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第五十六章 돌아온 오주
약왕은 희한하게도 잠을 설치는 때가 많았다.
온종일 걷고, 배와 마차를 타고, 술을 실컷 마신 뒤 가장 좋은 숙소에서 자도 그랬다.
운기행공으로 피곤을 쫓을 수 있긴 하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계속되니 기력이 달렸다.
약왕은 안 되겠다 싶어서 약재를 구해 와 한방차를 끓였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긴 했군.”
하긴 나이 여든, 산수(傘壽)면 갈 날도 머잖은 터였다.
대개 육십이 넘으면 일선에서 물러날 시기를 고려하는 걸 생각해 보면, 약왕은 꽤 오래 현역에 있던 셈이었다.
게다가 함께 다니는 허윤은 마도와 싸우고 있어서,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약왕은 불현듯 살아서 성숙곡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르신…… 혼자 좋은 거 드십니까?”
갑자기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묻는 쾌도였다.
약왕은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태연하게 대답했다.
“석창포, 청궁, 국화, 대추, 백복령 등을 섞어 만든 한방차일세. 숙면을 취하게 해 주지.”
“에이.”
쾌도가 별것 아니라는 듯 가 버렸다.
약왕은 치가 떨렸다.
이놈은 도대체 왜 꼭 인기척도 없이 사람 뒤에서 뭘 물어보는가.
특히나 머리를 찰랑거리며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이상한 털보는 눈만 말똥거려서 바보같이 보이는데, 의외로 사람 속을 잘 긁어서 대하기가 매우 귀찮았다.
이렇게 은근히 신경 쓰게 만드는 일이 많아서 더 피곤한 듯싶었다.
한데 갑자기 고우사가 달려왔다.
“그게 숙면 차라고? 나도 좀 줘.”
약왕은 얼떨결에 차를 나눠 마셨다.
고우사가 화를 냈다.
“하, 씨. 아주 개 잡종 새끼. 하여간 사람 괴롭히는 덴 도가 텄어.”
“왜 그러시오?”
“허가 놈 때문에 잠을 못 자겠잖아. 하여간, 그 이상한 것들 좀 풀어놓지 말래도 밤새 수련한다고 꺼내 놔서 말야.”
“뭘 꺼낸다는 것이오?”
“귀물.”
“아……!”
“개중에 하나는 저번에 대종사가 구멍을 내 놨대서 잘됐다 싶었는데, 그림에서 피가 나. 그다음부터 더 흉흉해졌어. 나 참.”
“…….”
“한동안 안 그러더니 요즘은 매일 저러네. 자네도 잠을 못 잤지? 뭐, 익숙해져야 할 거야. 영 익숙해지지 않지만.”
“그런데 방금 쾌도란 자는 숙면 차라고 해도 별로 반응이 없었소이다.”
“흘흘. 멍청한 놈들은 귀신도 안 들린다잖나. 걔들은 신경 쓰지 마.”
멍청한 것 같지 않던데…….
약왕은 차를 한잔 더 따라서 좀 떨어진 데에 있는 대홍랍강에게 권했다.
대홍랍강은 코웃음을 쳤지만, 숙면 차가 필요하긴 했는지 바로 받아 마시곤 가 버렸다.
* * *
오주 지회의 총군사 제갈료는 허윤이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런데, 동행하는 이들의 면면이 좀 이상합니다.”
보고한 이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진법가인 정사지간의 고우사, 전대 신강제일인이라 불렸던 대홍랍강, 성숙곡의 약왕이 함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작은 여자아이도 한 명 있던데요.”
전성기는 훨씬 지났지만, 그래도 하나같이 강호에서 제법 이름이 난 인물들이었다.
뭔가 대단하다고 하면 대단한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은퇴 여행이라도 하는 듯 보일 수도 있는 묘한 일행이었다.
“도대체 그게 어떤 이유로 뭉친 조합인가?”
“글쎄요.”
제갈료는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었다.
“하여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친구로군.”
하나 예전에 오주에 있을 때와는 위상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제갈료는 탁자 위에 놓인 한 장의 전표를 잠시간 쳐다보았다.
“어쨌든 준비를 해야겠군. 이제 많은 게 달라질 테니.”
* * *
허윤 일행은 마침내 오주로 돌아왔다.
이미 상당수가 운남으로 나가 있어서 전보다는 한산한 편이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상주 인원들이 꽤 있었다.
그들이 허윤 일행을 보곤 쑥덕댔다.
노주 팔 조의 패류방에서 시작하여 전 강호에 이름을 떨친 허윤을 모르는 이는 여기에 없었다.
