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83
53화
후아악! 콰아앙!
금빛 서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박피옥이 터져 나가고 충격파에 휩쓸린 이들이 넝마처럼 찢어져 조각났다.
그런데도 교마로 보이는 놈은 없었다. 망할 놈이 어찌나 잘 숨었는지,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 한 올 안 보였다.
까드득.
두들겨도 두들겨도 교마의 꼬리조차 잡지 못한 진무가 짜증스럽게 이를 갈았다.
효율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그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이 이상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는 것은 쓸데없는 신력 낭비일 뿐이다.
적당히 난장판을 만든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작정하고 깨박살을 낸 수준인데…….
진무의 시선이 전장을 스윽 훑었다.
박피옥의 요와 괴, 귀.
“이 새끼들, 눈깔이 살아 있네, 살아 있어.”
잠시 끊겼던 공격이 투덜거리기 무섭게 이어졌다. 진무는 여의를 휘둘러 공격을 쳐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학을 뗄 지경이다.
여의가 뿜은 금빛 전격에 그리 많은 이들이 불태워진 채 소멸당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들의 눈동자에 두려움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필경 귀속된 것들의 이지를 제압해 통제하는 교마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죽인다는 생각만을 품은 채 몰려드는 것일 테지.
“후우, 교마에겐 천혜의 요새나 다름없네.”
문득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숨을 곳 천지다.
언제든 남의 거죽을 이용해 환형은 물론이고 기척까지 똑같이 따라 하는 놈에게 이만한 은신처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장이라는 놈이 한다는 짓이 겨우 수하들을 방패 삼아 숨는 것이라니. 이딴 게 육계의 한 곳을 다스리는 마왕이란 말인가?
“그래, 좋아. 끝까지 정면 승부를 피한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진무가 이를 악문 채, 힘껏 땅을 짓밟았다.
꾸우우웅!
동시에 펼쳐진 무릎과 함께, 그의 몸이 사방에서 밀려드는 공격을 피해 높이 솟구쳤다.
휘이이이…….
귓가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느끼며, 진무는 허공에 서서 차분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새끼들, 오밀조밀하게도 모여 있네. 뭔 놈의 죄인 밀집도가 이렇게나 높은지.
다시 인계 시절로 돌아간다면 사파 놈들에게 충효부터 다시 가르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저 중에 교마가 숨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기회를 엿보고 있겠지.
하지만 네놈이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 있는지 보자꾸나.
휘익.
여의를 허공에 둥둥 띄워 놓고 활짝 펼친 진무의 양손에 신력이 회오리치듯 몰려들었다.
“저 모두가 교마 네놈의 숨을 자리라면! 단 한 곳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켜 주마!”
우우우웅!
진무가 양손에 모여 터질 듯이 응축된 금빛 구슬을 힘차게 던졌다.
금빛 꼬리를 길게 내며 다투듯 나선을 이룬 두 개의 구슬이 빠르게 지계의 하늘을 꿰뚫었다.
콰우우우우!
대기가 꿰뚫린 곳을 향해 회오리 짓는 것과 동시에 진무의 뻗은 양손이 스산한 미소와 함께 내려졌다.
쌍룡투(雙龍鬪), 뢰격.
대규모 살상 능력을 가진 묵룡혼원공의 초식이 금빛 서기를 머금고 펼쳐졌다.
우르릉!
뇌성과 함께 보이는 박피옥의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고, 빛 덩어리가 이내 구름이 되어 벼락을 쏟아 냈다.
쾅! 콰쾅! 콰드득! 쾅!
직격한 벼락에 맞은 것들은 일순간 소멸해 버렸고, 폭발과 함께 전도된 뇌전 자락에 새카맣게 탄 것들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어차피 전부 죄 많은 놈들인데 뒈지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그들 틈에 숨은 교마다.
뒈질 위기에 처한 놈이라면 분명 다른 가죽으로 치환해 가며 도망치고 있을 것이다. 그 찰나의 순간을 찾아야만 했다.
