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짤랑.
“자요.”
등여평과 길게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던 진무가 피 같은 은자 네 냥을 꺼내 내밀었다.
“응?”
“여기 네 냥 있으니까 가져가시라구요.”
“어, 그래.”
잘도 받아 챙긴다.
백로? 개뿔이.
“그럼 됐죠? 이제 보지 맙시다.”
“…….”
“청상, 청우. 가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는데.
저벅, 저벅.
등여평이 계속 따라오는 소리가 심히 거슬렸다.
“아, 왜 따라와요?”
“응? 따라가다니? 난 그냥 내 갈 길 가는 중일세.”
“…….”
“가게, 어서.”
“먼저 가세요.”
“쉬는 중일세.”
이 노인네가 진짜 미쳤나?
무당 도사 신분에 사람들 몰래 어디 뒷산에 파묻어 버릴 수도 없고.
진무는 서둘러 그를 떼어 버릴 생각에 걷는 속도를 올렸다.
그런데 등여평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똑같이 속도를 높이는 것이 아닌가.
팡!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른 진무가 제운종을 펼쳐 담벼락을 밟고 솟구쳤고.
등여평이 마치 추격이라도 하듯이 경공을 펼쳐 뒤따랐다.
‘아, 정말 미치겠네. 청상과 청우 때문에 속도를 더 낼 수도 없고.’
뭐 이런 끈질긴 놈이 다 있단 말인가?
나루로 향한 걸음을 최대한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지만 등여평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마치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사실 등여평은 그렇게까지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진무 일행이 객점을 나서는 것도 우연히 본 것이었다.
어제 주루에서의 상황도 있고, 갑자기 흔하디흔한 무복으로 갈아입었길래 궁금해서 말을 건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손아귀를 피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였다.
무당에 이런 거친 성격의 도사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싸가지는 둘째 치고 술에 고기까지 대놓고 먹으려 할 줄은 몰랐으니까.
두 번째는 호기심이었다.
어떻게 피했을까? 많아야 약관임이 분명한데.
그는 딱히 무림의 세력 다툼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으나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었다.
자신의 손길을 피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약관의 나이, 청렴과는 거리가 먼 풍족한 도사.
‘거, 신기한 놈이로다.’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놈이었다.
그가 의창에 머문 지 한 달, 또 다른 곳으로 떠나려 했던 차에 참으로 재미있는 놈을 만났다.
‘이거 재미있네. 이런 놈들이 모이는 용봉회라면 구경할 만할지도 모르겠어. 이참에 무한으로 가 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뒤쫓는 사이 진무는 그를 떼어 낼 생각을 포기한 것인지 나루에서 멈췄다.
등여평도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무는 나루에 정박한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박한 배는 모두 넷.
청상이 말한 경유선은 이미 사람들을 채우고 떠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제갈세가의 옷차림을 한 무인들이 가득했고, 나머지는 물건을 잔뜩 싣고 떠나는 상선과 관선이었다.
“제갈세가의 배로 갈 모양이지?”
그리 생각을 했는데.
“혹 자리 있소?”
상선으로 다가간 진무가 갑자기 선주(船主: 배 주인)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응?’
갈수록 희한한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속도가 생명인 상선이 가장 빠르기는 하겠지만, 불편하다.
저런 경우 백이면 백 제갈세가의 배를 타거나 관선에 타야 정상이었다.
자신이 아는 제갈세가라면 분명 배를 통째로 전세를 냈을 것이다. 그들은 돈이 많으니까.
물론 전세를 냈다고는 해도 무당 도사 셋 정도는 충분히 태울 수 있을 만큼 자리가 많을 것이다.
만약 그도 안 된다면 관선에 타야 한다.
아무리 관무불침이라고 하나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이니 무당의 이름을 듣고 태워 주지 않을 배가 없었다.
더군다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가난한 도사에게는 오히려 적격이라고 할 만했다.
등여평 자신도 몇 번 이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하핫! 고맙소! 내 안전은 책임지리다!”
