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우리 친구 할까요 (1)
“이건 뭐예요?”
역시나 다른 건 몰라도 선물은 참지 못하는 손녀였다.
무당파의 원로가 가져온 보따리가 몹시 궁금한 모양이었다.
“별거 아닙니다. 음양쌍괴 대협들께 드리는 무당파의 작은 마음입니다.”
보따리를 받아든 유설은 쪼그려 앉아 냉큼 풀어보기 시작했다.
안에는 분홍색과 검은색 경장이 각 한 벌씩 들어있었다.
지금껏 만져 본 적이 없었던 부드러운 비단 원단이었으며, 크기도 얼추 신체에 딱 맞을 듯했다.
그리고 어깨 부근에는 각각 음(陰)과 양(陽)을 상징하는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도대체 무당파가 언제 이런 것을 준비했단 말인가? 누구의 솜씨인지 명인이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우와. 우리 거예요? 고마워요, 할아버지!”
예쁜 옷을 선물 받은 유설은 입이 귓가에 걸렸다.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우리 무당에서 가장 손재주가 뛰어난 무영 장로가 제자들과 함께 직접 제작한 것입니다.”
무당파에서 옷을 손수 제작하여 음양쌍괴에게 선물한 것이다. 강호인들이 알면 무당파의 정체성에 대하여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도대체 천공검이 무당파에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 정도까지 한단 말인가? 지켜보던 유진산도 의아할 정도의 지극정성이었다.
그때였다. 주섬주섬 옷을 담던 유설이 의심의 눈초리로 광천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 천공검은 돌려줄 수 없어요!”
역시나 수지타산이 확실한 손녀였다.
천하의 명검을 겨우 옷 두 벌과 교환할 수는 없는 법.
최고원로인 광천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반응이었다. 아니, 오히려 작은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태극패 하나를 회수하는 데에 무당파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었던가. 고작 이 정도로 음괴에게서 다른 뭔가를 얻는다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정말 대가 없이 가져온 마음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시고 받아주십시오.”
“그래요? 할아버지가 받아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받는 거예요.”
말과는 달리 이미 유설은 보따리를 자신의 어깨에 단단히 묶은 이후였다.
지켜보던 유진산이 웃음을 참으며 앞으로 나섰다.
“헌데 무당의 어른께서 이것만 전해주고자 직접 오진 않으셨을 테고. 다른 용건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지요.”
광천의 속내를 알고 있었기에, 그의 방문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은거해서 쉬어야 할 노인네가 홀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자신의 옛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릉 사형을 살펴보러 왔소이다. 음괴 대협을 따라다닌 이후로 살기가 옅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유설이 다리 사이에 끼고 있던 천공검을 쓱 올려 보이며 말했다.
“이 천공검 때문이에요.”
“역시나 그 검이 사형의 정신을 치유하는 데에 효과가 있는 모양입니다.”
광천도 이미 어떤 상황인지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연무장에서 있었던 소란스러움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음괴가 앞서서 전해준 말이 있었다.
천공검이 가진 양의 기운이 더해져야만, 태극심검이 완벽한 음양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가 광릉진인에게 영향을 준 것을 눈치챈 것이다.
“잠깐 빌려줄까요?”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잠시 빌려주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광천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당장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희로서는 천공검으로 광릉 사형을 치유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 할 수 없죠, 뭐.”
유설은 마침 잘되었다는 듯 천공검을 바로 회수했다.
그러자 광천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광릉 사형은 소싯적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조사님의 유지를 받드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무당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던질 각오까지 되신 분이셨지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진산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유설이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런데 욕심은 조금 많았나 봐요. 천공검도 없이 태극심검을 연마했잖아요.”
당시의 광릉진인도 부작용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가 어찌하여 그렇게 성급한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할 수밖에.
뭔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과거 사형은 풍뢰벽에 박힌 천공검을 뽑고자,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결국엔 모두 실패했지만…….”
무심히 듣던 유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랬대요? 나는 그냥 뽑히던데요?”
“흠흠. 사실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나 단단히 박힌 것이 어째서 그렇게 쉽게 뽑혔을지…….”
“그건 제대로 힘을 안 줘서 그렇죠.”
광천은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지켜본 음괴의 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으니까.
어찌 되었든 지금 상황에서 그러한 이유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무당파의 최고원로인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아무튼, 저희 무당의 장삼봉 조사께서는 천공검을 뽑는 자가 천하를 구할 것이라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두의 운명이 음괴 대협께 달린 것이지요.”
들어보면 누구나 가슴이 뜨거워질 법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영웅 놀이는 유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왜 나한테 그래요. 귀찮게~”
반응이 미지근했기 때문일까? 광천은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 그 말은 앞으로 무당파는 음괴 대협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신물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무당은 무림맹 편이잖아요. 그리고 저번에도 날 뒤에서 때리려고 했잖아요!?”
굳이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잊지 않고 있었다. 천공검을 뽑은 자신을 장문인과 원로들이 함께 공격하려 했던 것을.
