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39
39화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어흠. 흠. 그래도 그런 부탁은 좀…….”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간절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이 어딨나 싶었지만, 하후온은 해 달라고 하니 일단 들어줘 보기로 했다.
해서 손가락으로 딱밤 치듯 허윤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딱.
잘 말린 박을 치듯 맑은 소리가 났다.
하지만 하후온은 손톱이 깨지듯 아파서 깜짝 놀라 손을 움츠렸다.
허윤이 하후온을 보며 훈계하는 투로 말했다.
“어허. 그것밖에 안 됩니까? 정신이 바— 짝 좀 들게. 아주— 힘— 껏! 주먹으로 세게 부탁드리오이다.”
하후온도 짜증이 났다.
“본인을 원망하지 말게나!”
하후온은 쥐어박듯 허윤의 머리를 때렸다. 허윤은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뒤꿈치를 들어 올리며 다리를 폈다.
빠— 악!
하후온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벼락이 주먹에서부터 시작해 전신을 관통한 것처럼 찌릿했다.
이를 악물고 얼른 주먹을 뺐으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손가락을 제대로 펴지도 못했다. 손등이 저리고 팔이 온통 뻐근했다.
하후온이 황당해서 팔을 잡고 허윤을 노려보았다.
“이, 이게 무슨!”
“어이쿠, 저런.”
허윤이 눈으로는 웃으면서 입으로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후온은 섬뜩해졌다. 왠지 익숙하고 낯익은 표정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허윤이 코웃음을 치며 표정을 거두었다.
“다음부터 그러지 맙시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오.”
하후온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뭔가 잘못했나?
설마…… 내가 처음에 뭘 하려고 했었는지 알았나?
이 친구 정체가 뭐지?
하후온은 싸한 기분이 들어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허윤은 하후온을 내버려 둔 채 조원들에게로 향했다.
“다들 괜찮은가?”
조원들이 힘차게 외쳤다.
“네!”
귀급 흑과부와 마급의 고수 사승을 만났는데 조원 모두가 살아남았다.
이건 말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대머리 무인은 기쁨에 겨워 마구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나 살았다! 나 살았다고! 이건 조장이 틀린 거야! 맞지? 나 산 거 맞지? 이야아아아아!”
* * *
천문장 내의 분위기가 사뭇 묘했다.
도와주겠다고 자신 있게 큰소리를 쳤던 무림맹 풍림단은 하후온을 제외하곤 엉망으로 당했다. 팔 조가 도와주지 않으면 마을까지 자력으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팔 조는 여럿이 다치긴 했으나 죽은 이가 없었다. 다만 사승이 건 점혈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여 하후온이 팔 조에 걸린 점혈을 풀어 주고, 팔 조는 들것을 만들어 풍림단을 옮겨 주기로 했다.
그사이 허윤은 천문장 내를 살펴보았다.
별다를 게 없었다. 수레가 여러 대 있긴 했는데 안에 실린 건 모래주머니들뿐이었다.
“정말로 무림맹을 속이기 위해 꾸민 일이었구나.”
호랑이를 잡으려고 놓은 덫에 토끼들이 걸려든 꼴이었다.
이제 정말로 상황이 심각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밑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마급까지 동원될 정도라니!
심지어 그 덫에서 허윤과 조원들은 살아남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허윤은 싸움이 다 끝난 지금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승이라는 걸출한 마도의 고수가 자신에게 당하고, 저기에 시체로 죽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아니지. 사승이 아니라 그 전에…… 애초에 왜 마급이 나올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점괘가 맞은 거냐? 그리고 그게 머리와 관련된 마도의 고수일 거라는 점괘는 또 어떻게 맞은 거고?’
그냥 운인가?
운 좋게 둘 다 들어맞은 건가?
‘이렇게 맞으면 내가 점괘를 꾸며 냈다고 해도 욕먹겠다.’
허윤은 본인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는 적어도 이번 일에 한해서는 가시가 아니라 송곳 이상의 일을 해낸 셈이 되었다.
