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88
58화
“요놈의 새끼!”
빠각!
“감히 스승에게 욕을 해?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살려, 커억, 살려 주십시오, 천주님.”
“닥쳐, 이 새끼야! 넌 아직 한참 더 맞아야 해!”
유월청이 아무리 사정해도 진무의 손과 발은 여전했다.
팬 데 또 패고, 밟은 데 또 밟고…….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자면 더 패도 모자란다며 아득바득 두들겨 대던 진무가 일순간 멈칫하며 비틀거렸다.
이런 젠장, 현기증이라니?
고개를 살짝 흔들며 슬쩍 제 몸을 쳐다보곤, 진무는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교마에게 당한 상처에서 철철 흐르는 피.
당장 서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위기의 순간에 무리하게 신마합일을 이루어 낸 터라 속이 말이 아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시도한 바람에 신력이 폭주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때, 교마의 마력구를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휴우, 일단 좀 쉬어야겠다.”
진무가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며 털썩 주저앉는데, 옆에서 가느다란 애원이 들렸다.
“……살……려…… 주세요.”
“…….”
맞은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유월청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식이, 그러니까 왜 욕을 해서는.
반가울 수도 있었잖아?
무려 만 년 만에 만났구만.
사실 유월청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도…… 아주 쪼금은 있었다.
오래전 그때, 자신이 너무 오래 해 먹는 바람에 육십이 넘어서야 겨우 사패천주에 올랐던 녀석이다.
하지만 권력의 단맛을 느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진무의 몸으로 찾아간 자신에게 빼앗겼지. 그 후로는 천중산 깊은 곳에 유폐되어 삶을 마감하고 말았고.
간간이 그를 찾아갔던 소약벽에게 여전히 자신에게 복수할 것이라 소리를 질러 댄다 들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절대로 이룰 수 없는 허황된 목표만 세우다 죽었으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냥 사패천을 되찾은 그때, 깔끔하게 모가지를 잘라 줬어야 했었는데…….
그때 죽이지 않았던 것을 미안해하며 유월청을 바라보다가, 진무는 그 옆에 널브러져 있는 교마를 쳐다봤다.
봉신을 통해 늘어났던 마력이 사라진 것인지, 그의 몸이 예의 투실투실한 공 모양으로 돌아와 있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만약 유월청이 끼어들지 않았으면 제 손에 소멸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귀찮다.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앉으니 말 못 할 피로감에 몸이 축축 처진다. 다리 한 짝,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었다.
그래, 지금은 놔두자.
이젠 언제든 죽일 수 있게 된 놈인데, 굳이 무리해서 지금 죽일 필요는 없지.
“사숙!”
“천주님!”
“은공!”
“진무 님!”
두 팔을 땅에 댄 진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구타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넷이 동시에 부르며 다가왔다.
하나 근처에 머물 뿐 우물쭈물하며 가까이 오진 못했다.
그의 기운이 신력도 마력도 아닌 정체 모를 기운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상극의 기운이 함께 모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혹여 자신들의 기운이 진무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기색이 선했다.
“녀석들, 괜찮으니까 이리 와라.”
“하지만…….”
“괜찮아.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이놈들도 이상 없잖아.”
진무가 턱짓하자 넷이 교마와 유월청을 쳐다보며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진무의 구타에 온몸이 뭉개진 채 뻗어 있긴 했지만, 딱히 진무가 품은 기운에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괘, 괜찮으십니까? 천주님?”
“그래.”
서둘러 다가온 황신과 백표가 진무의 안부를 물으며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하지만 청상은 여전히 다가서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교마나 유월청, 황신과 백표, 이생.
그들 모두가 마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진무의 허락으로 사용한 신력이 안으로 갈무리되지 못해 여전히 몸이 서기로 둘러싸여 있다.
신력을 눌러 줄 여의마저 손에 없으니…….
“청상아.”
“……예?”
“뭘 쭈뼛거리고 서 있어?”
“저는…….”
“괜찮으니까 와도 돼.”
“하지만…….”
“괜찮다니까?”
진무가 재차 불렀지만, 청상은 좀처럼 다가서질 못했다.
“녀석, 지금 이 사숙을 못 믿어 그런 게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그러니까 그냥 와. 짜증 낼 힘도 없다.”
“…….”
진무가 힘없이 눈살을 찌푸리고 나서야 청상이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한 발, 한 발.
