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97
67화
우르르릉!
하늘이 뒤흔들렸다.
쩌저적!
진동을 버티지 못한 기둥이 쩍 갈라지고, 이내 무너져 내렸다.
“……!”
천상궁의 의자에서 한시도 빠짐없이 아래를 굽어살피던 옥황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이, 이런!”
손가락 모양으로 움푹 팬 의자의 팔걸이가 그의 경악을 대변하고도 남았다.
계가 무너졌다. 지와 인의 경계를 이루던 두꺼운 방어막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하계의 지형이 산맥마다 뒤틀리고, 곳곳에서 검은 아가리가 입을 쩍쩍 벌려 댔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인계에 존재해서는 안 될 짐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나길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뛰쳐나온 짐승들이 인계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지상이 마에 물들어가는 모습에 옥황의 옥빛 면류관에 달린 주렴들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 아래 두 눈이 새파란 청광을 발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꽉 다문 입술 아래 백염이 부들부들 떨리고, 턱 언저리에는 인계에 팬 골짜기만큼 깊은 주름이 맺혔다.
인과 지계의 경계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볼 수 없었으나, 폭발의 근원에서 미세하게 느껴진 것은 분명 축융의 힘이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오랫동안 그 힘이 각성할 것을 경계해 왔고, 청염에 스몄던 것을 똑똑히 느꼈는데…….
“귀모…… 네가 정녕!”
귀모의 짓이다. 청염에 담긴 축융의 힘을 이용해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찌? 아무리 귀모라 해도 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능력 밖인데?
설사 청염에 남은 것이 축융의 잔재라고 해도, 삼계의 경계 중 하나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 이미 모든 힘을 잃고 쭉정이만 남아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가?
옥황의 의문이 깊어지는 그 순간.
화악!
천상궁의 한편에 환한 빛이 생겨났다.
“……?”
귀천옥이 만들어 낸 빛이다. 자신의 혼백을 찢어 담은 그것을 어찌 몰라볼까.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허억, 허억…….”
나머지 셋은 알아볼 수 없었으나 하나는 확실히 청상이었다.
옥황은 다급히 의자를 박차고 단숨에 청상을 향해 다가갔다.
“청상!”
“……흑, 흐흑.”
“……?”
거친 호흡이 이내 흐느낌으로 변했다.
청상의 어깨에 손을 댄 옥황의 머릿속에 일의 전말이 하나씩 하나씩 그려졌다.
그가 본 모든 것, 그때 느꼈던 감정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기억까지…….
귀천옥이 터지던 그 순간 청상의 눈동자에 비친, 잔균열과 함께 불타며 폭발하던 진무의 모습이 옥황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빌어먹을.”
옥황의 얼굴이 청상의 찢어지는 마음처럼 흉하게 일그러졌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옥황이 어렴풋이 추측하던 진무의 운명은 현무(玄武)에 닿아 있었다. 음과 양의 힘을 고루 가졌던 신수 현무.
하지만 틀렸다.
현무가 신마의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신수이기는 했지만, 합일은 불가하다. 그 둘이 섞일 수 없음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한데 이 대단한 놈이 신마합일이라는 불가능을 이뤄 버렸다.
옥황도, 귀모도 가지지 못한 조화(調和)의 힘이 아닌가? 태초의 혼돈만이 가졌던…….
하면 진무의 운명이 현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에 닿아 있었단 말인가?
“음…….”
긴 침음과 함께, 옥황의 미간에 깊은 골이 졌다.
실수다. 자신의 불완전함이 터트려 버린 크나큰 실수.
진무의 운명이 그저 현무에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이 실수고, 귀모가 청염이 가지고 있던 창세의 기록을 탐하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 더 큰 실수다. 또한 그 기록을 이용해 계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 예상치 못한 것이…….
그 모든 실수가 쌓여 지금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귀모는 진무가 가진 조화의 힘을 이용해 완벽히 소멸한 축융을 폭주시켰고, 기어코 인과 지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모두가 옥황, 자신의 잘못이었다.
“……미안하구나, 애초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던 것인데.”
“흐으윽.”