장용과 쾌도는 벌써부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허, 오주가 이렇게 작았나?”
“역시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니까.”
허윤을 맞이하러 나온 이는 일 조의 서기 이진휘였다.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곤 허윤과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와…….”
이미 동행자들이 누군지 알고 나온 터라, 이진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야, 허 조장. 이젠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네.”
“잘 있었나.”
허윤이 읍을 하며 인사하자, 이진휘도 정중하게 읍으로 답했다.
“회주님도 운남으로 가셨고, 지금은 제갈 군사께서 지회를 맡고 계셔. 허 조장이 오는 대로 만나시겠다고 하셨으니 따라오게. 손님들은 따로 잘 모실 테고.”
“그러지.”
허윤은 일행들에게 다녀오겠다고 말을 전한 후, 이진휘를 따라갔다.
이진휘가 걸으며 말했다.
“표정이 좋아 보여. 예전보다 안색도 훨씬 좋고. 그거 봐, 허 조장은 무림인이 더 어울린다니까.”
“그런가? 나도 제대로 무림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맘이 좀 편한 것 같네.”
“아니, 도대체 저런 거물들하고는 어떻게 어울리게 된 거야?”
“고우사 노인장은 알 테고.”
“뭐, 소문을 대충 듣긴 했는데…… 약왕은 상상도 못 했네. 약왕이 왜 자네와 함께 있어?”
“난 별로 필요 없는데, 본인이 따라다니겠다고 한 걸세.”
“하여간 자네…… 정말 출세했네. 부러워.”
“자네도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응? 내 얼굴에 그렇게 써 있어?”
“좋은 일이 있을 걸세.”
이진휘의 콧대가 높아졌다.
“뭐, 천하의 허 조장이 하는 말이니까 당연히 맞겠지. 그럼 나중에 보자고.”
이진휘는 안내를 마치고 인사를 하며 돌아갔다.
허윤은 제갈료의 집무실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소매를 뒤적거리다가, 점괘 하나를 꺼내었다.
가가득제(哥哥得弟).
형이 동생을 얻다.
그 점괘를 한동안 바라보던 허윤이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집무실에는 직속 상관이었던 서무관 오륭과 제갈료가 함께 있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륭이 크게 기뻐하며 허윤을 맞이했다.
“자네! 정말 활약이 대단했더군! 자네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 오주에서 서기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을 정도라니까.”
받아 주는 데가 없어서, 였지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저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섬서성에서는, 휴…… 자네가 마도를 일망타진하고, 그들의 대종사를 독대했단 얘기를 듣고 오금이 저려 혼났다네.”
“일망타진까지는 아닙니다.”
“그게 그거지, 이 사람아. 서안에서 사파를 전부 쫓아낸 것도 아주 훌륭했네.”
하나 허윤은 그 말에 조금 어두운 안색이 되었다.
“그건 좀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많은 이들이 서안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죽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건 자네 탓이 아니지. 자네는 떠나라 권고하였는데, 욕심을 부려 떠나지 않은 이들의 잘못이지. 마도 대종사가 어떤 자인지 알면서도. 쯧.”
제갈료가 운을 띄우듯 말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텐가?”
“글쎄요.”
허윤은 제갈료가 던진 질문의 의미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허윤은 이제 거물들과 어울릴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제법 거물이 되었다.
응당 오주에서 일개 서기나 조장으로 있기는 어렵다.
그 이상의 직위를 준다 해도 이름값에는 못 미친다.
하여 제갈료는 오주의 능구렁이답게 본론으로 치고 들어오며 거취에 대한 허윤의 생각을 떠본 것이다.
제갈료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계약 기간은 끝났고, 재계약의 의사가 있느냐 물은 걸세.”
오륭이 끼어들었다.
“당연히 재계약을 해야지요. 허 조장, 자네도 이제 예전의 허 서기가 아니니까 특급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네.”
제갈료가 말했다.
“참고로 팔 조는 운남에 파견되어 계약이 자동 연장 중일세. 아마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음.”
운남이라.
그건 생각해 보지 않은 방향이었다.
“운남은 상황이 어떻습니까?”
“화산파에서 자네의 도움을 받아 해독 약을 전달해 주었다지. 덕분에 잘 풀렸네.”
제갈료의 말을 오륭이 이었다.
“그곳이 명계보와 불사보의 거점이라 버티기 유리한 점도 있고, 알다시피 사파의 발호로 전역에 난리가 나 조만간 철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네. 이곳 광서성에서도 전에 없이 사파들이 날뛰고 있어서 골치가 아프지. 하지만 자네가 왔으니, 뭐.”
