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17
17화
무공(武功).
있어 보이게 말하면 체계화된 무의 공부, 쉽게 말하면 그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
다시 말해 단순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되고 발전해 온 것이 이 무공이다.
개인끼리의 사소한 다툼이든 국가 간의 명운을 건 전쟁이든, 궁극적인 목표는 타인을 압도하고 그들이 가진 것을 보다 수월하게, 완전히 빼앗는 것.
정의 어쩌고 하며 실천하는 놈들도 많지만, 그 역시 힘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가식적인 말을 덧붙인다 해도 결국 속내는 뻔한 것이다.
힘이 곧 정의.
이 단순명료한 논리 아래 무공을 수련하는 이들은 심신(心身)을 단련하고 형(形)을 익히며, 술(術)에 매진한다.
기본에서 시작하여 극의(極意)에 이르기까지.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나 다름없는 그 힘든 시간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모든 이의 수련 방법이 같지는 아니하다.
수련 시간을 어찌 쪼개 쓰는가도 다르고, 어떤 수련으로 어찌 성취를 이루는가도 다르다.
모두가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개개인마다…….
개개…….
이런 개 같은! 아무리 달라도 그렇지 이건 아니잖아!
운연은 속으로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아무리 개인의 취향과 적성을 존중한다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운연이 수련당하는(?) 방법은 절대적으로 정상이 아닌 것이다.
이게 수련이냐! 수련이야!
세상 누구도 이딴 방법으로 수련하지 않을 거라고!
쩌어어억!
텅, 터텅, 데구르르.
옆구리를 깊숙하게 파고든 주먹에 서너 장을 튕겨 나온 운연이 의지와 상관없이 땅바닥을 구르다 축 늘어졌다.
“그어어…….”
한 번도 질러 본 적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척추가 터지는 줄 알았다.
사각으로 파고든…… 아니, 사각인지도 모르겠다. 주먹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감도 잘 안 잡힌다.
하도 맞다 보니 어느 순간 본능적으로 피했고, 피하는 중에도 더러 맞았고…… 안 피하면 당연히 맞았고, 또 맞았고…….
“끄으읍.”
이를 악물고 참아 보지만……. 씨발, 진짜 더럽게 아프다.
겨우 땅을 짚고 부들거리며 고개를 쳐든 곳에는 놈이 있었다.
자랑하듯 주먹을 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웃는 진무가.
그 사신(死神) 같은 모습에 소름이 쫙 돋는다.
이제야 알았다.
저 새끼가 웃으며 송곳니를 드러낼 때마다 황신과 아이들의 표정이 왜 그리도 핼쑥해지는지.
“뭐야, 벌써 끝이야? 새끼가 이제야 제법 흑룡난투가 몸에 익어 가나 했더니…… 몇 대나 맞았다고.”
“…….”
야, 많이 맞았어.
정말 죽을 만큼 맞았다고!
“쯧쯧, 오룡궁에서 그럭저럭 잘 버텼다더니 영 헛말이네. 이렇게 체력이 약해서야.”
“……하, 하하.”
너무너무 실망했다는 듯 양 눈꼬리를 팔자로 축 늘어뜨리고 빈정거리는 작태에 운연의 입에서 바람 빠진 웃음이 흘러나왔다.
삼 주야를 내리 처맞고 멀쩡히 서 있으면 그게 사람이냐?
내리 처팬 니놈도 사람 새끼로는 안 보이거든……?
“뭘 쪼개, 등신아.”
“…….”
삼 주야(晝夜), 다시 말해 사흘 밤낮.
그 시간 동안 운연은 흑룡난투라는 박투술 하나를 오로지 맷집만으로 수련했다.
상세한 설명? 기의 흐름? 주먹과 발의 쓰임과 효율적인 투로? 그딴 건 애초에 없었다.
자신의 가르침은 형이나 술 그딴 거 없이 오직 실전적인 감각에 입각하고 있으니 맞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맞다 보면 피하고, 피하다 보면 자연히 공격하는 법도 알게 되니 계속 맞으라고?
가르친다는 놈이 입이 있으면 말로 해야지 왜 방귀를 뀌냔 말이야, 어?
“어, 이제는 막 야리네. 꼬우면 째려보지 말고 일어나서 주먹이라도 한 번 더 뻗어. 그게 흑룡난투야.”
“…….”
아이 씨팔 진짜…….
