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오주 지회의 회주 안종은 총군사 제갈료와 독대했다.
웅웅…….
“어때. 이만하면 됐나.”
안종이 기막을 친 덕에 방 안에서 소리가 울렸다.
“됐습니다.”
“너무 자주 찾아오는구먼. 설마 허 조장 때문은 아니겠지?”
“서신은 무림맹에서 왔지만, 그 서신이 온 이유를 따지고 보면 사실 허 조장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발목에 족쇄를 달아 놔서 그런가, 허 조장은 자꾸 날아가려다 말고 우리한테 돌아오네그려. 여기 먹을 게 뭐가 있다고.”
“이번 서신을 보니 먹을 게 있긴 있나 봅니다.”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두 사람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자, 이제 말해 보게.”
“무림맹에서 협조 요청이 왔습니다. 운남을 공격하는 데 병력을 차출해 달라고 합니다. 일류를 포함, 최소 사십 명 이상입니다.”
안종은 한쪽 눈을 찡그렸다. 단순한 협조가 아니다. 그 정도면 오주 지회의 무력 사 할이 넘는다.
“전쟁인가? 무림맹이 미쳤나. 선제공격을 하겠다고?”
“엄밀히는 봉문한 청성파를 친 마도가 먼저 한 짓입니다.”
“그 마도가 내세운 건 무림맹이 자신들의 지부 두 군데를 턴 데 대한 보복이었네. 그러니까, 어느 쪽이든 무림맹은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운남을 치겠다는 거야. 그런데 부담은 자기들이 져야지, 왜 우리한테 그래?”
백도맹은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명분하에 조직되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마도를 적대시하는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허 조장이 대종사가 한 달 안에 섬서의 화산파와 종남파를 칠 거라고 예측했답니다.”
그 말에 안종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정의연맹은 말 그대로 여러 문파가 연합하여 이루어진 단체였다. 따라서 직속 무력 조직은 있되, 맹 소속의 문파에 직접적으로 위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적대 대상에만 그 힘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서, 맹 자체가 초월적인 권한을 갖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여 각 지역에도 지부가 없이 대표 문파의 문주가 지부장을 맡았고, 그 지역에서 병력이 필요하면 인근 문파들의 도움을 받곤 했다.
이번 운남에 대한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무림맹의 직속 무력 조직이 파견되는 것이 마땅하나, 한 달 이내라면 파견할 시간이 부족했다. 따라서 운남에 가장 가까운 광서와 귀주의 문파들, 그리고 백도맹 오주 지회에 협조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무림맹의 요청은 강압적이지 않다. 그러나 거절하면 후에 도움을 받기 어려워진다.
“이번 일로 무림맹이 얻는 이득은?”
“첫째, 비어 있는 운남을 침으로써 마도의 병력을 양분시키고, 이로 인하여 섬서에서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 둘째, 사천이 허술해지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사천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 셋째, 동부의 병력을 서부 전선까지 이동시킬 시간 확보. 이 정도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운남을 점령할 필요는 없는 거겠군? 무림맹의 주력은 섬서에 있을 테니까.”
안종이 깊이 장고한 뒤 제갈료에게 물었다.
“우리 군사 회의에서의 결정은?”
“식소사번의 전략을 포기하고 담대하게 해 보자는 쪽이 반이 넘습니다.”
“의외로구만. 하기야, 상대가 천하의 후레자식이니까 우리도 그에 맞춰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군사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한가?”
“무림맹에서 별 이견 없이 일개 점술가의 의견을 따랐을 리 없습니다. 그게 설사 허 조장이라고 해도 말이지요. 제 형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니까요.”
“맞네. 그러니까 무림맹의 군사당에선 이미 대종사가 섬서를 칠 걸 알고 있었군.”
“허 조장은 그걸 점술로 예측했고요.”
안종과 제갈료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 다 알 수 없는 의미의 눈빛을 띠었다. 제갈료가 먼저 말했다.
“우리의 손해는 상황에 따라 다르나, 후방 지원의 형태가 될 터이니 최대 열 명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로서는 큰 손해야. 그리고 만일 무림맹이 섬서에서 실패하면, 그다음엔 당연히 우리한테까지 화살이 날아오겠지. 사승의 건에다가 운남을 친 데 대한 건까지 포함해서.”
