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야.”
“켁, 케켁!”
상인이 숨도 못 쉬고 허공에 매달려 버둥거렸다.
그리고 진무의 번들거리는 눈동자.
“이거 뭐냐?”
“케에…… 눼?”
목이 잡힌 상인은 대답을 하기는커녕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털썩.
상인을 땅바닥에 던진 진무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뭐냐고.”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겁을 집어먹었다.
아니,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허리춤에 맨 검과 그의 눈빛, 단숨에 사람을 들어 올리는 악력.
무림인이다.
그들은 무법자였고 힘을 가진 자였다.
또한, 눈빛에 머금어진 기세는 아무리 완력이 세다 해도 일반인들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거 누가 이랬냐고?”
“그, 그건…… 저도 잘…….”
상인이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몰라?”
“……예.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한 놈이었는데, 아침에 왔더니.”
“…….”
진무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흑우를 사체로 만든 것의 정체.
‘채기법(採氣法).’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무공이었다.
타인의 기운을 빼앗아 자신의 내공으로 만들어 내는 무공.
그러한 것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마교에 이어진 흡성마공이었고, 그 외에도 채음보양술, 양기보충술 등의 아류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무림에서 손꼽히는 금단의 마공이었다. 익히는 순간 무림 공적이 되어 전 무림의 추격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그렇기에 마교도들밖에 익히지 않는다.
하지만 흑우의 사체에 남은 것은 그런 아류들과는 달랐다.
좀 더 근원적인 무공, 다시 말해 기본공인 채기법의 원형.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그것은 진무, 아니 혁련무강의 독문무공인 묵룡혼원공의 기초이기도 했다.
‘어떤 놈이…… 감히.’
진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가 알기로 채기법을 아는 자가 당금 무림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의 마지막 전수자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잘못 쓰면 마인으로 지탄받지만 자신의 경우에는 그것으로 기초를 닦아 사패천주가 되었고, 중원 무림에서 절대의 이름으로 군림했었다.
하지만 채기법을 익히는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절대로 흡정 대상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부의 유지이자 금기였고, 또한 채기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대상을 채기법으로 죽음에 몰아넣는 순간 사기(死氣)가 체내에 쌓이게 되고, 중첩될수록 심각한 부작용이 찾아오게 된다.
이른바 갈증과 소멸.
사기, 즉 죽음의 기운이 일정 이상 쌓이게 되면 마성에 빠지게 된다. 채기법이 야기하는 살인에 대한 충동을 억누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맨정신으로는 절대로 버틸 수가 없다. 술이든 약이든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셔야만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육체는 계속해서 피폐해져 가고, 종래에는 목내이처럼 말라비틀어져 모든 것이 소멸된다. 강제로 얻은 내공이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소의 사체.
죽였다.
채기법으로 죽였으니 놈도 부작용을 앓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필시.
‘살수겠지.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직업 중에 그만한 것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마도 지독한 주정뱅이.’
진무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나만 묻자.”
“예?”
“몇 번이냐?”
“……뭐가요?”
“짐승 새끼들이 이런 상태가 된 것이.”
“에…… 한 열 번쯤?”
“얼마에 한 번씩?”
“그건 대중없습니다요.”
“…….”
진무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상인은 호위를 고용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그 많은 우리를 모두 지키자면 몇 명이 될지도 몰랐고, 그 돈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상인의 사정이었다.
진무에게 중요한 것은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채기법을 아는 놈이 근처에 있다는 뜻.
그리고 그놈은 분명 자신, 혹은 자신의 스승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놈은 금기를 어겼다.
‘그렇단 말이지.’
진무의 눈동자에 싸늘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툭!
우칠이 전낭을 놓고 갔다.
백표가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살행이 있은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
백표에게 전해지는 청부는 잦지 않았다.
대상은 언제나 뛰어난 무인.
뭐 상관없다.
그는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살인(殺人) 그 자체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의 짜릿함. 그것이 좋았다.
피 냄새는 언제나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크크크.”
