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the Machine God RAW novel - Chapter 72
기계신과 함께 – 072
녀석이 푸들푸들 떠는 것이 보였다.
안간힘을 쓰며 다시 일어나 내게 도전하려 녀석은 두 번의 시도를 더 한 끝에, 결국 고개를 떨구고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나는 터벅터벅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맑디맑은 닭똥 같은 통한의 눈물이 녀석의 눈에서 주륵주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주머니에서 [영혼을 담는 병]을 꺼내 놈의 눈물을 받았다.
그러자 [영혼을 담는 병]이 한차례 빛을 발하며 자동으로 밀봉되었다.
나는 [하늘의 눈]으로 그것을 다시 살펴보았다.
-이름 : 알파 고르곤의 영혼이 담긴 병
-등급 : 이벤트
-설명 : 알파 고르곤의 영혼 일부가 담겨 있다
알파 고르곤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숨을 내뱉었다.
녀석이 서서히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녀석이 이마에 달고 있던 붉은색 보석만이 그 자리에 온전히 남았다.
나는 그 보석을 집어 들었다.
쿠쿠쿠쿠······.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결을 벌이는 동안 주변에서 알파 고르곤의 명령을 듣고 모여든 수백 마리의 고르곤이, 일제히 내 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들이 뭘 노리고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냅다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힘든 전투를 치렀음에도 아직까지 마력이, 내공이 남아 있었다.
체감상 유니크 내공심법을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언커먼 내공심법과 비교하면 자전거와 스포츠카를 비교하는 느낌이었다.
마력 저장 면에서도, 활용도 면에서도, 내공을 움직이는 속도와 정교함 면에서도 도저히 비교가 안 됐다.
내 뒤쪽으로 수많은 고르곤들이 죽기살기로 따라오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내가 가진 이 보석을 회수하려는 것이다.
이 보석을 차지하게 되는 개체는 다음 알파가 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또한 이 보석은 종족 전체의 전력 보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저놈들의 본능에는 이 보석을 되찾고자 하는 코드가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보석을 든 채로 고르곤들에게 쫓기며 쉬지 않고 한곳을 향해 달렸다.
고르곤들은 내가 지나간 영역을 초토화시키다시피 하며 나를 쫓아왔다.
약 2시간 정도를 달렸을 때, 마침내 나는 고르곤들의 영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들어간 영역은 다른 수호종의 영역이었다.
이번 수호종의 영역은 울창한 나무가 가득한 밀림 지대였다.
처음 제1스테이지에서 들어와 본 것과 같은 거대한 나무들이 밀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기척을 최대한 숨기고 밀림 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눈으로는 내 위치를 놓쳤을 게 분명했지만 고르곤들은 보석의 위치를 언제 어디서든 추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를 쫓아 그 수호종의 영역 속으로 들어왔다.
2시간 동안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속될 수 있었던 것도 그 위치 추적 능력 때문이었다.
“뭐야, 이 자식들!”
“침입자다!!”
“돌덩이들이 쳐들어왔다!!!”
시끄럽게 조잘대며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마치 악어에 익룡의 날개가 달린 것처럼 생긴 생물이었다.
이 생물들의 이름은 드레이크.
나는 그중 한 마리를 [하늘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름 : 드레이크
-상태 : 당황
-설명 : [화염 분사]를 사용하는 드레이크족의 전사
“돌덩이 왕이 미쳤나?”
“우리의 영토로 들어오다니! 제정신인가?!”
“쟤네 눈 돌아간 게 아무리 봐도 제정신 같지는 않은데?”
“전쟁인가!!”
드레이크들이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저들끼리 하늘에서 떠들고 있었다.
그사이 수백 마리의 고르곤들이 전부 숲속으로 들어와 앞에 걸리는 것들은 사정없이 부숴가며 전진했다.
고르곤들이 들이받는 나무가 움푹움푹 파여 나가며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드레이크 한 마리가 분개하며 외쳤다.
“저놈들, 우리의 영역을 파괴하고 있어!!”
“복수하자!”
“왕께서 허락하셨다! 조져 버려!!”
알파 드레이크에게서 명령을 하달받은 개체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가 고르곤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정면으로 덤비지 말고 하나씩 잡아 올려서 떨궈 버려!”
“저놈들한텐 불이 안 통하니까 쓰지 마!”
그렇게 드레이크들의 분노에 찬 반격이 시작되었다.
드레이크종은 고르곤종과는 달리 굉장히 교활하고 약삭빠른 놈들이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는 짓을 서슴지 않을뿐더러 헌터들과 싸울 때도 자신들이 싸우기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한다든지 함정을 파놓는 경우도 있었다.
녀석들은 고르곤들의 돌진에 들이받히지 않게 조심하며 고르곤들을 한 마리씩 잡아서 높은 허공에서 떨어뜨려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녀석들을 저지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무거운 고르곤들을 그렇게 높은 곳으로 끌고 가지도 못하고 떨어뜨리기 일쑤였으며, 고르곤들은 설령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잘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몇몇 드레이크가 늪지대 속으로 고르곤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고르곤이 늪지대에서 쉽게 헤엄쳐 나와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으악! 이놈들, 아무것도 통하지가 않아!!”
“왜 이놈들은 불도 안 통하는 거야!!”
