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167
기계신과 함께 – 167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대련을 나눌 마음이 드십니까?”
“저야 영광이지요. 이쪽에서 먼저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그럼 저 공터로 가시지요.”
한서후는 이 ‘다행이군요’의 의미를 이때까진 알지 못했다.
둘은 호숫가 옆에 있는 공터로 움직여 서로 대치하고 섰다.
“그런데 도사님이신가요?”
한서후가 남자를 보고 물었다.
‘도우’라는 말투로 보아 그런 것 같았다.
“한때는 그랬습니다만, 지금도 그렇게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남자가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자세한 건 대련이 끝나고 얘기하도록 하죠.”
“그거 괜찮은 얘기로군요.”
“그럼 가겠습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한서후였다.
파앗-
그의 검이 뽑혀 나오며 일직선으로 남자를 찔러 들어갔다.
스르릉-
부드럽게 움직인 남자의 청강검이 한서후의 철검을 비껴냈다.
한서후는 그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카이와 같은 무공의 천재인 한서후의 머릿속에서 남자의 무공에 대한 묘리가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었다.
캉! 스릉!
계속해서 검과 검이 붙었다 떨어졌다.
처음에는 한서후 쪽이 조금 밀렸다.
남자의 실력이 한서후를 조금 웃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서후는 어떻게든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버텼다.
챙! 챙!
시간이 갈수록 한서후가 검을 막아내는 것이 수월해졌다.
한서후의 머릿속에서 남자의 검로(劍路)가 분석되며 남자의 검을 막아낼 만한 수법이 계속해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기야-
스르릉!
한서후의 검이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엇!”
남자가 깜짝 놀라며 검을 물렸다.
“이, 이건······!”
남자는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자신의 검을 튕겨낸 한서후의 검을 보며 경악을 토했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한서후의 검을 흘려내는 데 썼던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음, 도사님의 수법이 너무 인상 깊어 흉내 내본 건데, 혹시 실례였을까요?”
한서후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아, 아니······.”
당황하던 남자가 이내 당황을 가라앉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생전 대련을 하며 다른 사람의 무공을 베끼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도우께서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르쳐 드린 것도 아니고, 도우의 능력으로 알아낸 수법이니 괜찮습니다. 이곳은 무림도 아니니 딱히 쓴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빙긋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한서후도 그런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다시 가실까요?”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대련은 한 시간이 넘어 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헉, 헉······.”
두 사람 모두 땀을 흘리며 제자리에 대자로 뻗었다.
“하하, 하하하하!”
남자가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서후가 그 난데없는 웃음에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하하하! 이런 곳에서 이렇게 검이 맞는 상대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늘의 뜻이 참 기묘하군요.”
대련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적잖이 감탄했다.
남자는 한서후의 천재성에, 한서후는 남자의 기묘하고 뛰어난 수법에.
서로의 무공이 모두 방어 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대련은 쉽게 끝이 나지 않았다.
반면 뜻밖에도 서로의 무공은 비슷한 면이 많아 보고 배울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스승 삼아 단기간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남자는 그를 두고 ‘검이 맞다’고 표현한 것이다.
한서후도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된 것, 술이나 같이 한잔하실까요?”
“오, 술이 있습니까?”
남자가 반색하며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련에 쓰려고 가져온 거긴 합니다만, 지금은 마셔도 아까울 것 같지가 않군요.”
술을 마시면 이성이 가라앉음으로써 [천살성]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진다.
때때로 그런 상태로 하는 수련이 있기 때문에 술을 가져온 거였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을 것 같군.’
지금은 술을 먹는다 해서 술에 [천살성]이 살아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 [천살성]도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자, 받으시지요.”
한서후가 한 손에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다른 한 병을 남자에게 건넸다.
“건배!”
두 사람의 막걸리 병이 부딪쳤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그대로 병나발을 불었다.
입을 소매가 소매로 입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크으~ 맛있는 술이군요.”
“입맛에 맞으시니 다행입니다.”
한서후가 싱긋 웃었다.
“도우는 참 신기합니다. 보아하니 명사의 지도 아래 검을 배운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검식이 자유로우십니까?”
“명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약한 노인네한테 검술을 배우긴 했습니다. 그분이 제 은사시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쏴아아아-
폭포수 물이 시끄럽게 떨어져 내렸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한서후는 오랜만에 기분이 참 좋았다.
그동안 사람 만날 일도 없이 수련에만 정진하느라 많이 외로웠던 터였다.
가끔 무결이 들러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그가 갔다 오라는 던전을 갔다 오는 게 그나마 한서후의 유희거리였다.
그런데 무결이 요즘 바빠서 혼자 수련에만 집중하고 있자니 힘이 들던 차였는데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주는지 모르겠다.
한서후는 그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순간.
“그럼 다시 대련하실까요?”
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집어 들며 말했다.
“또요?”
한서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요. 마침 몸도 다시 풀렸겠다. 시작하시죠.”
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검을 나누었다.
한동안 검을 나누다, 또다시 제자리에 드러누웠다.
