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32
2화
“……!”
진무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노인과 청무를 번갈아 쳐다봤다.
청상……이라고? 저 다 늙어 빠진 노인네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청무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상 맞단다.
이놈이, 이놈이 결국 등선했구나! 연달아 등선해서 무당지검의 이름을 드높인 게야!
상선의 경지에 오른 이후로 웬만한 일에는 동요도 하지 않았던 감정이 마구 들끓는다. 그리운 기억들이 알알이 차올라 시야를 가릴 때쯤이었다.
“이보게, 진무.”
“……예?”
“그리움에 사무쳐 몸부림치는 것도 좋은데, 놔두면 또 죽네.”
청무의 잔잔한 웃음에 진무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죽은 놈이 죽기야 하겠는가? 저 정도로 소멸하면 신선이 아니지. 하나…… 입과 코로 마구 들이치는 중수가 퍽 고통스럽긴 할 것이다.
팍!
진무가 곧바로 정자의 난간을 밟고 날아, 물 위로 달렸다.
“청상아!”
“오고로로로, 수아수우욱, 크르륵, 컥컥.”
과거에 청산~ 하면 대답부터 하던 놈이라 그런지 물을 처먹으면서도 꾸역꾸역 답을 해 온다.
이놈아, 입 닫아라. 그러다 니가 중수 다 처먹겠다.
수면 위를 날 듯이 달린 진무가 허우적거리는 청상을 단번에 뽑아내 부둥켜안았다.
“청상아, 이놈아! 어헛헛헛!”
“……수아수욱.”
“그래, 그래! 나도 반갑다! 나도 반가워!”
진무가 마치 이 자리에서 회포를 다 풀어 버리겠다는 듯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자, 가만히 있던 청상이 버둥거렸다.
“슴 마켜요…… 수아수욱.”
“…….”
아, 미안. 너무 반가워서 힘이 과했네.
“오냐, 가자 이놈아! 상춘정에 올라 그간에 어찌 살았는지 들어 보자꾸나.”
“눼.”
진무는 청상의 손을 단단히 잡고 상춘정으로 돌아왔다.
“허헉, 허헉.”
그리고 곧장 선기를 운용해 주저앉아 숨을 내쉬는 청상의 흠뻑 젖은 옷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말려 줬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 진무가 싱글벙글 웃으며 한 잔 가득 신선주를 채워 주자 청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분들은?”
“아, 풍환 어른은 알 테고……. 이쪽 분은 들어는 봤지? 청무라고.”
“청…… 허억! 청무 조사님이시란 말입니까?”
“어.”
진무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진 청상이 예를 갖췄다.
“무당의 청상이 조사님을 뵙습니다!”
“허허, 그래, 그래. 후학을 보니 기분이 좋구나.”
청무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청상이 황송하다는 듯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곤 선휘에게 시선을 옮겼다.
“하면 이분께서도?”
“…….”
모두가 난감한 표정으로 청상과 선휘를 번갈아봤다.
그러니까 이거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아, 걔는…… 어, 나랄까?”
“예?”
“그게 내가 걔고, 걔가 나이기도 하고, 그 뭐시냐…… 에이 씨, 됐어. 괜히 복잡하네. 그나저나 그간에 어찌 지냈어?”
“아, 별 탈 없었습니다. 사숙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뒤로 내내 평안하여 오히려 심심하였습니다.”
“다행이구나. 잘 지냈다 하니.”
진무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청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등선하는 법을 찾아 헤매시더니, 진짜로 등선을 하셨는진 몰랐습니다.”
하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청상은 알 길 없으나 그의 삶이 오롯이 진무로서 존재했다면 모르되, 혁련무강의 삶이 더해져 있지 않았던가?
쌓아 온 업이 한둘이 아니었고, 천계에서 쌓은 업 또한 적지 않아 지계에 떨어져 징벌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으니…….
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진무는 그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너도 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등선하는 법은 무슨. 그냥 갑자기 왔다, 갑자기.”