“천주님!”
그 순간, 진무가 뿜어내는 신력의 범위를 피해 멀찍하게 물러나 있던 황신이 다급하게 외치며 달음질했다.
이승에서보다 훨씬 더 기민해진 황신의 청력이 교마가 거죽을 바꾸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진무의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시기적절하구나, 신아!
내가 미리 언질 주진 않았지만, 너라면 필시 찾을 줄 알았다.
퉁!
생각과 동시에 허공을 차 낸 진무의 신형이 쏟아지는 벼락보다 빠르게 쏘아졌다.
퓻!
날렵하게 뻗어 나간 황신의 비수에 목표가 되었던 귀 하나가 당황하며 고개를 꺾었다. 하지만 황신의 비수가 가진 빠름을 온전히 피해 내진 못했다.
찌이이익!
서둘러 벗어 낸 거죽이 길게 찢겨 나갔고…….
“이 빌어먹을 자식이!”
진무도 아니고, 고작 그 졸개 따위에게 정체를 들킨 것에 분노한 교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죽여 버리겠다!”
교마의 몸에서 가시처럼 돋아난 살기를 머금고, 세류가 그어졌다.
아무리 발이 빠른 황신이라고 해도 피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였고, 본신을 드러낸 마왕의 마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콰아아아아!
무시무시한 마력의 압력이 황신을 파도처럼 덮쳐 가던 그 순간, 금빛 섬광이 둘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었다.
쩌어어어엉!
상극의 기운을 가진 두 힘이 부딪치며 만들어 낸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꾸드드드득!
맞부딪친 중심에 신력과 마기가 선 그은 듯 경계를 나누었고, 그 후폭풍과 함께 대지가 양쪽으로 떠밀려 나갔다.
세류와 여의.
교차한 두 법구를 손에 든 진무와 교마가 팽팽하게 맞선 채 서로를 노려봤다.
“끄으윽…….”
“…….”
진무의 귓가에 황신의 신음이 들려왔다.
충격파에 휩쓸린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진무가 뿜어낸 신력의 영향권에서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진무의 뒤에 있어 교마와 부딪히며 튕겨 나온 신력을 그대로 뒤집어써 버렸다.
“제기랄! 신! 괜찮냐!”
진무가 교마에게 집중한 채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천주…….”
말과는 달리 목소리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진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성급했다.
막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황신이 자신의 신력에 되레 충격을 받을 것까지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를 살필 겨를도,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간신히 찾은 교마인 데다, 지금 자신이 품은 건 신력이니까.
지금으로서는 뒤로 가는 힘을 최대한 줄여 황신이 영향을 최대한 덜 받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크흐흐, 놈, 왜 힘이 줄었느냐? 저 귀 녀석이 뭐라고.”
“…….”
진무의 신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자 승기를 잡은 교마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가…….
마음 같아서는 따귀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목소리는 물론이고 심어조차 전할 수 없었다.
황신에 대한 우려로 힘을 줄인 탓에 교마의 힘에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쯧쯧, 고작 저런 하찮은 귀 때문에…… 하나, 덕에 나는 인질을 얻었구나.”
꾸드득, 꾸드드득.
진무의 발이 점차 뒤로 밀렸다.
교마의 마력이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혀 진무의 신력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신력과 마력을 괜히 상극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힘의 고하에 따라 언제든 천적이 될 수 있는 관계라 그리 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신력으로 인해 황신이 죽어 가고 있음이 느껴진 이상, 여기서 힘을 더했다가는…….
“사숙!”
“……!”
그 순간, 청상의 외침이 들렸다.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볼 순 없지만, 분명 황신을 구하려는 생각이리라.
하지만 안 된다.
지금 청상이 머금은 것은 자신과 같은 신력. 마찬가지로 황신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청상, 안 되네! 자네로 인해 황 호위가 더 위험해질 수 있어!”
다행히 백표가 말 못 하는 진무를 대신해 멀리 떨어진 채 청상을 말리고 나섰다.
