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6
16화
소화산에서 화산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곧장 달리면 사백 리요, 굽이굽이 물길을 타도 육백 리면 충분한 길이다.
급할 것도 없겠다, 천천히 여유나 즐기며 가면 될 일이었다.
“흠…….”
모처럼의 여행에 세상 구경이라 마을마다 머물며 좋다는 술을 음미하던 진무가 문득 인상을 팍 찌푸렸다.
“어, 어찌 그러십니까?”
옆에서 진무의 잔을 채우던 각출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저놈 말이야.”
“…….”
각출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황신과의 수련을 마치고 쑥덕거리는 운연이 보였다.
“이런 절묘한 방법이!”
“쉽지?”
“감사합니다. 황 호위, 아니 형님!”
“형님은 무슨…….”
“…….”
세세히 무공의 잘못된 쓰임을 지적해 주자 운연이 넉살 좋게 감사를 표하고, 황신이 쑥스러워한다.
“붙임성이 제법이죠?”
“……붙임성?”
“예. 기초도 아주 제법이지 않습니까?”
“기초오?”
각출의 평가에 진무의 눈썹이 점점 휘었다.
사실 각출의 평가는 솔직한 심정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황신이 누구이던가?
내내 무공 증폭기나 다름없는 진무의 수발을 든 끝에 이제는 가부자 명세찬조차도 감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무인이다.
그런 그가 아무리 사정을 봐줬다고 하더라도 저리 합을 나누며 버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차암, 대단한 녀석입니다. 비록 그 간악한 혁련무강의 내공법을 익힌 데다 무당의 수준 높은 무공은 제대로 모르는 것 같지만…….”
따악!
“큭!”
갑작스러운 진무의 꿀밤에 각출이 이마를 움켜쥐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때리세요!”
“…….”
다분히 반사적인 응징이었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혁련무강이라는 이름 앞에 간악함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단 말인가?
뭐, 그건 그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쯧쯧, 이런 놈을 호위라고……. 널 믿고 있는 소방 어르신이 큰일이다.”
“……예?”
“니가 그러니까 개방의 좋은 무공을 익히고도 신이 동생밖에 못 하지, 이놈아.”
“…….”
“대단하긴 뭐가 대단하단 말이냐? 내 보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개판이야, 개판. 저딴 걸 무공이라고…… 어휴 진짜.”
“…….”
난데없는 짜증에 각출이 목을 움츠리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당연히 마음에 안 드시겠지.
누군들 눈에 차시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진무는 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림은 불기를 쓰고, 도가는 선기를 쓰며, 마교는 마기를 쓴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무릇 무공이라는 것은 그에 걸맞은 내공이 동반되어야 하는 법이니까.
상성(相性)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 무공을 창안한 놈들은 그에 걸맞은 내공법을 만들고 세세한 설명까지 곁들인다.
초식별로 쓰여야 할 기의 흐름이 다르고, 그로 인한 위력이 다른 법이니, 정확히 알고 제대로 쓰라고.
뭐, 경지에 이르면 의미가 없어지겠지만, 지금의 운연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다.
왜냐고?
그는 아직 만류귀종 운운할 정도로 뛰어난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운연이 모자란 것은 아니다.
아니, 그가 익힌 것이 채기법인 것을 감안했을 때, 꽤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다.
원래 채기라는 것이 타인, 혹은 타생물의 기를 받아들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것만을 연단하는 방법이기에, 외기를 통해 쌓을 수 있는 것은 탄기 수준의 내공까지다.
그러나 몸 안에 흐르는 내공으로 보아 그의 경지는 대략 의기.
흐흠, 어디서 내공 개많은 거지급 영물이라도 빨아먹었나?
양소방을 빨아먹고 단번에 의기까지 올랐던 자신처럼?
이유는 모르겠다.
이제 와서 몸소 시험해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아마도 자신이 모르는 채기의 또 다른 묘용이겠지.
녀석의 내기에 약간의 마성이 스민 걸 보면 채기 시에 한두 번 정도 생명을 빼앗은 것 같기는 한데…….
하긴 녀석이 그랬지 않던가?
처음에 채기를 익히면서 실수로 짐승도 몇 마리 죽였다고.
뭐, 녀석의 과거와 진술 내용의 사실 관계는 이래저래 조사를 부탁(?)했으니 찬찬히 알아 가면 될 일이고…….
