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만복자가 대답했다.
“그렇지요. 민간에서는 그리 부릅니다.”
“그것으로 하겠네.”
“무얼 알고 싶으십니까.”
노인이 흐흐, 하고 웃었다.
“오늘의 운세를 알고 싶네.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만복자는 첨통을 꺼내 따로 싸 둔 댓살을 주르륵 늘어놓아 개수를 확인한 후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마개를 닫아 흔들었다.
짤그락짤그락.
“하늘에 고합니다. 천지신명에 감응하여 가부간 응답을 바라오니, 분명하게 알려 주소서. 오늘 이분의 운세가 어떻겠습니까.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겠습니까?”
짤랑짤랑. 짜르르르.
만복자는 좌우로 첨통을 흔들다가 탁 소리가 나게 탁자에 내려놓았다. 위쪽 마개의 끝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리로 젓가락처럼 길쭉한 댓살 한 개가 튀어나왔다.
탁.
점괘가 나왔다.
만복자가 댓살을 들고 쓰인 점괘를 읽었다.
“나온 점괘는 비조우인(飛鳥遇人)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늘을 날던 새가 사람을 만난 운세입니다. 이 뜻은…….”
“무슨 말인지 알겠군! 새는 길조(吉鳥)이고 하늘을 난다니 일이 날듯이 잘 풀린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사람을 만났다는 건 귀인을 만났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짝!
노인은 손뼉까지 쳤다.
“그것참 신기하구먼. 그러고 보니 예 오는 길에 귀인을 만난 것도 같아.”
원래는 그런 뜻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훼방꾼이 나타나거나 장애물을 만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점괘라는 게 늘 맞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일이 있다는데 굳이 나쁜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무림인들에게 말 한마디 잘못해서 비위를 거슬렀다가 사고 난 점술가가 하나둘이 아니다.
만복자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그러합니다.”
노인이 눈을 반짝이며 권했다.
“자, 자. 그럼 어디 자네도 뽑아 보게.”
“제가요?”
“그래, 그래. 어서. 점치는 본인의 운세는 어떤지 궁금하구먼.”
만복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스스로를 위해 점을 치는 것을 금기로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귀찮아서 둘러댄 것이다.
하나 노인은 집요했다.
“에이, 그리 빼지 말고 재미 삼아 뽑아나 보게. 내가 궁금해서 그래. 점복술을 본인이 뽑으면 어떻게 나오는지.”
“아니, 그래도…….”
“여기, 자네 복채까지 내가 챙겨 줄 테니.”
노인이 은전을 꺼내어 탁자에 놓았다.
“거 참. 희한한 주문을 하시는군요.”
만복자는 떨떠름해 하며 원래의 댓살을 다시 넣고 첨통을 흔들었다. 무림인들은 성격이 급하고 괴팍해서 아무리 정파라 해도 좀처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만복자도 원하는 게 있으므로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만복자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점괘를 뽑았다.
“응?”
노인이 궁금해했다.
“뭔가? 뭐가 나왔나?”
만복자가 점괘가 적힌 댓살을 내려놓았다.
“저는 오늘 암중견화(暗中見火)의 운세로군요. 어둠 속에서 불을 본다는 뜻입니다.”
순간 노인이 크게 웃었다.
“껄껄껄! 어두운 집에 불이 났으니 크게 낭패를 보는 점괘로구먼! 자칫하면 집안 대들보까지 싹 타 버리는 것 아닌가?”
만복자는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처음 보는 사이에 점괘를 뽑으라 하지 않나, 남의 점괘가 불길하다고 웃질 않나.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이것은 좋은 점괘에 속합니다. 깜깜해서 길을 헤매던 중에 횃불이 앞길을 환하게 밝혀 주는 격이니,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배가 제 길을 찾아가며 좋은 소식이 들려오게 되는 점괘입니다.”
“그럴 리가 있나.”
“허어. 점괘가 뭐 우긴다고 되는 겁니까.”