야린 거 아닌데. 감정이 좀 실렸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본 건데.
운연은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며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소름 끼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심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저 표정이 정말 너무 무서웠다.
“이거 참, 꼬라지를 보아하니 더는 수련이 안 되겠네.”
“…….”
진무가 땅에서 바르작거리는 운연을 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 모습에 퀭하니 꺼졌던 운연의 눈동자에 한 줄기 생기가 피어났다.
잠깐만,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오늘 수련 끝?
불쑥 발아한 희망이 쑥쑥 자라 만개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운연은 기대감으로 번들거리는 충혈된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뜨고 진무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휴식, 휴식을 선언해 다오.
내가 지금 맞다가도 눈이 감길 지경이다.
그만하면 충분히 했으니 잠이라도 한숨 자라, 그리 말해 다오!
그러면 살생부에 적은 네 이름에서 획 하나…… 아니 둘 정도는 지워 줄게. 제발…… 제발…….
“지금으로서는 수련을 계속해 봐야 성취도가 현저히 떨어지겠어.”
“…….”
꿀꺽.
애가 탄 운연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쉬라는 말이 틀림없다. 확실하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 측은지심이라는 게 좁쌀만큼은 있지 않겠는가?
콧김까지 씩씩 내뿜기 시작한 운연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불쌍한 표정을 하고 진무의 입 모양에 집중하며 귀를 활짝 열었다.
그리고 드디어…….
“신!”
“예, 천주님.”
“화산까지 대충 얼마나 남았지?”
“에, 여기가 대려(大荔)의 북쪽이니까 화음현까지 대충 백 리 정도 남았습니다.”
“백 리…… 음. 모처럼의 화산인데 화음현에 들어가기 전에 가까운 마을에 들러서 쉬는 게 좋겠지?”
“뭐, 그렇죠? 간만이기도 하고, 명색이 무당 제자인데 저 꼴로 갈 순 없으니 옷도 좀 갈아입혀야 할 것 같고요.”
“흐음.”
황신의 말에 진무가 운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하도 굴렸더니 흑의인지 흙의인지 모를 지경으로 엉망이 된 데다, 군데군데 찢어진 게 망측하기도 제법 망측하다.
그래, 신이 놈 말이 옳다. 무당 도사요, 오룡궁의 이대제자인데 이 꼴로 갈 수는 없지.
마땅히 찬란한 태극 문양이 딱 박힌 자랑스러운 무당의 도포를 걸쳐야지, 암.
“음, 그래도 아무 곳에서나 쉬긴 그렇고, 좀 괜찮은 곳 없어?”
“괜찮은 곳이라면…… 사파의 영역권에 속한 곳이긴 하지만, 주천은 어떻습니까?”
“주천(酒泉)? 그쪽은 삼문협이잖아? 화음이 코앞인데 너무 돌아가는 거 아냐?”
“그래 봐야 이십 리입니다. 무엇보다 그곳이 술맛이 기가 막힙니다.”
“응? 그래?”
“예. 샘물이 좋아 그런지 빚는 술마다 맛이 좋습니다. 과거 이백과 두보마저도 칭찬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거, 군침 도는 곳이네.”
솔깃한 말에 진무가 고민에 빠졌다.
사파의 영역이라는 사실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영역이니 경계니 따지는 건 정사마의 무인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진무에겐 여기나 저기나 그냥 중원일 뿐이니까.
다만 조금 돌아가야 한다는 게…… 뭔 상관이야?
술맛이 좋다는데.
“좋아! 가자. 오늘 밤은 그곳에서 쉰다.”
“예.”
비 온 뒤 햇살 같은 희소식에 운연이 진무와 황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쉰단다.
지옥 같았던 수련이 일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어찌나 기쁜지…… 게다가 술까지 한잔한다고 하니 절로 입에 침이 고이고, 몸이 움찔거렸다.
이러면 엎어져 있을 수 없지. 어떻게든 힘을 내어 따라가야지.
암! 가야지!
운연이 간신히 힘을 짜내 부들부들 몸을 일으키자 진무가 천천히 다가와 팔을 뻗어 내밀었다.
응? 뭐지?
이 악귀 같은 인간이 힘들다고 부축을 해 줄 리는 없는데…….
“이십 리라는데 괜찮지?”
“…….”
헉! 걱정까지?
원래 수련이 끝나면 괴물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는 거였냐?