그런데 이상했다.
진무와 가까워지자 몸 주위에 은은하게 빛나던 서기가 마력에 닿자마자 쑥 빨려들어 뒤섞였다.
“어?”
“거봐라. 괜찮다지 않았더냐?”
“그러네요.”
막 진무의 곁에 도착한 청상에게서만 신기하다는 반응이 나온 게 아니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신력과 마력이 공존하다니요?”
“묻지 마. 나도 정확히 설명이 안 되니까.”
“예? 예…….”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뭔가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상극인 신력과 마력이 중화되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이번에 이루어 낸 신마합일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무 자신도 처음이기에 명확한 근거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불완전한 힘이기도 했고…….
“그런데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뭐가 자꾸 어찌 돼?”
“실은 교마의 공격에 소멸당하신 줄 알았습니다.”
청상의 말에 모두가 동조하듯 진무를 빤히 쳐다봤다.
“그냥, 신력과 마력을 융합했다.”
“……예?”
모두가 눈을 끔벅거렸다.
“마찬가지로 설명은 못 해 주겠다. 나도 그냥 해 본 거야. 이래 뒈지나 저래 뒈지나 똑같으니까.”
“…….”
그게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할 말인가?
진무는 어안이 벙벙해진 넷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사실이다.
만약 가능성을 봤다면 진작 했을 것이다.
지난 만 년, 천계에서 그 긴 세월을 수련하면서도 신력과 마력을 섞어 볼 생각은 못 했으니…….
“그런데 해 보니 되더라. 예전에 양의심공을 통해 태극을 이뤘던 그때처럼.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시도하는 건데……. 그랬으면 두장군이 아니라, 옥황 자리도 한번 도전해 봤을걸. 또 그랬다면 이 개고생도 안 했을 테고.”
“…….”
멋쩍게 웃는 진무의 모습에 청상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대체 사숙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그리고 이 상황에서 옥황과 싸워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고?
정말이지 못 말릴 사람 아닌가.
“이제 어쩌실 겁니까?”
“뭐가?”
“아마도 귀모가 이 상황을 보았을 것입니다.”
“…….”
청상이 힐끗 교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지도.
협비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각 계의 마왕들은 권능을 부여받은 대가로 귀모와 정신이 이어져 있다 했으니…….
“그녀가 알았을 것입니다. 사숙께서 천계의 두장군이라는 사실을요.”
“음…… 그렇겠지.”
“물러나시지요.”
“물러나?”
“예.”
“왜?”
청상의 진지한 권유에 진무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물었다.
“왜라니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숙께서 천계의 장군임을 알았는데, 귀모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만히 안 있겠지.”
“그러니까 당연히 도망쳐야지요. 이참에 귀천옥을 써서 다 함께 천계로 돌아가시지요.”
“…….”
청상의 말에, 진무는 미간을 깊이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옳다. 들킨 이상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교마의 말에 따르면 귀모가 자신을 음양귀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즉, 언제부터인지 확실친 않아도 자신에게 신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내버려 뒀다.
묘한 호기심이 들었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게 뭘까?
또한 의문에 앞서, 지계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청화의 존재를 살피는 것?
물론 옥황이 내린 명령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타라는 놈이 가지고 있다는 업경에서 스승 명진의 공과를 삭제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운명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이 알 바는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는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부모였고, 스승이었다.
몰랐다면 잊고 지냈겠지만, 눈으로 보았는데 어찌 옥황의 말처럼 날파리로 환생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구한다. 설사 자신이 소멸당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신마합일을 이룬 뒤에 약간의 자신도 생겼다.
지금의 힘을 갈고닦아 완벽한 합일을 이룬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옥황이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운명은 사방신 중 하나인 신수 현무(玄武)에 닿아 있다고. 북방의 두장군이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운명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청상아.”
“예!”
“난, 안 돌아간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는 스승님을 반드시 구할 것이다.”
“……!”
진무의 단언에 청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나는 한때 스승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었다.”
“…….”
“만약 혁련무강이었던 그때 내가 스승님을 해하지 않았다면, 그분이 그리 무력한 삶을 살진 않으셨을 것이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진무의 삶에서 그 죄를 모두 갚지 않았습니까? 명진 사숙조께선 사숙과 함께하며 과거에 겪었던 고통 이상으로 기쁨을 느끼셨을 겁니다. 제가 압니다. 사숙께서 등선하고 나서 똑똑히 들었습니다.”