“내 말이 맞는다니까.”
마도 대종사에게까지 대들던 만복자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적당히 손님에게 맞춰 주고 살았지만, 진상하고는 종종 싸우기도 했다.
노인이 자꾸 우기자 만복자는 자기도 모르게 성격이 나왔다.
“그리고 어르신, 설사 점괘가 어르신 말씀처럼 불길한 점괘라 하여도 남의 불행을 비웃으면 본인의 복이 달아납니다. 아무리 재밌어도 불운을 비웃는 것은 아니지요.”
“내가 어찌 웃지 않겠나!”
노인이 입꼬리를 길게 찢듯이 올리며 웃었다.
“오늘 자네 운세는 내가 해석한 게 딱 맞는대도.”
“예?”
아까까지는 온화한 인상이었는데 웃는 순간에 피비린내가 훅 풍길 정도로 살기등등한 얼굴이 되었다.
만복자는 노인의 관상을 살폈다. 눈꼬리 끝에 붉은 혈기가 돌고 한 줄기 핏줄이 눈꼬리에서부터 눈동자까지 이어져 살기(殺氣)가 보였다.
‘헛?’
만복자는 소름이 쫙 끼쳤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기가 막히는군, 기가 막혀! 점괘니 뭐니 그런 거 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구먼?”
만복자는 노인이 놓아둔 은전을 되밀어 놓고 급히 점구를 챙겼다.
“길이 바빠 이만 실례해야겠습니다. 복채는 됐습니다.”
노인이 실실거리고 웃었다.
“어딜 가.”
만복자는 점구고 뭐고 안 되겠다 싶어서 내팽개치고 달아나려 했다. 그런데 발을 한 걸음 떼자마자 만복자의 눈앞에 바람이 휙 일었다.
“억!”
만복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채 탁자에 머리를 박고 고꾸라졌다.
쿵!
귓가로 노인과 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이분 술 한잔 마시고 쓰러졌는데요?”
“어허, 이 친구야! 술이 약하면 약하다고 얘길 해야지. 아, 주인장은 걱정할 것 없네. 나온 음식은 다 먹고, 이 친구도 우리가 데려다가 쉬게 할 테니.”
* * *
만복자는 눈만 뜨고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웬 동굴 안에 있는 듯한데, 고개는커녕 손가락도 움직이질 못해 주위를 볼 수가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불쑥!
만복자의 얼굴 위로 갑자기 노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기가 막혀, 아주 기가 막힌 점쟁이야.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아.”
뒤에서 제자라고 소개했던 청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제기랄, 마지막 한 놈이 못 버틸 줄 누가 알았겠어. 다행히 이놈을 만났으니 망정이지, 또 한 놈 잡아 온다고 마을 안까지 들어갔으면 좀 위험했을 거야.”
“그랬으면 정파 놈들이 냄새를 맡았겠지. 가뜩이나 마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돌아다니니.”
“미친 정파 놈들이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다니는 바람에 하마터면 이곳도 들킬 뻔했잖아.”
“이놈은 떠돌이가 분명하니 뒤탈이나 별문제 없을 게야.”
으읍! 읍읍읍!
만복자는 속으로만 소리를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더럭 겁이 났다.
제자라던 청년이 노인에게 왜 반말을 하고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아,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보자고. 비조우인인지 뭔지 아주 길한 점괘가 나왔으니 오늘 다 끝나는 거야. 흐흐흐.”
노인이 만복자에게 말했다.
“자, 아∼ 하거라. 아∼.”
그러나 입술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만복자였다. 뒤에서 청년이 노인에게 핀잔을 주었다.
“쯧쯧. 벌써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어찌하나. 혈도를 풀어야지.”
“어이쿠, 내 정신 좀 봐라. 혈도가 짚여 있으니 어찌 입을 벌리나.”
노인이 만복자의 귀 어림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손가락이 뇌까지 파고드는 듯 찌릿한 통증에 만복자가 비명을 질렀다.
