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시간이 어느덧 흘러 이제 여름이 만연할 무렵이었다.
최강은 주소희와 류세란, 최말숙과 함께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최씨 문중에서 최강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한적한 마을로 들어간 차량이 곧이어 멈춰 섰다.
리무진에서 내린 류세란과 주소희가 계단을 올라가 치솟은 외벽과 웅장한 문을 보고 소리 냈다.
“와…….”
최강이 커다란 문 앞에 섰을 때였다.
드르르르륵.
그 어느 때보다 정문이 활짝 열렸다.
터벅. 터벅. 터벅.
1장로 최해성이 문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건강해 보이네, 할배.”
최강의 앞에 멈춰 선 최해성이 말했다.
“무릎 꿇지 못하는 점 이해해 주십시오.”
“그래, 별 상관 없어.”
최강이 최해성의 말에 대충 대답하자, 최해성이 앞장서 일행을 인도했다.
최강과 조금 떨어져서 따라오던 주소희와 류세란이 좌우로 사열해 있는 최씨 문중의 문원들을 보며 웬일로 사이좋게 속닥였다.
사이가 개선됐다기보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찾은 것에 가까워 보였다.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거예요?”
“내 말이 그거예요.”
두 사람이 아는 문중들은 소속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사람들이다.
누군가에게 쉽게 고개 숙이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혹시 갑자기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겠죠?”
“뭐…… 그렇겠죠.”
그래도 최강과 어울리며 성장했다고 류세란에 비해 주소희는 덜 위축되어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긴 시간을 걷던 최강이 최해성을 따라 멈춰 섰다.
“문주님, 최강 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시녀 두 사람이 방문을 양쪽으로 열었다.
다홍색 계열의 한복을 예쁘게 입은 소녀가 문 앞에서 인사했다.
“문주 최세라라고 합니다.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그래, 몸은 괜찮고?”
“신경 써 주신 덕분에요.”
확실히 전에 봤을 때와는 상이하게 호흡도 일정했다.
‘몸 주변의 한기도 없고.’
치료 하나는 잘해 놓은 거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최강이 방으로 들어가 일행들과 안쪽 자리에 앉았다.
주소희가 방에 깔려 있는 음식들을 보다가 최강에게 속닥였다.
“이거 독 탔다거나 그러지는 않겠죠?”
“괜찮아.”
“어떻게 알아요, 그걸!”
최강이 최세라에게 접시를 내밀면서 말했다.
“한번 먹어 봐.”
최강의 의도는 뻔했다.
그럼에도 거부반응 없이 젓가락질해 먹는 최세라를 본 최강이 말했다.
“미안한데, 다른 것도 몇 개만 좀 부탁할게, 할배.”
“큼.”
문 쪽에 떨어져 앉아 있던 최해성이 머쓱한 얼굴로 와서 빈 접시에 음식을 조금씩 옮겨 담아 먹었다.
최강이 이미 검사가 끝난 접시를 류세란의 앞에다가 내려놓았다.
최강이 젓가락을 들었을 때였다.
“최강 씨, 저는요?”
최강이 목소리가 들리는 주소희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 주소희가 보였다.
‘얘는 또 왜 이래?’
이상하게 여긴 최강이 말했다.
“거기 있잖아. 대충 먹어.”
“그러니까…… 제 거는요?”
귀찮은 한숨을 쉰 최강이 접시를 들어 주소희의 앞에 내려 뒀다.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습관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랬다.”
“습관이요? 무슨 습관이요?”
“그런 게 있다.”
최강이 주소희의 옆에 앉아 있는 최말숙을 향해 말했다.
“말숙이도 많이 먹어라.”
“네, 알겠사와요.”
얌전히 앉아 있던 최말숙의 눈빛이 의욕적으로 바뀌었다. 전투 식사라도 펼칠 기세였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며 최말숙에게 말하려던 최강이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내 돈 나가는 것도 아니고.’
최강이 젓가락으로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주소희가 그런 최강을 말없이 노려봤다.
수상했다. 접시를 류세란 쪽에 내려놓는 습관이 들 이유가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다시금 류세란을 향한 주소희의 경계심이 타올랐다.
‘역시 위험해.’
주소희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음식을 깨작일 때였다.
최강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안 보이네?”
“4장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정씨 문중과 관련해서 지시하신 일을 처리하느라 오늘 부재중입니다.”
***
조씨 문중이 이상하게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눈치챈 것은 약 보름 전쯤이었다.
프리저와 정씨 문중이 마찰이 있을 것 같은 묘한 긴장감이 은연중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조씨 문중은 물론 처음에는 관망하는 태도를 일관했다. 프리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씨 문중의 체력을 갉아먹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접견지 인근의 정씨 문중의 분가 하나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듣기로는 정대욱의 이복형이 거점으로 삼는 분가였다.
물론 당시에는 그렇게 큰 상황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정대욱과 그의 이복형이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내분과 숙청 정도로나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뭐라고? 정대욱이 협회로 귀순을 해? 정씨 문중은 어쩌고 말이냐?”
“말이 귀순이지 사실은 협력에 가까운 느낌인 것 같습니다.”
조씨 문중의 문주 조중일이 생각했다.
‘수상하다.’
아무리 협력 관계라고 해도 협회와 연을 잇는 순간 귀찮은 일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조중일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존재가 스쳐 갔다.