드레이크들이 신경질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교활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과 비행 능력, 그리고 원거리에서 화염을 뿜어대는 능력을 가진 탓에 오히려 고르곤에 비해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드레이크종이었지만 고르곤들의 돌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놈들은 계속해서 고르곤들을 욕하면서도 최대한 놈들의 돌진을 저지하고자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필사적인 드레이크들의 방어 덕분에 나는 내게 향하는 고르곤들의 돌진에서 잠시 벗어나 내공을 집중하고 드레이크들이 하는 말을 엿들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던전의 보정 효과에 의해 나는 언어가 다른 그들의 대화를 고스란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놈들은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소통하는 놈들답게 목소리가 굉장히 컸고, 덕분에 나는 난리가 난 지금 도떼기시장처럼 사방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녀석들에게서 원하던 정보를 금세 입수할 수 있었다.
“우리의 왕께서는 어디 계시지?”
“또 장난감 펭귄 괴롭히고 계시던데.”
“그 꼬맹이 말이야?”
“그럼 하늘나무에서 오고 계시겠군.”
녀석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그쪽에는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그래서 이름이 ‘하늘나무’인 듯했다.
나는 그쪽으로부터 날아오는 조금 더 커다랗고 비늘이 날카로운 드레이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머리에 보라색 보석을 박고 있는 것이, 저놈 역시 알파가 분명했다.
이 소란을 전해 듣고 날아오는 듯했다.
-이름 : 알파 드레이크
-상태 : 분노가 머리끝까지 참
-설명 : [화염 분사]를 사용하는 드레이크족의 우두머리. 종족 제1의 강자로서 화염의 가호를 받는다
“돌대가리, 나와!!!”
알파 드레이크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녀석이 알파 고르곤을 부르던 칭호가 ‘돌대가리’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고르곤들로부터는 그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녀석들은 오로지 돌진, 돌진을 반복할 뿐이었다.
‘다른 종족과의 의사소통은 알파들끼리만 가능한 것 같다는 추측이 사실인 모양이네.’
내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하다못해 녀석들이 이렇게 미친 듯이 달리는 이유가 ‘종족석’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드레이크들에게 알리기만 해도 내가 이렇게 마음 편히 나무 위에서 사태를 관망할 수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이 돌덩이 자식들! 죽여 버리겠어!!”
고르곤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안 그래도 열이 받을 대로 받아 있던 알파 드레이크가 폭발하고 말았다.
녀석은 분노에 가득 찬 상태로 숨을 힘껏 들이켜더니 후악 내뱉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화염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와 고르곤 무리 쪽으로 떨어졌다.
마치 화염방사기가 화염을 내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뿜은 화염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 많은 화염이 나무가 가득한 밀림에 쏟아졌음에도 나무에는 작은 불씨 하나 번지지 않았다.
대신 불꽃은 마치 뱀처럼 가늘게 퍼져 나가 오직 고르곤들에게만 집중적으로 들러붙었다.
‘화염의 가호’를 받는 알파답게 화염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 화염은 고르곤들에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던지 꾸준히 한곳(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리던 고르곤들이 방향감을 잃고 서로를 들이받거나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이 돌멩이 같은 자식들아!!”
알파 드레이크는 숨이 모이는 족족 고르곤들을 향해 화염을 내뿜어대며 헉헉거렸다.
놈은 지치는지 날갯짓이 느려졌다.
그 덕분에 놈의 몸체가 내가 몸을 숨기고 있는 지상을 향해 가까워져 갔다.
나는 주의 깊게 사방의 상황을 관찰했다.
드레이크들은 고르곤들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있었으며, 고르곤들 또한 놈들에게 막혀 쉽사리 내 쪽으로 접근해 오지 못하고 있었다.
알파 드레이크는 나와 가까운 곳에서 불꽃을 날려 고르곤들을 태우고 있었으며, 나는 알파 드레이크의 지척에서 놈을 관찰하고 있었다.
놈의 관절 가동 범위가, 놈이 불을 내뿜기 위해 움직이는 근육들이, 놈의 불이 미치는 범위와 지속 시간, 불꽃의 컨트롤 능력 등, 지금 알파 드레이크에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속속들이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더 이상 입력할 정보가 없을 때.
나는 알파 드레이크를 향해 도약했다.
* * *
“워, 원하는 게 뭐야.”
원래대로라면 드레이크종의 영역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드레이크들을 조종하는 것만으로 헌터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을 드레이크들의 우두머리가, 던전을 들어온 지 고작 4일째인 내게 급소를 틀어잡히고 벌벌 떨고 있었다.
이놈은 웬만해서는 영역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 매우 조심스러운 녀석이었으나, 고르곤들의 영역 침범이라는 초유의 사태에는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알파 고르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드레이크가 같은 알파인 그밖에 없었기도 했고, 지상 종족인 고르곤족은 하늘을 나는 종족인 드레이크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녀석으로서는 자신을 잡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이용한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참 단순해서 좋단 말이야.’
혹시나 알파 드레이크가 나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녀석을 찾아낼 다른 방법도 세 가지 정도 더 생각해 뒀지만, 쓸모가 없어졌다.
덕분에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등에 올라탄 채로 놈의 목 아래 부분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원래 악어의 급소는 연약한 뱃가죽이었다.
하지만 악어를 닮은 이놈들의 약점은 뱃가죽이 아니었다.
이 녀석들은 지상의 생명체를 상대로 싸우게 진화되어 온 비행 생명체인 만큼, 오히려 뱃가죽은 단단한 반면 약점이 등 뒤에 나 있었다.
녀석들의 등 위에는 단단한 비늘이 하나 나 있었는데, 이 단단한 비늘은 다른 비늘과는 달리 거꾸로 나 있었다.
이른바 역린(逆鱗).
이 역린을 들추면 생선살처럼 연약한 속살이 나오는데, 나는 이곳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