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37
7화
은천을 인질로 삼은 진무와 동참한 백양, 아직 등선 딱지도 채 떼지 못한 청상. 그들과 신군병들의 대치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사견이 협상을 위해 요구 사항을 들어주겠다 구슬려도 소용없었다. 진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명진과 청우의 등선.
처참하게 두들겨 팬 불쌍한 은천을 들어 내보이는 것도 모자라 천시원을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으니,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런 미친놈이! 기껏 보패도 내주고 안내까지 붙여 주라 했더니만!”
“아니, 저놈이 왜 또 선별관님을…….”
“허어……. 불안 불안 하더라니.”
소식을 듣고 뒤늦게 도착한 보화와 풍환, 그리고 청무는 인근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아무리 신선이 되어 속세와 연이 끊어졌다고는 하지만, 보화와 청무 모두 무당 출신이다.
사문의 이름에 똥칠을 해도 유분수지. 잘못하다가는 다시는 무당 도사들이 등선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똥줄이 탔다.
풍환 또한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진무의 손에 모가지가 잡혀 있는 선별관 은천을 보낸 것이 누구이던가? 바로 자신이다.
안 그래도 오지 않겠다는 은천에게 성질머리가 전과 같지 않다 사정하며 설득했건만……. 영원불멸에 가까운 삶을 보장받은 신선임에도 저 미친놈 때문에 제명에 못 죽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지켜보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진무가 일으킨 소란이 단숨에 천계 전역으로 퍼져 나간 탓에 특별한 일이 없는 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콰르르릉!
천계를 뒤흔드는 우레와 함께 칠성신군이 나타나고, 그 뒤로 여덟 필의 천마(天馬)가 이끄는 마차가 빛을 뿌리며 천시원으로 들어섰다.
그저 등장만으로 모두를 침묵한 채 바라보게 만드는 그 위용에 운집했던 신선들이 약속이나 한 듯 양쪽으로 갈라져 바닥에 엎드리고, 그들의 배알(拜謁)을 받은 말들이 머리를 꼿꼿이 들고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진무의 앞쪽에 다가와 멈췄다.
“이놈! 뭘 하느냐! 천황거(天皇車)가 눈에 보이지도 않더냐! 서둘러 엎드려 예를 표하라!”
마차를 호위하던 칠성신군이 말에서 내려 고개를 빳빳이 든 진무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진무는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눈깔이 삐셨나? 이 마당에 예를 찾고 있어?”
“뭐라? 이놈이!”
“어쭈? 해보려고? 확 꺾어 버린다?”
“……!”
진무가 입술 새로 송곳니를 슬쩍 드러내며 손에 힘을 주자, 은천의 목이 당장에 부러질 듯 꺾였다. 화들짝 놀란 칠성신군이 손을 마구 저었다.
“자, 잠깐만! 이놈아! 멈추거라! 어찌 이리 성급해! 정녕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참이냐!”
“뭐래. 벌써 건넌 지 오래야.”
“…….”
“은천이 뒈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지?”
“…….”
진무의 위협에 칠성신군이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쭈그러진 표정으로 냉큼 한 발을 물리다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곤 헛기침을 해 댔다.
“쯧쯧, 그만 비키게. 그리 심약해서야 원…….”
“죄, 죄송합니다.”
마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옥황의 짜증에 칠성신군이 머쓱한 표정으로 허리를 숙였다.
“문을 열거라.”
명이 떨어지자 선녀들이 고운 손으로 마차를 열고, 옥황이 드디어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짢음이 역력한 표정이었음에도 세상이 이전보다 환하게 밝아진 듯한 느낌이었다.
사뿐히 바닥을 밟고 내려선 옥황이 뒷짐을 진 채 턱을 살짝 치켜들어 진무를 바라봤다.
차르륵.
면류관에 달린 칠보 주렴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신선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물론 진무와 그 일행에게는 달랐다.
“큭…….”
주렴의 소리에 귀가 찢어지는 것만 같다.
안 그래도 마차에 내려서는 순간부터 하늘이 짓누르는 것처럼 답답했는데, 이젠 숨을 쉬기도 벅찼다.
과연 신들의 황제.
상선의 경지에 오른 자신조차 그 무량한 힘 앞에 속수무책일진대, 다른 이들이 온전할 리 없었다. 눈을 부릅뜬 백양의 몸에 힘줄이 툭툭 불거지고, 신력이 아직 영글지 못한 청상은 아예 주저앉아 헐떡였다.
