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opened my eyes, I realized that modern lif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처음 날렸던 서리 던지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폭발이 가신 그곳엔 기술 이름처럼이나 거대한 연꽃 하나가 보였다.
못해도 직경이 100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봉오리 진 연꽃이었다.
남극처럼 새하얗게 얼어붙은 벌판 위에 홀로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던 최강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사박사박.
기둥 앞에 멈춰 선 최강이 주소희가 준 검을 응시했다.
“이걸 쓸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만약 이 검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지금 기껏 청화수 녀석을 붙잡아 놓고도 마무리를 못 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강이 안에서부터 푸른 화염일 일으키며 저항하는 청화수를 보고 검에 내력을 주입했다.
봉우리 부분에 푸른 불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시간이 없다고 재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최강이 안쪽에서 몸부림치는 녀석을 조용히 바라보며 검에 내력을 주입했다.
최강이 풀무질 중인 거푸집의 검처럼 붉게 물든 검을 횡으로 그었다.
한차례 휘둘러진 검이 측면을 향했다. 조용히 불타 사라지는 검의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검이 불타 사라진 그 순간이었다. 얼어붙은 최강의 발아래 피어난 불꽃이 둥근 원을 그리며 지평선 너머까지 얼음을 녹여 가는 모습이 보였다.
쩌적. 쩌저적.
거대한 연꽃이 끝에서부터 천천히 직선으로 금이 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챙그랑.
금이 끝까지 닿자 봉오리 진 연꽃이 유리창 깨지는 것처럼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 보였다.
수많은 얼음 파편 속에서 반 토막 난 샤오첸의 몸과 떨어져 나간 검을 확인한 최강이 빠르게 달렸다.
샤오첸의 팔을 낚아챈 최강이 청화수를 빼 들고 팔을 던져 버리자 타들어 가는 종이처럼 서서히 다리부터 사라지는 샤오첸의 모습이 보였다.
청화수를 조용히 들고 있던 최강이 중얼거렸다.
“그런 거였나…….”
그날 화상을 입었는지 이제야 기억이 났다.
“시험…….”
그날 자신은 숙주가 된 녀석에게 다시 달라붙어 검을 떼어 내려다가 시험에 들었던 것이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이놈…… 네놈이 또 감히…….
“닥쳐!”
하지만 지금은 그때랑은 달랐다. 최강이 검에 냉기를 밀어 넣자 깨갱 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귀찮게 하고 있어.”
청화수 녀석의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자 최강이 검게 타 버린 대지에 대자로 쓰러지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아슬아슬했네.”
***
최강이 아침에 떠난 후로 류세란은 온종일 안절부절못했다. TV를 보던 주소희가 류세란을 보며 말했다.
“정신 사나운데 일단 좀 앉으시죠?”
류세란이 주소희를 슬쩍 흘기고는 말했다.
“그런 말 하려면 리모컨이나 제대로 들고 하세요.”
주소희가 류세란의 말에 리모컨을 보더니 뒤로 잡은 리모컨을 말없이 내려놓았다.
앉아 있나 서 있나의 차이였지 두 사람 다 제정신이 아닐 때였다.
민원을 해결하고 돌아온 최지우가 소파에 앉아서 최강이 읽던 만화책을 읽다가 픽 하고 웃자 주소희가 말했다.
“저, 지우 씨는 걱정도 안 돼요?”
“걱정이요? 뭔 걱정이요?”
“최강 씨 말이에요.”
최지우가 눈을 끔벅이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안 되는데요? 거기 도련님이 두 발로 걸어가신 거잖아요. 아무렴 죽으러 가셨으려구요?”
“그렇긴 한데…….”
“괜찮아요.”
주소희가 켜 놓은 채널에서 홈쇼핑이 시작한 것을 확인한 최지우가 쓱 손을 뻗어서 리모컨을 가져오며 말했다.
“애초에 도련님을 걱정하는 게 실례라니까요?”
최지우가 앉아서 TV를 보고 있자 해 질 녘쯤 되어서 사무실 문이 열렸다.
“최강 씨!”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나온 소방관의 몰골이 된 최강이 시끄럽게 떠드는 두 사람을 보다가 그나마 정면을 막아서고 있는 주소희의 이마를 옆으로 밀었다.