마도에서는 아까운 마급 고수가 죽었고, 그럼으로써 정파 무림에 큰 혼란을 줄 뻔했던 심리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마도로서는 피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속이 쓰릴 것이다.
허윤은 도진을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 천지신명이시어. 가시가 되고 송곳이 되겠다는 제 부탁을 이렇게 들어주셔서.’
코가 시큰해져서 남몰래 옷깃으로 눈가를 훔쳤다.
‘두고 봐라, 마도 놈들. 내 반드시 도진이의 복수를 하고 말 테니.’
허윤은 남들에게 들킬까 봐 눈물을 잘 닦고는 천문장의 창고에서 나왔다.
한데…….
‘응?’
수군수군.
조원들뿐 아니라 살아남은 무림맹 무인들도 저들끼리 모인 채 허윤을 힐끗거렸다.
정확히는 허윤이 아니라 허윤의 머리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난 말이야. 예전부터 조장의 머리에 뭔가 비밀이 있다 싶었어.”
“맞아. 아침부터 광인처럼 눈을 희번덕거리더라니, 그게 다 벌레 때문이었던 거잖아.”
“술을 마시는 것도 벌레를 술 취하게 해서 달래는 거였구만. 이제야 이해가 되네.”
“가만있어 봐. 그럼 우리가 보는 게 지금 조장이야, 벌레야?”
조원들이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서로를 쳐다보는데, 장용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몰라, 맛있다잖아.”
“……?”
조원들이 일제히 장용을 쳐다보았다.
소지광이 혀를 찼다.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데 맛있단 말은 왜 나와?”
“아니, 내가 그랬나? 왜 나한테 그래, 영감. 내가 그런 거 아냐. 조장 형님이 한 말이지.”
허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승을 혼란하게 하려고 아무 말이나 막 했는데, 오해가 생겼다.
‘이것 참.’
그런데 어차피 앞으로도 자주 이상한 일을 보이게 될 텐데 굳이 해명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장용이 눈치를 받아 화가 났는지 대놓고 허윤에게 물었다.
“형님! 머릿속에 있는 벌레요. 진짜 맛…….”
“그럴 리가 있나. 사승을 속이려 한 말일세.”
“아, 그렇죠?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영감, 들었어? 어디 우리 형님을 벌레 새끼에 비교해.”
“뭔 소리야, 미친놈아. 내가 언제 조장을 벌레에 비교했어?”
“쯧쯧, 잊은 척하는 거 봐. 꼭 자기 불리할 때만 지랄병 도지더라.”
소지광이 어이가 없어 하며 휘어진 곰방대를 뻐끔거렸다.
그때, 쾌도가 허윤에게 뭔가를 가져왔다.
“형님. 이거 잊으셨는데요.”
“아, 고맙…….”
허윤이 받으려고 보니 피가 묻은 짱돌이었다.
허윤이 피 묻은 짱돌을 받기가 애매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쾌도가 ‘아차’ 하더니 자기 옷에 문질러 피를 닦고 다시 건네주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 돌이 없으면 곤란한지라 허윤은 머쓱하게 짱돌을 소맷자락 안에 넣었다.
그걸 본 소지광과 조원들이 움찔했다.
그걸 또 왜 챙겨…….
아까 사승의 머리를 으깨 놓고 웃던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소지광이 인상을 쓰고 물었다.
“짱돌에 원한이 있어? 어렸을 때 짱돌에 맞은 적 있어?”
“없소.”
“근데 왜 그러냐.”
“뭐가 말이오?”
“아니다. 됐다.”
소지광은 대화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허윤이 어색함을 달래며 조원들을 독려했다.
“자, 자. 시간이 늦었으니 다들 힘드시겠지만 해 지기 전에 내려갑시다.”
조원들이 찜찜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네.”
“알겠수.”
조원들이 곧 내려갈 채비를 했다.
어쨌거나 함정에 빠져 죽을 뻔한 위기에서 마급 고수를 잡고 임무까지 훌륭히 완수했으니, 이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없을 터였다.
