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의창(宜昌) 나루 인근.
의창은 호북성 중앙, 강줄기에 위치한 거대한 도시였다. 거대한 수로(水路)가 지나는 곳이라 원래 사람이 많기도 하였으나 특히나 이번 용봉회의 개최로 인해 중원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바로 수로 때문이었다. 정무맹이 위치한 무한으로 편안하게 가자면 반드시 의창에서 배를 타야만 했다.
무당을 떠난 진무는 표주와 더불어 청상과 청우를 무한의 정무맹까지 데려다주라는 명을 받았다.
그게 무슨 대수일까? 꿈을 이루게 생겼는데.
한껏 신바람이 난 진무는 사질들을 데리고 무당산을 떠난 뒤, 곧장 육로를 타고 남쪽으로 열흘 가까이를 내려오다 의창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하도 사람이 많아 배를 구하지 못해 주루에 들른 참이었다.
그것도 세 곳을 돌아 겨우 구한 자리였다.
청우가 좋아하는 고기를 잔뜩 시키고 술까지 시켜 두었는데 뜬금없이 노인 하나가 다가와 합석을 요구했다.
진무가 자신을 향해 해맑게 웃고 있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합석을 하자구요?”
“그렇네.”
“왜요?”
“응?”
당연히 승낙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심드렁한 대답에 노인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야 하냐구요?”
“…….”
진무의 물음에 노인은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복장을 봐선 무당의 제자가 확실하다.
또한, 나이가 어린 것을 보니 용봉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이대제자임이 분명한데.
이런 경우.
‘합석을 부탁합니다.’라고 하면 ‘예.’라고 대답하는 게 도사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품성이 아니던가?
그런데 왜요라니?
잠시간 멍하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던 노인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지금 주루에 자리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자네들 자리는 사 인석이고 한 자리가 비니.”
궁색한 표정으로 변명을 하는데 진무가 손가락을 들어 주루의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저기.”
“…….”
“사 인석에 둘이 앉은 곳도 있고 셋이 앉은 곳도 있고, 심지어 혼자 앉은 곳도 있는데 왜 하필 이 자리인 겁니까?”
“응? 아, 그건.”
순간 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진무의 말이 맞았다.
그의 말대로 합석을 할 수 있는 자리는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진무 일행에게 합석을 청한 이유는…… 신기해서였다.
도포를 걸친 도사가 고기와 술을 시킨 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기세를 보면 보통 녀석들이 아니었다.
그냥 앉아만 있는데도 온몸에서 선기를 풀풀 날리는 것이 나 도사입네 외치고 있을 정도였다.
하도 의아해서 어떤 놈들인지 보려고 온 걸음인데 이리도 박대를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딴 데 가시죠.”
짧게 말하고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너무도 매몰차다.
“아니, 이보게. 자네들은 무당의 도사가 아닌가?”
“근데요?”
“아니,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밥을 사 달라는 것도 아닌데 어찌 무당의 도사들이 합석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하등 쓸데없는 편견이군요.”
“뭐?”
“무당의 도사라고 꼭 합석을 승낙할 이유도 없거니와 노인장께서 돈 내신 것도 아니잖습니까.”
“…….”
“내 돈 내고 내가 합석을 안 하겠다는데, 그게 도사인 것과 무슨 상관이냐구요?”
“아, 그, 그렇지.”
“그렇죠? 그러니까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
노인은 살아오면서 이런 식의 반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저, 사숙.”
“왜?”
“합석해도 저희는 괜찮은데.”
“시끄러. 내가 안 괜찮아.”
청상이 말을 꺼냈다가 핀잔만 들었다.
그리고 진무가 계속 거부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노인의 정체 때문이었다.
‘백로 등여평.’
어찌 모를까.
중원 무림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사패천주였던 진무가 반대 세력의 쟁쟁한 무인의 얼굴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름은 물론 성격까지 모조리 꿰고 있었다.
사실 합석을 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 호기심 많은 성격에 분명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 틀림없다.
또한, 그의 출신은 석문 등가장이라는 약소한 가문.
재물 보기를 돌같이 하는 검소함을 가진 것도 모자라 피곤하기 짝이 없는 대쪽 같은 성품까지.