“…….”
“더는 혁련무강을 미워하지 않으신다고……. 오히려 그로 인해 사숙께 받은 것이 더 많았다고요. 보지 못해 그립다고, 죽는 날까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단 말입니다!”
끝에 가서는 울음마저 섞인 외침에 진무는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망할 스승.
차라리 욕을 하지. 누가 천생 도사 아니랄까 봐…….
하지만, 청상을 통해 그러한 진심을 전해 들었다 한들 결심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청상아.”
“…….”
“때로 사람들은 죄를 짓고, 충분히 사과했다 말한다. 사과했고 뉘우쳤으니 이제 속이 후련하다 한다. 하지만, 어찌 피해를 본 이의 마음이 진정 그러하겠느냐?”
“……사숙!”
“용서라는 것은 오직 피해를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피해 본 이가 진정으로 용서해야만 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럼 되었지 않습니까? 명진 사숙조께서 이미 용서하셨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리 말씀하셨다니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
“…….”
“그분께서 용서하셨다 해도 나는 아직 그분께 지은 죄를 씻지 못했다. 아마 죽어서도 씻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것이 못내 죄스럽다. 하여 나는 그분을 반드시 등선시킬 것이다. 여생을 천계에서 편안하게 환생하시는 것을 본 뒤, 그분께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것이다.”
“사숙…….”
“너는 가거라.”
“……!?”
“사숙께 그러하듯, 나는 너를 아낀다. 하니 가거라. 황신, 백표, 이생을 데리고 귀천옥을 써서 천계로 돌아가거라.”
나지막한 목소리에 진심이 담기자 청상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붉으락푸르락하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청상은 황신에게 귀천옥을 내밀었다.
“받게.”
“응?”
“난 여기 남겠네.”
“…….”
“사숙이 그러하듯 나도 은혜를 받은 몸. 사숙의 결심이 그러하니 나 또한 곁을 지킬 것이네. 만약 강제로 보내시려 하면 천계로 가자마자 목숨을 끊을 것이네.”
청상이 진무더러 들으라는 듯 고집을 부리자, 황신이 눈을 끔벅이며 그를 보다 피식 웃곤 귀천옥을 받아 백표에게 내밀었다.
“야, 백표. 니가 가라, 천계.”
“……가겠냐? 이런 분위기에?”
황신의 말에 귀천옥을 전해 받은 백표가 똑같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안 간다.”
백표마저 거절하자, 옆에 있던 이생이 내심 기대했는지 눈알을 굴리며 슬쩍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푹!
“…….”
귀환옥은 그대로 백표의 품에 들어갔다.
아니! 당연히 날 줘야지! 그게 순서였잖아!
아씨, 냉큼 천계로 갈 수 있는데!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 분위기에 말했다가는 황신 놈이 가만있지 않을 듯했기에, 이생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들 필요 없다고 하니 귀천옥은 제가 보관토록 하겠습니다, 은공.”
“…….”
백표의 말에 셋을 번갈아 쳐다보던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불통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놈들이 결정한 일인 것을.
운명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자신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저기, 그런데…… 남는 건 남는 것이고, 두 분의 대화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은공?”
“응? 뭘?”
“아까 듣기로, 혁련무강 그 빌어먹을 개자식이 어쩌고 하던데…… 뭔가 은공과 동일시하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
“혹시, 제가 지금 생각한 그런 거 아니죠? 그쵸?”
“…….”
말을 마친 백표의 간절한 표정에 진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이 새낀 몰랐었지?
제기랄, 어쩌지?
안 그래도 뒈지고 나서까지 혁련무강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놈인데…….
힐끗 쳐다본 청상이나 황신도 달리 방법이 없어 보였다.
“말씀해 주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예? 예에!?”
“…….”
백표가 대답을 촉구하며, 슬그머니 양손에 식칼을 움켜쥐었다.
그, 뭔 놈의 눈빛이…….
으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크윽! 갑자기 가슴이! 쿨럭! 기침도 나고…… 웩! 울혈까지……!”
진무는 별안간 가슴을 움켜쥐며 쿨럭거리다, 혼절(?)한 듯 눈을 까뒤집었다.
언젠간 밝혀야겠지만, 뭐든 때가 있는 법!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