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37
37화
허탈.
남자가 사무실에 들어온 최강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솔직한 감정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이씨 문중을 제외한 모든 문중의 문주급들을 만나 봤다. 하지만 프리저에게서는 문주급들에게 느꼈던 그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2세대 무림인들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들었던 것보다 거품이 심하군.’
혹시나 해서 기를 감추는 물건을 소지하고 있을 것을 감안해 경계를 지속하며 대화를 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것은 실망감뿐이었다. 하지만.
쿠구구궁…….
지금 무너지는 프리저의 건물을 바라보는 남자는 어느덧 실망감만큼의 안도를 하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어찌나 빠르던지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막아 내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남자가 방어했던 자신의 손을 움켜쥐며 신음했다.
“크윽.”
일격.
고작 일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자신의 팔이 아작 났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남자가 말을 걸어오는 부하에게 물었다.
“녀석은 어떻게 됐나?”
“지금 일대제자들이 확인 중이긴 합니다만…….”
부하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 건물을 슬쩍 흘기더니 곧이어 말을 이어 갔다.
“아마 죽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래도 건물이 저래서야…….”
그리고 그때였다.
슉…… 쾅.
말을 하던 부하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자신의 옆으로 엄청난 속도로 스쳐 날아가 벽에 꼬라박히는 동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황급히 확인해 보니 방금 전 잔해 속을 확인하러 간 녀석이었다.
남자의 딱딱해진 얼굴을 확인한 부하가 급히 뒤돌았다.
부하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바뀌었다.
건물 더미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태연한 모습으로 먼지를 툭툭 터는 프리저가…….
***
최강은 지금 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는 딱 세 가지였다.
첫째로 드라마를 못 보게 되었기 때문.
둘째로 자신의 건물을 개자식들이 화끈하게 해 먹었기 때문.
그리고 셋째로…….
“보자 보자 했더니 조상을 이런 식으로 대해?”
녀석들이 자신과 같은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약 700년이다.
긴 세월이니만큼 극진한 대우나 무슨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이 난동을 피워 대면 그냥 넘어가 줄 마음이 없는 것이었다.
우두득우두득.
최강이 주먹을 풀며 천천히 걸어갔다.
“너희 오늘 뒤질 줄 알아.”
최강이 주변에 얼어붙은 최씨 문중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못 움직이시겠나 봐?”
다가가는 최강을 향해 그래도 대가리라고 남자가 입이라도 겨우 뻥긋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왜, 발격(發格)은 쓰면서 무형기(無形氣)는 못 쓰냐?”
발격.
아까 사무실을 삼켜 버린 파도를 만들어 낸 참격을 의미하는 기술명이었다.
“이게 무형기……일 리 없다!”
피식.
“왜? 무형기는 무형기로 방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냐?”
최강이 자신의 말에 당혹감으로 물드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란 말이냐……?”
최강이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전에 이소군에게 사용했던 무형기가 찰나의 경직 정도로 그친 이유가 거기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형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에 불과했다.
“커억…….”
최강이 자신의 주먹을 맞고 속을 게워 내는 남자의 구토를 피해 폴짝 물러났다.
“으엑, 드럽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자를 최강이 노려봤다.
“내가 그래도 특별히 인심 쓴다. 선택지를 줄게 골라 봐. 너만 살래, 너만 죽을래?”
“무……슨 의미……냐?”
“말 그대로지, 의미는 개뿔. 멍청한 니 실수로 부하들을 죽이고 너 혼자 살아남을지, 아니면 잘못을 뉘우치고 너 혼자 죽을지 고르라고.”
남자가 힘겹게 눈알을 굴려 얼어붙은 부하들을 살펴보고 말했다.
“내가 죽으면…… 나머지 녀석……들을 살려 준다는 말이냐……?”
최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 보며 말했다.
“그래.”
최강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주름진 눈빛을 바라볼 때였다.
“간단한…… 선택이군. 죽여라.”
비장한 얼굴로 말한 남자가 잠시 후 휘청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구속하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슨 뜻이냐?”
“내가 죽여 준다고는 안 했잖아?”
최강의 눈에 망설이던 남자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드는 모습이 보였다.
‘제법이네.’
허세나 그런 것은 없어 보였다. 정말로 대신 죽을 생각이었다.
부하들을 찬찬히 훑어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잠시 후였다.
“뒤를 잘 부탁한다.”
남자가 양손으로 쥔 검을 자신의 배에 찔러 넣었다.
아니, 찔러 넣으려고 할 때였다.
쾅.
최강의 주먹이 남자의 뺨을 강하게 후렸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빠르게 돌던 남자가 잠시 후 바닥에 떨어져 꿈틀꿈틀했다.
의식은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 새끼, 그래도 의리는 있네.”
전자를 선택했을 때 최강은 다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그것은 혹여 후자를 택하는 척하다가 공격으로 태세를 전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무형기를 풀어 준 최강의 의도대로 스스로 자살을 택했다.
최강이 또 괜한 정을 베푸는 건 아닌가 싶어 한숨을 쉬고는 옆에 서 있던 녀석의 무형기를 해제했다.
자신이 두려운지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녀석이 보였다.
“우리 대화 좀 할까, 친구?”
***
다음 날 아침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한 주소희가 무너져 내린 건물을 보고 놀란 눈을 해 보였다.
“최…… 최강 씨는 어딨지? 최강 씨!!!”
“…….”
이상하게도 최강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말숙아?”
옆에서 지켜보던 최말숙이 말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사와요.”
솔직히 최강이 죽는 그림이 잘 연상되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주소희와 최말숙이 건물 잔해를 하나씩 들어내고 있을 때였다.
뒤늦게 도착한 류세란이 말했다.
