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수풍검이 안소방을 붙들고 물었다.
“안소방. 아까부터 침착하던데, 넌 허 조장을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 알고 있지.”
“압니다.”
“그럼 빨리 안 하고 뭐 해!”
“지금요? 지금은 안 되죠. 지금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그분이 가실 거고, 그러면 조장 형님은 두풍을 그만둘 거고, 그러면 저들이 활을 쏠 거 아닙니까.”
“두풍? 두풍이 뭐야. 저게 두풍이야?”
원래 두풍은 머리가 아픈 증상을 말하기 때문에 수풍검도 두풍을 무공의 용어로 쓰는 건 처음 들었다.
“그분은 또 누굴 말하는…….”
“또 돌 들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수풍검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콰아아앙!
또 어디선가 폭발이 일고 비명도 났다.
“어디서 돌이 자꾸 나온다!”
콰아앙!
천장이 터졌다. 나뭇조각과 기왓장까지 우수수 떨어졌다.
쏟아지는 먼지와 나뭇조각들을 팔로 막으며 안소방이 수풍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권풍과 같은 맥락인데요. 형님은 이걸 머리로…….”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제정신으로 돌려! 점점 세지고 있잖아! 이러다 우리까지 다 죽어!”
전각은 넝마처럼 곳곳이 부서져 있었다. 난간들은 끊어진 거미줄처럼 끄트머리만 붙어서 흔들거렸고, 커다란 구멍이 몇 개나 나 있어서 밖이 훤히 보였다. 전각 기둥들도 여럿 부러지고 끊겼다. 바람이 불면 전각 전체가 기우뚱대며 삐걱 소리를 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오죽하면 유성산채의 궁수들도 활을 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만 있었다. 청랑조 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편이나 저편이나 허윤이 돌을 들면 일단 긴장해야 했다.
다음엔 도대체 어디로 쏠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허윤이 소매를 뒤적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아아, 다 썼다.”
청랑조는 물론이고 궁수들까지도 얼굴이 환해졌다.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허윤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곧 부서진 벽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어? 여기 있네.”
허윤이 짱돌이 아니라 어디 바위에서 부서져 나온 듯한 돌멩이를 들었다. 그러곤 서슴없이 머리를 쳤다.
뻑!
청랑조와 궁수들이 바짝 긴장해서 허윤을 지켜보았다.
한데 이번엔 내공이 발동되지 않았다. 내공의 반탄력이 튕겨 나오기 전에 돌멩이가 먼저 으스러진 것이다.
“……이건 너무 약하잖아.”
휴우.
사람들이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리번거리던 허윤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끝쪽으로 가서 아까의 짱돌보다도 더 큰 시커먼 돌을 주워 들었다. 허윤은 돌덩이를 위로 던졌다가 받았다가 하더니 가벼운 감탄을 했다.
“와, 이거 좋다.”
순간 고우사는 허윤이 손에 든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설마.
왠지 허윤의 손에 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들린 듯했다.
그 정체를 확인한 고우사가 음산한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서 읊조렸다.
“어떤 새끼냐.”
낮은 목소리인데도 내공 때문에 전각 안에 있는 이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새끼가 수석(壽石)을 저런 데다 함부로 놔뒀어?”
수석!
그 순간 모두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수석은 그 모양도 중요하지만, 석질이 견고한 것을 가장 상등품으로 친다. 방금 허윤의 행동을 보니 약한 돌로는 두풍인지 뭔지 그걸 발동시킬 수 없는 듯했다.
그런데…… 단단하기 그지없는 수석이 손에 들렸으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졌다.
아마 저 수석은 어디선가 약탈해서 처박아 놓았던 게 전각이 부서지며 굴러나온 듯했다.
허윤이 수석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멍한 표정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진짜 좋구나. 제대로 무공 수련할 수 있겠다.”
청랑조와 궁수들은 소름이 끼쳤다.
하지 마, 이 미친 새끼야! 그만해! 이거 무공 수련 아냐!
그때.
갑자기 허윤이 고개를 듣더니 누가 말했냐는 투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물었다.
