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카반이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높은 사람은 칼라엔스 공작이다.
공작은 하늘 같은 사람이었다.
공작은 취미로 검을 조금 휘두를 뿐인 평범한 사람이다. 마법사도 아니다. 하지만 카반은 공작 앞에서 고개를 들기 힘들었고, 공작과 눈이 마주치면 식은땀이 났다.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공작이리라 생각했고, 공작조차 예우를 다한다는 황제는 어떤 사람일까 막연히 상상하곤 했다.
그는 진짜 하늘을 보았다.
칼라엔스 공작은 하늘이 아니었다. 므에트 제국 황제도 하늘은 아닐 것이다. 하늘은 그의 앞에 있다.
돌아가 칼라엔스 공작을 만나면, 당당히 그의 눈을 마주 보고, 뺨도 때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돌아갈 수도 없겠지.’
구덩이를 빙 돌아 마르할이 그에게 다가왔다.
마르할이 바람으로 된 관을 쓸 때부터 한 명씩 도망가던 부하들은 클리프가 마족이 되는 걸 보고 모조리 줄행랑쳤다.
카반은 도망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르면 저 넓은 서쪽으로 도망치면 된다. 그러면 황제도 잡지 못한다.
서부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우스갯소리다. 실제로 서쪽으로 도망친 범죄자도 제법 된다.
이 넓은 서부에서 작정하고 숨은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눈을 피하는 것이지 바람의 눈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순 없다. 저기 있는 하늘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떨어져 있든 죽은 목숨일 텐데, 도망가 무엇한단 말인가.
카반이 무릎 꿇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빌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로 그는 마르할 앞에 엎드렸다.
“살려주십시오.”
“왜 그래요. 꼭 죽일 것처럼.”
“그러면, 죽이지 않으신다는…?”
“못 볼 걸 본 것도 아니고, 알면 안 될 것을 안 것도 아니고. 죽일 이유가 없잖아요?”
봐선 안 될 걸 보았다. 알면 안 될 걸 알았다. 마르할의 말은 마치 자신을 죽이겠다는 걸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듯했고, 그 숨은 뜻에 카반은 몸을 덜덜 떨었다.
마르할은 볼을 긁적였다. 저 큰 덩치가 공포에 떠는 모습은 불쌍하다 못해 조금 귀엽게도 보였다.
“진짜라니까요? 간단한 입막음은 하겠지만. 그런데, 앞으로 어쩔 거예요?”
“무슨 말씀이신지…?”
“부하들은 모두 도망갔지, 공작의 명령은 화려하게 실패했지. 클리프가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 황궁에서도 호출이 들어올걸요?”
“황궁 말입니까?”
“황제 직속 기사단, 그것도 더러운 일 전문인 들개 기사단의 단장이 작전 중 죽었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서부에 나가 있던 공작의 기사단이 있네? 서부의 정보를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래도 연관되었을 가능성 있는 사람을 찾겠죠?”
카반은 입이 바짝 말랐다.
황궁으로 호출되면, 다음은?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그는 자신의 몸을 믿지만, 동시에 제국의 고문 기술도 믿었다.
다른 사실은 아무래도 좋다.
단 하나의 정보가 그를 죽게 만들 것이다.
므에트 제국이 마족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죽일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무얼 고견까지야. 그리고, 방법은 이미 몇 번이나 알려주었잖아요?”
툭. 카반의 앞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카반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붉은 깃발이었다. 토지 경주에 쓰이는 깃발. 그의 부하들이 버리고 간 깃발.
‘공작의 영향력은 서부까지 닿지 않는다. 지주의 신분은 연합 차원에서 숨겨준다. 대리인조차 지주의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모두 마르할이 한 말이다.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마르할의 언행에 도리어 같은 편인 스트레킬이 당황했다.
“도시를 주겠다고? 이 넓은 땅을? 제정신인가?”
“연합은 지주의 신분을 보호해 주죠. 표면상으로는요. 하지만 고위 권력자가 힘을 쓰면 못 알아낼 것도 없어요. 칼라엔스 공작은 거물이죠. 그런 거물이 자기 고위 기사에게 배신당해 땅을 빼앗겼다?”
