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17
웰컴 투 NBA 117화
#117. 시대의 지배자 (4)
“워리어스 23번. 선수 교체입니다. 교체 선수는 2번.”
아찔했던 충돌 장면 이후.
워리어스는 드레이먼드 그린을 대신해 조던 벨을 코트에 투입했다.
디그린이 코트에 추락하며 후두부와 어깨를 강하게 부딪친 탓에, 처음부터 부상을 안고 있던 어깨는 물론이고 뇌진탕 우려까지 보였던 것.
부축을 받고서 비틀거리며 퇴장하는 디그린의 모습을 보며, 조던 벨은 내심 진땀을 흘렸다.
‘오, 세상에.’
김시온이 강강약강 타입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디그린마저 보내 버릴(?) 줄이야.
이는 워리어스의 입장에선 굉장히 어색한 광경이었다.
보통은 디그린이 일을 저지르는 입장이지, 당하는 입장은 아니었으니까.
‘난리 나겠네, 이거.’
아무리 디그린이 개자식에 밉다곤 하지만, 워리어스 팬들에게는 우리 선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라클 아레나의 2만 관중들은 김시온을 향해 거센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우우우우우!”
천장이 무너져 내릴 듯한 폭발적인 야유.
하지만 김시온은 남의 일이라도 된 것처럼 입꼬리를 씨익 올린 채 관중석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봐, 시온. 괜찮아?”
“어쩌다 보니 일이 재밌게 됐네요. 하핫.”
재미? 이게 재미있다고?
내가 보기엔 당장 관중석에서 뭐라도 날아올 것 같은데?
움찔!
김시온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조던 벨은 더는 말을 건네지 못했다.
‘저 자식, 또 눈깔 돌아갔네.’
평소에는 유들유들하고 능청맞은 구석이 있는 녀석이지만.
시합 중의 김시온은 성격이 180도 달라진다.
당장이라도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고자 하는 살기등등한 눈빛.
동료였던 오리건 덕스 시절에는 든든하기 그지없었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들은 적으로 만난 입장이었다.
“저 건방진 하룻강아지 새끼가……!”
당연히, 그 건방진 태도는 워리어스 선수들의 분노를 불러왔다.
저럴 때 김시온이 짓는 특유의 도전적인 미소는 상대방에게 있어서는 광역 도발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시온이 건방진 친구는 아닌데.’
조던 벨은 동료들의 오해를 풀어 주고 싶었다.
김시온은 그저 같은 팀 소속의 선수가 아니면 죄다 적으로 여길 뿐이다.
어라?
그러면 결과적으로 그게 건방진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난 몰라. 알아서들 하겠지 뭐.’
혼자서 고민해 봐야 답이 없었으므로.
이내 조던 벨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 * *
“저기, 킴.”
“예?”
“……아니, 아무것도 아냐.”
JB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로 이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
갑자기 왜 저런대?
‘뭐,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
중요한 것은 디그린을 잃은 워리어스의 수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
우리는 이때다 하며 거세게 워리어스를 몰아쳤고.
워리어스 역시 가드를 내리고 맞대결에 나서며, 시합은 한층 더 난타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지나간 4쿼터.
경기는 어느덧 클러치타임으로 접어들었다.
◎ 4쿼터 10:48
[블레이저스 100 : 102 워리어스]남은 시간은 약 70초.
흔히들 4쿼터 마지막 5분을 클러치타임이라고들 하니, 지금은 슈퍼 클러치라고 할 만한 상황.
점수는 워리어스가 2점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릴라드, 천천히 공을 몰며 탑으로 향합니다.] [공격 제한 시간이 24초이니, 블레이저스에게는 최소 두 번의 공격 기회가 남은 셈입니다. 여기서 영리하게 시간을 배분하는 팀이 한 번 더 공격을 가져가겠죠.]“킴!”
샷 클락이 12초까지 흘러가게 기다린 뒤.
탑에 선 내게 패스를 건네는 릴라드.
