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59
제59화
율란 에고만. 마리나도 그 이름은 안다.
실라나티엘을 자칭하려면 그 이름을 몰라선 안 된다.
동시에 에고만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접해선 안 되는 이름이다.
마리나가 알기로 성인에게 가족은 없다. 성인의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성인과 직접 관계된 사람이다.
그렇다면 마르 실라나티엘에게 진짜 실라나티엘 가문에 대해 들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알라실이 가문과 관련된 질문이라도 하면, 그녀는 간단한 사실조차 답할 수 없다.
마리나가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알라실이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귀족이신가 보네요. 반가워요.”
“아, 네. 반갑습니다.”
마리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알라실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알라실이 마르할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알라실 수녀님도 파견을 다니십니까? 사제가 꼭 필요한 일이 있다면, 잠깐 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교회에 일정 금액 이상 헌금을 하면 잠시 사제를 고용할 수 있다. 주로 막 사제가 된 새내기들이나 싸움터를 자처하는 별종들을 대상으로 한다.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성황국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지만, 실전은 고위 귀족을 치료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실력을 쌓는 방법이다.
성황국의 위세는 진짜 기적을 행하는 사제들이 있기에 유지되고 있다.
뛰어난 사제가 태어날 가능성은 많이 열어둘수록 좋고, 사제 파견도 그 하나다.
파견 비용이 싼 것도 아니므로 금전적인 방면으로도 사제 파견은 성황국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인데요?”
“이주민 행렬 지원입니다.”
“갈게요.”
“그걸 혼자 결정할 수 있어요?”
“여기, 벌레가 있네요.”
알라실이 마르할에게 한발 다가갔다. 둘 사이가 바짝 붙었다. 알라실이 마르할의 목으로 손을 뻗으며 속삭였다.
“저한테 연락이 없으면, 출발 전날이나 당일 새벽 교회 가장 구석에 있는 2층 창문에 쪽지를 던져주세요.”
“그거,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제 실력 보셨죠? 저지른 죄가 있어서 눈치를 봐주곤 있지만, 그래도 성황국에서 제 입지가 낮진 않아요. 배 나온 주교한테 휘둘릴 정도는 아니에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분이셨네요.”
“그럼요.”
알라실이 마르할에게서 떨어졌다. 그녀의 손에는 못 보던 벌레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알라실은 벌레를 손가락으로 힘주어 터뜨렸다. 그리고 손에 묻은 진액을 옷에 슥슥 닦았다.
양손으로 입을 막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마리나가 알라실의 행동에 기겁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알라실이 미소와 함께 환자를 치료하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 저분과 사귀는 사이십니까?”
“아뇨. 만나는 건 세 번째네요.”
“세 번째로 그런….”
마리나는 당황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리고 마르할은 그녀의 기분에 찬물을 퍼부었다.
“알라실 수녀님의 첫인상은 어떻습니까?”
“첫인상… 말이죠.”
마리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남자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은 알고 에고만을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랬다면 굳이 그녀를 교회로 데려와 성인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과 만나게 할 이유가 없다.
알라실 에고만이라는 여자도 이상하다. 그녀의 이름을 듣고 바로 악수를 청했다. 실라나티엘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둘이 한패로 자신을 놀리고 있나?
둘의 가까운 거리감을 보면 그것도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모든 건 추측의 영역이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알라실이 특이한 사람이긴 하죠. 처음 만났을 때는 개척촌에서 깃발을 팔고 있었으니까요. 둘이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는 말은, 유독 덩치 큰 잡화점 여주인이 있던 그 개척촌 말입니까?”
“에나가 마을의 명물이긴 하죠. 맞아요, 거기.”
“여자가 깃발을 판다는 말을 들어본 것도 같고… 교회 수녀가 왜 깃발을 팔고 있었던 거죠?”
대화를 나눌수록 곤혹스러움은 늘어만 났다.
성인과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면 성황국에서도 그녀는 귀빈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서부 끝자락까지 와서 깃발을 팔았다고? 측량 준비를 하고 있던 그녀가 들은 게 없다면 정말 비밀스럽게 다녀갔다는 말인데, 그건 더 이해되지 않는다.