“두장군, 아니 진무야.”
“……옥황.”
“어허, 이놈. 전에도 그리 부르더니, 상제님이라는 말은 어찌 빼먹는단 말이냐?”
“크윽…….”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힘은 말로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난폭했다.
진무는 있는 힘을 다해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핑 돌아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지만, 사력을 다해 참았다. 이를 악물어도 모자란다면, 입술을 찢어서라도 버티리라.
“내 너와 둘의 인연을 들었다만, 하늘의 이치가 그러한 것을 어찌한단 말이냐? 그만 은천을 놓아주거라.”
“싫습니다.”
“싫다?”
“예. 제 요구 사항을 들어주시기 전엔 절대로 못 놓습니다.”
“호오? 그래?”
언짢은 기색이 가득하던 옥황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이긴 하였으나, 제법이었다. 처음 등선해 은천과의 사달을 만들었을 때는 자신의 힘 앞에 납작 엎드려 용조차 못 쓰더니…… 이제는 꽤 버티지 않는가?
이 정도면 상선이 아니라 상제급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거참, 언제 저리 성장했는지.
“이놈! 옥황상제님 말씀을 듣지 못하였느냐! 서둘러 손을 놓거라!”
“이런 쌍! 당신은 끼어들지 마!”
칠성신군의 불같은 호령에 진무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쓰으, 거참…….”
“죄, 죄송합니다.”
제 앞으로 나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옥황이 눈을 살짝 찌푸리자, 칠성신군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보게, 칠성신군.”
“예, 옥황상제님.”
“자네는 얼마나 버티겠는가?”
“예? 그게 무슨?”
“…….”
칠성신군의 반문에 옥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모르겠지. 칠성은 자신의 진정한 힘을 느껴 본 적이 없으니까.
지금 진무는 서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또한 칠성신군, 아니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진무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벌써 무릎을 꿇고 남았으리라.
신력?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진무라는 놈은 오직 강단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정신력이 그 육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옥황은 다시 진무를 바라봤다.
참으로 놀라운 놈이다. 남들은 몇만 년이 지나도 못 할 것을 고작 만 년 만에 이뤄 내고, 저리 바들바들 떨어 대면서도 악착같이 자신의 신력을 버티고 있다.
“흐음…….”
옥황의 마음속에 불쑥 변덕이 생겼다.
진무가 난동을 피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당장에 잡아다가 혼쭐을 낼 생각이었지만, 잠시 이야기를 들어 봐도 괜찮을 듯싶었다.
생각해 보니 써먹을 일도 있고…….
“진무야.”
“왜요!”
가공할 압박감에 손까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진무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쯤 하면 되었으니, 은천은 그만 괴롭히고 놓아주거라. 비록 너처럼 전투에 특화된 건 아니다만, 막중한 소임을 행하는 자다.”
“그렇다고 해도…… 절대로…….”
“허허, 이놈. 쓸데없는 고집이 아니냐? 지금의 너라면 내 당장에 은천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
“네 너의 말을 들어 볼 테니, 이쯤 하거라. 때론 물러남도 알아야지.”
부드럽기 그지없는 회유에, 진무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옥황이 나타난 이후부터 알고 있었다. 은천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조차 꼼짝할 수 없었으니까.
빌어먹을 옥황. 강해도 정도껏 강해야지…….
“어찌할 테냐? 내 정녕 너는 물론이고 보화, 청무, 풍환, 거기에 북방에 있는 네 수하들에게까지 죄를 물어야겠느냐?”
“…….”
진무는 핏발 선 눈으로 은근한 협박을 건네는 옥황을 노려봤다.
제기랄, 뭔 놈의 위협을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냐? 상선 쫄리게시리.
“……제 말.”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지.
“크흠, 등선에 대한 부탁…… 들어주실 겁니까?”
“글쎄, 대화는 나누어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그것만으로도 내게서 충분히 얻어 낸 것이 아니겠느냐?”
“…….”
옥황이 빙그레 웃었다.
진무는 그제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놓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손가락이 놓으려 마음먹는 순간 펴졌다. 퍽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저리가 날 정도로 강대한 힘이었다.
휘이익.
겨우 풀려난 은천이 바닥에 풀썩 떨어지려 하자, 옥황의 옆에 있던 선녀들이 날 듯이 다가와 그를 받았다.
“쯧, 많이도 상했구나.”
“끄읍, 끅…….”