자책이 담긴 옥황의 손길에도 청상은 엎드린 채 내내 울기만 했다. 인간과 선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경하고 따른 인물의 죽음이 그에게 크나큰 상심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부끄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옥황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 위로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지계의 짐승들이 인계를 습격하였고, 곧 마왕들이 올라올 것이다.
인계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방방곡곡 절규와 통곡이 울려 퍼질 것이다.
암울하고, 적막할 것이다. 삼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지계의 세가 강해질 테니 천계마저 위태로울 터.
결국 음양이 뒤섞인 채 반목하던 태초의 혼돈으로 치달을 것이다. 끊이지 않는 싸움만이 가득할 것이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다시금 청상의 어깨를 다독인 옥황이 분연히 일어났다.
「전하라!」
옥황의 권능이 심어가 되어 상천 아래 천계의 모든 곳에 내려앉는다.
「상제들은 속히 상청궁에 오르고, 상선과 천계 무장들은 지계의 침략에 응전할 대비를 갖추라!」
옥황의 심어와 함께 평온했던 천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로소 오랫동안 멈췄던 신마 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 * *
평화의 시대를 지나, 세상은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경계를 무너뜨린 지계는 삽시간에 인계를 귀신의 대지로 뒤바꾸고 있었다.
옥황은 인계에서 지계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곳곳에 파견된 신령들의 거처를 거점으로 삼아 항전했다.
다만, 천계와 인계를 통하는 곳은 몇몇 틈이 전부.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지계 마귀와 마수들의 공격에 천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그 많던 거점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인계의 시(時)로 전쟁이 시작된 지 백 년, 본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천계의 시가 천 년을 흘렀을 때,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귀천하는 이들의 수.
지계가 인계를 공격한 이후부터 귀천인들의 수가 급속도로 줄고 있었다. 전쟁 속에서 소멸해 버린 천군들을 대처할 이들이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인계의 덕업이 쌓여야 귀천할 것인데, 덕업도 쌓기 전에 지계의 공격에 망자나 아귀가 되어 버리니 당연했다.
결국 옥황은 천계를 지키기 위해 인계와 이어져 있던 모든 틈을 막아 버렸다. 분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 천계는 지켜졌으나, 귀모가 이끄는 지계의 짐승들로부터 인계를 지키는 곳은 남은 신령들의 거처가 전부였다.
* * *
“뭣이 어째? 신령에 지원하겠다고? 더욱이 네놈 휘하의 군장들과 함께 가?”
“……예.”
“이런 미친놈이! 옥황께서 내리신 명령을 듣지 못했단 말이냐!”
천계 북방군의 처소에서 난데없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진무의 뒤를 이어 두장군에 오르게 된 백양이 눈앞의 사내를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봤다.
몸에 걸친 백갑(白鉀)과 허리에 찬 흑색 검에 괴들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면 조금 전까지 전투를 이끈 듯했다.
얼굴에는 오랜 전투가 남긴 피로가 역력했으나, 백양을 바라보는 눈매에서 뿜어지는 빛은 절로 간담을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웠다. 백양의 호통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것이다.
“네놈이 지금 우리 북방군이 처한 상황을 알고는 있는 게냐?”
“……압니다.”
“그런데도 가겠다고?”
“예. 저와 휘하 몇몇 장수가 빠진다고 해도, 두장군께서 괴들의 공격을 막지 못하리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뭐? 이, 이…… 하아…….”
당돌하게 제 의사를 또박또박 밝히는 모습에 백양이 화를 내려다 이내 한숨을 내쉬고 만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 또한 그와 다르지 않기도 하고.
다만 북방의 수좌이기에 참아야 했고, 천계를 위해 눈앞 사내가 청을 거두도록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벽장군.”
“예.”
“자네가 빠지면, 북방군의 전력이 한순간에 약해지네.”
“……일부입니다.”
“누가 그래?! 누가 자네가 일부일 뿐이래? 말도 안 되는 소리!”
“…….”
“이보게, 벽장군. 내 자네 마음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간곡함을 담아, 백양은 재차 설득하기 시작했다.
백갑의 사내는 북방칠수 중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진 벽(壁)이었다.
