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단혼수가 털어놓았다.
“사실…… 산동 상황이 좀 안 좋다네. 처음에 북천이 밀고 내려와서 황보가와 모용가가 크게 패하고 물러났었거든.”
“그때 누구 편이었소?”
“마도. 웃대가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었어.”
“쯧쯧.”
“그런데 무림맹이 개입해서 다시 회복했잖아?”
“처지가 애매하게 됐구려.”
“그렇지. 자네 덕에 어떻게 발을 빼긴 했는데, 황보가와 모용가는 아직 이를 갈고 있을 거란 말이지?”
“흐음.”
“그래서, 자네에게 중재를 좀 부탁할까 하고.”
채주까지 거지 분장을 하고 나와서 동향을 살피던 이유가 그것이었던 듯했다.
“글쎄올시다.”
허윤이 한 발 빼자, 단혼수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술잔을 채워 주었다.
“에이, 우리 사이에 왜 그래.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
허윤이 정색했다.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요. 닭 다리와 회 한 점이 다인데.”
“자네, 녹림을 싫어하지?”
“싫어하오.”
“산채와 수채를 가리지 않고 창고를 죄 털었다는 얘길 듣고 그럴 거라 생각했네.”
“난 무공을 알기 전에 평범한 점복자였소. 눈먼 칼에 죽을까 봐 그것도 무서웠지만, 힘들게 번 돈을 빼앗기는 건 정말 억울했소. 그래서 똑같이 당해 보라고 되돌려 준 거요.”
“우리도 눈먼 칼 두렵긴 마찬가지라네. 고수인 줄 모르고 잘못 건드렸다가 몰살당하는 경우가 허다해. 뭐, 좋아. 그건 그럴 수 있다 이거야. 그런데, 그렇게 죽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나? 아이쿠, 망할 산적 놈들 잘 죽었다∼ 그런다네. 길가의 개보다 못한 목숨이지.”
“산적질을 안 하면 되잖소.”
단혼수가 껄껄 웃었다.
“녹림도가 없어지면 자네 돈과 목숨은 안전해지나? 세상 흑도 방파가 다 사라지면 사람 때리고 갈취하는 자들 없어지나? 그런 자들은 정파에 가도, 관아에 가도 수두룩해. 하면, 그자들도 죽어야 마땅하지 않나? 그런데 그자들은 못 죽이고 우리는 하루살이처럼 눌러 죽여. 그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녹림 싫다는 사람한테 신세 한탄하는 거요?”
허윤이 인상을 썼다.
단혼수가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누군가가 생각날 만큼 빠른 태도 전환이다.
“혹시 고우사라고 아시오?”
“아니, 모르는데. 왜?”
“모르면 됐소. 아무튼, 당신이 누군가에게 선의로 도움을 받아도 될 만큼 살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도와 드리겠소.”
“내가 이래 봬도 돈만 순순히 내놓으면 사람은 안 죽였어.”
“그 정도로는 안 되오.”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는데. 거짓말로 대답해도 돼?”
“어차피 얼굴에 다 나와 있어서 소용없소. 복이 하나도 없는 관상에…….”
허윤이 단혼수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코끝에 사기(死氣)가 드리워졌지? 거지 분장을 했을 땐 지저분해서 못 봤나?”
“사기? 죽는다고? 내가 왜 죽어. 나 절정 고수야.”
“발에 차이는 게 절정이오. 아무튼, 꽤 근시일내에 벌어질 일이니 조심하시오.”
허윤이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하여 단혼수는 황당해하면서도 조금 걱정했다.
“황보가랑 모용가가 나 죽이려고 자객이라도 고용했나?”
“중재가 문제가 아닌 것 같구려.”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빨리 중재를 해서 서로 간에 풀 걸 풀어야지.”
“내가 나선다고 그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소?”
“그쪽도 사실 상황이 안 좋아. 우릴 치는 것보다 우리와 손을 잡는 게 더 이익이야. 단지 원한이라는 이름의 명분 때문에 그쪽에서 차마 먼저 그 말을 할 수 없을 뿐이네.”
“손을 잡는다?”
단혼수가 그 말에 부하에게 손짓하며 설명해 보라고 명령했다.