“갑자기요?”
“그래. 아주 개 끌려오듯이. 아오! 지금 생각해도 또 열 받네. 겨우 세상에 적응 좀 해 보나 했더니만.”
진무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대놓고 청무를 째려보자, 그가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허, 이 사람. 만 년이나 지난 일에 아직도 앙금이 남은 겐가?”
만 년째 반복되는 모습에 풍환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이라니요? 요즘도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제가.”
“거, 사람 참. 이미 상선의 경지까지 올랐으면서 어찌 그리 성격이 안 변하는 겐가?”
“변하면 죽어요.”
“이미 죽었지 않은가?”
“그야…….”
“그쯤 하게, 내 그때 자네를 말리던 것을 생각하면…… 후우, 얼마 전에 선별관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분도 자네만 생각하면 여전히 식은땀이 난다더구먼.”
“쯧, 그 자식은 그래도 돼요. 앞으로 만 년쯤 더 그랬으면 좋겠네.”
“원 사람도, 선별관님께 그 자식이라니……. 자, 술이나 받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진무를 향해 풍환이 웃으며 잔을 채워 주는데,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청상이 뭔가 의아했는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물었다.
“저기, 사숙?”
“응? 왜, 뭐 물어볼 게 있는 게냐?”
“그게, 이해가 안 돼서요.”
“……?”
“등선하신 지 만 년이나 되셨다는 것이…… 무슨?”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다른 뜻이 있겠어?”
“예?”
“등선한 지 만 년 됐다.”
“……예에?”
청상이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휘둥그레 뜬 눈을 끔벅거린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처음엔 자신도 그랬으니까.
“상아.”
“예에?”
“지나면 자연스레 알겠지만, 천계와 하계의 시간의 흐름은 다르다.”
“…….”
“빨리 흐르기도 하고, 늦게 흐르기도 하지. 네가 늙는 동안 천계의 시간은 만 년이 흐른 게야.”
“아…… 그, 그럴 수도 있군요?”
“그래. 뭐,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지. 우리가 지금 술을 나누는 짧은 시간에도 하계의 시간이 빨리 흘러 버릴 때가 있으니까.”
“예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은 하고 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납득할 테니 굳이 부연 설명은 안 해도 되겠지.
진무는 어깨를 으쓱하며 쭉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한데 니가 가장 먼저 죽은 게야?”
“아닙니다. 청우는 한참 전에 먼저 갔습니다.”
“청우가?”
“예.”
“너보다 어리지 않았더냐?”
“사숙도 아시지 않습니까? 먹을 것을 하도 좋아하다 보니 쉰도 안 되어 소갈(消渴: 당뇨)에 합병증까지 와서 고생하다가 그만…….”
“아!”
뒷말을 흐렸음에도 충분히 이해됐다.
아, 청우. 불쌍한 녀석.
풀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을 가진 놈이, 고기 맛을 본 뒤로는 가히 물 만난 물고기와 같지 않았던가?
당시 고기를 무제한으로 주던 해월각에서도 손에 꼽히던 부압피(孚狎彼: 미쁘고 익숙한 그이)였는데, 그 뒤로도 얼마나 처먹었을는지.
무릇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거늘, 결국 식탐이 화를 불렀구나. 그럴 줄 알았으면 고기를 가르치지 말 것을, 그냥 평생 풀이나 뜯고 살게 둘 것을…….
그런데 잠시만, 근데 왜 먼저 죽은 청우가 왔다는 소식은 없었지?
진무가 고개를 돌려서 청무를 바라봤다.
“혹, 청우는 안 왔습니까?”
“글쎄, 사계산으로는 오지 않았는데?”
“흠…….”
그 말인즉, 등선을 못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순박하고 우직하기만 한 그놈이 선행보다 죄업이 많을 리는 없으니 지계로 가진 않았을 터. 등선은 못 했어도, 필시 천계로 온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인 천시원(天市垣)에는 갔을 것이다.