“응? 하지 마?”
“어?”
방금 청랑조나 유성산채나 모두가 속으로 간절하게 하지 말라며 바라고 욕했지만, 겉으로 말을 내뱉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쨌든 더 이상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청랑조 조원들과 궁수들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허윤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싫은데.”
유성산채의 한 용기 있는 궁수가 소리쳤다.
“하지 마!”
“안 하면 간지러운데.”
“너희들도 같은 편이면 좀 말려, 이 개새끼들아!”
졸지에 욕을 먹은 청랑조가 눈을 치켜떴다.
“마도에 붙은 더러운 산적 놈들이 지금 누구더러 개새끼라고 욕을 한 거냐!”
“누가 어디에 붙든 너희가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여기 잡혀 왔는데 상관이 왜 없어!”
“너희가 언제 잡혀 왔어? 자기들이 지 발로 스스로 와 놓고 왜 우리에게 난리야!”
고우사가 내공을 담고 소리를 질렀다.
“닥쳐, 이 새끼들아! 여기가 시장판이냐?”
우르르릉!
전각이 통째로 휘꺽휘꺽 흔들리며 먼지와 나뭇조각, 부스러기들을 토해 냈다.
고우사는 대외에 아직 절정에 들지 못한 초일류급 고수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무위를 다소 감추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초일류라고만 해도 거대문파의 중견급에 준하는 실력이다. 절대 낮은 실력이 아니었다.
고우사가 입을 비틀어 웃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나서야 이 사달이 끝나겠구나.”
고우사는 청랑조와 허윤이 있는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내 주화입마를 겪은 놈들도 몇 보았으나, 이런 기괴한 놈은 정말 처음이다. 그냥 내가 직접 상대해 주……!”
그때.
허윤이 수석으로 자기 머리를 치고 있었다. 고우사가 뛰어내려서 허공에 있을 때였다. 아직 땅에 발이 닿기도 전이다.
빠악!
고우사는 기겁했다. 엄청난 기의 파동이 자신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계속 엉뚱한 데 쏘더니 이번엔 왜 나한테 똑바로 날아와!’
수석의 힘은 확실히 아까와 달랐다.
두풍이 아까의 몇 배나 되는 굵기로 고우사를 향해 날아왔다. 거의 집채만 한 크기였다.
뻐엉!
전각에, 구멍 정도가 아니라 벽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리고 고우사는 머리가 보이지 않는 채로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섰다.
피는 흐르지 않았다.
다행히도 고우사는 머리를 최대한 목과 어깨에 파묻고 웅크린 덕에 두풍을 피한 것이다. 실낱같은 차이로 두풍이 빗나갔다.
꿀꺽.
고우사가 마른침을 삼키며 허윤을 쳐다보았다.
허윤이 무표정하게 고우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씨, 가뜩이나 골이 아픈데 소리를 지르고 있어.”
고우사는 허윤의 손에 들린 수석이 아직 깨지지 않은 것을 보았다.
고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항복.”
허윤이 고개를 삐딱하게 옆으로 하고 물었다.
“항복?”
“항복.”
고우사의 갑작스러운 항복 선언에 청랑조 조원들은 당황했다.
“항복이라고?”
웅성웅성.
“마도와 손잡은 자를 믿으면 안 됩니다! 뒤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항복을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수풍검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오?”
고우사는 대답 전에, 허윤의 손을 눈짓했다.
“그것부터 좀 치우고.”
청랑조 조원들이 한마음으로 소리쳤다.
“안 됩니다!”
고우사가 눈썹을 꿈틀댔다.
“이놈들이? 내가 아직 화승(火承)의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벽에 근접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디 이류 나부랭이 놈들이 나를 뭘로 보고 내 말을 무시해?”
화승은 절정의 경지 초입이다. 역시나 세간의 소문과는 달리 고우사는 한 단계 위쪽의 실력을 감추고 있던 것이다!
“거짓말 마시오!”
청랑조 조원 중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절정의 고수가 왜 이렇게 빨리 항복해!”
“뭐?”
