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8
28화
지계 여섯 세계 중 최상층에 존재하는 도산옥의 아래, 박피옥(剝皮獄).
이름 그대로 껍질을 벗긴다. 이생의 말로는 산 채로 껍데기를…… 무서운 지계.
박피옥에 머무는 망자들의 죄는 불효(不孝)와 불충(不忠)이다.
열 달을 신음하여 낳은 부모를 잘 모시기는커녕 도리어 그 은혜를 저버린 채 죄악을 범하고, 신의로 맺은 인연을 헌신짝처럼 버린 놈들이니 껍데기가 벗겨져도 당연하다 해야 하나?
음…….
도산옥에서도 느꼈지만, 천계로 가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곳으로 왔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버려졌으니 불효는 둘째 치고, 불충으로 따지면 진무, 아니 혁련무강을 따를 자가 없다.
건실한 사파인들의 덕목이 무엇이던가. 바로 불충과 배신이다.
형님 등에 칼 꽂고 그 자리에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소싯적에 등짝 뚫은 놈들만 몇 수레는 될 테다.
만약 진무의 몸으로 환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껍데기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지 진무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을 떨칠 때였다.
“응? 천주님?”
“……?”
“어디선가 물소리가…….”
진무가 몹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황신이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휙휙 돌렸다.
“물?”
황신의 말에 진무와 청상이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이는 것은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대사충들이 사는…….
하지만 황신이 잘못 들었을 리는 없다. 그의 능력이 무엇인가. 바로 뭇짐승들이 형님, 하고 고개를 숙일 정도로 발달한 청력이다.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무나 청상과는 달리 이생으로서는 놀람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물소리를 들었다고?”
“왜?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냐, 이 새끼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귀모의 눈깔 사건 이후로 유독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구는 황신의 모습에 이생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실은 물이 있긴 있습니다.”
“응? 물이 있다고?”
“예.”
“……?”
의아해하는 진무의 물음에 이생이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실은 교마 님께서 다스리는 박피옥이 거대한 염수호의 중앙에 있습니다.”
“아, 그래?”
“예. 껍데기를 벗긴 망자들을 소금물에 담가 고통을 더해 주기 위해서지요.”
“아!”
이생의 말에 진무와 청상, 황신까지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나 잔인한 지계 놈들. 상처에 소금물이 닿으면 얼마나 따가운데…….
“염도가 이승의 바닷물보다 수십 배는 더하고, 물속에는 살점을 뜯어먹는 작은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박피옥의 망자들이 도망갈 수 없는 이유지요.”
“아, 검수림처럼?”
“예.”
“그렇군. 그럼 교마의 권능은 물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겠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신분이 미천한지라…….”
“됐어, 그 정도 설명이면 충분해.”
이생이 송구해하자 진무가 고개를 저었다.
“저, 한데 지금 황신이 그 물소리를 들었다는 게…….”
“그게 왜?”
“그게 왜라니요? 아무리 거리에는 의미가 없다곤 하나, 족히 수만 리는 될 것입니다. 그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물소리를 듣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둘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듣고만 있던 황신이 또 발끈했다.
“이 새끼, 내 말을 거짓말로 생각한 거 맞네!”
“아니, 그게 아니라! 놀라서! 놀라서 묻는 걸세!”
눈을 부라리는 황신의 모습에 이생이 다급히 진무의 뒤로 숨었다.
“이생.”
“……예?”
“의심하지 마. 신이가 들었으면 들은 거야.”
“예?”
“그런 거라고.”
“아, 예…….”
“그리고 앞으로 일행들을 의심하는 말 따윈 하지 마라.”
“……?”
“적어도 우린, 동료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너에게도.”
“……!”
진무의 말에 이생이 눈을 끔벅이다가 금세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예! 진무 님!”
“좋아.”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너그럽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 진무가 황량한 사막을 보곤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협비가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 설명하길래 계단식으로 나눠진 공간이라 여겼는데, 이생의 말을 들어 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하긴 그러한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 천계와 지계인 것을.
어쨌든 수만 리라면 제법 먼 거리다.
권능이 이어진 귀모의 거처 포궁이라면 몰라도, 다른 계로 가기 위해선 협비도 탈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마저도 한 달 가까이 가야 한다니 걸어서 가면 얼마나 걸릴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박피옥까지 타고 갈 것을 준비해 주겠다던 협비의 말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그걸 타고 가면 좋기야 하겠지만 왠지 귀모에게 계속 감시당할 것만 같은 느낌도 있었고…….