조금 똑똑해 보이는 부하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사실 북천은 산동 정파를 밀어 버릴 힘이 있는데도 안 하는 겁니다. 만약 황보가와 모용가를 다시 치러 갔는데 정파가 하남성과 안휘성에서 올라오면 뒤가 비거든요. 지금까지는 우리 녹림에서 막아 줬지만, 이번에 손 털고 빠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흠. 그럼 굳이 정파와 풀 필요도 없지 않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저희가 동태를 면밀히 살핀 바, 북천에서 모종의 일을 꾸미고 있는 듯합니다. 뭔지 몰라도 그게 성공하면 황보가와 모용가는 멸문지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당신들과는 상관없지 않소이까.”
“북천이 남십자성의 잔당들을 끌어들였습니다. 마도가 개입했으니 어떤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아아…….”
허윤은 그제야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지 깨달았다.
북천이 배신한 녹림에 손을 쓴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양산채가 본보기로 당할 수도 있다 여긴 것이다.
거기다 황보가와 모용가도 칼을 갈고 있으니…… 그럴 바에야 아예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그쪽에 붙어서 안전을 도모해 보려는 듯했다.
“하면, 당신들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이번엔 단혼수가 대답했다.
“만약 북천이 행동하면 우리 산채에서 황보가와 모용가를 돕도록 하지.”
“강호 활동을 하지 않기로 했잖소.”
“세력 확장을 안 한다는 거지, 활동을 안 한다는 건 아니었을걸. 뭐, 설사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가만히 있다가 죽을 수는 없잖은가.”
“흐음.”
그들의 제안이 황보가와 모용가에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허윤은 동전을 던졌다가 잡아서 보더니 대답했다.
“운이 좋구려. 한번 얘기는 해 봐도 되겠소이다.”
단혼수와 부하들이 환호했다.
“어이쿠야, 한 번이 아니지. 자네 점괘가 좋다고 나왔으면 다 된 거나 다름없는 거잖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니 이 얼마나 경사로운 일입니까!”
허윤이 기뻐하는 그들에게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던졌다.
“좋아하지 마시오. 사기가 짙어졌소. 당신들, 모레 밤을 넘기기 어렵겠소이다.”
“어엉?”
단혼수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허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곤 진지하게 말했다.
“살려 줘.”
“그걸 뭐 그리 엄숙하게 말하시오?”
“남의 목숨이면 안 이러지. 내 목숨이 달린 일이잖아.”
“알겠으니, 얼굴 가리고 계시오.”
허윤은 귀기를 높이기 위해 이기어도를 꺼냈다.
“회 썰게?”
“얼굴!”
“알았네, 알았다고.”
허윤이 칼집에서 도를 꺼내며 귀기를 끌어올리자, 스산한 한기가 방에 퍼졌다.
단혼수와 부하들은 그제야 그게 단순히 회 써는 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치 칼이 자기들의 얼굴을 노려보는 듯한 기분이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후욱!
허윤이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점을 보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리저리 시초를 옮기곤, 점괘를 냈다.
탁!
“나왔소. 벗어날 길은 택지췌(澤地萃)요.”
“그게 뭔가?”
“췌는 풀[艹]이 병졸들[卒]처럼 모여 있는 형상을 뜻하오. 어려운 상황에서 여럿이 모여 난관을 헤쳐 나가는 거요.”
“점복이 다 그렇긴 하지만 좀 뜬금없는데…… 모여서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군. 정파 무리와 힘을 합치라는 건가?”
“괘사 중에 중요한 구절은 용대생길 이유유왕(用大牲吉 利有攸往)이오. 크게 희생함으로써 나아가는 것이 이로워진다는 뜻이외다.”
단혼수와 부하들은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허윤이 잠시 점괘를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용(用) 자는 일을 ‘벌이다’ 혹은 ‘베풀다’라는 뜻을 갖고 있소. 아까 돈이 많다고 하였던 것 같은데.”
단혼수가 감을 잡았다.
“그거 피 같은 돈이야.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모았다고.”
“바로 그거요. 돈이 피 대신 나감으로써 댁과 부하들이 살 수 있게 되는 거요. 보통의 사기가 아니니 살고 싶으면 아주 크게 베풀어야 할 거요.”
