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194
제194화
파름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지루하게 몸을 흔들었다.
용병 길드에 복귀 신고를 마친 그는 바로 아는 귀족을 찾았다.
전쟁 전문 용병단을 이끄는 파름은 여러 귀족과 안면이 있었다.
‘물건’을 가장 적절한 값에 사줄 귀족과 접선했고, 다음이 이 꼴이다.
구매자를 데려올 테니 기다려 달라던 귀족 놈은 몇 시간 동안 소식이 없다.
여기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간 내 명예를 모욕하냐며 귀찮게 엉겨들 게 뻔하다.
돈 안 되는 싸움은 사양이다. 그러니 여기서 나가지도 못한다.
다탁에 있는 주전부리는 이미 전부 주워 먹었다.
장검에 손을 올린 채 몸을 까딱이고 있던 파름은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에 몸을 일으켰다.
마르할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마르할이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안개라면, 지금 다가오는 건 구멍이다. 발소리는 나지만, 그 주위가 뻥 뚫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파름은 긴장과 기대를 반씩 품고 상대를 기다렸다.
문이 열렸다.
걸음은 경쾌했고, 걸음에 맞춰 금발이 흔들렸다.
가벼운 옷에는 수십 개의 장신구를 달고 있었지만, 거추장스럽다기보다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파름은 많은 귀족을 만났다. 그를 자식과 엮어주려던 귀족도 있었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지만, 딸자식 하나로 파름과 파름 아래 있는 용병단을 전부 얻는다면 비싼 장사도 아니다.
붉은 해골 용병단은 그냥 기사단도 아니고 다양한 변칙 작전도 수행 가능한 만능 인력이다.
몇몇 귀족 영애가 파름 앞에서 아양을 떨었다.
가장 비싼 옷과 제일 화려한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파름을 유혹했다.
잠시 혹해 넘어갈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는 유혹에 넘어가고 싶어도 넘어가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저런 걸 봐버리면 그 이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네루는 파름 정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붉은 해골 용병단 단장 파름! 셋째 황녀 네루입니다. 제가 누군지 모르지는 않겠죠!”
“알지. 하지만 놀랍군. 일개 용병의 거래에 황족이 직접 나서다니.”
“말을 가려라, 용병.”
“아뇨. 그는 자격이 있습니다! 딩켄, 물러나세요.”
“황녀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파름이 네루에게 한눈팔았던 사이 방에는 힘이 가득했다.
용병 업계로 뛰어들면 당장 이름 날리는 용병을 모조리 썰어버릴 실력자들이 방 안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정복 국가의 정예 기사는 격이 다르군.’
전투, 소규모 교전에선 저들을 이길 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어떨까?
붉은 해골 용병단은 전쟁 전문이다. 약한 곳을 파고들어 전장의 판도를 한 번에 뒤엎는 게 파름의 특기다.
최소 천 명 이상이 뒤엉키는 전쟁이 벌어지고, 그의 눈으로 신비가 약한 곳을 찾아 빈틈을 찌른다.
‘지지는 않겠군.’
의미 없는 망상일 수도 있지만, 힘에 대한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용병들에게 의외로 중요한 과정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죠?”
“그냥. 황녀의 호위는 뛰어나다는 생각. 과연 제국은 다르군.”
“마족 전쟁부터 시작해 연합 전쟁까지, 다양한 전쟁에 참가했다 들었습니다.”
“살려고 한 짓이지.”
“당신이 보기엔 저들이 어떻죠?”
“말했을 텐데, 뛰어나다고.”
“아뇨!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당신과 당신 부하들이 나서면, 제 호위들을 모두 죽이고 저까지 죽일 수 있습니까? 그걸 묻는 겁니다!”
파름은 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딩켄이 다소 부족한 네루의 설명을 보충했다.
“황녀님은 천한 귀족들과는 다르시다. 겉치레는 필요 없다. 보복도 없다. 그냥 네 생각을 그대로 말해라.”
“바로 그거예요!”
“방식은?”
“암살, 함정, 무엇이든!”
파름은 턱을 괴고 고민했다.
제국의 셋째 황녀는 정말로 특이한 인간이었다.
붉은 해골 용병단으로 황족을 죽일 수 있냐고?
“바깥에 있는 기사들이 전부라면, 가능하다. 여기 있는 병력의 1.5배가 있다면 독을 써야 한다. 여기 있는 병력의 2배가 있으면 시간이 걸리고, 3배가 있으면 우리가 죽는다.”
기사들이 살기를 쏘아냈다.
꽤 피부가 따가운 살기였으나, 마족의 살기도 경험한 파름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다.
파름은 방금 한 말에서 한 가지 가정을 빼놓았다.
네루 황녀의 존재. 세상에 구멍이라도 뚫어둔 듯한 묘한 신비. 저것 때문에 근처에 있는 기사들의 신비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오감보다 신비를 느끼는 육감에 의지해 사물을 판단하는 파름에게는 큰 문제였다.
신비를 탐미하는 게 그의 취미이지만, 저건 그다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신비다.
“음. 딩켄, 붉은 해골 용병단은 뛰어난 용병단이 맞습니까?”