“두 사람, 거기서 뭐 해요? 이거 두 사람이 이런 거 아니죠?”
주소희가 말했다.
“최강 씨가 안 보여요 여기 묻혔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좀 거들어 봐요.”
류세란이 의미를 깨달은 듯 말했다.
“아, 그럼 이거 최강 씨가 쓰고 간 거 같은데요?”
주소희가 폴짝 뛰어내려 류세란이 내미는 A4를 받아 들었다.
A4 용지에는 커다랗게 짧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보시다시피 일이 좀 있어서 다녀온다.』
주소희가 말했다.
“이…… 이거 어디 있었어요?”
류세란이 사무실이 서 있던 곳 옆의 전봇대를 가리켰다.
“저기에 붙어 있던데요?”
털썩.
주소희가 다리가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놀랐잖아. 진짜…….”
***
밤늦게 인근 주택가에서 종이와 유성펜을 빌린 최강은 쪽지를 남겨 두고 최씨 문중으로 향했다.
“야, 아직 멀었냐?”
“거의 다 왔습니다.”
최강이 앞장서 걷는 일대제자들을 바라봤다.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은 양 뺨이 어째서 이렇게 고분고분한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최강이 논과 밭만 즐비한 시골 촌구석을 한 30분쯤 걸었을 때였다.
“여깁니다.”
한눈으로 다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커다란 가옥이 보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개수작 부리면 알지? 이 새끼 죽는 거야.”
최강이 아침이 돼서도 여전히 기절해 있는 남자를 들이밀며 말했다.
일대제자가 땀을 삐질 흘리며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최강이 일대제자들이 커다란 대문으로 들어가자 어젯밤 기절한 남자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끼이이이익.
다시 한번 커다란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노인 한 명이 나왔다. 남자는 개량 한복을 입은 단정한 백발노인이었다.
“네놈인가? 문주님을 뵙고 싶다는 놈이?”
최강이 귀찮은 듯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는 너는 문주는 아닌 거 같은데 왜 니가 나왔냐? 들어간 놈들이 말 안 해 줘? 문주 나오라니까?”
“아니, 들었다. 이상한 무형기를 사용한다는 것도, 가주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도. 그래도 내가 나왔다. 대답이 됐나?”
“하…… 그럼 이 녀석 죽여도 된다는 거지?”
노인이 남자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을 대로 해라. 어차피 한번 포기한 목숨. 문중을 위해 죽는다면 녀석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이다.”
최강이 남자를 바라봤다. 뭔가 가차 없이 죽이기는 쫌 꺼려졌다.
부하들을 살리겠다고 목숨을 버린 녀석과 그런 녀석을 모른 척 배신한 녀석들…….
기절한 이 녀석보다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더 화가 났다.
최강이 높은 계단을 튀어 올라 한 번에 노인에게 접근했다.
‘오~ 무형기가 안 통한다 이 말이지?’
의외였다.
무인은 무형기가 크게 효과가 없어 보였다.
정확히는 미세하게 효과는 있었어도 그래도 능숙하게 무형기를 벗겨 내는 모습이었다.
전력을 다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노인을 보며 최강이 생각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이소군보다는 셀 거 같긴 한데…….’
뭔가 부족해 보였다.
무형기의 대응도 깔끔했고 공격도 그때그때 방어하고는 있었지만 그게 다였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상대하고 있음에도 노인은 최강에게 일방적으로 맞고만 있었다.
‘이쯤 되면 궁금하네.’
포기하고 문주를 불러오면 될 것이지 이미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토록 버티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강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가옥 안쪽을 바라봤다.
최강이 노인의 명치를 지르던 주먹을 코앞에서 거둬들이고 모습을 감췄다.
거대한 정문의 지붕에서 모습을 드러낸 최강이 보란 듯이 씩 웃어 주고는 달렸다.
‘어디 보자, 가장 큰 건물이…….’
노인이 재빠르게 최강을 쫓았지만 어림없었다. 진심이 된 최강을 쫓아가기에는 노인으로서는 무리였다.
한참을 달린 최강이 눈을 반짝였다.
“여기네.”
친절하게 문패로 문주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커다란 방문을 양손으로 밀어젖히고 터벅터벅 최강이 걸어가길 잠시였다.
달려드는 녀석들은 무형기로 멈춰 세우고 복도 끝까지 걸어간 최강이 가장 안쪽 방문을 열어젖혔다.
최강이 말했다.
“뭐냐, 이건……?”
***
문을 열어젖힌 최강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자고 있는 10대 후반의 소녀였다.
최강이 잠시간 소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쫓아온 노인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최강이 보지도 않고 노인의 공격을 슥 피하고는 손목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커억.”
“거기서 잠이나 좀 자고 계셔.”
노인의 등을 발로 짓밟은 최강이 소녀에게 다가갔다.
“멈춰라, 이놈! 쿨럭…….”
피를 토하는 노인을 두고 소녀의 앞에서 쪼그려 앉은 최강이 자세히 소녀를 관찰했다.
“그럼 그렇지.”
착각이 아니었다. 본 적이 있는 증세였다.
자신의 누이가 겪었던 증세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누이는 나았었다.
‘어떻게 나았었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최강이 기억이 난 듯이 손바닥을 탁 쳤다.
자리에서 일어난 최강이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이봐, 할배. 정씨 문중 따까리나 하는 이유가 이거였어?”
“모욕할 셈이냐?!”
최강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모욕? 이게 모욕이라고? 내가 만약에 수장이라면 자기 때문에 약점 잡혀서 따까리 짓이나 하는 꼴이 치욕스러울 거 같은데?”
최강이 굳어진 노인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자, 이제 말해 봐. 누가 최씨 문중을 모욕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