나는 골대를 등진 채로 이쪽으로 달려오는 릴라드에게 리턴 패스를 내밀었고.
릴라드는 날 지나치며 농구공을 건네받은 뒤, 그대로 돌파를 시도했다.
“막아!”
“핸드오프다!”
릴라드의 3점 또는 돌파를 최우선적으로 경계하는 워리어스.
하지만…….
“what!?”
내 등 뒤에서 나타난 릴라드의 손에는 농구공이 들려 있지 않았다.
[릴라드는 미끼였습니다! 페이크 핸드오프!] [시온 킴! 패스를 건네는 척하다가 직접 공을 몰고 드라이브!]수비수들이 릴라드를 막아선 상황.
내게는 골대까지 일직선으로 드라이브를 칠 경로가 생겨났다.
하지만 역시 워리어스라는 것일까.
어느새 골밑에는 헬프 수비를 온 케빈 듀란트가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쳇.’
하필 상대는 7푸터인 듀란트.
여기서 내가 직접 마무리하는 건 쉽지 않다.
‘오픈이 된 터너에게 킥아웃 패스?’
아니. 지금 같은 승부처에서 에반 터너의 3점 슛에 승부를 맡길 수는 없지.
판단을 내릴 시간은 기껏해야 영 점 몇 초.
나는 듀란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불도저 같은 기세로 돌진했고.
듀란트와 정면 충돌하기 직전.
등 뒤로 팔을 돌려, 맞은편 포스트에서 오픈 상황이 된 제럿 앨런에게 비하인드 더 백 패스를 건넸다.
“뭐!?”
눈이 휘둥그레져 고개를 돌리는 듀란트와.
쿵! 가볍게 점프해 투핸드 덩크를 올려놓는 제럿 앨런.
“오오오우!”
[킴의 환상적인 트릭 패스!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놀랍네요. 그 긴박한 상황에서 제럿 앨런을 보고 있었나요?]“좋아!”
“그렇지!”
“잘했다, 꼬맹이들!”
짜악!
나와 앨런에게 달려와 등짝을 두들기는 릴라드와 맥컬럼, 그리고 터너.
그나저나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여기서 가장 큰 멤버가 나랑 앨런인데.’
이것으로 다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철썩!
듀란트가 거짓말처럼 손쉽게 풀업 점퍼를 꽂아 넣으며, 점수는 원상회복되고 말았다.
[마지막 포제션. 블레이저스의 공격권입니다. 탑에서 공을 튕기며 시간을 보내는 릴라드.] [역시 마지막에는 에이스의 1대1에 승부를 맡기는군요. 과연 릴라드는 또 한 번 데임 타임의 전설을 쓸 수 있을까요?] [승부는 2점 차. 2점 슛을 넣고 연장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제가 테리 스토츠 감독이라면 가급적이면 여기서 승부를 보고 싶을 겁니다.] [예. 체력적으로 너무 불리한 상황이니까요.]퉁! 투둥!
공을 어지럽게 튕기며 클레이 탐슨의 눈을 현혹하는 릴라드.
여기서 릴라드가 뭘 할지는 모두가 아는 상황이었다.
‘풀업 3점.’
농구에서 가장 성공률이 낮은 옵션이 바로 수비를 달고 쏘는 풀업 3점이지만.
우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릴라드를 믿고 바라보았다.
리그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어.
우리의 에이스는 언제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믿을 수 없는 빅 샷을 터트려 왔으니까.
[릴라드, 오른쪽으로 크게 사이드스탭! 그리고 점퍼!] [For Three!]‘좋아!’
속으로 리듬을 세며 릴라드를 지켜본 나는 내심 성공을 확신했다.
타이밍도, 자세도, 릴리즈도 완벽했으니까.
그러나.
“윽!”
사이드 스탭을 내딛은 순간, 살짝 움찔하며 신체 밸런스가 흔들리고 마는 릴라드.
역시 발목 때문인가?
릴라드가 쏘아낸 농구공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경로로 날아갔고.
“오오오오!”