대체 무슨 이유로?
“선전 문구를 보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교회에서 다시 만나고는 깜짝 놀랐죠. 선택받은 사람인 교회 수녀가 악명 높은 깃발 판매상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알았습니다. 전부 절 놀리려고 하는 거짓말이죠?”
“아뇨. 진짠데요. 거기서 깃발을 산 사람이 몇인데, 빤히 들킬 거짓말을 할까요.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대체 뭐 하는 사람이죠?”
마리나가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글쎄요.”
아쉽게도 마르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 * *
마지막 환자를 내보내고 알라실은 예배당을 나왔다.
예배당 뒤쪽에 있는 문으로 나가면 교회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있다. 거기서 2층으로 올라가면 있는 마지막 방이 알라실의 방이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있는 모범적인 종교인의 방이다.
하지만 방에 있는 가구는 모두 장인이 만든 명품으로 하나만 팔아도 도심에 있는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물건이다.
그녀가 주문한 건 아니다. 교회에서 멋대로 사다 놔둔 것이다.
알라실은 딱히 가구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 좋은 걸 왜 거절해?’
알라실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침대가 부드럽게 몸을 받아냈다.
생색내던 주교의 말에 따르면 마법사가 주문 제작한 물건으로 바위를 떨어뜨려도 부서지지 않는다나.
마법사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마법사가 만든 물건은 잘도 사서 쓰는 게 웃기긴 하다.
“실라나티엘이라….”
에고만의 이름을 대고 있으니, 용사 일행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닌 가족을 만나는 건 생각지 못했다.
반응을 보면 에고만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닌 듯했는데, 관련 화제를 꺼내지 않는 건 특이했다.
뭐, 그건 있을 수 있다. 가문 내에서 무언가 있는 거겠지.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그 남자, 대체 뭐야?”
마르할이라는 남자.
알고 있다. 마르 실라나티엘과 율란 에고만이라는 이름을 아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교회에 냉대받는 마법사를 교회까지 데려올 리가 없다.
굳이 그녀에게 소개까지 할 이유가 없다.
아젠만의 소개로 왔을 때는 그저 조금 대단한 남자인가 싶었지만, 그리 단순하게 끝낼 문제가 아니다.
그 남자, 분명 뭔가 있다.
교황청에 보고하면 조치가 있겠지만, 알라실은 그러지 않는다.
“나한테 떨어지는 것도 없고.”
사람이 파견된 김에 성황국으로 잡혀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차라리 그 남자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 구경하는 편이 백배는 재미있다.
“이주민 행렬. 재미있겠어.”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알라실이 웃었다.
종일 환자만 보려니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오랜만에 바깥 구경을 하고 오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 * *
마르할이 별장으로 돌아오니 스트레킬과 베이올라가 식사하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요?”
“네가 말했던 그거다.”
“이주?”
“돌아오자마자 연락했던 게 답장이 왔다. 오겠다는군. 숫자는 이백 명이 조금 안 된다.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그거, 분명 더 늘어나요. 넉넉하게 잡으면 세 배까지?”
서부 개척 초기에는 마족에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마르할도 도시에서 일할 사람을 구할 겸 이주민 무리와 동행한 경험이 있다.
한 번 이주민 무리가 발생하면, 주변 영지의 사람들이 합류하며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난다.
“이제 와서 영지에서 탈주민이 발생하면, 영주들이 가만히 안 있을 거다.”
“협상 거리도 함께 들고 가야죠.”
서부 개척이 막 시작되었을 때는 영주들도 영주민들의 이주를 방치했다.
당시는 영주들의 식탁도 빈곤해지는 극악한 환경이었다.
굶는 사람을 놔둬 봐야 시체만 늘어나고 돌림병이 돌게 되니 영주들은 알면서도 사람들이 떠나는 걸 방치했다.
몇 년이 지나고 전쟁의 피해가 얼추 정리되자 영주들은 영주민들의 이주를 막기 시작했다.