“공작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겠군… 그의 정적들은 좋아할 테고.”
“칼라엔스 공작은 움직이지 못해요. 반대로 공작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지원해 주겠죠. 개발도 안 된 서부에 돈 몇 푼 투자해 공작을 엿 먹일 수 있다면, 도시는 몰라도 마을 하나 만들 돈은 들어와요. 그걸로 다시 시작하면 돼요.”
성황국의 성서에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악마는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안으로 사람을 유혹하며, 유혹에 넘어가는 자에게 최악의 죽음과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를 선물한다고 한다.
지옥이 있는지는 모른다. 카반은 아직 죽지 않았고, 사후 경험이라는 것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건 악마다.
이토록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 사람이 악마가 아닐 리가 없다.
카반에게는 이미 미래가 없다. 눈앞에 살길이, 그것도 지주로서의 길이 열려 있다면, 그는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먼저 깃발을 꽂죠. 그리고, 입막음도 해야겠죠?”
마르할은 가슴을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스트레킬도 본 적 있는 가죽끈은 피로 흥건했다.
“다쳤군.”
“제 몸이 튼튼한 건 맞는데, 그래도 철을 베는 기사의 검을 맨몸으로 버틸 정도는 아니거든요. 이 녀석 덕분이었죠.”
상처를 압박하던 끈이 사라지자 피가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오동나무 관의 존재감에 가려져 있었지만, 마르할은 클리프에게 일격을 허용했다.
마르할은 초인이 아니다.
바체아 제국의 유일한 황족, 용사의 길잡이, 마왕을 용서한 자.
그 모든 역사를 가지고도 마르할은 초인이 되지 못했다.
베이지 않았을 뿐, 클리프에게 검으로 얻어맞은 마르할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마르할은 가죽끈의 안쪽을 보였다. 끈 안쪽에는 몇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카반은 그게 이 남자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의 명단이리라 지레짐작했다.
“여기에 이름을 쓰시면 돼요.”
“그걸로 끝입니까?”
“우연히 뱀이 오래 살 때가 있어요. 백 년을 산 뱀은 신비를 부리기 시작하고, 수백 년을 산 뱀은 집을 통째로 삼키는 괴물이 되죠. 이건 그 뱀이 남긴 가죽이에요. 무려 마르도 탐내는 물건이라고요?”
“그 마르 실라나티엘 말씀이십니까?”
“마왕을 용서했다고 했잖아요? 제가 누구랑 같이 마왕 앞까지 갔겠어요? 빨리 이름부터 써요.”
카반은 옆에 있던 돌 조각으로 끈에 이름을 새겼다.
그러자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머리부터 발까지 몸을 훑고 지나갔다.
거대한 뱀이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착각. 카반이 몸을 돌렸다. 당연히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눈과 본능의 괴리에 숨이 차오른다.
이게 비밀을 간직한 그가 평생을 짊어져야 할 무게일 터였다.
“그럼, 카반. 깃발을 꽂아요. 땅의 주인이 되어야죠.”
“알겠습니다.”
“너무 딱딱하게 하진 말고요. 스트레킬처럼 적당히요.”
“그건….”
카반이 말을 흐렸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마르할은 하늘이다. 하늘을 가벼이 대할 수는 없다.
평생을 기사로, 귀족의 하인으로 일했던 인간의 역사였다.
“본인이 싫다면 어쩔 수 없죠. 그럼, 토지 경주부터 끝내볼까요. 깃발은 혼자서도 지킬 수 있죠?”
“물론입니다.”
마르할의 힘으로 함정이 몇 개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도시 내부에는 공성 기사인 그가 만든 함정이 잔뜩 있다.
운만 따라준다면 기사단도 혼자 사냥할 수 있다.
“그럼 저희는 원래 있던 자리에 있을게요. 스트레킬, 가죠.”
“알았다.”