“가라! 가즈아아아!”
“……아.”
통! 빙그르르!
In and Out.
동료들의 함성이 무색하게도.
잠시나마 들어가나 했던 농구공은, 림을 타고 한 바퀴를 회전한 뒤 목표물을 벗어나고 말았다.
후우!
나는 날숨을 뱉으며 스코어보드를 바라보았다.
이게 디펜딩 챔피언의 저력이라는 건가?
‘……커리가 없어도 이 정도인가.’
뭐, 좋다.
패배는 언제나 속이 쓰린 법이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까.
‘워리어스와 블레이저스가 올해 정규시즌에서 맞붙는 횟수는 총 3번.’
다음엔 양팀 모두 베스트 라인업으로 붙어 보자고.
시대의 지배자인 워리어스.
챔피언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기엔, 아직은 우리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
워리어스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릴라드가 허리춤을 짚고 긴 한숨을 토해 내는 모습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데임,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버저비터라는 건 들어가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잖아요?”
“으음. 고마워.”
그래. 이 정도면 잘했지.
오늘도 릴라드는 32득점으로 30+득점에 성공.
발목이 좋지 못한 상태면서 이렇게 분전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홈에 돌아가면 발목 검진 한번 받아 봐요.”
“그래. 그래야겠다.”
나는 블레이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소수의 관중들에게 유니폼과 암 슬리브를 벗어준 뒤, 동료들과 함께 코트를 벗어났다.
내 앞을 걷는 릴라드는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고 있었다.
◎ 경기 결과
[Portland Trail Blazers 102 : 104 Golden State Warriors]Sion Kim – 35min
[15PT 6AST 8REB 4STL 1BLK] [FG 5/11 (45.5%) 3PT 2/5 (40.0%) FT 3/3 (100%)]* * *
같은 날. 늦은 저녁.
포틀랜드, 오리건.
“하아암.”
단장실에 홀로 남은 몬테 맥네어는 미간을 꾹 누르며 잠을 쫓으려 애썼다.
블레이저스가 정규 시즌 서부 1위를 달리고 있는 지금.
단장을 비롯한 프런트 역시 물밀듯이 들어오는 업무로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한인의 날 이벤트 개최, 백성전자의 선수 유니폼 스폰서십 협의, 공중파 채널의 다큐멘터리 촬영 문의……? 이건 일단 선수의 의사부터 들어 봐야겠군.’
공교롭게도 최근 프런트를 야근에 시달리게 하는 안건들은 대부분 한 선수와 면밀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불만을 표하는 직원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1977년 블레이저마니아 광풍 이후로, 포틀랜드의 농구 인기가 이 정도로 하늘을 찌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그 로키츠와 워리어스를 상대로 1승 1패인가.”
서부의 세 팀의 멕시칸 스탠드오프는 각자 1승 1패를 사이좋게 교환하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맥네어 단장은 황금색 위스키가 담긴 유리잔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가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구단인 휴스턴 로키츠.
그리고 로키츠에게 있어 반드시 타도해야 할 대상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맥네어에게 두 구단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삐비빗.
“음?”
휴대폰에 떠오르는 익숙한 번호.
이렇게 늦은 시각에 자신의 업무용 휴대폰으로 연락이 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 몬테 맥네어입니다.”
“몬티! 오랜만이구만. 그간 잘 지냈나?”
“예. 무탈하셨습니까?”
휴스턴 로키츠의 단장, 데릴 모리.
몬테 맥네어에게는 10년가량 직속 상사로 모신 인물로, 자신이 블레이저스로 이직한 뒤에는 딱히 업무적인 연락을 취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연락을 꺼낸 것일까.
“경기는 잘 봤네. 정말로 좋은 팀을 만들었더군. 역시 자네가 내 후임이 되었어야 했는데.”
“제 공은 아닙니다. 실질적인 로스터 개편을 담당하신 분은 따로 계시니까요.”
“아, 그 부단장 말이로군.”
서로의 근황 이야기부터, 업무적인 이야기.