“아야!”
최강이 조용히 두 사람 사이를 소리 없이 걸어가자 여전히 쫓아오는 류세란을 느끼고 휙 돌아섰다.
“왜, 너도 문대 줘?”
“네?”
류세란이 슬쩍 물러났다.
때마침 숯 검댕이 된 이마를 거울로 확인한 주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 최강 씨, 뭐 하는 거예요? 진짜!”
류세란마저 뒤로 물린 최강이 구석에 청화수를 내려놓았다. 청화수를 알아본 건지 최지우가 말했다.
“도련님, 이거 청화수 아니에요?”
“그래, 맞다.”
최강의 꼴을 확인한 건지 최지우가 말했다.
“어디서 찾으신 겁니까? 용암 속에라도 있었던 겁니까?”
“그건 비밀이다.”
최강이 샤워실로 휙 하고 들어가 버리자 류세란이 말했다.
“청화수? 그게 이 검 이름이에요?”
“네. 맞습니다, 형수님.”
청화수를 낱낱이 살펴보던 류세란이 말했다.
“이제 보니 굉장한 검인 거 같아요.”
주소희가 물티슈로 이마의 숯 자국을 문지르며 다가왔다.
주소희가 최지우에게 말했다. 주소희도 최강에게 정신이 팔려서 몰랐는데 다시 보니 엄청난 검이었다.
분명 잘 다듬어진 예기는 아니다. 하지만 사방팔방 날뛰는 듯한 사나운 기운은 검을 만져 본 검사라면 한 번쯤 휘둘러 보고 싶은 검인 것은 분명했다.
“와…… 저 이런 거 처음 봐요. 누가 만든 검이에요?”
“모릅니다.”
“네? 몰라요?”
“네. 다만 아주 오래전부터 무신 대대로 내려오는 검입니다.”
“무신이라면……? 고대부터 있었다는 건가요?”
“네.”
최지우의 말을 듣고 주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때의 기술력이라면 주조 기술이 조금 부족한 듯한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흥미가 생긴 주소희가 내친김에 능력을 사용해 검을 자세히 확인했다.
최강의 백은색에 가까운 기운을 넘어서 투명한 기운이 일렁거리는 것을 확인한 주소희가 생각했다.
“투명색이네?”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또 처음 보는 색이었다. 근래 들어서 항상 이렇다.
제이스의 경우엔 보라색이었고 얼마 전 자신들을 프락시온이라고 밝힌 두 사람은 검은색이었다.
물론 그만큼 최강의 주변에 꼬이는 사람들이 굉장하다는 걸 실감할 뿐이었지 주소희는 솔직히 달갑지는 않았다.
점점 자신이 나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주소희가 최지우를 보면서 무언가 생각난 얼굴로 말했다.
“그보다 지우 씨.”
“네.”
“저 부를 때 뭐라고 부르죠?”
“주소희 씨요?”
“그렇죠.”
주소희가 류세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왜 이 사람은 형수님이죠?”
“네?”
류세란이 주소희를 놀리듯 말했다.
“지금 왜인지 알면서 물어보는 거죠?”
“아니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두 사람의 말다툼이 시작될 무렵, 10분쯤 걸려서 샤워를 빠르게 마친 최강이 나왔다.
“쟤네는 또 싸우냐?”
최강이 뿌리고 간 사무실의 숯가루를 치운 뒤에 샤워실 앞에서 기다리던 최말숙이 말했다.
“여기 있사와요.”
“아, 땡큐.”
바나나 우유를 원샷 때리는 최강의 모습을 보고는 최말숙이 빈 통을 받아 들고 말했다.
“뭐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시와요?”
“필요한 거라…….”
최강이 구석에 내려놓았던 청화수를 다시 집어 들고는 말했다.
“이거 닦는 것 좀 도와줄래?”
“알겠사와요.”
최강이 소파로 가서 기다리자 최말숙이 윤활유를 마른 천에 뿌려서 가지고 왔다.
최강이 손잡이부터 닦아 가면서 말했다.
“근데 말숙이는 뭐 가지고 싶은 거 없나?”
“이유를 물어봐도 되는 것이에요?”