“인근에서 고용할 수 있는 용병단 중에서는 양대 산맥으로 불립니다.”
“그 개새끼들? 싸우면 우리가 이겨.”
“하지만 과거 전적은 서로 피해가 비슷하다 말하고 있습니다만?”
“칫.”
딩켄의 지적에 파름이 혀를 찼다. 붉은 해골 용병단은 최고가 아니다. 붉은 해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검은 늑대 용병단이 있다.
검은 늑대라니, 작명이 낡고 촌스럽다. 그래도 붉은 해골 정도는 되어야 위협적인 이름이지 않나.
파름이 속으로 툴툴댔다.
“호기심은 해결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물건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다.”
파름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종이를 반만 보이도록 접어 다탁에 올렸다.
“이건 무슨 의미죠?”
“가끔 있거든. 지도 같은 건 한순간에 외워버리는 천재들이. 뒤에 당신, 당신 정도면 가능한 거 아닌가?”
“딩켄, 그런 일도 할 수 있었습니까?!”
네루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파름은 저 인간이 정말 제국의 셋째 황녀가 맞나 의심이 들었다.
사칭범 아냐? 아니지, 작은 제국이면 진짜 황족을 구분할 수단도 있을 건데, 그건 미친 짓이다. 귀족은 외모를 닮은 사람을 어렸을 때부터 대리인으로 키운다는데, 그쪽인가?
하지만 대리인이라면 본인보다 훨씬 조심해서 행동해야지. 감정이 훤히 보이는 저 태도는 뭐야?
파름이 혼란에 빠지건 말건 네루는 제 마음이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딩켄, 정말인가요?!”
“복잡하지 않은 지도라면, 그 자리에서 보고 외우기도 합니다.”
“오오! 다음에 보고 싶습니다!”
“황녀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정말로… 대체 저건 뭘까.
파름의 의문은 거래가 끝날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그는 지도를 네루 황녀에게 팔았다.
금액은 제국 금화 300개.
금화 수백 개의 가치가 있는 것과 금화 수백 개에 물건을 파는 건 다른 이야기다.
너무 비싼 물건은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팔리지 않는다.
살 사람을 찾아 귀찮게 돌아다닐 것 없이 한 번에 지도를 판 건 좋은 일이었다.
파름은 금화로 짤랑이는 주머니를 차고 말에 올랐다.
아껴 쓰면 몇 년은 돈 걱정은 없을 금액이다.
정착 비용으로 쓰면 괜찮은 건물 몇 개는 사겠지만, 파름은 아직 어디에 정착할 마음은 없었다.
비록 최후가 황야 어딘가에서 바람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더라도, 청년에겐 가슴에 품은 꿈이 있었다.
* * *
네루 황녀는 막 구입한 지도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싸구려 종이에 작성된 지도지만, 정밀도가 상당했다.
더 마음에 드는 건 지도에 황금의 호수가 기록되었다.
천하를 담은 땅의 수원.
“딩켄, 이거 대단한 지도 맞죠?”
“그렇습니다. 이 지도만 있다면 헤매는 일 없이 황금의 호수에 바로 깃발을 꽂을 수 있습니다. 금화 300개를 낼 때는 아까운 기분이었습니다만. 이거면 금화 300개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황녀님… 꼭 토지 경주에 직접 나가셔야겠습니까?”
딩켄은 네루의 모든 선택을 지지한다.
네루가 똥통에 빠지겠다고 하면, 딩켄은 말리는 척은 하겠지만, 마지막에는 네루의 뜻을 존중할 것이다.
네루의 직감과 운은 어떤 황족도 가지지 못한 절대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토지 경주에 나가겠다는 네루의 말에는 동조하기 힘들었다.
토지 경주는 무법 지대인 서부에서도 한층 야만적인 행사다.
말리바 리시에게 얻은 연합의 기록에 따르면 최악의 토지 경주는 참가자 반이 죽었다고 했다.
최소 수천 명이 참가하는 토지 경주에서 반이다.
여기가 동부였다면 역사에 기록될 학살극이다.
그런 학살이 일어나는 장소가 서부고, 토지 경주다.
네루가 그 무법의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번엔 딩켄도 따라간다.
딩켄은 두려움에 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갈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야 합니다! 저를 대신해 경주에 나간 기사가 배신하면, 땅을 되찾을 방법이 있나요?”
“저희 쪽에는 연합 이사가 있습니다.”
“다른 이사들도 있죠! 그리고 저긴 천하를 담은 땅이고요!”
“그렇습니다….”
딩켄은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네루의 말이 맞다.
토지 경주로 얻은 땅을 양도하는 건 지주 마음이지만, 그게 천하를 담은 땅이고, 양도 대상이 네루라고 하면, 연합에서 시비를 걸어와도 이상하지 않다.
딩켄도 사실 안다.
네루가 직접 토지 경주에 나가 깃발을 꽂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그리고 네루의 직감이 토지 경주에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 토지 경주에 나가는 게 네루에게 확실한 이득이다.
“알겠습니다. 마무리 준비를 하겠습니다.”