안종이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섬서에서 무림맹이 대승을 거둬야 마도가 위협을 받을 테고, 상대적으로 우리가 안전해지게 되네. 그런데, 무림맹이 섬서에서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일세?”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종사의 행보는 도무지 군사들의 머리에서 나온 거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즉흥적이고 과장된 부분이 있어. 청성파를 칠 때만 해도 열 배가 넘는 인원을 동원해 압살했다는데, 그건 보통 군사들이 쓸 법한 전술이 아니지 않나?”
“두 배에서 세 배면 충분하지요. 숫자가 많을수록 오히려 약하다는 인상을 주니까요.”
“그렇지. 떼로 몰려가서 패는 건 뒷골목 건달들이 세를 과시할 때나 쓰는 방법이야.”
“야율황이란 자가 원래 그런 인물이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현재 대종사가 자신을 보좌하는 지휘부의 조언을 묵살하고 제멋대로 하고 있거나, 지휘부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는 뜻이지.”
“그런 주먹구구식이기 때문에 더더욱 섬서에서 크게 당할 거라 봅니다. 무림맹 군사당이 움직였으니, 가장 뛰어난 군사가 기선을 잡으러 파견될 겁니다.”
“그럴까? 난 좀 다르게 보네. 아무리 대단한 군사라도 미친놈의 미친 짓까지는 예측할 수 없어. 뇌마가는 그나마 제정신인 놈들이라 명분 쌓는다고 청성파의 위성장원을 치다가 궁지에 몰렸지만, 대종사는 명분도 상관하지 않고 청성파를 직접 쳤네. 무림맹도 그건 예측 못 했어. 섬서에서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
“무슨 얘기를 하시려는지 알겠군요.”
안종이 실쭉 웃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그런 미친 짓도 예측할 수 있는 인재가 있지. 일단 무림맹의 협조 요청에 응하세.”
“그리고요?”
“허 조장을 섬서로 보내게. 시골 변방에 있어 봐야 와룡밖에 더 되겠나. 용은 하늘로 마음껏 날아올라야 제격이지.”
“그럼…….”
“무림맹이든 어디든, 허 조장을 필요로 한다면 아주 비싼 값에 팔아. 하지만 절대 이번처럼 싼값엔 안 되네. 돈이 아니라 빚이든 지원 약속이든 뭐든, 우리에게 필요한 걸로.”
안종이 기막을 거두며 말했다.
“그게 그의 가치이고 또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니까. 계약 파기금 조로 생각하자고.”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 * *
모용가와 남궁가가 돌아가고 난 며칠 뒤.
“파견 근무?”
허윤은 오주 지회로부터 섬서성의 성도인 서안으로 이동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아니, 거기서 큰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말했는데도 나를 보내?”
심지어 섬서는 계속된 마도와 정파의 다툼으로 치안마저 좋지 않다고 했다. 하루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싸움이 수십 차례나 된단다.
“이거 뭐, 사지로 걸어갔다가 나오라는 건가.”
물론 서신에는 파견 이유가 적혀 있었다.
섬서성에서는 혼란을 틈타 사파가 득세하고 있음. 사파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며 서안의 상인들에 대한 갈취와 약탈이 자행되는데도 서안 지회의 인력이 부족하여 대처가 되지 않으므로, 이에 상황 파악을 위해 파견 근무를 명함.
제갈료의 추신이 붙어 있었다.
자네가 수석을 모은다고 들었는데, 섬서성에 유명한 수석 거리가 있네. 가는 김에 한번 들러 보는 것도?
“보는 것, 도? 나 참. 병 주고 약 주나. 그나저나 내가 수석 찾는 건 어떻게 알았대.”
요즘 들어서 많이 필요가 없어지긴 했으나, 그래도 손에 맞는 돌이 없어서 아쉬웠던 참이었다. 수석 거리라 하니 은근히 구미가 당기긴 했다.
전갈을 가져온 이의 말에 따르면, 오주 지회도 대부분의 임무가 취소되고 새로운 임무를 위해 대기 중이라고 했다.
“아마 일 조를 비롯해서 수풍검인가 하는 사람까지 상당수가 운남으로 들어가겠지.”
어차피 오주에 있었어도 차출되긴 했을 터였다. 허윤은 여전히 서기이지만 이제는 사실상 오주 제일의 고수나 다름이 없었다.
“운남에서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일단 운남으로의 공격이 시작되면, 사천으로 모용가와 남궁가의 고수들이 진입하여 모용헌과 남궁란을 찾게 될 터였다.