“혹시 프리저가?”
조중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그래도 정씨 문중이 어떤 놈들인데. 싸워 보지도 않고 굴복했을 리 없지. 암! 그렇고말고.’
꿈틀대던 이씨 문중이 프리저의 손에 발목이 걸려 넘어지고 이제 사실상 정상의 자리를 두고 정씨 문중과 조씨 문중의 대결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상황에 갑자기 협회와 협력?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거래를 했을지도 모르겠군.’
물론 단일 세력으로는 제일 컸지만 고립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조중일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였다.
“저…… 문주님?”
“부문주!”
혼자서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던 조중일을 지켜보던 부문주가 조중일의 말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예, 문주님.”
“이번에 협회에서 소집 통보가 왔었지?”
“네. 그렇습니다.”
거의 분기에 한 번꼴로 항상 소집 통보가 왔었다. 물론 문중 중 어느 곳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언제라던가?”
“나흘 뒤입니다만…… 어째서 그러십니까?”
협회와 협력 관계를 맺고 첫 번째 소집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정대욱이 참석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조중일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번에는 참석해야겠어.”
***
분기 활동 계획 소집회.
조중일이 말했던 소집의 정식 명칭이었다. 줄여서 분소회로 불리는 이 소집은 이번 분기에, 협회에 보고된 정보를 공유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분기 동안 정해진 임무를 세가에게 부여하는 것에 목적을 둔 소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세가가 분소회에 참석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또 그것은 아니었다.
5급 이상.
즉, 나름 중견 세가의 수준에 이른 세가만이 대상에 해당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임무라는 것이 단순히 균열을 깨고 나온 몬스터를 소탕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균열도 짧게 형성됐다가 단기간에 사라지는 단기 균열이 있는가 하면, 장기간 지속되다 못해 던전을 구성하는 차원 균열이 있기 마련이다.
임무는 즉, 후자의 경우.
넘어온 다수의 몬스터들이 차원 균열 안에서 번식해 균열 너머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전에 처리하는 데 있는 것이었다.
개체 수가 증가하게 되면 던전의 난이도는 당연히 올라간다.
분소회의 목적은 한마디로 차원 안에 존재하는 몬스터의 개체 수가 조금이라도 적을 때 해결하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때문에 분소회의 시작 한 시간 전.
우범하는 강성훈과 함께 소집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무인협회 타워의 바로 옆에 세워진 대형 건물이 소집장이었기 때문에 걸어서 이동 중이었다.
우범하가 강성훈과 함께 등장하자 협회와 소집장 사이의 길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려 댔다.
선전용 웃음을 지으며 걷는 두 사람을 향해 기자들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을 퍼부었다.
“이번 분소회는 이상하게 10대세가의 가주들이 모두 참석한다는 의사를 보내왔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만 분소회는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이상 대리인을 세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간 10대세가를 비롯한 일류세가들은 암암리에 이것을 어겨 왔었다.
한마디로 대가리가 크더니 말을 안 듣기 시작한 경우였다.
강한 벌금을 징수해도 소속 문중들의 눈치를 보느라 항상 대리인 참석을 지켜 오던 10대세가의 가주들이 직접 움직인다니, 모르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신기한 광경일 것이었다.
우범하가 말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범하는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협회를 방문해서 협력 의사를 밝힌 정대욱과 뜬금없는 돌발 행동을 펼친 조씨 문중의 문주 조중일의 영향인 것을 알았지만 그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
“일간에서는 협회에서 지난번 서울 대피령 사건으로 인해서 강력한 압박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믿어 주시는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우범하와 강성훈이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 성의껏 답하며 이동하다가 마침내 회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범하와 강성훈의 뒷모습을 보며 기자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보였다.
세간에서 10대세가의 모든 가주가 참석하는 이번 분소회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더 그런 듯했다.
“질문 땄냐?”
“간신히 1개 따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내가 몇 개 주워들은 거랑 종합하면 기삿거리 좀 되겠다.”
기자들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각자의 성과를 종합할 무렵이었다.
고급 세단 수십 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분소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전조였다.
***
세단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세가를 창설해 중견급까지 단기간에 키워 낸 여러 수완가들부터 시작해서, 일류, 이류세가의 가주들의 모습이 보였다.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길 잠시. 모두의 이목을 이끄는 차량이 등장했다.
기자들이라면 숙지하고 있던 번호판의 숫자였다.
“3407?”
“금씨세가다!”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리무진 앞에 대기했다.
일전에 정씨 문중의 본가에 들렀던 가주 중 한 명인 금상지였다.
금상지가 리무진에 내려 ‘이번 분소회에 갑자기 참석하게 된 이유’라거나 ‘금씨세가의 방향성’이라거나 갖가지 뻔한 질문에 답할 때였다.
금씨세가와 얼마 차이를 두지 않고 하나의 리무진과 그것을 보호하며 입장하는 고급 세단이 보였다.
“주씨세가도 왔다!”
금상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리무진에서 내리는 주진강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금상지가 옛정을 생각해서 먼저 고개를 숙였다.
물론, 정씨 문중에게 버림받은 신세를 아는 이상 주씨세가가 추락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동정 어린 시선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눈인사를 무시하며 기자들을 헤치며 회장으로 먼저 출발하는 주진강을 보면서 금상지가 생각했다.
‘그래, 자존심 부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부려 놓으쇼.’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도 못 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