문제는 지금 놈의 상태다.
별 잡스러운 무공을 주워 배우는 바람에 몸 안에 스민 묵룡의 힘을 눈곱만큼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심히 열 받는다.
묵룡기가 가장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묵룡혼원공인데, 영판 다른 걸 쓰고 있으니.
저따위 무공으로는 평생을 노력해도 묵룡을 불러낼 수 없다.
“하아, 제기랄. 이걸 못 본 체하고 있을 수도 없고…….”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해야 하는가?
의심이 완전히 걷히지도 않았는데 묵룡혼원공을 가르칠 수도 없고…….
“아! 그렇군요. 핫핫! 감사합니다, 황 호위님. 제가 오늘 크게 개안하였습니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열심히 해. 열심히 하면 너도 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예!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황신의 격려에 운연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자 진무의 얼굴이 더욱 찡그려졌다.
지들이 언제부터 친했다고.
묵룡을 담은 놈이, 어쩌면 후인인지도 모를 놈이 고작 황신 같은 쩌리에게 고개를 숙이는 꼴을 보고 있자니 천불이 났다.
묵룡혼원공만 익히면 더욱 대성할 녀석인데…….
묵룡혼원공만 익히면…….
자신이 가르치기만 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황신은 눈도 못 마주칠 텐데.
아, 묵룡이 저러면 안 되는데.
강해야 하는데.
“…….”
생각을 이어 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어찌한다?
저 약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절로 치밀고, 황신에게 굽신거리며 배움을 청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배알이 꼴리고…….
이제 막 앞다리를 쑥 뻗은 놈이라고 해도 개구리가 아니고 묵룡씩이나 되는데.
그런 용 새끼가 용인지 모르고 개구리인 줄 알고 있으니…….
“…….”
짜증과 신경질을 동반한 두통에 진무가 한껏 얼굴을 찡그리다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이런 젠장! 뭐가 문제야? 뭔 고민을 하는 거야?”
“…….”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씩씩거리는 진무를 쳐다봤다.
왜 저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가지 말자.
불똥이라도 튀면 괜히 귀찮아진다.
황신과 아이들이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회피하는 사이, 진무는 합리화에 돌입하고 있었다.
사실 가르쳐도 상관없잖아.
연유야 어찌 되었건 연자임이 분명하고, 사승의 예를 취하지 않았으되 자신의 후인인 셈이다.
과거야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딴 게 뭔 상관인가?
자신부터가 혁련무강이면서 무당 제일의 도사가 되었는데.
설마하니 저놈이 그런 과거씩이나 있으려고?
설사 저놈에게 말도 못 할 정도의 과거가 있다고 치자.
만에 하나 녀석이 묵룡혼원공을 배워서 다른 마음을 먹고 무림에 크나큰 환란을 일으키려 하면?
풉!
지가 그래 봐야 운연이고, 아무리 세져 봐야 자신에 비하면 발톱의 때였다.
그러니 엇나가면 친절히 매질해서 옳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면 된다.
계도야말로 스승의 덕목이며 도사의 정체성이 아닌가?
그래, 일단은 가르치자.
아직 녀석에 대해 확인할 게 많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등선을 꿈꾸는 마당에 차라리 잘되었다.
누군가는 이어 가야지.
무당에는 청상도 있고, 청우……는 빼고 양진이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묵룡도 누군가 이어야지.
어차피 운연이 아니면 누구도 이을 수 없다.
먼저 들인 것은 양진이지만 애초에 묵룡과 교감을 이루지 못했고, 애초에 도사에 더욱 어울리는 놈이다.
백표는 더 이상 발전치 않을 것이고, 우명은…… 생각해 봐야 복장만 터지지.
하나 이놈은 다르다.
이미 품었고, 스스로 깨우친 놈이다.
하면 적어도 지 놈이 묵룡인지는 알게 해 줘야지. 암!
기나긴 합리화 끝에 결심을 굳힌 진무가 주먹을 힘껏 움켜쥐며 운연을 불렀다.
“야!”
“……?”
까딱까딱.
운연이 파드득 놀라며 돌아보자 진무가 검지를 세워 은혜롭게(?) 까딱거렸다.
“운연이 이리 와 봐.”
“예? 무슨 일로…….”
“…….”
운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쭈뼛쭈뼛 다가왔다.
