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내가 이곳의 대장이오 (2)
저항군의 대장은 자신을 일광이라 소개했다.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유진산은 지금까지 이렇게 거대하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패도문의 백규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였다.
‘세상에나. 심장이 약한 사람은 얼굴만 봐도 발작하겠구만.’
하지만 무섭게 생긴 인상과는 달리 그의 성격은 무척 호탕했다.
조금 더 겪어봐야 알겠지만, 첫인상은 믿을만한 인물로 보였다.
“나는 무림에서 양괴라 불리고 있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대협.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일단 본부로 가서 얘기를 나눠봅시다.”
유진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의 제안이 다소 황당했기 때문이다.
“처음 본 나를 어찌 믿고 바로 본부로 데려간다는 말이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다.
어디서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조차도 말이다.
“믿으면 어떻고, 안 믿으면 어떻소? 뭐, 가서 얘기하다 보면 차차 알게 되지 않겠소.”
그만큼 방비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리라. 다른 마음을 품고 왔다면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일광이란 자가 앞장을 섰고, 유진산과 임평일이 그를 뒤따랐다.
우람하고 다부진 일광의 뒷모습은 마치 태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그러한 거구로 깃털 같은 경공을 펼치는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게다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세와 위압감은 가히 무림의 십대고수에 비견될 정도였다.
‘이토록 대단한 고수가 어찌하여 이 섬에 숨어 있단 말인가.’
일광 정도라면 무림에서도 적수를 찾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지금껏 자신이 반로환동한 노인임을 한 번에 알아본 자는 파계승 정혜뿐이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기세가 지금 일광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가장 의문인 점은 이토록 강한 인물이 숨어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방벽 안에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 있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잘못 걸린 것 같구나. 쉽지 않겠어.’
남부무림을 피로 물들인 수전왕 전사룡.
이 잔악한 놈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일광을 따라 나아가던 유진산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변 지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기문진이 펼쳐져 있는 것인가?’
기문진(奇門陣)이 무엇인가. 사물을 이용하여 설치하는 일종의 결계로, 안에 갇히게 되면 환영을 보게 되거나 방향감각을 잃게 된다.
의식하고 살펴보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의 놀라움은 더해갔다.
매복과 함정 등 물샐틈없는 방비 태세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침입한다면 화경이라도 살아서는 못 나가겠군.’
잠시 후 일광의 걸음이 멈추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전면으로 수풀에 감춰진 구멍이 보였다.
“자, 바로 이곳이오. 먼저 들어갈 테니, 따라 들어오소.”
말을 마친 그가 도약하여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산도 묵묵히 몸을 날렸다.
타앗-!
용암동굴의 내부에 진입한 유진산은 적지 않게 놀랐다.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무척 넓고 쾌적했기 때문이다.
천장의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바닥의 곳곳에는 물이 고여있었다.
최소한 식수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게다가 무덥고 끈적한 바깥 기후와는 달리, 동굴 안의 기온은 무척 서늘했다.
‘우리 설이가 오면 시원하다고 좋아하겠구나.’
유진산은 손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옆에서 임평일이 보폭을 맞추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큰 동굴은 처음 보는군. 답답하지 않아서 좋아.”
“곧 있으면 더 놀라실 겁니다. 내부를 좀 확장했거든요.”
그의 말대로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다.
깊은 통로를 중심으로 개미굴처럼 수많은 방이 만들어져 있었으며, 용도도 다양했다.
검을 움켜쥔 채 수련을 하는 무사들. 그리고 빨래나 음식을 준비하는 여인들까지.
심지어는 가축들도 보였다.
동굴만 아니라면 흡사 마을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일광을 마주하는 모두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십니까, 대장님!”
“순찰 다녀오신 겁니까?”
“하하! 별일 없으셨죠?”
험악한 인상과는 달리 일광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인기가 대단했다.
앞장서서 걷던 그가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래, 다들 수고가 많아!”
지금 손녀가 지키고 있는 은신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바깥세상만큼은 아닐 테지만,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모두의 얼굴에도 여유가 넘쳤다.
그러니 임평일이 은신처의 주민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어 할 수밖에.
백여 장쯤을 더 전진하고 나서야 일광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곳이 우리가 작전을 지휘하는 곳이오. 자, 들어갑시다.”
중앙통로 옆에 자리한 또 하나의 작은 통로였다. 그 안에 확장하여 만든 방이 하나 있었다.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석탁과 의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외모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앞장서서 진입한 일광이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소리쳤다.
“마누라, 우리가 누굴 모셔왔는지 한번 봐봐! 육지에서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슬쩍 숙여 보였다.
“총관직을 맡고 있는 연초희라고 합니다.”
“양괴라 하오.”
서로가 간략히 소개를 마치자, 일광이 씩 웃으며 좌우로 손짓을 보냈다.
“자, 일단 다들 앉아서 좀 들어봅시다. 양괴 대협 같은 고수분께서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오셨는지.”
유진산의 옆에는 임평일이 앉았으며, 맞은편엔 일광과 그의 부인인 연초희가 앉았다.
굳이 이곳에 온 목적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남부무림에서 가장 강한 고수가 이 섬에 있다고 들었소. 천하제일이 누구인지 가려보기 위해서 왔소.”
일광이 뱁새 같은 눈을 가늘게 뜨며,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설마 저 위에 있는 놈을 말하는 거요?”
