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32
기계신과 함께 – 032
“헛!!”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합공을 받는 공손혁 장로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창을 뻗어가던 탈명신창에게서 나온 소리였다.
공손혁 장로의 검이 부드럽게 움직여 오히려 뻗어오는 창을 쥐고 있던 손을 베어갔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날아오던 철룡각의 다리는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밀어내었다.
탈명신창이 다급하게 창을 회수하자 공손혁 장로의 검이 부드럽게 회전하여 이번에는 철룡각의 몸통을 베어갔다.
“이크!”
철룡각이 뒤로 훌쩍 뛰어 그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과연 냉혈검마(冷血劍魔)!”
“역시 무공으로 이름 높은 천마신교의 장로답구나!!”
공손혁 장로를 합공했던 두 사람이 감탄을 토해내었다.
보아하니 세 명 모두 상대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나는 슬쩍 성녀의 손을 쥐었다.
성녀가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성녀의 손바닥에 대고 글씨를 썼다.
-성녀님, 공손혁 장로님이 성녀님을 모시고 몰래 도망가라 하셨습니다.
내 말에 성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나와 성녀는 전투에 열을 올리는 그들에게서 살며시 멀어져 갔다.
* * *
내 목적지는 우리 일행의 목적지와는 달랐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공손혁 장로와 성녀가 안내해 달라는 곳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공손혁 장로가 안내하라던 곳은 화련성(和連成)의 천마신교 비밀 지부.
그러나 내 목적지는 바로 기연이 있는 곳, 기연지(奇緣地)였다.
나는 화련성으로 가는 척하며 이들을 기연지 근처로 이끌었다.
내 목적은 퀘스트 클리어보다는 기연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런 기연지는 누구랑 같이 들어가기보다 혼자 가는 것이 최고였다.
기연을 얻는 장소에 누군가와 함께 가게 된다면 그에게 기연을 빼앗기거나, 기연을 나눠야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자 갈 수는 없었다.
이 던전의 실패 조건 때문이었다.
던전의 실패 조건은 ‘나’ 혹은 ‘성녀’의 죽음.
전생의 이 던전에서 우연히 기연을 찾아낸 자는 결과적으로 기연을 얻는 것에 실패했다.
기연을 코앞에 두고 그것을 얻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그가 기연을 얻기 전에, 그와 따로 떨어졌던 성녀가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기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 동안 성녀가 죽어 던전에서 강제로 퇴장당했다고 한다.
던전 데이터베이스에는 하소연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의 푸념이 적혀 있었다.
그 글을 읽으며 나는 절절하게 안타까운 그의 심정을 느꼈다.
‘되게 억울했겠다.’
나라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밤마다 이불을 뻥뻥 차며 아쉬워했을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됐는데 그 복권을 그만 잃어버렸을 때의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당신을 대신해 제가 반드시 무공을 습득해 드리겠습니다.’
그것만이 그의 넋을 풀어주는 길이리라.
[저 같으면 넋이 풀리기보다 얄미움에 이불을 뻥뻥 찰 것 같은데요.]어쨌든 그의 넋을 풀기 위해선 성녀가 죽지 않게 보호하며 기연지로 향해야 했다.
사실 일행 없이 나 혼자 기연지로 가는 것은 상당히 쉬운 일이었다.
데이터베이스 작성자도 무작정 도망치다가 그곳에 도달했지 않은가.
하지만 일행 전체도 아니고 성녀만을 골라서 데려온 것은 엄청난 개고생의 결과물이었다.
많은 계산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계획 짜느라 머리가 참 아팠지.’
[그래도 다 계획대로 되었군요.]과연 성녀를 제외한 모든 일행이 떨어져 내게서 나간 것이 우연이었을까?
세 호위무사가 한 명씩 차례로 죽은 것.
그중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배신자인 것.
그리고 쫓아온 공손혁 장로마저 떼어낼 정도의 고수가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
······모두, 우연이었을까?
만약 호위무사들이 누군가의 방해와 잘못된 안내로 화살을 맞고 독물에 물려 죽었다면?
만약 배신자의 존재를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면?
더 일찍 정파의 추적대를 따돌릴 수 있었다면?
[배신자의 존재를 일찍 눈치챈 게 운이 좋았네요.]‘응, [하늘의 눈] 덕분에.’
맨 처음 [하늘의 눈]으로 그의 정보를 읽은 덕에 일을 쉽게 계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생의 결과물이 이제 드러나려 하고 있었다.
‘다 왔군.’
마침내 우리의 눈앞에는 거대한 협곡이 나타났다.
나는 성녀와 함께 산 정상에 올랐는데, 우리가 올라온 길의 반대편은 마치 무저갱 같은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가 얼마나 깊은지 산의 중간에서부터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뿐이었다.
‘여기 있네, S자 나무.’
데이터베이스에 적혀 있는 S자처럼 자라난 나무까지 확인하고, 나는 각오를 다졌다.
[마스터, 정말 그냥 하시려고요? 여기서 죽으면 정말 죽습니다.]목걸이의 형태로 내 목에 메달려 있는 니르바나가 걱정되는지 물어왔다.
‘괜찮을 거야. 기계룡과 싸웠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쉽냐.’
[꼭 살아 나가서 저 드라마 마저 보게 해주십시오.]‘그거 때문이었냐.’
[여기서 죽으셔서 드라마 뒷 내용 못 보게 하시면 지옥에 가실 겁니다.]‘지옥, 되게 쉽게 갈 수 있는 데였구나?’
나는 슈리와의 대화를 마친 후 성녀를 바라보았다.
면사에 가려진 성녀의 시선 또한 내게 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성녀님.”