아까 술도 마셨겠다, 이번엔 그다지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잠시 말없이 드러누워 있다 일어난 한서후는 남자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뵙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어두워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일 말입니까?”
같이 드러누워 있던 남자 또한 부스스 일어나며 말했다.
“예, 내일도 이곳으로 오실 수 있습니까? 아니면 제가 도사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고요.”
그렇게 말하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아, 그렇군요. 아쉽네요······.”
한서후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어딜 가려고 그러십니까.”
“네? 지금 집에 간다고······.”
한서후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남자가 다시 칼을 집어 들며 말했다.
“저와 대련하셔야지요.”
한서후는 그제서야 뭔가가 잘못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가지 말고 저랑 대련하셔야죠.”
남자가 청강검을 들고 한서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한서후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도사님, 이러지 마시죠. 오늘은 지쳤으니 내일······.”
스릉-
남자의 검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캉-
한서후가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도사님! 도사님, 이러지 마세요!”
그는 계속 뒷걸음질 치며 남자의 검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한서후에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한서후는 그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하며 어떻게든 남자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는 마치 한서후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한서후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저와 대련하기 싫으십니까?”
“아니, 그것이 아니······.”
“그럼 죽으십시오.”
남자의 검이 변화했다.
방어만을 위해 유유자적 흐르던 검에 살기(殺氣)가 담겼다.
한서후가 정신없이 공격을 흘려내었다.
다행히 살기를 띤 그의 검술은 대련 때보다 못했다.
“도사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정신 차리십시오!!”
한서후가 거의 애원하다시피 하며 남자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한서후에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아아악!!”
남자는 한서후가 계속해서 공격을 막아내자 급기야는 괴성을 내며 선천진기를 뽑아다 쓰기에 이르렀다.
쾅! 쾅!!
아까까지와는 달리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한서후는 계속 공격을 막아내고 피해냈지만 결국 한계가 왔다.
‘이대로면 죽겠다.’
그렇게 생각한 한서후도 최대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쾅, 쾅!!
목숨을 불살라 한서후를 죽이려는 남자.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가면서 그의 공격을 막아내던 한서후.
시간이 흐르고.
결국 결과가 정해졌다.
쨍그랑.
청강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억, 컥······.”
선천진기를 모조리 불태운 도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헉, 헉······.”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한 한서후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 도사와 대련을 충분히 해보지 않았더라면, 저기에 쓰러진 것은 십중팔구 자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패턴을 숙지하고 기술 일부를 흡수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승리였다.
털썩.
한서후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는 헉헉거리며 몸을 지혈해 나갔다.
은하그룹에서 그를 위해 준비해 준 최상급 포션은 이럴 때 유용했다.
뽕!
포션병 뚜껑을 열고 일부는 마시고, 일부는 상처에 들이부었다.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어갔다.
그런데 그때.
“여기서 무인을 만날 줄은 몰랐군요.”
청삼을 걸친 청년이 한서후를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방금 숲속에서 빠져나온.
그는 도(刀)를 들고 있었다.
“저와 대련을 한번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한서후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 * *
“없네.”
한서후는 폭포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한서후는 여기에서 수련에 열중하고 있어야 했다.
“추적기는?”
[꺼져 있습니다.]“젠장.”
한서후는 추적기에서 내뿜어지는 파장이 거슬린다고, 때때로 수련 중에 추적기를 꺼놓고는 했다.
“위성 사진은?”
[20분 전에 찍힌 게 있습니다. 20분 전만 해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전투 중이었던 걸로 보입니다.]“알았어.”
이제부터는 온전히 무결의 영역이었다.
무결은 발달한 감각으로 사건 현장을 자세히 관찰했다.
일단 시체를 뒤져보았다.
검상으로 보아 이들은 한서후에 의해 죽은 게 분명했다.
그의 검법에 의해 생겨난 상처였다.
“많이도 죽였군.”
대략 다섯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거적때기 같은 옷부터 시작해서 도복과 청삼, 가사까지 주로 무협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옷이었다.
그들을 뒤져보다 무결이 흠칫 놀랐다.
“이 녀석들 전부 몬스터군.”
몬스터.
본래는 인간이 아닌 괴물을 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던전 속에서 나와 인간을 해치려는 놈들을 총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 범주에는 인간처럼 생긴 것도 들어간다.
이놈들이 그런 놈이었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놈들.
몬스터.
“······한서후도 피를 많이 흘렸어. 지금쯤 상태가 간당간당하겠군.”
무결이 얼굴을 굳혔다.
몬스터들의 것이라기엔 피의 양이 너무 많았다.
“이쪽이군.”
한서후의 흔적이 숲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무결은 그곳으로 들어가 한서후를 추적해 나갔다.
가는 길에 쓰러진 시체들이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었다.
계속 전투를 치르며 나아간 모양이었다.
저 멀리서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쾅, 콰쾅.
“찾았다.”
무결이 눈을 빛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다.
“크르륵······.”
눈빛이 붉게 물들어 미친놈처럼 날뛰고 있는 한서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