운연은 밀려드는 감동으로 잘게 떨리는 눈을 들어 진무를 올려다보았다.
제기랄…… 그리 처맞았는데 어찌하여 이 잠깐의 호의에 손바닥 뒤집듯 감사의 마음이 생긴단 말인가?
하긴, 지치긴 했지.
하도 처맞아서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해지긴 했어.
하지만 고작 이십 리? 고민할 거리도 되지 못한다.
가면 쉴 수 있는데, 당연히 괜찮지.
“예!”
운연이 젖 먹던 힘을 짜내 힘차게 대답하자 진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목말 태워.”
“……예?”
“태우라고. 그냥 맹탕맹탕 걸어서 갈 수는 없잖아.”
“예? 아깐 분명히 쉬라고…….”
“누가? 내가? 언제?”
“…….”
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구나, 참…….
“넌 체력이 너무 약해. 그러니까 이동할 때도 체력 훈련을 겸해야지. 그래야 다음 수련 때는 좀 더 버틸 거 아냐?”
“…….”
“뭐 해? 어서 태워.”
“아, 예…….”
눈살마저 찌푸리며 다그치는 통에 더는 모른 체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망할 사조 놈…….
애초에 사람으로 변할 놈이 아니었다.
측은지심 같은 건 개밥으로 던져 준 게 분명했다.
그래, 하자 해!
사람 하나 목말 태운다고 뭐가 그리 달라질까? 이십 리만 가면 쉴 텐데.
운연이 전신 근육의 경련을 참아 가며 겨우 자세를 취하자 진무가 냉큼 그의 목 위에 올라탔다.
으드드득!
“느허억……!”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에 저도 모르게 괴상한 소리를 내지른 운연이 이내 어금니를 힘차게 깨물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세웠다.
“자, 출발!”
진무의 힘찬 외침을 신호로, 일행이 주천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운연만 빼고…….
“뭐 하냐? 안 가?”
“가, 가야 하는데…… 이, 이게…….”
몸이 너무 지친 탓일까?
그저 사람 하나 어깨에 얹었을 뿐인데 온몸이 짜부라질 것만 같았다.
눈이 당장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고, 꽉 다문 이가 잇몸을 파고드는 게…… 마치 묵직한 돌을 메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거기다 발도 푹…… 푹?
“…….”
발이 왜 땅바닥을 파고들지?
혼란에 빠진 운연이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멍하니 있는데, 진무가 심드렁히 말했다.
“일단 백 근 정도만 더해 봤다.”
“…….”
백…… 근?
“원래 나무 기둥을 하나 들게 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몰인정한 처사다 싶어서.”
“…….”
“괜찮아. 그렇게 감사하지 않아도 돼. 무게에 딱 백 근만 더하려면 기운을 엄청 세심하게 운용해야 하지만, 이왕지사 가르치기로 한 참에 그 정도 수고야 뭐.”
“…….”
아, 이해가 되었다.
우리 사조님께서 체력 길러 주신답시고 천근추…… 아니, 백근추를 운용하고 계셨구나.
나무 기둥은 몰인정할까 봐 직접 섬세하게 기운까지 운용하시면서…….
하하, 고맙네. 개같이 고마워서 눈물이 나.
하지만 그까짓 백 근!
묵룡기를 운용하면!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내공 쓰다 걸리면 뒈진다.”
……개새끼.
으으득!
운연은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옮겼다.
푹, 푸욱.
흙바닥에 깊은 족적을 만들면서…… 무려 이십 리나 되는 길을…….
* * *
“천주님.”
“응?”
주천에 도착한 진무 일행은 기진맥진해 쓰러진 운연을 방에 팽개치고 초저녁부터 술을 수십 병째 비우고 있었다.
술맛에 연신 감탄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던 황신이 갑자기 귀를 쫑긋거렸다.
“운연이가 몰래 나가는 모양인데 따라가 볼까요?”
“됐어. 놔두고 술이나 마셔.”
“괜찮을까요?”
“…….”
우려 섞인 말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당연히 괜찮지.
손오공이 구름 타고 날아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고, 운연이 도망쳐 봐야 황신의 귓속이다.
“범 몰이 해 봤냐?”
“범요?”
“그래.”
“무슨 말씀이신지?”
“원래 범이라는 놈을 몰 때는 사방을 포위하기만 해서는 안 돼. 자칫 죽자고 덤벼들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진단 말이야. 해서 언제나 도망칠 길을 열어 두지. 더도 덜도 말고 딱 숨 쉴 만큼만.”
