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57
27화
뿌드득.
“이, 이런 빌어먹을 천계 놈이…… 뭐라? 얌생이?”
협비의 눈과 귀를 통해 모든 것을 지켜본 귀모는 이를 악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움켜쥐었던 팔걸이가 두부처럼 으깨져 버렸고,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에 포궁 전체가 뒤흔들리며 대지가 쩍쩍 갈라져 나갔다.
그녀의 분노로 인해 포궁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그 옆을 지키던 순조가 두려움에 질려 물었다.
늘 그랬듯 무언가를 살피는 데 집중하던 그녀가 어째서 별안간 화를 내는 것일까? 그리고 천계라니?
“귀모님, 어찌 그러십니까? 천계라니요?”
“…….”
순조의 물음에 이를 악물었던 귀모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신경 쓸 것 없으니 물러가거라.”
“예.”
애써 화를 삭인 귀모의 손짓에 순조가 말없이 뒤로 물러났다.
아니라 했으니 아닌 것이다. 반문은 순조에게 허락된 사항이 아니었다.
으드득.
귀모는 이를 거칠게 갈았다.
“이런 망할 자식이……. 보고 듣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따위로…….”
당장에 도산옥으로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한걸음. 내딛기만 하면 끝이다. 신수고 회유고, 진무 놈의 따귀를 후려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대관절 천계의 반대편인 지계를 다스리는 전지전능한 자신에게 얌생이라니? 그게 할 말인가?
와중에 선인이 대체 어디서 저따위 말투를 배워서는…….
“끄응.”
하지만 귀모는 다시금 치미는 분노를 애써 잠재웠다.
아직은 아니다. 귀모인 자신이 일단 고작 이런 일로 나선다는 것이 무척이나 체면 상하는 일이었고, 망할 옥황 영감이 진무에게 시킨 일이 무엇인지 예측만 할 뿐 정확히 알지 못하니까.
처음에는 그저 청화를 노렸을 것이라 여겼는데, 놈의 행보를 보니 그건 또 아닌 듯했다.
또한 도산옥주를 쓰러뜨렸으면 응당 그곳을 접수해야 마땅한데 그것도 아니다.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모인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놈은 절대로 도산옥에서 끝내지 않을 것이다.
고작 최상층이며, 협비는 마왕 중에서도 가장 약한 녀석이 아니던가?
“으냐, 으디 흔븐 늘띠어 브으라. 내 지그믄 츰으 주므.”
귀모가 이를 악문 채 중얼거리며 옆에 있던 청화를 힐끗 쳐다봤다.
화르륵.
귀불 청화, 축융의 잔재.
그래,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진무라는 놈은 필시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런 생각, 아니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그때까진 기다린다. 놈을 회유해 신수의 힘으로 청화에 담긴 태초의 기록을 되살려야 하는 일도 있으나, 자신의 계획에 이용당해야 하니까…….
귀모는 잠시 화가 나 끊었던 협비와의 공명을 다시 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자 도산옥이 보였다. 협비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그녀와 동화된 것이다.
그런데…… 뒷모습?
손까지 흔들어 주는 것을 보니 막 떠나고 있는 듯했다.
「협비.」
귀모가 이어진 정신을 통해 협비에게 생각을 전했다.
「……예? 아! 귀모님.」
「어디로 간다 하더냐?」
「도산옥과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냐 묻기에 박피옥이라 하였습니다. 아마 그곳으로…….」
「가까운 곳…….」
귀모는 그 말에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거리의 구애를 받지 않는 그들에게 가깝고 먼 것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어쨌든 박피옥이라면 도산옥의 바로 아래에 있는 곳이다. 불효와 불충을 저지른 망자들에게 부모에게 부여받은 육신의 껍질을 벗기고 머리칼을 뜯어내어 고통을 주는 곳이며, 교마가 옥주로 있는 곳이다.
