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속이 역해진 계춘이 입을 막고 헛구역질했다.
“우욱. 욱.”
왕중과 상인들이 소매로 입을 막고 소리쳤다.
“이래도 몰라?”
“이 더러운 놈들. 아무리 그래도 애들처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계춘은 고개를 흔들며 항변했다.
“아니. 이보시게들. 이걸 왜 우리가 했다고 의심하는가? 증거도 없는데 다짜고짜 몰아세우고 그러면 안 되지.”
“의심을 안 하게 생겼어?”
왕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기 가게를 가리켰다.
그 전각에는 유독 더 많은 오물이 뿌려져 있었다.
“그 옆 가게를 봐!”
가게들에 죄다 오물이 뿌려져 있는데, 잡화점만 오물 흔적이 없었다.
“저놈만 빼고 모두 만금방 소속인데, 저놈 가게만 깨끗해. 그럼 누가 한 짓일까?”
“저 가게는 우리 백도맹에 가입한 가게가 아닐세.”
왕중이 허윤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네놈도 오리발을 내미시겠지?”
“아랫사람을 믿고 맡겨라……. 내가 신기가 떨어진 건가, 아니면 이게 맞는 건가…….”
허윤이 혼자 중얼거리자 왕중과 상인들이 화를 냈다.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가 알아듣게 얘길 해 보라고!”
허윤은 잠깐 생각하다가 또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내가 했을 수도 있고.”
“뭐라고! 이런 뻔뻔한……!”
“아닐 수도 있고.”
“……우리가 지금 장난하는 줄 아나!”
“아, 미안하오. 요즘 자꾸 성격이 이상해지는 게, 아무래도 오염되는 것 같구려.”
“아까부터 얼토당토않게 무슨 소리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나는 저 가게에 진상을 쫓아내는 부적을 써 준 것밖에 없소이다.”
“뭐? 부적?”
상인들이 확인해 보니 잡화점 기둥 위쪽에 노란 부적이 붙어 있긴 했다.
백도맹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고작 부적?
더 수상한데?
그때, 왕중의 눈이 커졌다.
누군가 오는 게 보였다. 왕중이 기다리던 이였다.
“앗! 오셨다!”
왕중과 상인들이 코를 막고 읍을 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협!”
허윤이 돌아보니 호리호리한 중년의 무인이 만금방의 무사들을 이끌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계춘은 그를 보고 신음을 흘렸다.
“철면도(鐵面刀)……! 만금방이 철면도까지 포섭했나.”
왕중이 입을 막고 껄껄 웃었다.
“고우사를 상대하려면 이쪽도 철면도 대협 같은 분을 모셔야지.”
허윤이 누군지 잘 모르는 듯하자 계춘은 철면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작게 말해 줬다.
“사파의 유명한 고수일세. 초일류급이지. 만금방이 쉽게 섭외할 수 있는 자가 아닌데, 어떻게…….”
철면도!
대개 사파로 분류되는 이들이 그러하듯, 철면도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들 괴롭히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자였다.
“원래 강동에서 활동했는데, 무관들이 월사금(月謝金)을 받는 날만 골라서 습격해 돈을 강탈한 전력이 있네. 무관이 도장 깨기를 당하고 돈까지 빼앗기면 그 무관은 끝나는 걸세. 하여 무관들은 어쩔 수 없이 철면도가 나타나면 월사금의 일부를 자진 상납했다고 하지.”
“허. 못된 자로군요. 얼굴에 탐욕과 잔인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보입니다.”
냄새 때문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철면도가 허윤과 계춘을 노려보았다.
철면도라는 별호답게 얼굴이 쇠처럼 거무죽죽하고,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이 더러운 짓을 한 게 백도맹, 네놈들이냐?”
계춘이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가 아니오. 아무리 경쟁 관계라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소이다. 어떻게 백도맹이 이런 짓을 한다고 의심하시는 거요?”
“그걸 어떻게 믿지?”
철면도가 허리에 찬 도를 짤랑거리고 흔들며 다리를 벌렸다.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가라. 그리고 서안을 떠난다고 하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계춘은 철면도의 협박을 바로 일축했다.
철면도의 살기가 짙어졌다.