백표는 또다시 피 맛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묘하게 웃으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백표는 살행에 나가기 위해 우시장 우리를 찾아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걸음이었다.
한 번의 살행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기를 뽑아내기 위함이다.
많아서는 안 된다. 사건이 될 수 있으니까.
사건이 되어 이목이 집중되면 동정호를 떠나야만 했다.
자신을 쫓고 있는 자들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저벅, 스윽. 저벅. 스윽.
짐승들은 고요 속에 울음을 멈췄고, 백표는 천천히 우리를 향해 다가갔다.
뿌드득.
기를 빨아낼 때 가축들의 뼈마디가 내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흥미로웠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똑같은 하루였다.
그런데.
“야!”
“……?”
누군가 그를 불렀다.
의아하다. 이 시간에 이곳에 사람이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다.
백표의 시선이 향한 곳에 검은 무복을 입고 팔짱을 낀 사내가 보였다.
“응? 누구?”
“…….”
“흠, 봤구나.”
두 마리째의 짐승에게서 기운을 뽑아내 헐렁한 옷이 꽉 맞게 된 백표가 싱긋이 웃었다.
“그럼 죽어야지.”
웃음이 사라지는 순간 백표의 발이 가볍게 뻗어졌다.
파앙!
그리고 깔끔하게 그어지는 일격.
땅!
“……!”
백표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겨났다.
달라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일상이.
그리고 백표의 칼을 쳐 낸 흑의 무복의 사내, 진무가 싸늘하게 말했다.
“너 뭐냐?”
“…….”
목을 베고 지나갔어야 했다.
늘 그랬듯이.
찌-잉.
손에 쥐어진 네모반듯한 요리용 칼.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백표는 칼에서 거둔 시선을 곧바로 쳐들며 진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허리 뒤쪽에 매어진 검은 뽑히지도 않았고, 팔짱은 풀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막았지?
진무를 노려보던 백표가 고개를 저었다.
‘우연이겠지.’
백표는 떨림이 멈춘 직사각의 도를 손안에서 회전시켜 움켜쥐었다.
그리고 매섭게 진무를 노려보았다.
두 번의 우연은 없다.
지금까지 그런 놈은 없었다.
즉, 놈은…… 죽는다.
파학!
이전보다 거칠게 밟아진 걸음에 보다 강한 힘이 실렸다.
흙이 파헤쳐졌다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백표의 신형이 지면을 스치며 달렸다.
촤촤촤촤!
차가운 공기가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해 백표의 얼굴에 부딪히고, 머리칼은 뒤로 쭉 뻗은 것처럼 일자로 섰다.
취릭! 따앙!
자신의 도가 튕겨지는 순간 백표는 정확하게 보았다.
검이 아니다.
파리 쫓듯이 휘두른 손. 마치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표정.
그런데 이 살기는 뭐란 말인가?
진무의 몸에 둘러진 거대한 기운이 전신을 바늘처럼 찔러 왔다.
죽음? 더 들어가면 죽는다.
백표는 곧바로 방향을 꺾으며 진무를 비껴 스치며 훌쩍 물러났다.
“너…… 뭐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크게 뜨여졌던 눈을 깜빡이며 경계하듯이 칼을 역수로 움켜쥔 모습을 진무가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야. 넌 뭐냐? 어떻게 채기법을 알고 있지?”
“채기……법?”
살기로 물든 백표의 눈동자에 한 줄기 의아함이 스친다.
채기법이 뭔지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눈앞의 사내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스윽.
백표의 기세가 날카롭게 피어오른다.
눈앞의 상대. 살법(殺法)으로 상대할 만한 자가 아니다.
살수들의 방법은 정면 대결에 좋지 못하다. 상대의 허점을 노려 단숨에 목숨을 끊는 것에 치중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빠를 뿐이다.
“큭큭큭, 너 제법 재미있다.”
“…….”
백표가 싸늘한 표정으로 혀로 입술을 쓸었다.
“자, 이제 죽여 줄게.”
“…….”
자세를 취하는 백표를 진무는 물끄러미 응시했다.
모자란 새끼.