유설의 당돌함에 광천은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당시는 우리도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자세만 잡았던 것입니다. 공격하려던 마음까지는 없었습니다.”
“정말이에요?”
“무슨 연유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우린 앞으로 무림맹보다 음양쌍괴와의 우정을 더 중시할 것입니다.”
유설도 그 말뜻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광천의 말은 곧 무림맹보다 무당파의 이익을 더 중시하겠다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믿을 수 있는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유설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흠.”
최근 무당파와 부쩍 친해지긴 했지만, 우정을 논할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광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자, 그가 조심스럽게 설득을 이어갔다.
“만약 광릉 사형이 정신을 차린다면, 어떤 경우에도 조사님의 뜻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광릉진인을 치유해준다면, 장삼봉의 예언대로 음괴를 따를 것이란 얘기였다.
이제야 본론을 꺼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때 묵묵히 지켜보던 유진산이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그것을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소이다.”
광천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옅게 서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음괴 대협이라면 가능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너무나도 위험하고, 고된 일이기 때문이오. 원로께서는 내 공격을 얼마나 막아낼 자신이 있소?”
“그건…….”
“오십 합? 삼백 합? 어쩌면 수만 번의 공격을 받아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태극심검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심득을 얻을 때까지 공격을 막아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 번의 실수라도 생긴다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었다.
광천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점차 시무룩해졌다.
“아무래도 내 욕심에……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리려 했던 것 같소이다.”.
차마 목숨을 걸고 도와달라고까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유감이지만,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주시오.”
광천은 우두커니 서 있는 광릉진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곧이어 눈시울이 붉어진 광천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사형에게 미안하다고 속으로 되뇌고 있을 터였다.
지켜보던 유설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울어요. 할아버지.”
“허허, 이것 참. 나도 늙었나 봅니다. 이런 주책을 부리다니.”
분명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물기가 가득한 두 눈엔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사형이랑 친했어요?”
광천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말했다.
“광릉 사형은 광자배의 대사형으로서 저를 가장 아껴주셨지요. 오십 년 만에 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너무 마음만 앞서나갔던 것 같소.”
이 순간만큼은 조금의 사심도 없는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조금 약해진 조손은 전음으로 뭔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 할배. 그냥 우리가 한번 도와줄까?
– 저 노인네가 불쌍한 모양이로구나. 헌데 위험하지 않겠느냐.
– 그냥 조금 힘들기만 하지, 위험할 정도는 아니야.
같은 현경이라도 높고 낮음이 있는 법.
불안정한 상태의 광릉진인은 해릉도의 전사룡이나 절강성의 풍운자보다도 강하지 못했다.
태극심검이 완성된다면 모를까. 지금 상태로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손녀의 자신감을 확인한 유진산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 그럼 네가 판단해서 결정하거라.
이 또한 손녀를 무림의 지존으로 키우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유진산이 뒤에서 지켜보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곧이어 유설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할아버지. 그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해줄 수는 있어요.”
긍정적으로 바뀐 음괴의 말투에 광천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하지만 그냥은 안 돼요.”
광자배의 대사형. 장삼봉 이후 가장 뛰어난 무당의 전설적인 고수이자, 현 무당파의 최고 배분인 광릉진인을 깨우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사형제가 아니던가.
그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는 광천이었다.
“원하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우리도 뭔가 안전장치는 있어야 하잖아요? 나중에 맹주랑 같이 날 때리려고 하면 어떡해요? 먼저 신뢰를 보여줘야죠.”
유진산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손녀를 기특하다는 듯 지켜보았다.
만약 일이 틀어져서 두 명의 현경이 공격해 들어온다면? 매우 피곤한 일이 발생할 터였으니까.
그리고 맞은편에 선 광천은 깊은 고뇌에 빠진 듯했다.
“아아…….”
곧이어 그의 얼굴이 뭔가를 결심한 듯 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돌연 광천의 무릎이 굽혀지기 시작했다. 음괴의 앞에 무릎을 꿇으려는 것이다.
유진산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몹시 당황했다.
현 무당파의 최고원로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곧 문파가 머리를 숙이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무릎이 바닥에 닿기 전. 유설의 왼손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자취를 감췄다.
터업-!
유설의 손아귀가 그의 팔을 붙잡는 소리였다.
“우리랑 사귀고 싶다면서요? 친구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의 마음이면 되었어요.”
“……음, 음괴 대협?”
광천은 감정이 격해진 듯 동공이 흔들렸다.
그 모습에 유설이 어색함을 달래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히히. 나는 친구만 필요하지, 부하는 필요 없거든요.”
광천은 이 순간 음괴와 서로 진심이 통했음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주름진 그의 눈가가 진동을 일으키더니, 그곳에서 물방울 하나가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그는 뭔가를 다짐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 광천의 이름과 명예. 그리고 모든 것을 걸고 하늘에 맹세하오. 지금부터 음양쌍괴의 적은 곧 나의 적이외다.”
이 순간 유진산은 확신했다.
아직 무당파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광천의 마음을 얻는 것은 성공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