뒤늦게 부고장을 받은 셈이지만, 이제라도 찾아보면 만날 수는 있겠지.
“다른 이들은?”
“다들 먼저 갔습니다. 세월이 얼만데요.”
청상이 잔잔히 말하며 빙그레 웃자 진무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결국 다들 죽었구나.
녀석들, 뭐가 그리 급해서…… 별 탈 없는 세상 즐기며 오래 좀 살지 않고.
진무가 안타까워하는데, 청상이 말을 이었다.
“사숙께서 기억하는 인물 중에 살아 있는 이는 운연이 유일합니다.”
“운연? 야율이 그 녀석 말이냐?”
“예.”
“…….”
잠깐만, 이거 좀 이상한데? 전염병이 걸려서 다들 일찍 뒈진 것도 아닐 텐데……. 운연 빼고 싹 다 청상보다 먼저 뒈졌다고?
“……너 몇 살인데?”
“올해로 백육십 먹었습니다. 무당의 역사상 최장수한 도사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허허.”
“…….”
젊고 낭랑하던 청상이 노인네처럼 웃는 것이 익숙지 않…… 어? 잠깐만 뭐? 몇 살?
“배, 백육십? 그렇게 장수를 했어? 그럼 운공, 그 영감보다 더 살았다는 거야?”
“예.”
“…….”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혁련무강 때 팔십, 진무로 산 게 채 십 년도 안 되는데 저놈은 백육십 년을 살았어?
그럼 운연이 그놈마저도 백오십 언저리까지 살고 있다는 거 아냐?
“이런 쌍!”
진무가 목이 꺾일 듯 고개를 확 돌리자, 동시에 청무가 같은 속도로 시선을 회피했다.
“이 영감탱이가 진짜! 고개 안 돌려? 들었지? 백육십이래! 백육십! 어!?”
“…….”
진무의 눈이 희번덕거리자 청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평소 그의 불같은 성격을 알고 있는 풍환이 재빨리 진무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이 사람, 또 이러는군. 그만하게, 제발. 장춘곡주께서 난감해하시지 않는가?”
“이거 놔요! 이런 쌍! 아니, 내가 몇 년 더 사는 게 그렇게 아니꼬웠나? 어? 아무리 찰나가 만 년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백 년 정도는 살게 해 줬어야지! 어!?”
“지, 진정하게! 청상이 등선한 좋은 자리에서 어찌 이러시는가?”
“이, 이……!”
진무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칠게 몸부림치자 상 위에 있던 그의 잔이 위태롭게 흔들리다 곧 넘어졌다.
그러자 사건의 공범이었던 선휘가 재빨리 넘어진 잔을 가져가 채웠다.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손을 심하게 떠는 통에 넘친 술이 잔을 타고 줄줄 흘렀다.
“자, 한 잔 쭉 들이켜게. 장춘곡주께서 특별히 담가 둔 신선주라네. 자네를 주려고 꽃이 가장 예쁘게 피었을 때 담가서 천 년이나 묵혔던 거라지 아마? 자, 자 어서 마시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듬뿍 담겼을 게야.”
“…….”
겨우 참았다.
천 년? 그까짓 거 뭐가 대수라고. 이거 청상 때문에 참아 주는 거야. 오늘은 녀석이 등선한 기념비적인 날이니까.
두고 봐, 나중에 꼭 복수할 거야.
“후우, 후우…….”
숨을 고른 진무가 넘쳐 버린 술잔을 들고 입에 단번에 털어 넣었다.
청량한 느낌이 입 안에 가득 찼다가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들끓었던 화가 절로 가라앉는 느낌…… 역시 신선주는 진린가?
몇 잔의 술을 더 마시고 나서야 겨우 진정한 진무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자, 너도 마셔라. 내일부터는 내 직접 사계산에 머물면서 이것저것 알려 줄 터이니, 오늘은 진탕 한번 취해 보자꾸나.”