그의 칼이 예리하다는 것은 알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의 격돌에서 알았어야 했다. 그는 지금 진무의 실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상대의 실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
채기법을 남용한 부작용이다. 사기가 머리까지 치고 올라가 미친 것이다.
그는 서서히 마인이 되어 가고 있다.
점차 살육에 미쳐 사리 분간을 못 하게 될 것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를 갈구하게 될 것이다.
종래에는 마도의 무인들이 그렇듯 사람의 기운을 빨아먹게 될지도 몰랐다.
자신이 죽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파앙!
백표가 지면을 밟고 진무를 향해 몸을 날려 왔다.
슥! 스스스슥!
“크핫핫! 죽어라! 죽어!”
광기에 휩싸인 눈동자로 미친 듯이 도를 휘둘러 대는 백표의 모습에 진무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피하기만 했다.
백표의 도가 가진 공간 안에서 최소의 움직임만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칼날에 스민 예기가 그의 옷자락을 베어 내고 있었지만 진무는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오히려 발을 내디뎌 더욱 몸을 밀착했다.
바로 보기 위함이었다.
백표의 도법은 무척이나 뛰어나다. 길이로 따지면 단도보다 조금 긴 정도였다. 그것을 손안에서 이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내공을 제외하고 쓰임 하나만 따지면 청상보다 훨씬 윗줄에 있었다.
노리는 곳 하나하나가 일격에 상대의 목숨을 끊을 정도로 뛰어난 살초였다.
‘핏줄을 노리는 건가?’
백표의 칼이 노리는 곳.
칼날의 스침이 공기를 가르고, 한발 물리며 허리를 젖힌 진무의 가슴께로 칼날이 지나간다.
뛰어나다.
그의 칼은 둔탁한 모양을 했을지언정 그 어느 것보다 예리하다.
스스스슷.
더구나 공기의 결을 타고 있다. 그렇기에 빠르고, 공수 전환이 자유로웠다.
분명 엄청난 수련을 쌓아 온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익혔다 해도 칼이 흐름을 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칼의 움직임만으로 보면 살수로 쓰이기에는 너무 아까울 지경이었다.
진무는 고민했다.
어찌할까? 죽여야 하는가?
하지만 놈이 어째서 채기법을 알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렇기에 공격을 하지 않았다.
만약 죽일 생각이었다면 시작과 동시에 끝났을 싸움이었다.
“크하하하!”
초식이 이어질수록 백표의 광기가 더욱 짙어졌다.
위험하다.
앞으로 최소 열 번. 그가 채기법을 사용해 계속해서 사기를 모은다면 그 안에 그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칠 것이다.
사람이 아닌 살육에 미친 짐승이 된다.
취리릭!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 때문이었을까? 진무의 움직임에 머뭇거림이 생겼고, 백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칼을 그었다.
따아앙!
“……!”
분명 정확히 그었다.
그런데 거친 쇳소리와 함께 칼이 멈췄다.
그리고 칼날이 진무의 오른손에 잡혀 있었다.
“제길, 호기심이 이겼다.”
“……?”
백표의 눈동자에 피식 웃는 진무의 미소가 그려졌다.
쨍!
그리고 도가 부서졌다. 진무의 손아귀에 어린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너, 일단은 살려 주마. 어떤 놈인지 확실하게 파악될 때까지.”
“……!”
진무의 미소가 짙어지는 순간.
뻐억!
진무의 왼손이 백표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꺽……!”
튀어나올 듯 커진 눈.
백표는 단 한 방의 주먹에 새우처럼 허리를 꺾었다.
그리고 칼을 부숴 버린 오른 주먹이 횡으로 휘어지며 비틀려 날아왔다.
복부를 맞은 충격이 너무도 컸음인지 백표는 눈으로 보면서도 그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콰직!
주먹이 턱을 강타했다.
고개가 꺾이듯이 옆으로 돌아가 버린 백표의 정신이 남아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털썩.
백표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진무가 그의 뒷덜미를 잡아 들었다.
“동정호에 조금 더 머물러야 될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