다행히도 당문과도 연락이 닿았다. 당문도 봉문한 청성파가 당하면서 굉장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이 기회를 이용해 사천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했다. 그들이 모용헌과 남궁란 두 사람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준다 했으니 사정이 훨씬 좋아졌다.
두 사람 때문에 점을 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한발 앞서 전쟁을 알아차린 것처럼 일이 운 좋게 풀려 버렸다.
“다들 잘됐으면 좋겠군.”
장용과 쾌도도 필요하면 데려가라 했으니 의향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허윤이 방으로 돌아오니 대장로 악리에게 가 있던 장용과 쾌도가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방에 있는 건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어라?”
방을 두고 양쪽에 장용과 쾌도, 그리고 고우사가 대치 중이었다.
장용과 쾌도는 눈을 있는 대로 부라리는 중이었고, 고우사는 별 웃긴 놈들 다 보겠다는 양 둘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뭐 합니까, 세 사람?”
장용과 쾌도가 늘 그랬듯 눈을 치켜뜨고 흥분해서 말했다.
“아, 형님! 저 건방진 영감탱이가 우릴 보자마자 주인 행세를 하면서 이래라저래라하잖습니까.”
“다 꼬부라져서 당장이라도 뒈지기 딱 좋게 생긴 게! 무슨 지가 절정고수라나, 하면서 입만 털고 자빠졌는데요?”
허윤이 고우사를 쳐다보았다. 고우사가 어이없다는 듯 흘흘 웃었다.
“난 또 내 뒤치다꺼리하라고 종놈 둘 데려다 놓았나 싶었지. 근데 아는 사이였나 봐?”
“동생들이오. 그나저나, 말이 좀 이상하구려. 내가 왜 영감 뒤치다꺼리를 하라고 신경을 써 줬겠소?”
“아니면 쟤들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내 방인데 왜 노인장이 이유를 찾고 그러시오?”
“쯧쯧. 갈 곳 잃은 늙은이를 홀대하다니. 너나 동생들이나 하여간 싸가지가 없는 건 똑같구나. 악가장 안이 아니었다면 벌써 치도곤을 놨을 텐데.”
장용과 쾌도가 입에 거품을 물었다.
“형님! 저 영감탱이가 형님 욕하는데요?”
“이거 소지광 영감보다 더 악질 영감이네. 어떻게 사람에게 치도곤을 놔?”
고우사가 귀를 쫑긋했다.
“소지광이 누구냐? 나 같은 고수냐?”
쾌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스산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 맨날 팔다리가 부러져서 연초만 뻑뻑 피우는 노망난 영감 있어.”
“이야…… 이 새끼, 보면 볼수록 얼굴 좋네. 너 내 밑에서 일해 볼래?”
“아니, 이 영감탱이 사람이 말하는데 왜 갑자기 딴소리를 해. 그게 아니라, 팔다리가 부러진 노망난 영감이 있다니까?”
“네가 노망났다고?”
“아니, 팔다리가 부러졌다고.”
“그럼, 내가 노망났다고?”
“귀가 처먹었나! 팔! 다리! 가 부러졌다니까?”
“누가 노망났다고?”
쾌도가 답답해하며 가슴을 쳤다.
“팔다리가 부러졌다니까! 팔다리! 왜 그걸 못 알아들어? 영감도 팔다리 똑! 부러져 봐야 알아듣겠어?”
쾌도는 팔다리가 왜 부러졌는데, 하고 물어봐 주기를 기대하면서 집요하게 그것만 캐물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고우사는 실실 웃으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러니까 노망난 영감이 누구라고?”
“야, 이 곧 팔다리가 부러질 노망난 영감탱이가! 아이 씨! 답답해 죽겠네!”
고우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은 꼭 흑백무쌍(黑白無雙)을 닮았구나. 아주 대단한 놈들이었지.”
이번엔 장용과 쾌도가 귀를 쫑긋했다.
“흑백무쌍? 그게 누구야.”
“우리처럼 대단해?”
“아암, 대단했지. 내가 팔다리를 뽑아서 입에다 처넣을 때까진.”
“아니, 씨! 이런 미친 영감탱이가!”
“정말 우리 형님한테 죽어 보고 싶어?”
허윤은 거기까지 듣고 있다가 가만히 문을 닫고 나왔다.
파문으로 안정시켜 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투기가 전혀 없었다. 그냥 저게 저들의 평상시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밖에도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