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명가의 자존심 (1)
묘화방 내 방주의 처소.
백요란은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방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으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초췌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은 겉모습일 뿐. 내면에는 생명의 기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천년설년화의 정기를 흡수했으니,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겠구나.’
음양쌍괴가 의뢰 물품을 늦지 않게 가져와 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생명만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정기가 단전에서 요동치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곧이어 전신의 혈도를 순회하더니, 신체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온몸의 뼈가 뒤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백요란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 늦은 나이에 환골탈태라니……. 늙고 쇠약한 내 신체가 이 과정을 버텨낼 수가 있을까?’
그녀의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신비로움이 가득한 인간의 육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변화를 일으켰으니까.
뱀이 허물을 벗어내듯 전신의 피부가 끝없이 벗겨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듯한 급격한 신체 변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설마 나도 산이 오라버니처럼 반로환동을!?’
가벼워진 신체 감각과 힘차게 요동치는 심장 박동.
전성기 때의 혈기를 넘어서는 젊음이 모든 세포에서 느껴졌다.
문제는 이 변화가 언제까지 계속 진행되느냐였다.
‘기왕이면 딱 오십 년만 젊어졌으면 좋겠구나.’
곧이어 전신의 혈도를 맴돌던 천년설년화의 기운이 점차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반로환동의 끝자락에 다가온 것이리라.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감겨있던 백요란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이게 내 모습인가?’
아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에 볼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백옥같이 고운 양손과 촉촉함이 감도는 가냘픈 손목은 확실히 보였다.
이 정도의 신체라면 얼추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사이일 터.
이 상태에서 반로환동이 끝난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는가.
젊음을 되찾은 백요란은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돌연 그녀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하악!”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돌연 단전으로 엄청난 기운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 뭐지? 이 무지막지한 기운은?’
분명 천년설년화의 기운은 거의 소멸한 상태였다.
지금 새로이 몸 안에서 요동치는 진기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성질이었다.
그것은 마치 따듯한 불가의 기운과도 같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그 기운으로 인해 멈출 것 같았던 반로환동이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다.
‘멈, 멈춰!’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낮아지는 눈높이.
그리고 조금씩 가늘어지는 팔뚝까지.
이러한 변화가 뭘 의미하는지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창 성장할 나이 때의 신체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거짓말처럼 반로환동이 멈추었다. 몸 안에서 요동치던 기운이 단번에 증발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끝난 그녀의 입에서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내가 꼬마가 되었다고?”
* * *
묘화방이 있는 곳에서 삼십여 리가 떨어진 공터.
유진산은 그곳에 쪼그려 앉아서 나뭇가지로 바닥을 휘젓고 있었다.
손녀를 기다리느라 심심한 모양이었다.
“다녀왔어, 할배!”
먼 곳에서 손녀가 뒷짐을 진 채 폴짝폴짝 뛰어오고 있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느냐?”
“할머니 엄청 예뻐졌어. 궁금하지?”
“궁금하긴, 뭘…….”
유진산은 말끝을 흐리며, 한 손을 슬쩍 휘저었다.
그런 그의 팔을 유설이 슬쩍 잡아끌었다.
“가서 한번 보고 와. 반로환동을 해서 예쁜 소녀가 되었다구.”
“됐, 됐다니까. 아마 지금쯤 정신이 없을 게다.”
자신도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아마도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터.
그가 거절하자 유설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 다른 할배가 뺏어가도 난 몰라~”
유진산은 한숨을 내쉬며, 기린을 꿰어놓은 쌍룡창의 한쪽을 움켜쥐었다.
“할애비 그만 놀리고, 어서 갑옷이나 만들러 가자꾸나.”
“석가장으로 갈 거지?”
산서성에 있는 석가장은 남궁세가의 대공자가 추천해준 곳이었다.
무림의 팔대 기보 중 하나인 파황갑옷을 제작한 가문으로, 필시 대단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을 터.
우선 그곳으로 가봐야 했다.
“오냐. 부지런히 달리면 내일 아침까진 도착하겠구나.”
* * *
석가장은 수백 년에 걸쳐 갑옷 제작기술을 익혀온 명가이다.
그러나 강호에는 그 명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갑옷을 만드는 개수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특등급의 보갑이 아니면 의뢰를 받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크윽! 술맛 좋다!”
백의 장삼에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식탁에 앉아 입을 닦고 있었다.
취기가 잔뜩 오른 그는 석가장의 가주인 석문혁이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서 행색이 비슷한 중년인이 술잔을 채워주고 있었다.
“아버지. 이제 고집 그만 부리시고, 칠검산장의 의뢰를 받으시지요. 일등품의 갑주로 들어온 주문이 무려 백 벌입니다.”
석문혁은 술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다시 탁상 위에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탁-!
“우리 석가장은 쓰레기 따위 만들지 않아!”
“자존심 지키려다가 전부 굶어 죽겠습니다. 전란도 끝난 요즘 시대에 누가 특등품의 갑주를 의뢰합니까? 그냥 한 단계만 낮추자는 말이에요.”
“그 한 단계를 낮추는 순간부터 우리 석가장은 더 이상 명가가 아니야.”