옥황이 가만히 달래자 은천이 서럽다는 듯 울먹이며 신음했다.
“한숨 자면 나아질 게다.”
“…….”
스으으.
옥황의 손이 희뿌연 빛을 뿌리며 스치자, 은천이 금세 편안한 얼굴이 되어 잠들었다.
“모두 물러가라!”
“예!”
옷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서는 옥황의 목소리에 바닥에 납작 엎드렸던 선인들이 일제히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진무는 나를 따라오너라. 옆에 있는 그 초짜 신선 녀석도 함께.”
“…….”
씻을 수 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진무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대답하지 않자, 옥황이 슬며시 돌아봤다.
“……안 올래?”
“가, 가요! 갑니다!”
은근한 옥황의 눈빛에서 섬뜩함을 느낀 진무가 냉큼 대답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이보게, 칠성신군.”
“예, 옥황상제님.”
“자네 용마를 진무에게 내주게.”
“예? 하면 저는…….”
“허허허.”
“…….”
이렇다 할 대답 없이 그저 웃음만 남기곤 마차 문을 닫아 버린다. 칠성신군은 선녀들과 함께 훨훨 날아가는 천황거를 멍하니 바라봤다.
“후우, 하마터면 뒈질 뻔했네.”
“…….”
“뭐 해요? 말 줘요.”
“…….”
당차게 손을 쑥 내미는 진무의 뻔뻔함에 칠성신군의 이마에 힘줄이 툭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어쩌랴?
옥황의 명인데 까라면 까야지. 일개 천궁 호위 장군이 무슨 힘이 있다고…….
칠성신군은 제 말에 올라 훨훨 날아가는 진무와 청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빌어먹을 세상……. 빌어먹을…….
“하여간 대장님께선 늘 시끌벅적하시다니까?”
흐지부지된 소란에 양날 도끼를 거둔 백양이 칠성신군에게 다가왔다.
“신군께서도 고생이…… 엥? 우시는 겁니까?”
“누, 누가?! 울긴 왜 울어?”
“눈에 물 고였는데요?”
“이건…… 비일세! 비야!”
칠성신군이 뻑 내지른 소리에 백양이 하늘을 쳐다봤다.
어디? 맑은데?
* * *
천상궁의 정원.
“스승과 사질이라고?”
“예.”
반쯤 눕다시피 느슨하게 앉은 옥황의 물음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진무가 대답했다.
“천계의 삶을 포기할 정도였더냐?”
“제겐 그런 분입니다.”
“…….”
옥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하는 진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었다.
“미친 신선 놈 같으니……. 그래도 은천을 볼모로 한 것은 과했다.”
“과하긴 했지만, 효과는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이리 불러 사정을 들어 주시니.”
진무가 있는 대로 퉁퉁거리자, 옥황 주위의 선녀들이 재미있다는 듯 소매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하나, 귀천령의 운명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만물의 주인이신 분이잖습니까?”
“그래도 하늘의 이치까진 바꿀 순 없다. 다른 귀천령들과 형평성에서도 어긋나고……. 잘못하면 균형이 무너져.”
“…….”
그의 단언에 진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쌍, 그럼 왜 불렀어? 들어 준다길래 잔뜩 기대했구만!
“하나,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예?”
이어지는 옥황의 말에 구겨졌던 진무의 얼굴이 곧바로 쫙 펴졌다.
“귀천령들이 천계로 온 것은 공보다 과가 적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공은 천계에서, 과는 지계에서 관장하지.”
“그래서요?”
“만약 지계에 기록된 과가 지워지면 어찌 될까?”
“그럼 공이…… 헉!”
뭔가 떠올랐다는 듯 급히 숨을 들이켰던 진무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말이 쉽지.
과를 지우자면 지계로 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천계가 이십팔수를 둬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요괴들을 막듯, 지계도 그에 대한 방비를 튼튼히 하고 있다. 작정하고 전쟁을 할 참이 아니라면 그 방어를 뚫고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에 말이다, 내가 들여보내 주면 어찌하겠느냐?”
“……예? 그게 무슨?”
“갈래?”
순간 진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옥황이 싱긋 웃었다.
“일 하나만 해라. 그럼 보내 주마.”
“…….”
어, 어이, 옥황 씨. 그거 진심이야? 진짜로 보내 줄 거야? 지계에?
그런데…… 아까는 다른 귀천령들과 형평성 어쩌고 하며 균형이 무너진다고 하지 않았어?
……어째 심히 불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