마르할과 스트레킬은 도시 폐허에서 벗어났다. 도시 밖에 풀어둔 말들은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결국 혼자서 해결해 버렸군. 나는 마지막까지 한 것도 없어.”
“거기서 클리프가 용서를 빌었다면 정말 위험했을걸요?”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아닌가 보군.”
“쌓인 것은 힘을 가진다. 거기에 예외는 없어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전부 전부 쌓여요. 마족은 세상의 반을 없앴고, 용사와 그 일행은 세상의 반을 차지한 마족을 없앴죠. 그건 인간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당사자인 마족들에게는요?”
“그렇군.”
쌓인 것은 힘이 된다. 그건 대개 역사의 주인에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이유 없는 살인을 즐기는 학살자는 끝내 광기에 삼켜져 한 마리 짐승이 된다. 스트레킬은 뛰어난 기사가 살육에 미쳐 아군에게 칼을 휘두르는 광경을 몇 번이나 보았다.
광전사도 그렇게 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쌓은 역사를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그 역사에 잡아먹힌다.
그리고 용사 일행은 세상의 반을 죽였다.
그건 그들에게 축복이며 동시에 저주일 것이다.
역사상 누구도 짊어진 적 없는 아득한 짐.
마르할의 어깨에도 매달려 있는 짐이었다.
“레벨라를 불러와야겠네요. 마린의 깃발도 다시 꽂고요. 스트레킬, 부탁해요.”
“알았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 시간은 그리 지나지 않았다. 레벨라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다.
‘저녁 전에는 돌아올 수 있겠군.’
스트레킬이 말을 몰고 동쪽으로 달렸다.
스트레킬이 가고, 혼자 남은 마르할은 말에서 내렸다. 모닥불은 아직 타고 있었다.
마르할은 모닥불 옆에 앉아 찢어진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사제의 기적.
상처가 사라지고 새살이 돋았다.
이어 마르할은 클리프에게 맞은 자리에 손을 가져갔다.
“갈비뼈는 확실히 나갔고, 내상도 조금 있나.”
상체를 고정하던 끈을 푼 마르할이 상의 안으로 손을 넣었다. 마법과 기적을 적당히 응용해 갈비뼈 사이에 손을 넣고, 부서진 갈비뼈를 억지로 맞췄다.
뿌득.
“…쓰읍. 더럽게 아프네. 옛날에는 이걸 어떻게 참았나 몰라.”
마왕성까지의 여정에서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용사 일행은 개개인이 인외라 불리는 자들이었지만, 인간을 벗어난 건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지고, 때론 팔다리가 잘렸다.
그리고 성인은 싸움이 끝난 후 그 모든 상처를 치료했다.
마르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보호받아도 아예 다치지 않을 수는 없었고, 성인이 마르할의 상처를 봐주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그때는 정말로 독했다. 이보다 더한 상처에도 불평 하나 하지 않았으니.
뼈를 맞추고, 소독한 단검으로 상처를 째고 피를 뽑아낸다. 그리고 찢어진 자리를 기적으로 회복하면 치료 끝.
마르할의 몸에는 땀이 흥건했다. 마르할이 몸을 눕혔다.
하늘이 맑다.
“땅도 얻고, 제국에 한 방 먹이기도 했고. 이번 경주는 이득인가.”
더럽게 아프긴 하지만, 그만한 이득도 있으니 손해는 아니다.
오동나무 관까지 꺼내고 부상도 입으니 체력도 한계다.
조용히 찾아온 수마에 꾸벅꾸벅 졸던 마르할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가 있던 자리에 화살이 꽂혔다.
“야, 할 수 있다며.”
“쇠뇌가 낡은 거야. 조준은 똑바로 했다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서는 몇 명의 남자가 마르할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마르할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빌어먹게 맑다.
“하루가 차아아암 길다, 그죠?”
“뭐라고?”
“그냥, 당신들이 내일 태양을 볼 수 있을까 해서요.”
가죽끈이 풀려 나왔다. 저절로 움직이는 끈이 하이에나들을 향해 뱀처럼 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