고우사가 눈을 시퍼렇게 치켜떴다. 그리곤 손으로 위쪽 전각의 구멍들을 가리켰다.
“네놈들은 저걸 보면 견적이 안 나오냐? 피라미들이나 주제를 모르고 까부는 게다. 고수들은 척 보면 항복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견적이 탁 나오느니라.”
“그래도 그렇지, 절정의 고수가…….”
강호에 위명을 떨치는 거대문파의 장로들도 대개 절정에 속했다.
초일류급만 해도 이미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초인(超人)인데, 하물며 절정의 고수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정도의 강자는 강호를 마음대로 종횡해도 적수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제대로 한 번 싸워 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고우사가 되레 큰소리를 쳤다.
“어떡할 거냐. 항복을 받아 줄 거야, 안 받아 줄 거야!”
그 광경을 청랑조의 틈에 숨어서 보고 있던 이진휘는 기가 막혔다.
‘절정 화승의 고수를 싸우지도 않고 굴복시켰어!’
그때 이진휘는 허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그냥 두 분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일이 해결될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해야 길합니다.
그게 이런 뜻이었나!
말도 안 돼!
― 계우금니 정길이라, 쇠말뚝에 단단히 묶어 두면 이롭고.
허윤이 들고 있는 깨지지 않는 수석이 쇠말뚝처럼 보였다. 저것이 결국 고우사의 항복을 받아 냈다.
― 유유왕 견흉이라. 그냥 진행하면 반드시 흉한 꼴을 보게 되지요.
양 책사의 청랑조나 자기나, 허윤이 없이 이곳엘 왔다면 필시 진법을 통과하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결국 허윤이 얘기한 대로 다 맞았다.
‘어떻게 이리 꼭 들어맞을 수가 있지?’
이진휘는 마른침을 삼키며 수풍검을 쳐다보았다. 수풍검은 허윤을 보고 있었다.
수풍검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고우사의 신변을 결정할 수 있는 건, 허윤뿐이다.
허윤은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고우사가 웃었다.
“잘 생각했다. 흘흘흘.”
원래 고우사는 자신의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중도 성향이 맞았다. 정파성을 따지지 않고 세력 간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자기의 안전을 지키고 일거리를 받아 냈다.
협이니 명분이니 목숨 걸고 싸우는 건 똥멍청이나 하는 짓이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 살 필요가 없다는 게 고우사의 평소 지론이었다.
겉으로는 늘 여유 있는 척 흘흘 하고 웃지만 사실 속은 굉장히 좁은 편이라 늘 계산을 하고 머리를 굴렸다. 체면이나 자존심보다 자신의 안위와 이득이 먼저였다.
이번에 마도에서 일을 받은 것도 그래서였다. 마도를 도와 마도에 빚을 하나 지워 놓으면, 혹시 나중에라도 마도의 세상이 되었을 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승이 죽었어도 뇌마가의 위세는 어디 안 간다. 지금 같은 때에 뇌마가의 부탁을 들어주면 나중에 이자까지 붙여 받을 수 있지.’
정파가 뭐라고 하면 적당한 때에 정파의 일도 하나 해 줘서 달래고 말이다.
한데 허윤이 갑자기 고우사를 바라보았다.
“줄 잘못 섰어.”
훅.
허윤의 입에서 차가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고우사는 허윤에게서 정체 모를 한기를 느꼈다.
“뭐라고?”
“거긴 끈 떨어진 데야.”
마치 무당이나 무녀들이 점을 치면서 손님들에게 반말할 때 같은, 딱 그 고압적인 말투였다.
고우사는 하마터면 ‘진짜?’ 하고 되물을 뻔했다.
가만?
말투는 그렇다 치고 뭔가 이상하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걸 방금 실수로 입 밖에 꺼내기라도 했나?
“뭐라는 거냐?”
그런데 허윤은 그사이에 다시 수석을 들고 있었다. 그냥 드는 게 아니라, 또 머리를 내려치려는 모양새였다.
“그건 왜 또 드냐?”
“무공 수련하려고.”
“……?”
고우사는 등짝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미친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