하나 지위일 뿐이다. 지닌바 무력이나 지금껏 지계의 계들과 싸우며 세운 전공만 놓고 따지자면 그가 두장군이 되어야 마땅했다.
아니, 실제로 추대도 했었으나 그는 가장 말석인 벽장군을 원했고, 항상 최전방에서 괴들을 섬멸해 왔다.
대단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그 휘하에 있는 장수 중 용맹치 않은 이가 없었다.
혹자가 가끔 농하길, 북방은 벽장군과 그 휘하의 장수들만으로도 지킬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놈이 지금 마귀들 세상인 인계의 산신령에 지원한 것이다.
피눈물을 머금고 수성을 택한 천계를 대신해 인간들을 지키는, 인계 최후의 저항선이라 불리는 그 자리에!
“어쨌든 다시 생각해 봐. 너라고 해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남아 있는 신령들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하지 않더냐? 아무리 생각해도 개죽음이다.”
“…….”
백양의 말에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벽장군이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저는, 가야겠습니다.”
“이런 쌍! 너 진짜 이럴 거야?”
“죄송합니다. 하나 싸움 중에 옥황께서 허락을 내리셨다는 소식을 접했기에 찾아온 것입니다. 두장군께 거취를 보고드리는 것이 절차이기에.”
“…….”
벽장군이 한 치의 주저도 하지 않고 제 생각을 말했다.
말문이 막혀 버린 백양은 이를 악물고 벽장군을 노려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는가? 옥황께서 허락하셨다는데…….
그분도 더는 저놈의 청을 거절하기 힘들었겠지.
지금까지 무려 열 번이다, 옥황께서 갖은 이유를 대 가며 벽장군의 청을 반려한 것이. 그리고 그때마다 벽장군은 엄청난 노력과 전공으로 옥황이 내건 이유에 답했다.
하지만 이젠 허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벽장군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옥황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누군가는 가야 한다.
꼭 인계를 지키는 최전선이라서가 아니다.
신령들은 인계에서 지계의 움직임을 살피는 눈과 귀다. 그들 모두가 소멸하면…… 천계는 더는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다.
“그럼, 인사를 드렸으니 이만 떠나겠습니다. 한시가 바쁘기에.”
“…….”
벽장군이 백양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 매몰차기까지 한 단호한 등을 물끄러미 보던 백양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야, 청상.”
“……?”
그랬다. 벽장군은 청상이었다.
진무가 마지막 순간에 귀천옥을 사용해 그를 천계로 보냈고, 그는 한참을 울다가 북방칠수에 자원했다.
힘을 기르기 위해, 지계에 복수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벽장군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인계로 내려가 진무를 찾겠다는 다짐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청상은 여전히 진무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죽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을 본 이는 아무도 없으니까.
“꼭, 찾아라.”
“…….”
“나도 믿지 않아. 그가 죽었다는 거.”
백양의 말에 딱딱히 굳어 있기만 하던 청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두장군.”
“감사는……. 됐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모양인데, 서둘러 가 봐라.”
“예.”
청상은 다시 한번 백양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잰걸음으로 나서자, 그가 나오길 기다리던 한 떼의 인물들이 일제히 그에게 다가섰다.
황신, 백표, 이생…… 그리고.
“사형!”
여전히 뚱뚱하기만 한 청우.
“늦어서 죄송합니다, 헉헉. 막 전투를 끝내고 온 참이라.”
헐레벌떡 뛰어와 황신 옆에 자리한 각출과 소동보.
이어 한때 사패오왕으로 불렸던 이들과…….
“두장군과 인사는 끝냈느냐?”
“예, 사숙조님.”
마지막으로 명진까지.
진무로 인해 귀천령에서 선인이 되었던 이들이 청상의 아래에서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을 한차례 훑어보던 청상이 한 사내를 보며 말했다.
“적생.”
“예, 벽장군.”
“늘 그랬듯, 지휘를 맡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적생의 대답에 청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출발하시죠.”
“예!”
출전을 알리는 청상의 명에 그 휘하에 몸담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청상이 선택한 신령의 거처는 일흔두 개의 산봉과 스물여섯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무당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