오륭이 ‘아!’ 하고 생각났다는 듯 말해 주었다.
“남궁가와 모용가도 사파 때문에 사천성에 진입하지 못하고 돌아갔네. 하지만 사천성의 마도가 대부분 섬서성으로 올라가 다행히 원래 목적은 달성했다 하더군.”
모용헌과 남궁란을 구해 낸 모양이었다.
“잘됐군요.”
그럼 허윤으로서도 더는 걸리는 게 없었다.
하여 이곳으로 오면서 생각해 왔던 얘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사실…….”
“아, 잠깐.”
제갈료가 슬쩍 탁자 위로 전표를 밀었다.
“자, 이것을 보고 나서 말하게.”
허윤이 보니 어음이었다.
“돈은 소문이나 사람보다도 더 빠르지. 자네가 도착하기 닷새 전에 온 걸세.”
어음은 무려 은 오백 냥이나 되었다.
중소 상회의 한 해 수익과 맞먹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한데 수취인이 백도맹 오주 지회의 허윤으로 되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사례비와 뇌물.”
“예?”
오륭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덕에 서안에서 탈출한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감사의 의미로 보내 온 걸세. 자네가 그들을 살리려고 사비까지 탈탈 털어서 빈털터리가 되었다며.”
“제가 쓴 금액보다 훨씬 많습니다만.”
“자네 덕분에 재산을 처분하여 큰 손해도 보지 않았고, 목숨까지 부지했으니 이 정도면 그들로서도 남는 장사일 거네.”
제갈료가 부채를 펴서 부치며 말했다.
“자네가 단순한 무림인이었다면 그들도 사례를 생각하지 않았을 걸세. 하나 자네는 백도맹의 일원이고,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네와 연결되기를 원하는 걸세. 그런 의미에서 다소 과한 사례비가 된 이유는, 뇌물이 포함되었기 때문이지.”
허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런 게 왔으면 미리 주고 얘기해도 되는데, 꼭 중요한 순간에 사람을 흔들 요량으로 내미는 게 여전히 능구렁이였다.
허윤도 짐짓 떠보는 투로 답했다.
“뇌물이라. 그럼 받으면 안 되겠군요.”
“자네가 백도맹을 떠날 거라면 받으면 안 되지.”
“떠나라고 등을 떠미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제갈료가 말했다.
“백도맹은 상인들의 목숨과 이권을 보장하기 위해 생긴 단체일세. 자네가 서안에서 한 일이 바로 그것이지. 따라서, 그들은 자네에게 사례비를 보냄과 동시에 백도맹에도 감사의 인사로 상납금을 보냈네.”
“그러면…….”
“자네의 활약으로 백도맹에 가입하는 상회가 늘기 시작했네. 그런 상황에서 자네가 떠나면 백도맹은 큰 손해를 보게 되지.”
“하지만 저는 마도와 싸우고 있습니다.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백도맹 본회에서도 그 두 개를 두고 저울질을 했을 걸세. 그러나 대종사가 서안에서 상인들을 참수함으로써, 선택의 여지는 사라졌네. 하여.”
제갈료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륭이 전표 하나를 더 내밀었다.
“본회에서 자네에게 지급할 금액일세.”
허윤은 입이 떡 벌어지려 했다.
은 오백 냥.
서안에서 상인들이 보낸 금액과 합하면 무려 은 천 냥이 된다!
어지간한 서민들이 평생 구경해 보기도 어려운 돈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과한 친절은 반드시 대가가 있다.
“사실 전 돈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약왕 어르신이 제법 여유가 있으시더군요.”
“물론 성숙곡의 재력이 대단하긴 하나, 자네도 이게 필요하게 될 걸세.”
“제가 이 돈을 받는 대가가 무엇입니까?”
“좋든 싫든 자네는 백도맹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네. 백도맹 본회는 자네와 연을 계속 잇기를 바라지.”
허윤은 전표를 만지작거렸다.
감회가 솟구쳤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건 허윤의 ‘몸값’이다.
드디어 허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하나 허윤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제 얘기를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저는 서기나 상인이 아니라, 앞으로 무림인이 되려 합니다.”
“그러리라 생각했네. 자네의 목적은 복수라 하였으니까. 그래서…….”
제갈료의 눈짓을 본 오륭이 비단으로 감싼 것을 허윤의 앞에 내놓았다.
모양이나 크기를 보아하니…….
“설마 이것은…….”
“무공 비급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