리가 거칠게 울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살수나 은신자들은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그 어떤 특징도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야행복을 입고 얼굴까지 복면으로 가렸으니 신분을 알 수 없고, 무기나 무공마저도 전혀 다른 것을 사용하기 마련이었다.
즉,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복면을 벗겨 신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큭!”
암기에 맞은 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위로 수 개의 칼이 날아갔다.
따다당!
또 다른 인물이 나타나 칼날을 쳐 냈다.
야행복과 야행복의 싸움.
누가 누구 편인지 구분할 길이 없다. 그저 자신들만 은밀한 표식을 통해 알 뿐이었다.
싸움이 고조되자 그들은 더 이상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서로의 실력이 비등했기에 그들은 은신보다는 서로의 무공에 더욱 집중했다.
하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행인이다! 기척을 숨겨라!’
멀리 일해상단의 담벼락에 취객 하나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자 양측이 일제히 싸움을 멈추고 모습을 숨겼다.
이내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 듯이 적막감이 흘렀다.
“우웩!”
취객은 골목 한곳에 멈춰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 취한다.”
그리곤 비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파파팍!
그것이 마치 신호라도 된 것처럼, 잠시 숨을 고른 은신자들은 또다시 전투를 이어 갔다.
난전에 난전이 거듭되었다.
피가 튀고, 야행복이 갈가리 찢어져 나갔다.
검술에 경공술, 은신술까지 너무도 비등했기에 그들의 싸움은 새벽이 가까워 올 때까지 팽팽하게 이어졌다.
* * *
챙, 채챙!
“…….”
자고 싶다.
챙, 채챙.
아직 더 자고 싶은데 미세하게 들려오는 쇳소리가 진무의 신경을 거슬러 왔다. 고요함에 물든 시간이라 더욱 잘 들렸다.
애써 귀를 막아도 보았지만.
땅, 챙! 채챙!
한번 들려온 소리는 점차 크게 고막을 울렸다.
“이런 쌍!”
결국 진무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벗어 두었던 도포를 걸쳤다.
“어떤 새끼가 이 시간부터 검술 수련을 하고 지랄이야!”
안 그래도 지난밤에 양소방 그 거지새끼를 만나 잠을 설친 진무였다.
씨발, 니들은 오늘 뒈졌다.
진무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찾기 위해 방문을 열고 고개를 휙휙 돌렸다. 그러곤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방향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래, 아주 우는 사람 뺨을 때리는구나. 어떤 새낀지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데 정원도 아니고, 마당도 아니고…….
담벼락?
진무는 의아한 표정으로 쇳소리가 울려 퍼지는 담벼락 위로 몸을 휙 날렸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복면을 쓴 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었다.
상당히 지쳐 보였고, 입은 상처도 많아 보였으나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얘들은?
황당하기만 한 광경에 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압!”
“차앗!”
잠시 휴식이 끝났는지 또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그런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솜씨의 검술. 형(形)과 변(變)을 제외한 실전적인 검이었다. 그런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초식을 쪼갤 줄 알아야 한다. 엄청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고수들이 틀림없었다.
더욱이 몇몇은 선명한 검기를 뿌리고 있는 것이, 현기의 경지에 이르렀거나 거의 근접했을 정도로 뛰어난 자들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실력이 너무나 비등하다.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뭘까? 어디서 이런 자들이 떼거지로 나타났단 말인가? 그리고 왜 남의 집 앞, 아니 옆에서 싸우고 지랄들일까?
그런데 구경을 하다 보니 제법 재미가 있었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강 건너 불구경과 남 싸움 구경이라지 않는가. 잠을 깨웠다는 이유로 손봐 주려던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는데 복면인 중 하나가 지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하고 놀랐다.
“지, 진무?”
그의 말에 갑자기 싸움이 멈췄다.
“응? 니들 날 알아?”
눈빛을 보아하니 두 패거리 다 진무를 아는 눈치였다.
나 그렇게 유명 인사였나?
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만큼 자신의 업적이나 평판이 올라갔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자신을 알아본 자들이 복면을 쓰고 있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었다.
일해상단의 근처에서, 자신을 알고, 복면을 썼으며, 칼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니들 뭐 하는 새끼들이냐?”
진무의 몸에서 스산함을 머금은 푸른 선기가 피어나고,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생겨났다.
“…….”
“…….”
진무의 질문에 대치하고 있던 둘이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제길! 후퇴한다!”
둘이 동시에 같은 소리를 외치고, 그들의 수하가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흠, 이런 걸 어부지리(漁父之利)라고 해야 하나?
진무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그들은 긴 싸움으로 지쳐 있었다. 또한 싸움을 지켜보며 실력 파악도 대충 끝난 상태.
진무의 손가락이 엄지에 의해 굽혀졌다가 푸른 선기를 머금고 튕겨졌다.
퓻! 퓨퓻!
탄기, 검기와 동일한 기운을 쏘아 내는 경지.
의기, 기운에 뜻을 품었으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휘어지게 할 수 있는 경지.
지금 진무의 경지가 그렇다.
두 줄기의 강맹한 푸른 선기가 복면인들 중 딱 둘을 향해 날아갔다.
기운을 감지한 듯이 검을 들어 쳐 내려 했으나, 휘어진 기운이 그들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큭!”
“으윽!”
굳이 모두 잡을 필요는 없다. 이미 저들끼리 싸우다 힘이 빠진 놈들 아닌가.
진무는 두 패거리 중에서 가장 센 두 놈만 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