즉, 양소방과 달리…… 가난하고도 가난하여 얻을 게 없는 귀찮은 노인네일 뿐이다.
“이보게. 그러지 말고 좀.”
“거참, 귀가 어두우신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진무가 짜증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사숙?”
“야, 사숙이고 나발이고 빨리 일어나.”
“예? 하지만 고기가.”
“귀찮은 노인 때문에 입맛이 떨어졌어. 딴 데로 가자.”
“…….”
진무의 행동에 노인, 아니 등여평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입맛이 떨어져? 귀찮아?
이런 싸가지 없는 도사 놈이.
등여평이 눈을 찌푸리며 화를 내려는데.
“이보오! 주인장.”
“예?”
“이 노인 때문에 귀찮아서 나가야겠소. 그러니 음식과 술은 취소해 주시오.”
“아, 아니, 도사님. 이미 요리를 하고 있는데.”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뭣하면 이 노인께 돈을 받던가.”
진무가 휘적휘적 나가 버리자 청상과 청우가 눈치를 보며 그 뒤를 따라갔다.
“허, 뭐 저런 놈이?”
등여평이 당장에 버릇을 고쳐 주려는데 주루의 주인이 그의 소매를 잡았다.
“은자 네 냥입니다.”
“…….”
“네 냥요.”
등여평은 문밖으로 사라지는 진무 일행과 주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 냥!”
뭘 네 냥씩이나. 것도 은으로…….
소라도 잡아 달라고 한 게냐?
부리부리한 눈으로 쏘아보았지만 물러섬 없는 주인의 눈빛에 등여평이 눈물을 머금고 품에서 전낭을 꺼냈다.
등여평을 놓고 주루를 나온 진무는 짜증스럽게 관도를 걸었다.
“이상한 어르신이네요. 싫다는데도 굳이 합석을 하자고 하셔서는.”
고기를 잔뜩 먹을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덩달아 기분이 상한 청우가 볼을 잔뜩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청우야. 실례니라. 어찌 어른께 그 같은 말을 한단 말이냐?”
“왜요? 사숙께서도 하시는데.”
“어허, 사숙께서 너와 같으냐?”
“치.”
청상이 나무라자 청우가 진무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하지만 딱히 청우를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청상은 몰라도 진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어른이고 말고를 떠나서 싫다는데 엉겨 붙는 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흠. 복장을 좀 바꿔야겠군. 성격대로 행동했다가는 스승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겠어.’
자신이 어찌 비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 눈 따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무당이 욕먹는 것까지도 전혀 상관없었지만, 스승이 욕먹는 것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분명 마음의 짐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청상, 청우.”
“예?”
“포목점으로 간다.”
“포목점이요?”
“그래. 편한 옷으로 한 벌 사야겠다.”
“예.”
청상은 여전히 진무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가, 하면 가고 와, 하면 올 만큼 충성스럽다.
“배고픈데…….”
청우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따른다.
저건 진짜 식충이도 아니고.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입맛을 버린 것은 자신 혼자였다.
무한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인솔자요, 보호자 신분이니 배불리 먹여 줄 수밖에.
* * *
다음 날.
허름한 객잔에서 겨우 방을 구해 잠을 청했던 진무와 청우는 지난 밤 포목점에서 산 검은 무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사숙.”
아침 일찍 배편을 확인하러 갔던 청상이 돌아왔다.
“배편이 없답니다. 그나마 있는 자리도 예약이 되어 있어서.”
“쳇.”
용봉회가 뭐가 그리 대수라고 배편이 없단 말인가?
청상과 청우를 서둘러 정무맹에 떨궈 놓고 오대도문을 찾아 떠나려던 여정에 차질이 생기자 짜증이 났다.
하루빨리 있을지 모를 양의심공 태극본을 구해 정사마를 발아래 꿇리고 덤으로 황제까지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이런 큰 행사가 열리면 돈을 들여서라도 배편을 추가로 마련해야지. 하여간 정파를 대표한다는 놈들이 일 처리하는 꼬라지하고는…….
“하루에 운항하는 배편이 두 척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척은 제갈세가에 전세를 내었고 또 한 척은 경유선(經由船)이라 들르는 곳이 많구요.”