“하아…….”
허윤이 손을 내밀었다.
“모두 삼십 문씩 내시오.”
단혼수가 도대체 돈을 얼마나 뿌려야 하나 걱정스러워서 암담한 표정으로 복채를 계산했다.
그러곤 부하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너희들 건 각자 내.”
* * *
남십자성의 노파 왜주는 남들이 보기에 동네에서 늘 소리만 지르고 아이들을 꾸짖는 까탈스러운 할머니 같은 인상이었다.
그런 얼굴을 더욱더 찌푸린 채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와글와글.
“이게 웬일이야? 진짜 공짜요?”
“그렇다니까.”
“이야아, 고맙습니다.”
“자자, 오늘 밥값은 여기 양산채주께서 내시는 겁니다. 다들 실컷 드시오!”
목표 대상이 하필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반점에 있었다.
“저 가운데에 허여멀건 놈이 백룡회주인가 본데…….”
하도 사람이 많아서 힐끗힐끗 보일 뿐,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쯧.”
왜주는 혀를 찼다.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네. 왜 산적이 밥을 사고 있어.”
이런 데에서 함부로 손을 썼다간 남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예전이라면 보이는 족족 다 죽여 버리면 되니 남의 이목 따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북천의 천주에게 주의를 받은 터였다.
만일 지금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면 반드시 무림맹과 소림사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원무대제가 꾸미는 일에 방해가 될 수 있었다.
아니, 원무대제가 잘 되든 말든 딱히 상관없지만, 무림맹과 소림사에게 찍히면 천마신공을 익혀야 하는 자기도 불편해지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여 왜주는 지금 당장은 손을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 저녁에 두고 보자고.”
왜주는 자신을 따르는 냉막한 표정의 부하 노파 둘에게 눈짓을 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홍등가의 기루.
“한턱 쏜다!”
“와아아! 대협 만세!”
단혼수는 손을 떨면서 억지로 웃으며 기루 손님들의 환호에 호응했다.
그러곤 허윤에게 귀엣말로 나지막하게 물어보았다.
“돈이 물 새듯 빠져나가는데 이게 맞나? 정말 이 방법이 맞는 거야?”
“며칠만 참으시오.”
“내 평생 이렇게 펑펑 돈을 써 보는 게 처음이라 그래. 생판 처음 보는 연놈들에게 술을 사고 있잖아. 이상해 보이지는 않고?”
“돈 많은 산적처럼 보일 뿐이오.”
“그러니까 그게 이상한 것 같거든.”
“살기 싫으시오?”
“살고 싶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윤이 이기어도를 쥐었다.
“정 아까우면 회라도 좀 썰어 드릴 테니, 안주 삼아 드시고 참으시오.”
그들을 따라다니며 멀리서 지켜보던 왜주는 문득 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친놈들인가.”
백룡회주로 보이는 자가 양산 녹림도와 어울리고 있는데, 그들은 온종일 쉬지도 않고 돈을 써 댔다.
별다른 의미가 있는 데에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밥을 산다든지 술을 산다든지 하면서 마구 뿌렸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 수밖에.
나중엔 관원까지 와서 얻어먹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관원이 다시 자기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 진탕 마시는 중이었다.
꼴깍.
왜주의 옆에서 부하 노파 한 명이 침을 삼키는 소리였다.
왜주가 노려보자 부하 노파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요.”
왜주도 사실 혀에 침이 고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괜히 인상을 썼다.
“저놈 새끼는 왜 자꾸 회를 떠?”
돈을 다 쓰지 못해 죽지 못하는 것처럼 펑펑 써 대는 것도 황당한데, 이젠 한쪽에서 회까지 떠서 나눠 주고 있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돈을 펑펑 써 댈 때보다 회를 뜰 때 사람이 더 많이 모인다는 점이었다.
기루의 점소이며 기녀들까지 죄다 몰려서 회를 맛보고 있었다.
“백룡회주가 아니라 산동 신수가 맞나 봅니다. 회를 먹는 연놈들마다 표정이 아주 맛이 간 것들 같습니다.”
“그럼 지관 놈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게냐?”
“알아보니, 그 지관이 산동 신수에게 큰 창피를 당했다는군요.”
그 말에 왜주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