“크허억!”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만복자의 입으로 따끈한 액체가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
노인이 사발을 들고 만복자의 입에 뭔가를 흘려 넣고 있었다.
꿀럭꿀럭.
“컥컥, 컥!”
“자, 자. 흘리지 말고 잘 삼켜. 네놈 목숨보다 귀한 약이니까.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뒈질 줄 알아.”
만복자는 겁에 질려 고스란히 액체를 삼켰다.
지독하게 비리고 썼다. 따뜻한데 매캐하고 끈적거렸다. 그러나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꿀꺽꿀꺽.
얼마나 양이 많은지 노인은 몇 번이나 사발을 채워서 만복자에게 먹였다.
“그, 그만…….”
배가 다 차서 목까지 차올라 숨쉬기가 곤란해질 지경이었다.
“자아, 다 먹었다. 아이고, 착해라.”
만복자가 몇 번이나 사정사정하고 나서야 노인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멈추었다.
울컥.
만복자가 누운 채로 너무 먹어 액체가 역류하자 노인이 만복자의 상체를 일으켜서 등을 토닥였다. 아이 트림시키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이 나이에 애 보는 일도 쉽지 않구먼. 껄껄껄!”
“누가 보면 백 년은 산 줄 알겠어. 흐흐흐.”
동굴 안에 웃음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만복자는 웃을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동굴 안쪽에 고정된 상태였다.
‘저, 저건!’
시신들이었다.
목내이처럼 보이는, 말라 죽은 시신들 수십 구가 안쪽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거기서부터 지독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만복자는 공포에 질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저 질린 채로 겨우 입을 열어 물을 수 있을 뿐이었다.
“왜…… 왜 나를…….”
“우연히, 지. 자네 말대로 자네가 우연히 귀인이 되어 우리에게 온 것이야.”
“왜…… 하필.”
“억울한가?”
노인이 만복자의 고개를 돌려 시신들을 바라보게 했다.
“그럼 쟤들은 전생에 큰 죄라도 저질러서 마땅히 저런 꼴이 되었을까? 아니지. 그냥 우리 눈에 뜨인 게 잘못인 게야.”
“우욱.”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때, 노인이 만복자의 목을 콱 쥐었다. 그의 손은 마치 철로 만든 갈고리처럼 만복자의 목을 꽉 조여 왔다. 목구멍이 딱 붙어서 막혀 버린 기분이었다.
“삼키거라. 토하면 목을 비틀어 버릴 터이니.”
“끄윽, 끅.”
만복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끄윽, 차라리 죽…… 죽여라!”
“죽여? 내가 왜 자네를 죽이나. 자네가 최대한 살아 있어야 도움이 되는데.”
노인과 제자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며 웃기까지 했다.
“이 멍청한 자가 철지신협이라는 별호를 듣고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고, 일이 다 됐다고 생각했다니까?”
철지신협!
사실 이 노인과 제자는 사제지간도 철지신협도 아니었다.
실제로는 철지쌍괴(鐵指雙怪)라 불리는 악명 자자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강해지기 위해 무공 수련 대신 영약에 집착했는데, 좋은 영약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었다. 약탈이나 살인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결국 그 영약의 힘으로 내공을 늘려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하여 둘의 내공은 무려 이 갑자가 넘는 수준이었다.
노인으로 보이는 자는 증위란 이름으로, 실제로는 나이가 오십이 겨우 되었다. 너무 영약을 남용하다 보니 온몸의 털이 새하얗게 새어 버린 것이라 겉으로만 노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제자로 보인 자의 이름은 방녹인데, 방녹도 증위와 비슷한 나이이나 부작용이 반대로 와서 나이보다 굉장히 젊어 보였다.
수없이 쌓인 시신들을 보며 만복자가 목이 졸린 채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노인, 증위가 답했다.
“우리가 우연히 발견했지 뭔가. 만년소정(萬年沼精)을.”
만년…… 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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