「망할 놈, 지계가 무슨 관광지도 아니고…… 순서대로 유람을 하겠다는 뜻이지?」
「어찌할까요? 이미 저는 패한 신분인지라 진무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으나, 미리 교마에게 알려…….」
「그만두어라. 아무것도 알리지 말아라. 교마의 일은 교마에게 맡겨 두어야지. 다행히 옥주의 자리를 지켰으니 소임을 다하라.」
「……예.」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하는 협비의 태도에 귀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달라졌다. 권능의 구속으로 대답이 즉발로 나와야 함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무에게 패배한 뒤로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인가?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너무 화가 난 터라 감응이 끊어져 보고 듣지 못한 시간. 그 잠깐 사이에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가 궁금했다.
혹시 또 자신이 알아야 할 다른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협비.」
「예, 귀모님.」
「놈이 다른 말은 없었더냐?」
「다른 말이라 하시면…… 어떤?」
협비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감응하고 있었다면, 필시 모든 것을 보았을 텐데…….
하지만 귀모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였을 수도 있는 일이고, 물었으니 답해야 하는 것이 그의 소임이었다.
「어느 시점부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얌생이…… 뼈를 어쩌고…….」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열 받는지, 귀모가 말 사이를 끊어 가며 물었다.
「아, 그다음이…….」
「다음이?」
「생각으로 품는 것조차 불경스러운지라…… 차라리 듣지 못한 것으로 하시는 것이…….」
협비가 생각을 주저하자 귀모가 단호히 명했다.
「전하라.」
「……예, 하면…….」
잠시 말을 끊었던 협비가 이내 결심한 듯 생각으로 말을 전했다.
「진무가 말하길, 지계의 주인이라는 자가 몰래 남의 뒤나 캐는 헛짓거리를 한다며 투덜거리자…….」
「…….」
「총아, 아니 황신 놈이 변태 같은 년이 틀림없다며…….」
「…….」
「그러자 청상이라는 놈은…… 귀모님? 듣고 계신가요?」
「…….」
불충함을 알면서도 말을 이어 가던 협비가 순간 귀모의 생각이 전해지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렀다.
「저기, 귀모님?」
「…….」
하지만 더 이상 귀모의 생각이 머릿속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쿠르릉! 콰쾅! 꽈과광!
“크아아악! 이런 씨부랄 놈의 자식들이! 죽여 버리겠다!”
협비는 몰랐지만 귀모의 분노에 포궁이 박살이 났고, 그 안에 머물던 생명체들은 모조리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죽어야 했다.
물론, 소멸시키려는 힘이 아니었기에 불사의 몸을 가진 그들은 부활할 것이고 포궁은 원래의 모습으로 재생되겠지만, 고통의 순간은 똑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옥황 자식! 니놈이 감히 나한테 저딴 놈을 보내? 크아아악!”
진무가 아닌 옥황에게까지 이어진 귀모의 분노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 * *
후비적, 후비적.
“왜 그러십니까?”
진무가 얼굴을 찡그린 채 연신 귀를 후벼 대자 청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귀가 간지러워서.”
“귀가요?”
“어, 이런 건 또 뒈진 지 일만 년 만에 처음이네. 누가 뒤에서 내 욕이라도 하나?”
“욕이요? 대체 어떤 씨부랄 놈이 감히 천주님을 욕한단 말입니까? 제가 당장에 모가지를 비틀어 뽑고, 뜨신 물에 담가서 털이란 털은 모조리!”
황신이 불같이 욕하면서 휙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그 모양에 놀란 이생이 눈이 동그래져서 물러나며 진무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뭐야, 이 새끼? 너무 놀라니까 더 의심스러운데? 너지? 니가 우리 천주님 욕했지, 이 끄나풀 새끼야?”
“어허! 이 사람 총…… 아니 황신! 그 무슨 말인가? 내가 왜 진무 님을 욕해? 내 도산옥주 협비와의 싸움을 보고 난 뒤로 더욱 충성하기로 맹세한 괴일세! 그리고 끄나풀이라니!?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인가! 이미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진무 님께서 밝히지 않았는가!”