진무는 청상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제갈세가에서 전세 낸 배야 그렇다고 해도.
“청상아, 청상아.”
“예?”
“혹시 웃돈을 얹어 줄 생각은 해 봤니?”
“정해진 뱃삯이 있는데 웃돈을 줘야 합니까?”
그래, 그렇겠지.
“혹시 상선 같은 걸 알아보거나 하진 않았겠지?”
“상선이요? 상선을 왜?”
역시 그렇겠지.
그러니 무당의 제자겠지.
하아, 이것들은 역시 사회성이 부족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편법을 동원해야 할 때가 있거늘, 어찌 이리도 융통성이 없단 말인가?
이 우매한 중생들을 위해서 직접 시범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에휴, 앓느니 죽지. 가자, 가.”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나자 청상과 청우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뒤따랐다.
막 그들이 여곽을 벗어나는데.
“이보게!”
“…….”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진무가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등여평.
거참, 대체 저놈은 엉겨 붙기를 왜 이리도 좋아한단 말인가?
“어제는 도포더니 오늘은 흔하디흔한 무복이구만? 혹시 도사 사칭, 뭐 그런 거였나? 그러기에는 가진 재주가 무당임이 확실한데.”
등여평이 턱을 쓸며 진무 일행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진무가 무시하면서 가려는데.
“거기 서라니까.”
등여평이 다짜고짜 손을 뻗어 왔다.
단순히 뻗은 것뿐이지만 고수의 손길에는 현기가 스미기 마련. 그의 손길에는 금나수의 묘리가 자연스럽게 담겨 있었다.
그런데.
“…….”
가볍게 일보를 물리는 것만으로 피해 버린 진무의 모습에 등여평이 허공을 움켜쥐고는 눈을 끔벅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시 한번.
휙, 휙.
마치 휘젓듯이 내질러지는 손이었지만 진무는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허! 이것 봐라?’
처음에는 그저 그의 걸음을 멈추기 위함이었으나 자꾸만 헛손질이 계속되자 괜한 오기가 생겼다.
‘어디…….’
등여평이 손가락을 묘하게 구부리려는 찰나.
“정말! 도대체 왜 그럽니까?”
“…….”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멈춘 진무의 눈빛에 등여평이 엉거주춤하게 멈춰 버렸다.
“아, 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잠시 고심하던 등여평이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그대로 외쳤다.
“왜라니, 당장 내놓게!”
“뭘요!”
“은자 네 냥!”
“…….”
“자네 때문에 내 얼마나 고초를 겪은 줄 아는가? 도대체 뭘 시켰길래 음식값이 네 냥이나 된단 말인가?”
“…….”
“어서 내놓게.”
대놓고 강짜를 부린다.
백로.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바름을 몸소 실천해 온 정파의 큰 어른인 그를 부르는 이름.
근데 뭐가 이리 쪼잔하단 말인가? 고작 은자 네 냥 가지고.
“더럽게 쪼잔하시기는.”
“뭣이? 이놈이 은자 네 냥이 얼마나 큰 돈인지 모른단 말이냐!”
알지.
모를 리가 있나.
“은 한 냥이면 쌀이 두 섬이다. 네 냥이면 쌀이 여덟 석이야. 이는 다시 말해 네 식구 가정이 넉 달은 족히 살 만한 양이거늘 뭐? 쪼잔해? 도대체 뭘 처먹으려 들었기에 주루에서 은자 네 냥씩이나 되는 요리를 주문한단 말이냐? 너에게는 도사로서의 양심도 없단 말이냐? 저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이 불쌍하지도 않단 말이냐? 그 돈으로 고기 요리를 먹기 전에 그들을 도와줄 생각 따위는 없었단 말이냐?”
“…….”
그래, 안다.
하지만 말이 길다.
남이 얼마를 주고 뭘 먹든 뭔 상관인지 모르겠다. 더욱이 불쌍한 사람을 돕네 마네.
그 고기 옆에 있는 청우가 다 먹는다고 말할까도 싶었지만 별로 상대하고 싶지가 않았다.
노인네들은 왜 다들 이리도 잔소리가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