그가 히죽대면서 도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그럼 죽어야지.”
철면도는 처음부터 손을 쓸 생각으로 온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손을 쓸 거라 생각하지 못한 계춘이 놀라서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도 진령 상회의 사람인지라 무공을 다룰 줄은 알았다.
“순순히 당해 줄 것 같으냐!”
그런데 허윤은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위험한 싸움이 벌어지는데도 왜 위험을 예지하는 조짐이 없었을까.
허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가…….
허윤은 철면도의 앞으로 가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응? 네놈은 내 가랑이를 기어서라도 살고 싶은가 보구나?”
철면도의 입에는 조롱의 웃음이, 계춘에게는 경멸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허리를 숙였다가 고개를 든 허윤이 철면도의 뒤쪽을 보며 외쳤다.
“어? 고우사 영감?”
그 말에 철면도와 계춘, 그리고 상인들과 만금방 무사들까지 모두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고우사가 어디…….”
그 순간 허윤은 적당한 각도와 거리를 가늠하고, 심호흡을 한 뒤, 바닥에서 주운 작은 돌멩이로 자기 머리를 후려쳤다.
와직.
돌멩이가 으스러지듯 쪼개짐과 동시에 한 줄기 바람이 철면도의 뒤통수를 세차게 치고 튕겨 날아갔다.
바로 지척에서 벌어진 일이라 돌멩이 쪼개지는 소리와 퍼억! 하고 뒤통수에 맞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철면도가 휘청거렸다.
“어?”
“어어어? 처, 철면도 대협?”
눈이 허옇게 뒤집힌 철면도가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초일류급인 철면도가 한 방에 맞고 기절을 하다니!
“아앗! 암습이다!”
“철면도 대협이 당했어!”
허윤이 입을 가리고 소리쳤다.
“고우사가 철면도 대협을 기습했다!”
“고우사!”
왕중과 상인들 그리고 만금방의 무사들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고우사를 찾으려 했다.
허윤의 눈앞에 탐스러운 뒤통수들이 보였다.
으음?
새하얀 눈밭을 보면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고 싶은 것처럼, 강렬한 유혹이 느껴졌다.
아아, 원래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북두건곤칠성대법의 성취가 높아지면서 요즘 내공의 조절도 좀 잘되는 편이었다.
약하게, 약하게.
가능할 것 같았다.
허윤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왕중의 뒤로 갔다.
그러곤 왕중의 뒤통수를 아주 가볍게 툭 들이받았다.
빠바박!
두풍이 두 번을 튕겼다.
왕중과 그 옆에 있는 무사들의 머리에서 차례로 박 깨지는 소리가 났다.
세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튕기듯 날아가 자빠졌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몸이 꼿꼿하게 일자로 경직된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아앗! 비겁하게 또 암습을!”
“왕 대인까지 당하셨다!”
상인과 무사들이 허둥댔다.
허윤은 또 한 명의 무사를 제물로 삼았다.
툭.
빠바박!
무사의 머리에 일 차 충격을 준 두풍이 튕겨서 옆의 상인을 맞추고, 또 그 앞 무사의 뒤통수를 쳤다.
“꺽.”
세 명의 머리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강풍에 날린 썩은 수수깡처럼 옆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중인의 머릿속에는 이미 고우사만 각인되어 있어서 허윤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계춘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가, 무심코 허윤을 보았다.
“고우사는 보이지도 않는데 대체 어디서 암…… 습을…….”
빠바박!
계춘은 자기가 뭘 보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웠다.
허윤이 은근슬쩍 다가가서 뒤통수에 머리를 대면, 그 순간 세 명 혹은 그 이상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나자빠졌다.
“그, 그만해! 정정당당하게 나와!”
허윤이 시끄럽게 소리 지르는 무사의 뒤통수에 머리를 맞대었다.
그 순간 벼락처럼 또 박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빠바박!
뭔가 공기를 가르며 튕기더니 무사와 상인들이 와르르 자빠졌다.
계춘은 하마터면 외칠 뻔했다.
고우사…… 가 아니잖…….
그 순간, 허윤이 입을 가리고 소리쳤다.