“그럼 지켜보잔 말이오!”
“아니, 내가 해 보겠다.”
“하지만, 신력이…….”
“괜찮아.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은공께 받은 은혜, 언제고 갚겠다 다짐한 나다!”
백표가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금빛 서기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쩌적, 쩌저저적!
“크으윽.”
하나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신력의 범위 안으로 들어올수록 백표의 피부가 흉하게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최대한 줄였다고 해도 마왕인 교마의 마력에 맞설 만큼 강한 힘이다. 아무리 굳게 결심했다고 한들, 절대적인 힘의 차이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생명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백표와 황신을 보던 교마가 비열하게 웃었다.
“크크크, 멍청한 것들. 하는 짓들 하고는……. 이래서 충성심이란 게 싫단 말이야. 쓸데없이 목숨을 걸거든.”
“…….”
그들의 행동을 비웃는 교마를, 진무가 이를 악문 채 매섭게 노려봤다.
“노려보면 어쩔 것이냐? 네놈은 그 나약함 때문에 패배하는 것이다. 수하 따위의 목숨에 연연하는 그 나약함 때문에.”
“…….”
“일단 네놈부터 껍질을 벗겨 세류의 먹잇감으로 삼아 주마. 그러고 나서 저기 뒤에 있는 양귀 놈, 그리고 동료를 구하러 위험 따윌 무릅쓴 백표 놈. 그 뒤엔 주제도 모르고 나를 찾아……낸…… 으응?”
“……?”
순간, 교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뭐야? 저, 저 빌어먹을 새끼는?”
“……?”
뭐지?
당황으로 크게 뜨인 교마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어렸다.
도대체 왜……?
“끄으으윽, 이런 씨부랄…….”
“……!?”
그 순간 진무의 귓가를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 하나.
이건 분명…… 이, 이생?
아니, 니가 왜?
그리고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들릴 정도면 신력의 범위 안쪽이라는 이야긴데?
“끄으으윽, 젠장할…….”
신음과 욕설을 동시에 내뱉는 목소리에 진무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던 그 순간.
“이놈! 무슨 짓이냐! 그놈을 놓아라!”
교마가 다급하게 고함쳤다.
“끄으으, 닥쳐! 이 마왕 개새끼야!”
“뭐, 뭣이?”
“끄윽, 이 씨발 새끼. 수하들을 제물로 삼아? 그런 건 우리 도산옥에선 꿈도 못 꾸는 일이야!”
“뭐가 어째?”
“끄으으으…… 적어도 협비는…… 폭력적이긴 해도…… 수하들의 목숨을 함부로 대하진 않았어…….”
“…….”
“끄으으…… 너 같은 새끼가, 마왕이라니…… 너 같은 새끼가.”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생은 교마에 대한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하다.
필경 저놈의 힘으로는 자신의 신력을 버티기 힘들 것인데, 대체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끄으…… 내가 최근에 대사충 아가리에서 녹은 게 몇 번인데…… 이까짓 신력 따위! 끄아아아아!”
“이, 이놈!”
거친 일갈과 함께, 이내 무언가를 끌고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런 젠장!”
교마는 그저 하염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욕설만 내뱉을 뿐이었다.
그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진무가 그에게 잡혀 있듯, 그도 마찬가지 상황이었기에…….
“사숙! 됐습니다! 됐어요!”
“……!”
“황신은…… 이생도 모두가 안전합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진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됐다.
이걸로 됐다.
어떻게 이생이 자신의 신력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설마 한 대 맞고 두 대를 때리던 그의 맷집이 육체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던 걸까?
뭐,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
모두가 살았고, 이제 남은 것은…….
“너…….”
“……!”
서슬 퍼런 금빛이 가득 어린 진무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쿠우우우!
그리고 그 몸에서 막대한 투기와 함께 신력이 무한하게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생의 말이 옳다.
이 친구도 부하도 없을 마왕 새끼야, 넌 오늘 뒈졌다.
반드시 소멸시켜 주마.
최대한 고통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