그의 아들은 답답한지 가슴을 두들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벌써 석 달째 손가락만 빨고 있잖습니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데, 천하명가가 다 무슨 소용이에요?”
“아니, 그래도 이놈이? 헛소리 말고 술이나 따라. 기다리면 언젠가 우리 실력을 알아봐 주는 자들이 나타날 게다.”
무림인들은 갑옷을 거의 입지 않기에 주요 고객층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석가장이 가장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는 전란의 시기였다.
군부의 장군들이 입을 갑주부터 황제의 진상품까지 모두 도맡아서 제작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평화로운 시기가 계속되는 지금은 아사 직전이었다.
답답한 마음과 함께 고요한 정적이 흐르던 그때.
벌컥-!
돌연 문이 활짝 열리며, 젊은 장한 한 명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가, 가주 어르신. 잠시 나오셔야겠습니다. 손님이 오셨어요.”
“칠검산장? 의뢰 안 받는다고 했을 텐데.”
“칠검산장이 아닙니다. 무림의 음양쌍괴라는 자들이에요.”
고개를 갸우뚱하던 석문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음양…… 누구!? 설마 무림맹주랑 대결한다는 그 음괴?”
“예, 음괴 님도 같이 오셨습니다. 직접 재료를 공수해왔으니, 천하제일의 갑주를 만들어 달라는데요.”
그 순간 석문혁의 전신에서 취기가 전부 사라졌다. 내공으로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어서 안내하거라.”
천하의 명인들에게 내공 수련은 필수였다.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명품을 만들려면, 체력과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석문혁 또한 일평생 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내가고수였다.
“예, 어르신. 이쪽입니다.”
석문혁은 아들과 함께 그를 뒤따라 나갔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헌데 그들이 재료를 공수해왔다니? 뭘 가져왔단 말이더냐.”
“저도 처음 봤는데, 기린이라고 합니다.”
“기린이라니? 무슨 기린?”
“아무래도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차마 설명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앞마당의 공방에 도착한 석문혁은 화들짝 놀랐다.
“저, 저게 뭐야?”
웬 괴상한 생명체가 마당에 떡 하니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뿔이 달린 용의 머리에 비늘로 뒤덮인 네발짐승.
고대에 그려진 벽화에서나 볼 법한 흉악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얼굴에 큰 눈을 지닌 아리따운 소녀가 방긋 웃고 있었다.
“반가워요, 할아버지.”
“음, 음괴……?”
“남궁현 아저씨한테 소개받고 왔어요. 여기가 갑옷 만드는 기술로는 제일이라면서요?”
석문혁의 아들이 다가와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남궁세가의 대공자께서 연결해줬다면, 믿고 의뢰를 받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석문혁의 귓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기린의 모습에 이미 넋이 나간 상태였으니까.
“기린이라니……. 이걸로 갑주를 만들어 달라는 말입니까?”
“맞아요. 영석도 같이 가져왔어요.”
유설이 눈짓을 보내자, 뒤에서 지켜보던 유진산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서 쓱 내밀었다.
무지갯빛 광채를 발하는 구슬로 기린의 몸속에서 꺼낸 영석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재료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무적의 기린갑옷.”
석문혁은 대답하지 못하고 전율하고 있었다.
기린과 영석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옆에 있던 장인에게 말했다.
“내 전용 도구함을 가져오너라.”
“예, 어르신!”
잠시 후 장인 두 명이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와 앞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석문혁이 사용하는 특수 도구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기린의 몸통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내공을 실어 몇 번을 내리쳤음에도 작은 흠집조차 나질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석문혁은 망치를 내려놓고, 다시 거대한 집게를 잡았다.
곧이어 그것으로 기린의 비늘을 잡은 후 사력을 다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크읍!”
그의 양팔에 힘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렸으나, 결국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어때요?”
석문혁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의뢰를 받을 수 없소이다.”
잔뜩 기대하고 있던 유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따지듯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찾아 왔는지 알아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건 인간의 힘으로 다룰 수가 없는 재료니까요.”
“어째서요? 석가장이 천하제일 갑옷 명가라면서요!”
석문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방금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 재료로 갑옷을 만들려면, 우선 비늘을 하나씩 떼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질 않으니, 무슨 수로…….”
석문혁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금붕어처럼 뻥긋거리는 그의 입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질 않았다.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악!!”
음괴가 양손으로 기린의 비늘을 찢고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도구조차 없이 힘으로 그것을 해내는 것이다.
“…….”
“봤죠? 비늘은 내가 떼줄게요.”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석문혁이 정신을 번뜩 차리며 말했다.
“하, 하지만 필요한 재료들이 더 있습니다. 대부분은 우리 석가장에 있으나, 한 묶음 이상의 천잠사가 필요합니다.”
천잠사(天蠶絲)는 천잠이라는 영물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실이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으며, 수급이 매우 어려워 값비싼 재료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찬잠사든 만잠사든 유설이 알 바가 아니었다.
“할배. 어서 할머니한테 가서 외상으로 빌려와 줘.”
무심히 지켜보던 유진산이 흠칫하며 물었다.
“내가? 할애비 혼자 묘화방에 다녀오라고?”
“응. 난 여기서 비늘 떼야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