“그렇소. 수전왕 전사룡.”
일광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대협을 무시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소. 돌려서 말하는 성격도 못되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잠시 뜸을 들이던 일광이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전사룡과 대결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그놈은 사람 새끼가 아니었으니까.”
“그와 싸워본 경험이 있소?”
지금껏 전사룡의 일 합을 받아낸 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만약 예상대로라면 눈앞의 일광이 유일한 인물이리라.
어떤 사연이 있는지 유진산도 궁금해졌다.
“싸웠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고…… 도망친 적은 한 번 있었소.”
말을 마친 일광이 누더기 같은 자신의 상의를 탈의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상체를 살펴보던 유진산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가 놀란 이유는 흉악한 근육 때문이 아니었다.
일광의 오른쪽 가슴에 각인된 붉은 손바닥 자국 때문이었다.
꽤 오래된 상처로 보였지만, 아직도 피부가 회복되지 못한 모습이었다.
“당시에 입은 상처인데, 지금까지 이 모양이라오.”
“도대체 무슨 무공에 당한 것이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짐작되는 무공이 없었다.
마공에 가깝긴 했으나, 그것 또한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오. 내가 보기에 놈이 펼치는 무공은 중원의 것들이 아닌 듯했소.”
놈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광이 겨우 도망쳐 나왔다는 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음.”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일광이 은근슬쩍 제안해왔다.
“혼자서는 무리일 테니, 우리와 함께 상대합시다. 놈을 잡는 데 힘을 보태주겠소.”
가만히 듣던 유진산은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무조건 일대일로 싸워야만 의미가 있소. 그래야만 지존이 될 자격이 있으니까.”
일광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의지는 잘 알겠지만, 방금 얘기해주지 않았소. 대협하고 내가 같이 덤벼도 놈을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 거요.”
그러나 그는 유진산의 말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싸운다고 얘기한 적이 없소.”
“그게 무슨 말씀이오?”
일광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임평일이 유진산을 대신해 설명해 주었다.
“대장. 이곳엔 양괴 대협 혼자 오신 게 아닙니다.”
“그럼 동료가 있으시다고?”
“예. 음괴 대협이 함께 오셨는데, 지금 항암사 쪽의 은신처를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유진산의 합류만으로도 세상을 전부 가진 것 같았던 일광이었다.
든든한 아군이 한 명 더 있다는 소식에 그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는 듯했다.
“그게 정말인가, 임 형제? 음괴 대협도 양괴 대협만큼이나 강하다는 말이겠지?”
“적사 셋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걸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그 순간 일광이 자리를 박차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어깨를 들썩들썩하며 춤을 췄다.
“하하하! 으하하하! 드디어 우리에게도 희망이 보이는구려!”
“대, 대장.”
임평일이 말렸음에도 그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부인인 연초희가 눈치를 주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이, 이거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추태를 부렸소.”
대장이란 자가 이토록 무식하고, 순수한 인물이었을 줄이야.
아마도 그는 무력을 담당하고, 조직의 관리는 그의 부인이 도맡고 있을 듯했다.
어쨌거나 유진산도 솔직하고 털털한 일광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우선 놈들을 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소만.”
은신처를 지키고 있는 손녀와 합류하는 게 첫 번째였다.
유설의 성격상 지금 이 순간에도 길목을 차단하고 꿈쩍도 하고 있지 않을 터였다.
그때 지켜보던 임평일이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서쪽의 은신처를 이곳으로 합류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묵묵히 지켜보던 연초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도 고민하던 부분이었지만, 중간지점에 적들의 전초기지가 생기는 바람에 시도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유진산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에 보았소. 하지만 방법이야 만들면 그뿐이지 않소.”
“혹시 고견이 있으신지요?”
이곳까지 오면서 계속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그의 시선이 중앙에 자리한 석탁의 윗부분을 향했다.
단순한 석탁이 아니었다. 거기엔 은신처를 포함하여 섬의 지도가 새겨져 있었다.
“은신처의 모든 주민이 한 번에 신속히 이동해야 하오.”
“맞습니다. 우리의 의도가 발각된다면, 경계가 더욱 강화될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유진산은 지도에 표시된 은신처와 본부를 검지로 연결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걸음으로는 이곳까지 반나절이 소요되오. 그 어떠한 방법이라도 그렇게 오랜 시간 온전히 행렬을 지킬 수는 없을 것이오.”
“어느 정도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씀인지요?”
유진산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발 빠른 무사들이 업고 뛰어야 한다는 말이오. 들것을 제작한다면 적은 인원으로도 많은 수를 옮길 수가 있을 것이오.”
“그러자면 그만큼 호위 병력이 줄어들 텐데, 전초기지를 돌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그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은 유진산이 아니었다.
그의 검지가 석탁에 표시된 적들의 전초기지를 가리켰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소. 일광 대장이 이 근방의 고수들을 한곳으로 유인해주시오. 대장이 홀로 나타난다면 기를 쓰고 쫓아올 것이오.”
일광은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연초희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혼자서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그곳의 전력이 파악되질 않았습니다.”
“그리 위험할 것은 없소. 한곳으로 모아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얼마나 많은 고수가 쫓아오든 음괴가 놈들을 모두 제압할 것이오.”
“……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유진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어서 다음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