“닥쳐, 이 죄 많은 괴 놈아!”
“…….”
“어쨌든 니 몸에 붙어 있었던 거 맞잖아! 그리고 누가 니 맘대로 충성하래? 이 새끼가, 지계에 같이 있다고 우리가 너랑 같은 줄 알아? 내 이래 봬도 천주님을 도와서 세상을 구했어!”
비로소 입이 완전히 터진 황신의 욕설과 윽박에 이생이 울상을 지으며 진무를 힐끗거렸다.
도와달라고, 그리 처맞고도 신분을 위조했음을 밝히지 않은 자신의 충성을 알아달라고…….
“신아.”
“예, 천주님!”
“그만해라, 걔는 아니지 싶다.”
“예? 그럼? 누가 천주님 욕을?”
“있어, 그럴 만한 사람.”
“예?”
황신은 물론 청상과 이생까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진무는 빙긋 웃기만 했다.
자신을 욕할 사람은 당연히 귀모이다. 협비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을 테니까.
지계의 절대자씩이나 되는 분께서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것들에게서 변태에 얌생이 소리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열 받으셨겠는가?
“큭, 큭큭큭.”
“……?”
진무는 그저 킥킥거리며 웃기만 했다.
한데, 귀모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그저 내버려 두다니, 어쩌면 자신이 천계에서 왔음을 알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
이미 절대의 위치라는 것을 경험해 본 진무이다. 해서 그런 부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랫것들의 소란은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도가 지나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손쓰지 않는다.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위협해 온다 하여 수레가 화내는 법이 있던가? 슬쩍 밟고 지나가면 그만인데.
물론 무당이나 천계의 인물들과는 좀 다르다. 그들은 어떻게든 잘못된 점을 고치려 하고, 계도하여 바른 사람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귀모는 악인의 정점에 있다. 그러니 자신과 비슷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선만 넘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과 일행에게 손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지켜보겠지.
어쨌든 지금으로 봐선 황신의 욕설 정도는 참아 주실 만큼 넓은 아량을 가지신 모양이다. 또한 지켜보는 동안만큼의 시간을 벌었으니, 그사이에 강해지면 된다.
여의에 담긴 신수.
아직 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약하진 않다. 도산옥주 협비조차도 감히 막아서지 못했고, 놈의 몸에 스민 귀모의 권능까지 지워 버렸을 정도니까.
하니 귀모를 만나기 전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왕 얻었으니 완벽하게 사용해야 할 것 아닌가.
더해 한 가지.
어쩌면 자신의 몸에 스며 있는 신력과 마력을 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가능? 그딴 건 없다. 이미 한번 해 보지 않았나, 양의심공을 통해서.
인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계라는 것은 스스로든 누군가든 정했을 때나 생기는 것이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 아니던가?
남은 다섯 곳의 계. 그곳의 주인들과 만나 싸우면서 뼈를 깎는 수련을 통해 반드시 이루고 말리라.
어차피 하나씩 만나다 보면 애초 목표였던 사타를 만나 업경을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협비가 가장 약하다 했으니 남은 놈들은 아래로 갈수록 강해질 것이고, 그런 놈들과의 싸움은 얻는 것이 엄청날 것이다. 본시 몸으로 익히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강해지고 또 강해질 것이다. 그런 다음 정말로 자신이 들었을 때, 귀모를 만날 것이다.
그때는 뒤에서 욕하는 게 아니라, 면전에다 대고…….
“큭큭, 좋아! 서두르자!”
“예!”
진무가 호기롭게 외치며 교마가 있다는 박피옥을 향해 걸음을 내딛자, 남은 셋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이생, 너 앞으로 지켜본다. 천주님의 개인 호위이자 전령이었던! 내가! 알겠어?”
“……아, 알았네.”
물론, 그사이에도 황신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이생을 위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