“아니. 이유는 묻지 말고.”
곰곰이 생각하던 최말숙이 말했다.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는 것이에요.”
“이전에 들고 있던 양산은?”
“볕이 좀 따갑긴 해도 뭐든 복장에 맞는 물건이 있는 것이니까 감내해야 하는 것이에요.”
최말숙은 최강이 구태여 추리닝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말함에도 거절했다.
아마도 녀석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최강이 최말숙의 말을 듣고 다시 진지한 얼굴로 생각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럼 혹시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 알았지?”
“알겠사와요.”
최강이 최말숙과의 대화를 마치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청화수를 손질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을 싸우던 주소희가 지쳤는지 최강에게 와서 따졌다.
“최강 씨, 왜 지우 씨가 세란 씨에게 형수님이라 부르죠?”
최강이 최지우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낸들 아냐. 지 맘인 걸 왜 나한테 따져?”
“최강 씨하고 연관 있는 거니까 그러죠.”
한숨 쉰 최강이 주소희를 무시하고 청화수를 마저 손질하다가 무언가 생각난 얼굴로 주소희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무기는 잘 썼다. 꽤나 좋던데?”
자신의 공격을 완벽하게 한차례 소화해 낸 것만 해도 굉장한 무기인 것이 분명했다.
“그, 그야 뭐, 당연한 거죠. 누가 고른 건데.”
그날 주소희가 따로 구입했던 검은 화(火) 속성을 지닌 벨티스의 화염검이라는 무기였다. 마찬가지로 세계 경매장에서 구입했는데 그날 최강 버프를 받았던 냉기 속성 무기들과는 다르게 버프를 받지 않았음에도 무려 1,300억을 베팅하고 얻은 아이템이었다.
주씨세가에서 몰래 돈을 끌어온 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자격증을 담보로 300억이라는 빚을 당겨서 산 주제에 뭐가 좋다고 입꼬리가 옅게 올라가는 주소희가 보였다.
주소희가 극도의 인내를 발휘해 평소처럼 차분한 얼굴을 유지하며 말했다.
“근데 진짜 다친 덴 없는 거죠?”
“그래.”
최강의 대답을 들은 주소희가 컴퓨터 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최강이 주소희를 지켜보다가 최말숙에게 말했다. 뚫어져라 주소희와 자신을 바라보던 최말숙과 눈이 딱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왜?”
최말숙이 싱긋 웃었다.
“그냥 보기 좋은 것이에요.”
***
류세란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최강과 얼마 전 밥 약속이 잡혔던 것이다.
이야기가 오고 간 건 완전무장을 한 최강이 어딘가 다녀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최강은 우연히 사무실에 단둘이 남자 이렇게 말했었다.
-너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
왜요?
그래. 자신은 분명히 그 질문에 그렇게 말했었다. 최강이 갑자기 꺼낸 이야기치고는 조금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질문에 최강은 이렇게 답했다.
-그때 그 화염 구슬, 상당히 도움이 됐거든. 뭐 덕분에 일도 편하게 해결했고 보답이라고나 할까?
요약하자면 전에 무기를 사러 같이 다녀 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류세란은 그 약속으로 말미암아 고민 중이었다.
넓은 드레스룸을 한참 둘러봤어도 내일이 약속인데 마음이 드는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땅한 게 없네.”
대충 봐도 수백 벌은 될 것 같았는데 이 많은 옷 중에 마음에 드는 옷이 하나가 없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긴 요즘 옷 살 필요가 없긴 했지…….’
바쁜 것도 문제였지만 근 반년간 대부분을 사원복인 추리닝만 입고 생활한 것이 원인인 듯싶었다.
한참을 혼자서 고민하던 류세란의 결정은 결국 도움 요청이었다.
그나마 최강과 가장 오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최지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끈 류세란이 중얼거렸다.
“너무 노출이 심하거나 화려하지는 않고 청순한 분위기라…….”
결국 최지우의 조언대로 전날 미리 쇼핑한 류세란이 다음 날 해 질 무렵이 되어 준비한 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
류세란이 1층 거실로 나오자 소파를 돌려놓고 현관을 지켜보는 두 사람이 보였다.
류세란의 언니 류미란과 오빠 류태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