“……흐음.”
“조였다 싶으면 풀고, 풀었다 싶으면 조이는 거야. 그러기를 반복하면 결국 제풀에 지쳐서 나중엔 포기하게 되거든. 아주 쉽게 잡을 수 있게 되지.”
“……아! 욕금고종(欲擒故縱)의 계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곁에서 듣고 있던 각출이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고, 소동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욕금고종.
삼십육계의 하나로 적이 최후의 저항을 결심하지 못하도록 완전한 궁지로 몰지 않으면서 서서히 적을 옭아매는 방법이다.
대어를 낚기 위해 지칠 만할 때 풀어 주고, 다시 잡고를 반복하는 방법이랄까?
“욕금이 뭐?”
“예?”
“거지 주제에 뭔 헛소리를 어려운 말로 해?”
“…….”
“내가 말한 건 과거에 나와 사패오왕이 썼던 범 몰이 전술이야.”
“…….”
“뭐, 녀석이야 범은커녕 고양이도 못 될 놈이지만, 수련을 시킨답시고 너무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안 돼. 되레 역효과만 생기지. 가끔 일탈을 즐기게 둬야지. 그래야 희망이라는 게 있다고 착각하거든.”
진무의 웃음에 각출이 입을 삐죽거렸다.
그게 욕금고종인데…….
“신아.”
“예, 천주님.”
“그냥 듣고만 있어. 혹시나 쓸데없는 짓 하면 그때 나서자고.”
“알겠습니다.”
“자, 다들 술이나 받아. 생각보다 술맛이 좋다.”
“예. 천주님.”
진무의 권주에 황신과 아이들이 모처럼 제대로 된 음식과 술에 흠뻑 젖어 들어갔다.
물론 그사이에도 황신의 귀는 운연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진무의 말대로 참으로 희망차게 움직이는 운연의 발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불쌍한 놈. 열심히 뛰어도 지가 벼룩인 줄 모르는 놈.
곧 알게 되겠지.
지금의 그 희망마저 꽉꽉 짓밟아 절망으로 뒤바꿀 인간이 바로 개천주라는 사실을…….
* * *
진무 일행이 술독에 빠져 있는 동안 은밀하게 빠져나와 어둠에 숨은 운연이 불안한 시선으로 객점을 노려보았다.
……다행히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기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다.
염병할 놈들…….
기억 상실 연기는 처참히 실패하였으나, 이것만큼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각오를 다지며 천천히 심호흡하던 그가 문득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젠장, 따가워.
아까 최선을 다해 코 고는 척을 했더니 콧속 점막이 상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놈들이 나간 뒤, 침상에서 남몰래 체력을 회복하며 오랫동안 고민했다.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 것인가?
무당, 도사, 천하제일, 그리고 죽여야 할 자들로 가득 채웠던 살생부…….
결론은 정말 빠르게 나왔다.
황신과 아이들? 어쩌면 닿을지도 모른다.
미친 듯이 수련하면 각개 격파로 한 놈씩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당?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무당지검 청상은 조금 힘들겠지만,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비열한 방법을 조금 가미한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무는 아니다.
직접 겪어 보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새낀 인간이 아니다.
그가 걸었던 길을 따라서 무공을 익히고 양의로써 강해져 그를 죽여?
턱도 없는 소리. 수련받다가 대성하기도 전에 맞아 죽을 것이 틀림없다.
복수? 천하제일?
그냥…… 하지 말자.
그딴 게 목숨보다 소중할 리 없지 않은가.
이대로 도망쳐서 신분을 감추고 살자.
어차피 지금도 어디 멀리 떨어진 시골구석에 가서 문파 하나 만들고 살 실력은 된다.
천하는 아니어도 그 안에서 제일인이 되어 떵떵거리고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
그래, 어차피 미련도 없었다. 부모나 동족들의 복수 따윈 애초에 할 생각도 없었고…….
도망가자.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아까 오는 길에 봐 둔 포목점에 가서 대충 맞는 옷 아무거나 주워 입고, 곧장 튀는 거다.
“…….”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일생일대의 결심을 내린 운연이 객점을 아련히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안녕, 천하야.
그동안 즐거……업긴 씨발!
내 다신 오나 봐라!
평생 무당 쪽으로는 오줌도 싸지 않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