농사지을 사람마저 떠나니 일손이 부족해 장성한 남성들에게 양껏 땅을 빌려줘도 노는 땅이 생겼고, 다른 업종도 일손이 부족해 생산량이 떨어지니 이 이상의 인구 이탈은 막아야만 했다.
카리안처럼 개인이 작정하고 떠나는 건 막기 힘들지만, 대량 이주가 일어나면 영주들이 직접 나선다.
심하면 병사를 보내 공격하거나 이주민을 자기 영지로 끌어들이려는 영주도 있다.
가난한 영지에서는 영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량 이주가 발생하면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몰래 일행에 합류하는 일도 많다.
그러면 영주 쪽에서도 병사를 보내고, 전투가 일어나고… 그냥 사람을 데려오기만 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내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군.”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 공국에서 평생을 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입에서 이토록 쉽게 고향을 떠나겠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이백 명이면 마을 하나 규모니까요. 그래도 유능한 사람을 포섭해 뒀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무려 마법사도 있다고요!”
“가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설명이 필요합니다.”
마리나가 말했다.
“가는 건 괜찮아요? 그쪽을 제일 걱정했는데. 연합 일은 괜찮아요?”
“당분간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연합에 끌려다니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것도 그러네요.”
측량사로 일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연합에 묶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연합에 해가 되는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잠시 자리를 뜨겠다는 말에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가진 사람과 척지려는 사람은 없겠지.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몰라도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을 보면 굳이 그녀와 관계가 나빠질 일은 최대한 피하려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면 설명해 주시죠. 무슨 일입니까?”
“스트레킬의 개인 사정으로 이백 명 정도 공국 사람을 서부로 데려오게 되어서요. 그 밑 준비죠.”
“이해했습니다. 알라실 수녀를 끌어들인 것도 그래서군요.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도 많을 테니.”
“맞아요.”
건강관리를 잘못하면 성인 남성도 앓아눕는 게 장거리 여행이다. 여자와 노인, 아이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면 단순한 여행이라도 어려움이 배로 늘어난다.
반대로 간단한 상처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사제가 동행하면 어려운 여행도 쉬워진다.
용사 일행도 성인이 없었다면 검은 안개를 뚫고 마왕 앞에 당도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쪽은 한 사람이라도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지.’
용사가 압도적인 무력을, 도둑이 잡일… 잡일이라 폄하할 일은 아니지만, 잡다하다는 의미에서 잡일을, 마법사는 거의 만능에 가까웠고, 성인이 없었다면 검은 안개 속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애매한가?’
길잡이로서 일을 제대로 하긴 했다. 하지만 마법사가 가진 세계 지도가 있었다면 시간은 더 걸렸을지언정 언젠가는 마왕 앞에 도달했을 것 같긴 했다.
마르할은 생각을 그만뒀다. 이 이상 생각해봤자 기분만 나빠진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해서, 공국까지 왕복하면 한 달 반 이상은 걸릴 것 같네요. 아젠만 각하에게 먼저 가 봐야겠어요.”
“아젠만에게 말인가?”
“공국에 가장 깊이 끈을 대고 있으면서, 공국을 엿 먹이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이란 말이죠. 각하께서는.”
정말 여러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마르할은 아젠만의 저택으로 향했다. 도시가 세워질 무렵에도 하루걸러 아젠만을 만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 아젠만을 만나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행히 아젠만은 집에 돌아와 있었다.
“밤새 달려서 피곤하던 참이니, 빨리 이야기하지.”
“이백 명이 석 달 동안 먹을 식량을 최대한 빠르게 수배하고 싶어요.”
“무슨 일로?”
“슬슬 사람 받을 때가 됐잖아요? 이주민을 한 번 받게요.”
“또 그건가.”
아젠만은 마르할의 과거 행적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가 몇 번 이주민 행렬을 이끌었다는 것도 안다.
그때마다 대량의 인재가 서부에 유입되었다는 것도.
“어디로 가는 거지?”
“공국이요.”
“원가만 받지.”
마르할이 이주민을 데려오며 벌인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아젠만은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