“예, 사숙!”
청상과 진무는 주거니 받거니 신선주를 비워 냈다.
청무는 자신의 먼 후학들을 위해 열심히 새 술을 가져다 날랐고, 선휘는 접시가 빌 때마다 안주를 담아 올렸다. 물론, 풍환은 혹시나 진무가 또 발작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좌불안석이었다.
즐겁게 술잔을 비우던 중, 진무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청상보다 먼저 온 나머지는 어디에 있으려나.
자신은 특채나 다름없으니 빼고, 청상은 등선했으며, 청우는 천시원에 있다고 쳐도 나머지는 대부분 살업(殺業)으로 살아온 사파의 무인들인데…….
설마, 죽어서 구천을 떠돌고 있거나 지계로 간 것은 아니겠지?
찾아봐야겠다. 다들 죽었다면 필시 그 혼이 어디론가 향했을 것인데…….
젠장, 그간 상제 한번 돼 보려고 수련만 하느라 너무 무심했던 모양이다.
이참에 스승님도, 다른 이들도 전부 찾아보자. 천계와 지계의 경계가 명확해서 직접 알아볼 수는 없으나, 때마침 적임자가 하나 있지 않은가?
“한빙곡주님.”
“어어?”
진무가 술 취한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부르자, 풍환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대답했다.
“그 인간 어디 있는지 아시죠?”
“누, 누구?”
“선별관이요.”
“…….”
인간이 아니고 신선인데……. 근데 왜 물어보지? 진무, 이 망할 놈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만 년 전 그때는 어찌어찌 잘 넘어갔지만, 이번에도 사고 치면 정말 큰일 난다. 아무리 상선에 이르러 북방칠수의 우두머리인 두장군이 되었다고 해도 옥황께서 가만둘 리가 없다.
“모, 몰라. 허허, 허허허.”
“…….”
풍환이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때우자, 진무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어허, 어디서 거짓부렁을……. 눈빛이 다 아는 눈빛이구만.”
“하하, 이, 이 사람아. 진짜 몰라.”
쾅!
진무가 주먹으로 술상을 거칠게 때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제 성질 아시죠?”
“…….”
말에서 그치지 않고 양손에 힘을 주며 상체를 슬쩍 기울이는 진무의 모습에 청무, 선휘, 풍환의 안색이 동시에 희게 질렸다.
“정말 몰라요?”
“모, 몰라아. 나도 요샌 바빠서…….”
“아닌데? 아는 거 같은데?”
“모른다니까아?”
“그럼 연락은 되시죠?”
“연락? 에이, 안 되지. 고작 한빙곡주인 내가 선별관님같이 높은 분과 어찌 연락을 주고받아?”
“…….”
평생 도사로 살아와서 거짓말도 잘 못 하는 노인네가 지금 그걸 연기라고 하는 건가?
“후회 안 하실 거죠?”
“그, 그러엄. 정말 모르는데 무슨 후회를 해?”
“아, 그래요오?”
진무가 입술을 쭉 찢어서 말아 올리자 새하얀 송곳니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라이!”
와장창창!
높이 솟구친 상,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풍환, 그리고 그 틈을 타 재빨리 도주하려다 진무의 손에 머리채를 잡힌 청무와 선휘…….
진무는 기세등등하게 으르렁거렸다.
“이런 쌍! 언제까지 모르나 두고 봅시다! 내가 아주 옥황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잡아야 어떤 인간인지 아시겠어? 어!?”
“자넨 인간이 아니라 신선…….”
“닥쳐!”
한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날뛰기 시작하는 진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청상은 피식 웃었다.
“사숙은 등선해도 그냥 사숙이구나…….”
그걸로 자신의 등선 축하 잔치는 끝나 버렸지만, 어쩐지 기분은 좋았다.
백육십 년을 살며 잊었던 스무 살 남짓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가 즐거웠던 그때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