딩켄은 최대한 우울한 티를 내지 않으며 대답했다.
* * *
공국 왕성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왕성 전체에 박힌 빛을 내는 유물이 항상 왕성 내부를 밝힌다.
불이 꺼지는 장소는 불이 꺼져야 하는 장소. 왕과 왕비들의 침소 정도다.
하지만 오늘, 예외적으로 왕성에 있는 한 방의 불이 꺼졌다.
공국의 왕 슈바벤 베르그번은 불 꺼진 방의 중앙에 있었다.
“오려는가.”
“예. 마침 그럴 시간입니다.”
왕의 오른쪽에는 재상이 자리했고, 왼쪽에는 왕의 호위 기사가 왕을 지켰다.
“재상, 서쪽은 어떻게 됐지?”
“무사히 모든 병사가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쉽군, 아쉬워. 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연합에서 항의가 들어오지 않을 병력은 이게 한계였을 겁니다. 그래도 뛰어난 병사들이니 폐하의 뜻을 이루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해…. 공국은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 승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걸 누릴 자격이 있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왕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다.
서쪽에서 마족이, 괴물들이 들이닥칠 때 피를 흘린 건 공국이다. 공국의 속국이다.
하지만 공국은 승리의 과실을 누리지 못했다. 과실을 취하기도 전에 뒤에서 제국과 성황국이 칼을 빼 들었다.
지난 15년. 공국은 빼앗기기만 했다.
왕은 참고 참았다.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자식을 제 손으로 참했다. 장자만을 남겨 후계 문제를 정리했다.
왕권이 약해진 틈을 타 기어오르는 귀족들을 숙청했다.
왕은 기다렸다.
기다림은 맹수의 미덕이고, 왕은 맹수였으니, 왕은 기다림을 알았다.
마족이 죽고 10년을 기다렸다.
오직 하나만을 기다렸다.
천하를 담은 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공국은 강하다.
학자들은 공국이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말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공국은 원래도 제국, 성황국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국가였다. 건국왕의 뜻이 아니었다면 제국의 칭호를 달고도 남았다.
공국의 군사력은 역대 최고, 최강이다.
마족과의 전쟁이라는, 최초이며, 최대이며, 최악이었던 역사가 공국에, 공국에 있는 병사와 기사들에게 쌓였다.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도 공국은 싸우지 않았다.
마족이 지나간 자리에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
공국은 상당한 농지를 잃었다. 전쟁을 감당할 군량이 없다.
천하를 담은 땅이 열리면, 군량을 해결할 수 있다.
배고파 움츠리고 있던 최강의 거인이 일어선다.
“왔습니다.”
호위 기사가 말했다.
왕의 앞에 그림자가 떨어졌다. 어둠 속이지만, 어둠을 꿰뚫어 보는 왕에게 어둠은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왕궁의 불이 꺼지지 않는 건 공국이 건재함을 알림이지, 왕에게 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왕은 어둠 속을 보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보지 못했다. 남자는 전신이 칠흑이었다.
무릎 꿇은 남자에게 왕이 물었다.
“998명. 네가 죽인 사람의 숫자다. 그렇게 사람을 죽여서 하려는 게, 겨우 마족 따위에 몸을 맡기는 거였나?”
“도둑은 그런 저급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기에 도둑, 무엇이든 훔치기에 도둑입니다.”
남자는 분명 정중했지만, 동시에 남자는 모두를 비웃었다.
세상을 향한 비웃음이 남자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서, 입에서 나오는 말의 어절 하나에서 새어 나왔다.
왕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도둑의 이름을 이어받았다면, 저건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죽여라. 죽이고 죽여라. 토지 경주에 참가한 모두를 죽여라.”
“저야 그걸로 만족하지만, 공국의 군대도 그 땅에 있지 않습니까?”
“4만 명이 참가한다면, 그중 3만이 나의 군대이고, 6만 명이 참가한다면, 그중 반이 나의 군대이다. 나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내가 바라는 건 토지 경주에 참가할 다른 세력의 강자들이다. 그들은 고르고 고른 강자를 내보낼 터. 그들 반만 줄여도 공국은 대국에서 한발 앞선다.”
“제가 공국 사람들만 골라 죽이면 어쩌실 겁니까?”
“그러면 내 눈이 잘못된 거겠지.”
“폐하의 식견은 과연 탁월하십니다.”
남자는 물처럼 땅에 녹아내려 사라졌다.
“재상, 불을 켜라. 나의 성의 방 하나라도 불이 꺼져 있는 걸, 내 찬란함에 흠이 가는 걸 누군가 보아선 안 된다.”
“알겠습니다.”
재상이 불을 켰다.
왕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한 달 전, 북쪽이 열렸다는 연합의 공표가 있고 일주일 후.
공국은 군부대 하나를 해산했다.
농한기에 모여 훈련하고 흩어지는 게 전부인 군대였지만, 그래도 마족과의 전쟁을 경험한 군대였다.
군대를 해산한 이유는 공국의 자금 부족이었다.
공국 국고가 비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기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군이 해산하고, 공국에서 서부로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이동했다.
그들을 잡아 노예로 부리려는 영주들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자들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