“고우사 나쁜 놈이 비겁하게 숨어서 공격한다!”
그러다가 계춘과 눈이 마주쳤다.
허윤이 눈웃음을 지었다.
계춘은 소름이 끼쳤다.
“왕 대인을 부축해!”
“달아나자!”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인들이 사라지고, 남은 무사들도 철면도와 왕중을 데리고 도망갔다.
“…….”
멀쩡히 서 있는 건 허윤과 계춘 뿐이었다.
나머지는 바닥에 엎어지거나 자빠져 있었다.
허윤은 옷자락을 툭툭 털었다.
“하여간 고우사 이 영감, 비겁하기 짝이 없다니까.”
계춘은 한 번 더 소름이 다닥다닥 돋았다.
허윤이 무서워졌다.
* * *
지회로 돌아온 계춘은 허윤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소동 피우지 말라고 했더니…… 똥을 투척했군. 그거…… 자네가 한 일이 맞지?”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런 것 같습니다.”
“하아. 난리 났군. 놈들이 그동안은 나까진 건드리지 않았는데, 이젠 우리가 선을 넘었으니 다 끝장이네.”
허윤은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사실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만금방을 그렇게 두려워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니,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백도맹은 뭘 한 겁니까?”
계춘이 대답했다.
“나라고 뭔들 안 해 봤겠는가. 사파 애들이 들어왔을 때, 너무 폭력적이고 하는 짓이 도를 넘어서 처음엔 우리도 상인들을 보호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네.”
“그런데요?”
“고수들이 족족 죽어 나갔어. 본단에서 고수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오기만 하면 죽었어.”
“무슨 괴기담입니까?”
“괴기가 아니라, 섬서는 혼란스러워 보여도 정파와 마도가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네. 특히 서안은 약간의 중간 지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
“그 말씀은, 우리 고수들을 해친 게 마도의 짓이란 얘기로 들립니다.”
허윤은 만금방이 마도에 연줄이 있다고 들었던 걸 기억해 냈다.
계춘이 끄덕였다.
“아마도.”
“왜지요?”
“마도든 정파든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네. 문제는 그 물자들이 서안을 통해서 거래되고 섬서 전체로 보급이 된다는 점일세.”
계춘이 생각해 보라는 듯 물었다.
“그런데 서안에 정파 고수들, 그것도 강력한 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도가 불편해하겠군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보급에도 차질이 생길 테니 싫어하는 거지.”
계춘이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마도로서는 서안이 계륵일세. 무리하게 점령하려면 북동쪽과 남동쪽에 있는 화산파, 종남파로부터 협공을 당할 테고. 놔두자니 아쉽고.”
“정파는요?”
“서안의 북쪽과 서쪽, 남쪽은 마도가 장악했네. 정파가 서안을 차지하면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공격을 당하게 돼. 그래서 결국은 양측이 다 기피한 채로, 사파가 득세하게 된 걸세.”
계춘이 허윤에게 당부했다.
“나는 맹주님과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꺼리는 이 험한 곳에 와 있네. 그러니까 제발 문제 일으키지 말…… 하아. 아니…… 이미 늦었지.”
계춘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나까지 표적이 됐으니, 내가 시체가 될 수도 있겠군. 아무래도 중앙회에 철수 요청을 해야겠네.”
“괜찮습니다. 잘될 겁니다.”
허윤의 말은 계춘에게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 * *
허윤이 장용과 쾌도의 방으로 찾아가니, 둘은 드르렁 코를 골며 세상 모르게 뻗어 자고 있었다.
한데 방에서 희미하게 분뇨의 냄새가 났다.
밤새 뭘 하고 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러는 게 어디가 정파의 방식인지, 원.
하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만금방과 마도가 어느 정도 물밑에서 손을 잡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만금방이 서안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만금방이 서안에서 마도의 물자 보급을 맡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아무래도 만금방을 확실히 눌러 놓긴 해야겠군.”
허윤은 어떻게 벌인 일을 마무리할까 생각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것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물론 허윤이 할 것은 아니고…….
“가급적 아랫사람을 부리라 했지.”
일행 중에 밥값을 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소문이 잔뜩 나서 이름은 유명해졌는데 놀고 있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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