“…….”
진무가 오랜 친구인 양 선주와 어깨동무를 하며 웃는다.
고작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무당의 도사가 저렇게 친화력이 좋았나?
점점 더 호기심이 넘치게 만드는 놈이었다.
등여평이 피식 웃으며 자신도 한 자리 끼어 볼까 싶은 마음에 상선을 향해 다가갔다.
왠지 무당의 도사들과 시간을 보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게.”
“예?”
“혹 자리가 있으면 좀 얻어 탈 수 있겠는가?”
등여평의 말에 선주가 딱 잘라 거부했다.
“없습니다.”
응? 뭐?
그럼 쟤들은 뭐야?
등여평이 슬쩍 고개를 돌려 진무를 바라봤다.
그리고 보았다. 진무의 입가에 지어진 음흉한 미소를.
‘저놈이 설마?’
농간을 부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끓어오른 호기심에 절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아니, 어찌 없단 말인가? 딱 봐도 자리가 남는데?”
“아, 그 자리를 전부 저분이 사셨습니다.”
“응?”
“죄다요.”
“…….”
“웃돈까지 주시면서요.”
선주가 손에 든 전낭을 보여 주며 환하게 웃었다.
말로 흥정한 게 아니라?
돈으로 샀어?
자리를?
진무가 등여평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배에 올랐다.
‘허, 뭐 저런 놈이.’
오기가 생긴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진무와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등여평은 이제 대놓고 생짜를 부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한 자리에 얼마를 주기로 했는지 모르지만! 은 한 냥을 내겠네!”
등여평이 품에서 은 한 냥을 꺼내 내밀었음에도 선주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뭐?”
이것들이 진짜. 무한까지 가는 최고급 객선(客船)의 가격도 반 냥이 안 되거늘!
“그럼 두 냥?”
“글쎄, 안 된다니까요.”
“뭐? 아니 저놈이 도대체 얼마를 냈기에!”
“그게 아니라. 저 공자께서 호위뿐 아니라 화물 선적도 돕겠다고.”
“뭐?”
“안 그래도 상단 호위들이 근래 많이 지쳐 있었는데 잘되었지 뭡니까.”
“…….”
환하게 웃는 선주의 뒤로 청상과 청우가 네 사람은 족히 들어야 할 물건을 보란 듯이 한 손으로 들고 척척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진무가 등여평을 보며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저, 저놈 자식이!’
어딜 봐도 약을 올리는 모양새.
“흥! 그럼 나도 호위를 해 주지! 저런 어린놈들보다야.”
등여평이 욱하는 마음에 소리치자 선주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누구……신데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음.”
가슴을 펴고 당당히 제 이름을 말하려던 등여평이 문득 입을 닫고 말았다.
딱히 비밀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말하기가 영 껄끄러웠다.
무림에 나름 잘 알려진 자신의 이름을 들으면 무당의 도사들이 분명 예를 갖추며 사죄를 해 올 게 분명했다.
그에게 그 정도 이름값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리되면 무당 도사들과 보내려던 재미있는 시간(?)은 꿈도 못 꾸게 될 것이다.
“노인장께서 누구시기에 호위를 해 주신다고?”
선주가 눈치도 없이 자꾸 물어 왔다.
“아, 그게.”
그렇다고 안 탈 수도 없고.
* * *
“무슨 소란인가?”
막 가문 호위들의 안내를 받아 배에 오르려던 왜소한 체격의 청삼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상선으로 보이는데 웬 노인이 생짜를 부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생짜를 부려?”
“예. 알아볼까요?”
“되었다. 작은 소란일 텐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는가?”
청삼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상선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려던 고개가 문득 뻣뻣하게 멈추고 말았다.
“어? 저분은?”
청삼 사내의 고개가 다시 홱 돌아갔다.
그의 시선은 상선의 선주와 옥신각신하는 노인에게 향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는 분이라도?”
“아니, 저분의 얼굴이 어째 낯이 익은데…… 아!”