“신!”
“예?”
“물소리, 어느 쪽에서 들렸냐?”
“아, 그러니까…….”
진무의 물음에 황신이 다시 정신을 집중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저쪽입니다. 분명합니다.”
황신이 사막 한 곳을 향해 손가락을 쭉 뻗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이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향만 안다고 되는 일인가? 무려 수만 리 길을 어찌 걸어서 가려고?
아무리 지계에 속한 것들이 무한한 삶을 부여받는다곤 하지만, 왠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날 것만 같았다.
“저기, 진무 님?”
“응?”
“지금이라도 협비에게 돌아가 타고 갈 것을 달라고 하시는 것이…….”
“타고 갈 것이라면 이미 있는데?”
“예? 어디…….”
“저기.”
“……?”
이생은 진무의 손가락질을 따라 멀뚱히 시선을 돌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막뿐이다. 대체 저곳에 뭐가…… 어?
순간 진무가 뭘 말하는 건지 알 것도 같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무 님.”
“왜?”
“저…… 혹시 그 탈것이라는 게…… 대사충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뉘게찌요오?”
“맞는데?”
“…….”
제발 아니라 말하길 빌며 희한한 말투로 물었지만 진무는 여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생은 그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맞다고? 정말 그걸 생각했다고?
대사충은 도망친 망자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지 탈것이 아니라고, 이 미친 천계 놈아!
“너…… 내 욕했지?”
“예? 제, 제가요?”
“어, 조금 전에 날 보던 눈빛이 몹시 거슬리던데?”
“……!”
진무의 눈매가 게슴츠레해지자 이생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하지만 이 순간 진짜 무서운 것은 진무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며 엄지로 목 긋는 시늉을 하는 자칭 개인 호위 황신 놈이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욕이라고는 모르고 살았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구요!”
“놀고 있네, 악행을 저질러서 지계에 온 놈 주제에……. 앞으로 눈깔 조심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진무의 으름장에 이생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욕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감히 생각으로도 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황당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무시무시한 대사충을 타고 갈 생각을 하시다니…….
이럴 거면 그냥 협비가 탈 것 준다고 했을 때 받지, 왜 거절해서 날 이리 개고생을 시키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순 없었다. 이생은 진무를 설득하기 위해 다시 말을 붙였다.
“진무 님.”
“왜 자꾸 불러?”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대사충이라니요? 그놈들이 얼마나 포악…… 아니, 말을 안 듣는 놈인 걸…… 음…….”
“뭐야? 뭔 말을 자꾸 하다 말아?”
“……거듭 죄송합니다. 뭔가 제가 말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생이 말하다 멈출 만도 했다.
대사충이 포악하다고 하려 하니 진무에게 처맞는 것을 보았고, 말을 안 듣는다 하려니 진무에게 처맞고 꺼지라는 말에 도망친 것도 보지 않았던가?
염병, 대체 뭘로 설득을 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이생이 번뜩 든 생각에 눈을 부릅떴다.
그래, 이거면 된다. 이거면 아무리 진무라고 해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대사충을 어찌 부르려고 하십니까? 타는 건 둘째 치고, 놈들을 부를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 그거?”
“……응? 방법이 있으셨나요?”
“어.”
“……?”
설마 그런 것까지 생각했을 줄은 몰랐던 이생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지던 그때, 갑자기 진무가 여의를 소환했다.
“응? 갑자기 법구는 왜?”
“지금부터 대사충을 부르려고.”
“예?”
이생의 멍한 질문에 진무는 그저 히죽 웃기만 했다.
“대체 뭘 하시려고?”
“뭐긴? 낚시지.”
“……낚시요?”
“어! 그럼 수고 좀 해라.”
“……?”
미리 격려해 주는 말에 이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진무가 자신의 등 어림에 여의를 꽂아 넣자 번뜩 깨달은 바가 있어 눈을 부릅떴다.
“진무 님, 대체 왜 이러시는?”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전생이나 천계에서 이쪽으론 취미를 두지 못해서 어떤가 하고.”
“아니 그게 무슨?”