“갑시다!”
조원들이 들것에 무림맹 무인들을 싣고 천문장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후온은 맨 뒤에 서서 내려가는 백도맹과 허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퉁퉁 부어서 붕대를 감은 본인의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백도맹 오주 지회…….”
그랬다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짱돌…….”
* * *
팔 조는 의기양양하게 오주 지회로 개선했다.
“으하하하! 우리가 돌아오셨다!”
오주 지회의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사방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팔 조 조원들이었다.
조원들은 지회에서 대기 중인 다른 무인들을 보며 괜히 한마디 했다.
“너희는 아직도 임무를 안 나갔냐? 그래서야 어디 밥값이나 하겠어?”
“쯧쯧. 한심한 인생들이구만.”
“마, 놀고먹을 생각만 말고 일을 해, 일을. 혹시 알아? 좋은 일이 있을지.”
지회의 무인들은 뜬금없이 당한 공격에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었다.
“뭐라는 거야, 패류방 놈들.”
“오랜만에 사람대접받으면서 일하고 오니까 신났나?”
팔 조 조원들이 웃었다.
“크크크. 우리가 뭘 하고 온 줄 알면 놀라 자빠질 것들이.”
지회의 무인들이 물었다.
“뭔데? 무슨 일인데?”
“가르쳐 줘? 가르쳐 줄까?”
“그러니까 뭔데?”
“마, 너희들은 몰라도 돼. 피라미가 어딜.”
팔 조 조원들은 말도 안 해 주면서 괜히 호기심만 부추기곤 소란스럽게 떠들며 지나갔다.
일단 허윤이 윗선에 보고하기 전에는 사승을 잡은 걸 말하지 않기로 했기에 팔 조 조원들은 입이 근질거릴 수밖에 없었다.
허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자기도 가슴이 벅차고 아직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데 무림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허윤은 장원 안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자, 이제 숙소에서들 기다리게. 나는 청운각에 가서 보고하고 올 테니.”
“네이!”
그런데 안쪽 전각에서 일단의 무인들이 한 짐을 지고 우르르 나오다가 팔 조와 마주쳤다.
“어, 패류방?”
팔 조 조원들이 괜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허, 우리의 협행이 벌써 알려졌나? 이거,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거참 누가 말한 거야. 무림맹 놈들이 벌써 말했나?”
“돈도 많은데 이참에 우리한테도 전서구 한 마리씩 좀 줍시다. 우리 그럴 자격 있잖아, 이제?”
하지만 나오던 무인들은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당혹해했다.
“너희…… 살아 있었냐?”
팔 조 조원들이 어이없이 웃었다.
“뻔히 보고 있으면서 살아 있냐고 묻네.”
“미친놈들이신가.”
허윤이 나서서 물었다.
“팔 조 조장 허윤이올시다. 무슨 일이오?”
무인들이 어리둥절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댁들을 찾으러 가려던 참이오.”
“우리를?”
“임무 기한이 이틀이나 지났잖소.”
“아아, 도중에 만난 무림맹 무인들의 부상이 심해서 안전한 곳까지 옮겨 주고 우리도 부상자가 있어 좀 늦었소이다.”
“거참. 뭐 다행이긴 한데…….”
무인들이 수군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럼 우리도 보고를 하고 해산해야겠구려.”
“무사히 생환한 걸 축하하오.”
무인들의 포권에 허윤도 읍으로 답했다.
“고맙소이다.”
무인들이 돌아간 뒤에 허윤이 소지광에게 물었다.
“원래 기한이 늦으면 수색대가 이렇게 출발하오?”
소지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하루 이틀 늦은 걸로 수색대를 보내는 건 좀 이상하긴 하지. 게다가 짊어지고 있던 걸 보니 시체를 싸는 염포(殮布)였던 것 같구만.”
막내 번산이 미간을 찡그렸다.
“마치 우리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요.”
“흠.”
허윤은 생각에 잠겨 무심코 없는 수염을 쓰다듬는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을 소지광이 보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들어가 보겠소이다. 그러면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