잠시 고민하던 청삼 사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수하의 질문에 답도 하지 않은 채 오르던 뱃전을 밟고 훌쩍 몸을 날렸다.
어찌 그런지 영문을 몰랐지만, 그의 수하들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아! 그러지 말고 사정 좀 봐주라니까!”
“안 된다니까요!”
“거참, 한 자리 얻어 타자는데 뭘 그리 박한가.”
“이미 값을 치러 받았다 하지 않습니까.”
“내겠다지 않는가! 덤으로 호위까지 하겠다는데!”
“거참, 다 늙은 분이 무슨 호위를 하신다고.”
막아서는 선주와 필사적으로 배를 타려는 노인.
그리고.
“무림 말학, 선(宣)이 백로 등여평 어른을 뵙습니다.”
청삼 사내, 제갈선이 노인의 뒤로 다가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말에 제갈선을 따라온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어?”
자신을 알아본 제갈선으로 인해 선주와 옥신각신하던 등여평이 당황한 표정으로 배 위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진무 일행은 아직 듣지 못한 눈치였다.
[예를 거두거라.] […….]다급하게 날아온 전음에 제갈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제갈세가의 촉망받는 인재답게 매우 눈치가 빨랐다.
전음과 표정만으로 등여평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 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수하들에게 예를 거두게 한 제갈선은 등여평의 신분을 입에 담지 않고 그저 ‘어르신’이라 칭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어르신. 혹 배편이 필요하십니까?”
“응? 아, 아닐세. 신경 쓰지 말게.”
“…….”
등여평의 떨떠름한 표정이 이상했다.
선주와 나눈 이야기를 들어 보건대 필시 배를 타려는 것이 분명하거늘.
그의 신분이라면 아무리 제갈세가에서 전세를 내었다 해도 객실 한 칸 내어 주지 못할 것이 없었다.
그와 함께하는 것만도 영광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눈에 보기에도 불편하고, 선주가 완강하게 거절하는 상선을 굳이 타려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갈선의 시선이 상선을 향했다.
‘저들 때문이군.’
그리고 선원들과는 이질적인 모습을 가진 이들을 발견했다.
특징 없는 흑의 무복의 사내 셋.
둘은 선원들과 함께 짐을 나르고 있었고, 나른해 보이는 표정의 사내는 선두에 느긋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저들이 누구길래?’
제갈선의 시선이 그들 중 짐을 나르고 있는 한 명의 사내에게 고정되었다.
날카로운 기도를 가진 사내는 뭇 여성들의 방심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등에는 한 자루 검을 메고 있었다.
손잡이 끝에 태극 문양을 새긴.
‘무당?’
그리고 그들이 탄 배에 오르려고 하는 등여평.
‘어찌 무당의 제자들에게 관심을?’
묘한 호기심이 동했다.
특히나 호북성을 두고 오랜 세월 자웅을 겨루어 온 무당임을 알고 나자 궁금증이 더했다.
‘백로께서 관심을 가질 만한 무당의 도사라.’
골똘히 생각하던 제갈선이 미소를 지으며 등여평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응?”
“저희 배에 타시지요.”
“괜찮네. 굳이 신경 쓰지 말게.”
등여평이 거듭 거절하자 제갈선의 얼굴에 더욱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면 저기 무당의 제자들과 함께라면 어떠하십니까?”
“뭐?”
제갈선이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자 등여평이 조금 놀란 눈으로 제갈선을 바라보았다.
제법 눈썰미가 좋지 않은가?
도포를 벗고 신분을 감추었음에도 무당의 도사임을 알아차리다니.
더욱이 자신이 상선에 오르려는 목적마저 순간적으로 간파했다.
‘호오? 거참, 제갈세가의 선이라는 아이가 천재라 불린다더니.’
등여평은 제갈선을 보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더욱이 표정만으로 허락을 득하였음을 직감한 제갈선은 행동마저 빨랐다.
진무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쓸데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