이생이 다급하게 버둥거렸지만, 진무는 이미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떠올린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늘어나라, 여의.”
“늘어나긴 뭘 늘어…… 어? 어어? 으아아아아!”
되묻던 이생은 쭉 늘어나는 여의의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막이라는 바다 위로 쏜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슈아아아악!
“끄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이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게 낚시구나. 여의라는 낚싯대에 미끼를 걸고 대사충을 낚는…….
그런데 왜 미끼가 나냐! 나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황신이나 청상도 있는데에!
하지만 여의는 이미 한참을 늘어나 사막 위에서 멈춘 채였다. 이생은 어떻게든 땅에 발이 닿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닿으면 끝이다. 대사충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
“어쭈?”
하지만 정작 진무는 그의 행동에 언짢은 듯 눈썹을 휘며 여의를 꼼지락거렸다.
휘익, 휘익.
여의가 진무의 손길에 휘어질 때마다 이생의 등이 땅바닥에 닿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 마! 하지 마, 이 개$*^$$#$$^%#$%$야!”
……아무래도 진무 일행과 함께하는 동안에는 욕설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생은 자신이 아는 모든 욕설을 퍼부었다.
황신 놈이 고리눈을 뜨고 노려보고 있는 게 여기서도 보였지만!
뭐, 어쩌라고! 니가 대사충을 알아? 이 귀만 밝은 새끼야! 나 지금 또 뒈지게 생겼다고!
그리고 진무 이 빌어먹을 놈! 어디서 못된 짓거리만 배워서는……. 저런 놈이 어찌 천계인이란 말인가? 누구보다 지계에 어울릴 놈 아니냔 말이다.
쿠우우우.
“……!”
들린다. 대사충이 미친 듯이 땅속을 기어 오는 소리가.
자, 이제…… 응?
니들 뭐 하냐?
땅속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기겁한 이생이 황급히 진무 일행을 쳐다봤다.
아니, 이만하면 미끼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거 아니야?
이봐들, 대사충이 곧 도착한다고. 나 안 구할 거야?
고래고래 욕설을 내지른 과거를 일방적으로 떨치고 한없이 아련하게 바라봤지만,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 아니 여의를 움직이려 꼼지락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툭, 투욱, 툭.
그리고 자신은 계속해서 땅바닥에 닿았다 떨어졌다 하며 미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이런 씨부랄! 내가 다신 네놈들을 믿나 봐라!”
쿠우우우!
-쿠아아아아!
이생이 여의에서 떨어지려 버둥거리는 순간, 모래 속을 헤치는 대사충의 울음이 땅을 뒤흔들었다.
“으아아아!”
이생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다 왔다. 대사충이 날 집어삼키려고 거의 다 왔다고!
“제가 할까요?”
“…….”
이생을 미끼로 던져 놓곤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중 청상이 묻자, 진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청상의 자충은 안 된다.
검수림도 모자라 협비의 권능이 만든 검우를 잘라 낸 것을 보면 대사충 따윈 단번에 회를 칠 텐데, 그럴 순 없지. 타고 가야 할 놈인데 죽여 버리면 쓰나?
이럴 땐 줘 패는 게 최고다. 전에 보니 대사충이라는 놈들 매는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았고…….
“내가 하마.”
“음, 알겠습니다.”
청상이 물러난 뒤, 진무는 여의에 매달린 이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 나설 때가 아니다. 더 기다려야 한다.
앞선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대사충이라는 놈은 제법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기운을 감응할 줄도 알았고……. 해서 이생을 던진 채 지켜보며 기다린 것이다. 자신을 느끼기라도 하면 다가오다 도망쳐 버릴까 봐서.
그러니 놈이 이생을 집어삼키려 하는 그 순간을 노려야 한다.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서 도망 못 가도록 만들고 난 다음, 태워 달라 설득(?)해야 했다.
-쿠아아아!
그리고 지금!
“끄아아악!”
모습을 드러내며 기겁하는 이생을 집어삼키기 위해 솟구쳐 올라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순간.
파악!
진무가 여의를 쳐들어 이생을 하늘 높이 날려 버림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쏘아져 나갔다.
첫 낚신데, 아주 월척이 걸렸네!
아, 그러고 보니 박피옥 주변이 호수라고 했지? 앞으로 이생을 종종 써먹어야겠다.
불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