무슨 일은. 이 몸께서 너에게 크나큰 은혜를 내릴 참이지.
운연은 물론 모두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진무가 입꼬리를 한껏 말아 올리면서 말했다.
“너, 지금부터 무공 배워라.”
“……예, 예?”
“내가 너에게! 묵룡혼원공을 가르쳐 주마.”
“…….”
진무의 말에 운연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갑자기? 별안간?
운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고 있자 진무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왜? 싫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이미 희한하기 짝이 없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구타 이후 내력이 엄청나게 증진된 것이다.
실로 놀라웠다.
기가 이전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흐른다고 해야 할까?
황신에게 들어 보니 그게 진무라는 인간의 구타라고 했다.
일명 증폭구타.
그에게 맞은 이들은 대개가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진무의 구타가 혈도를 중심으로 자극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하지만 원수가 아닌가?
이미 이름을 버렸고, 딱히 복수를 목표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아비를 죽인 불공대천의 원수였으며, 동족들의 핏값을 치러야 할 대상이었다.
하여 마음속에 살생부를 만들며 죽여야 할 자들을 새기고 있지 않았던가?
진무 역시 그중 하나였다.
당장에 친한 척을 하고는 있으나 황신도, 소동보도, 각출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그가 아직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산으로 가자는 이유도 자신이 묵룡기를 익히게 된 연유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여차하면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것은 기회인가?
아니면 자신을 파악하고자 하는 또 다른 시험인가?
“사, 사숙조님.”
“뭐?”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하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운연은 자신도 모르게 묻고는,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실수다.
아직 자신에게 의심조차 걷어 내지 못한 사람에게…….
스스로의 멍청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홧홧해진 뺨을 감싸는데,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며 툭 내뱉었다.
“이유가 있어야 하냐?”
“……예?”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상관평은 자신을 이용해서 다시금 권력을 잡으려 했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살아오며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아비와 어미조차도.
그런데…….
“네놈 하는 꼴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
“묵룡씩이나 익힌 놈이…… 쯧쯧, 기대해라. 내일부턴 묵룡을 어찌 부려야 하는지 세심하게 알려 줄 테니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뒷머리를 벅벅 긁는 진무를 보며, 운연이 눈을 깜박였다.
고작…… 그런 이유라고?
자신이 묵룡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축하한다! 운연!”
“와, 이거 기연인데?”
“이런 씨부럴, 그럼 이제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는데 황신과 아이들이 다가와서 제각기 다른 말투로 축하를 건넸다.
황당하다.
당황스럽고, 어안이 벙벙하다.
받아 본 적 없는 호의와 축하인지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새끼 표정 왜 이래? 왜, 아직 너에 대해 확인조차 안 하셨는데 무공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해서 그러냐?”
“…….”
“원래 그런 양반이야. 이해하려고 하지 마. 정하면 하는 거야, 뭐든 간에. 대신에 뒤를 쫓아야 하는 우린 뭐 빠지게 힘들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지 않습니까?”
“재미? 이것들을 확 그냥 아가리를 찢어 버릴까? 니들은 맨날 처맞는 게 재미있냐? 아차 하는 순간에 골로 갈지도 모르는데?”
“…….”
“야, 운연. 축하는 축하고 경고는 경고야. 항상 뒤를 조심해라. 네가 뭘 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주님께서 결정하셨으니 우린 그저 따를 거야. 하지만, 천주님께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순간…….”
소동보와 각출을 째려보며 차갑게 내뱉던 황신이 비수를 목 근처에 대고 쓱 긋는 시늉을 했다.
“…….”
어쨌거나, 그렇게 그들은 다시 화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휴식 장소에서 운연은 진무가 말한 세심한 가르침이 뭔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우에에엑! 쿠에에엑!”
“닥쳐! 이 새끼야! 일어나지 못해!”
“…….”
흑룡난투로 처맞으면서 흑룡난투를 배우라니, 진무 이 개…….
호의에 속아 잠시 흐려졌던 살생부가 운연의 머릿속에 다시금 선명히 떠올랐다.
가장 마지막 줄, 아니 마지막 장은 네놈이다, 진무.
빽빽이 채워서, 적힌 숫자만큼 고쳐 죽일 테다.
꼭, 반드시……!
“쿠에에엑!”
죽도록 비명을 지르며, 운연은 수도 없이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