“네, 말씀하세요, 장삼.”
“이제까지 믿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장삼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장삼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잡혔겠지요.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어요.”
“그럼 믿은 김에 한 가지만 더 믿어주세요.”
“뭔가요?”
나는 말없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성녀가 내 손바닥 위에 살며시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
“······!!!”
절벽으로 그대로 뛰어내렸다.
얼굴을 베어버릴 것 같은 칼바람이 우리를 계속해서 스쳐 지나갔다.
높디높은 절벽에서 추락하는 느낌은 다시는 느끼기 싫은 끔찍한 느낌이었다.
온몸을 부유감과 공포감, 그리고 불안감으로 휩싸였다.
이곳에 만약 데이터베이스대로 기연지가 없다고 하면 나나 성녀는 쥐포처럼 납작 으깨지며 죽을 터였다.
‘던전 탈출’을 외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절벽 아래를 계속해서 주시했다.
나는 떨어지며 성녀를 돌아봤다.
후웅-
그때 성녀가 쓰고 있던 면사가 벗겨졌다.
면사를 달고 있던 모자가 너울너울 무저갱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와.]‘세상에.’
나와 슈리는 절벽을 떨어지는 이 순간에도 감탄을 토해냈다.
아름다웠다.
세찬 바람에 흩날리는 까만 머리카락과 그와 대비되는 새하얗고 투명한 피부.
별빛을 모아 만든 듯 반짝이는 검은 눈.
어째서 그녀가 평소에 면사를 하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저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녔다면 아마 수많은 신교도가 밤잠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차지하고자 하는 무림인들로 인해 천마신교가 골머리를 앓았을 수도 있고.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오랫동안 그녀의 얼굴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다시 절벽 아래쪽을 계속 주시했다.
‘제발, 바람아!’
부웅~
내가 속으로 바람에게 염원을 보낸 순간 아래에서부터 불어오는 맞바람이 강력하게 우리의 몸을 띄워 올렸다.
마치 커다란 쿠션이 떨어지는 우리를 받치는 느낌.
바람은 우리의 몸을 절벽 아래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인도했다.
‘저기다!’
우리의 몸은 바람을 타고 절벽 가운데쯤 난 동그란 동굴 속으로 딸려 들어갔다.
툭, 툭.
나와 성녀는 동굴 바닥에 살포시 떨어져 내렸다.
“후우······ 드디어 왔구나.”
나는 내가 목표로 했던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이곳이 바로 유니크 무공이 잠들어 있다던 그곳이 분명했다!
나는 동굴 속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동굴 안쪽 깊은 곳에서 해골 한 구와 그 앞에 놓인 비급 한 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기활신유가선공(意氣活神踰跏仙功)
‘찾았다!’
내가 찾아다니던 유니크 무공이었다.
나는 책을 집어 들고 흘낏 성녀의 살펴보았다.
그녀는 동굴에 들어온 이후로 쭉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내가 책을 집어 들고 흘낏 자신을 쳐다보자 책에는 관심 없다는 듯 눈길을 동굴 내부로 돌렸다.
나는 책을 펼쳐보았다.
-구궁의 집에 모든 신들이 기거하면 그것은 곧 광명이니, 풍룡과 지룡이 감궁과 건궁을 지나 태궁에 머물 때 곧 천지가 서로를 휘감고 땅의 텃밭에서 생명이 솟을지니······.
보다 말고 책을 탁 덮었다.
‘이게 뭔 개소리야?’
무공 기서들이 유독 마법서와 초능력 스킬북보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 이상이었다.
‘유니크 무공이라서 그런가 더 골치가 아프게 쓰여 있군.’
나도 웬만큼 머리가 좋은 편인 데다 무공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공서 같은 경우는 아무리 뜬금없는 소리라 해도 최소한 뭘 말하고자 하는구나 정도는 쉽게 알아챘다.
그런데 이 무공서의 경우는 당최 무슨 소리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됐고, 습득!”
나는 바로 습득을 외쳐보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별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이것은 단지 무공의 원리를 적은 ‘무공서’일 뿐, 스킬을 습득하게 해주는 ‘스킬북’은 아니었다.
스킬북이 아닌 무공서를 가지고 ‘습득!’을 외쳐봤자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용하는 즉시 스킬을 습득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북’은 오로지 던전 보상으로만 주며, 설혹 [최초의 던전]처럼 던전 내에서 스킬북을 발견했다 해도 던전 보상으로 그것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등장할 모든 던전의 공통된 사항이다.
하지만 스킬북을 사용하지 않고도 스킬을 습득하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스킬의 원리를 체득(體得)하는 것.’
무공서에 적힌 무공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시스템으로 스킬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무공서만 보고 혼자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책만 보고 운전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수십 배는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재능이 없는 자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며, 재능이 있어 그것이 가능한 자에게도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이 무공을 스킬화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년이라는 시간을 던전 내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
나름 생각이 있었다.
이 동굴 내에서 나는 벽곡단이 가득 든 항아리와 물이 흐르는 구덩이를 발견했다.
벽곡단은 이 동굴의 주인으로 보였던 이 해골이 끼니 해결을 위해 마련해 둔 것으로 보였는데, 양으로 보아 아마 무공을 익히는 동안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문득 이 해골의 옆에 무공서 말고 다른 종이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펼쳐보았다.
글씨가 빽빽이 적힌 서신이었다.
‘이건······ 유서?’
“뭔가요?”
내가 무공서를 들었을 때는 힐긋 눈길만 주고 동굴을 둘러보던 성녀가, 유서에는 관심을 보였다.
“유서인 것 같습니다.”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묻고 있는 성녀와 함께, 우리는 그 유서를 읽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