그리고 리그의 뒤편에서 퍼지고 있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뜬소문까지.
“그래서 캐벌리어스가 아이재아 토마스를 말이지…….”
“예. 예.”
“자네도 알겠지만 댈러스 매버릭스는 단장보다는 구단주의 목소리가…….”
“그렇군요.”
늦은 시각에 사람을 붙잡아 놓고선 실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데릴 모리.
이래서는 끝이 없겠다 싶었다.
“단장님.”
“음?”
“슬슬 본론을 말씀하시죠.”
“허헛, 참! 사람이 직설적이기는. 내가 그래서 자네를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네만.”
데릴 모리가 어렵게 꺼내 놓은 본론은 결국 트레이드 논의였다.
“트레이드 말씀입니까?”
“그래. 당장 어떻게 해 보자는 뜻은 아니고, 서로가 생각하는 선수의 트레이드 가치를 ……하며 차츰 의견을 맞춰 갔으면 하네. 아직 트레이드 데드라인까진 시간이 꽤 남았으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트레이드 가치(Value)를 문의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선수들에겐 언제나 우린 자네를 트레이드할 계획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다며 호언장담을 늘어놓지만.
무대 뒤편에서는 1년 내내 선수들의 트레이드 카드를 맞춰 가며 전력 보강을 추구하는 것이 NBA 프런트진의 주 업무였으니까.
‘휴스턴에는 라이언 앤더슨이라는 가성비 나쁜 스트레치 4가 있고, 우리는 우리대로 처리해야 할 악성 계약들이 있지.’
에반 터너와 마이어스 레너드.
맥네어 단장은 그간 두 선수를 처분할 길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왔지만, 다년계약으로 묶여 있는 현 상황에서 마땅한 트레이드를 찾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에반 터너는 약간이나마 반등의 여지가 보인다지만.
마이어스 레너드는 그것도 아니었고.
“내 생각에 라이언 앤더스는…….”
“좀 더 스케일을 키워 볼까요. 저희는 만기 계약이…….”
“우리에겐 18년, 20년 1라운드 픽이…….”
“스펜서 딘위디를 원하시면 최소한 1라운드픽 1장 이상은 주셔야…….”
“제럿 앨런의 대가로 1라운드 픽 2장을 생각하고 있다고?”
“예. 그게 아니면 1라운드 픽 1장에 괜찮은 백업 센터는 받아야겠죠. 미래의 올스타급 센터를 루키 스케일로 부리는 대가로는 싼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자네의 입장이고 우리 생각은 또 다르네만…… 일단은 알겠네.”
숨 가쁘게 오가는 눈치싸움.
그 과정에서 맥네어의 신경을 건드린 건, 데릴 모리가 지나가듯 꺼낸 질문이었다.
“아, 자네가 생각하는 킴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
“예?”
“아니. 그냥 궁금해서 말일세. 시온 킴의 트레이드 대가로는 대략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있나?”
“…….”
맥네어는 잔에 남아 있는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본론이었나?
사람을 호구로 보는 것도 어느 정도지.
“데릴 모리 단장님.”
“으, 응?”
“단장님 밑에서는 참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지요. 저 역시 앞으로도 가급적이면 계속 단장님과 좋은 협업 관계를 이어 가고 싶습니다.”
“그, 그래. 나도 같은 마음이라네!”
“그러면 되도 않는 개소리(bullshit)는 아예 입에도 담지 않는 편이 서로를 위해 현명하리란 것도 이해하실 테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
“시온 킴은 언터쳐블입니다. 킴의 이야기를 꺼내려면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마십시오.”
맥네어의 직접적이고 강렬한 경고에, 데릴 모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허허허! 이 사람도 참. 가벼운 농담이었네, 농담! 허허, 허허허!”
휴대폰 너머에서 민망한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데릴 모리.
속에 얹힌 것이 시원하게 넘어가는 듯한 청량함에, 맥네어는 의자에 뒷목을 기대며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간 전임 상사에게 쌓였던 것들이 싹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