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2)
사냥꾼-1
비교적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부터, 위지호연은 마교의 소교주에 걸 맞는 교육을 받아 왔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책장이다. 무공서가 가득 꽂힌 책장. 무언가를 읽고 쓰고 기억하는 것이 가능해진 시점부터, 위지호연은 거대한 무공 서고 안에서 살게 되었다. 위지호연의 아버지이자 마교의 정점에 선 위대한 교주는, 자신의 하나 뿐인 자식에게 애정을 주기 보다는 가혹한 교육을 강요했다.
읽고, 외우고, 읽고, 외우고. 그것을 끝없이 반복했다. 기틀을 다진다는 명목 아래에 장난감이 아닌 무기를 쥐었고, 익숙함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죽이는 행위를 교육 받았다. 처음에는 벌레, 그 다음에는 쥐, 토끼… 그리고 사람까지.
가끔, 아버지인 교주가 찾아왔다. 교주는 위지호연의 무공을 봐주었고, 위지호연에게 영약을 먹였다. 교주가 원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자식이 아닌, 천하를 오시할 수 있을 차기 마교의 교주였다.
위지호연은 그런 교주의 바람에 걸맞게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교주가 제공한 절세적인 영약과 마교가 가진 절세신공들, 그리고 위지호연이 타고난 천재적인 자질이 어울러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0살이 되고 나서야 위지호연은 서고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부터 위지호연은 살인에 익숙했고, 마교가 가지고 있는 고금제일의 무학인 천마신공을 익힐 기반을 마련한 상태였다.
그 후로 3년. 위지호연은 차기 교주가 되기 위해 천마신공을 수련했다. 위지호연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은 그것이 전부였다. 위지호연의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위지호연의 주변에 있었던 것은 신과 다름없는 교주와, 명령에 복종하는 시비들뿐이었다.
‘친구.’
그것은 위지호연에게 있어서 낯설기 짝이 없는 단어였다. 살아오면서 친구라는 것을 곁에 둔 적은 없었다. 거대한 마교의 안에서 위지호연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첫 친구.’
위지호연은 창밖을 내려 보았다. 중원 무림에서라면 거들떠도 보지도 않았을 녀석이다. 아니, 애초에 마주칠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이 세계에는 마교가 없다. 신과 같던 교주도 없다. 위지호연을 억압하던 것들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에리아’라는 세상이다.
그렇기에 위지호연은 마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위지호연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그가 조심스레 바라왔던 자유가 가득한 세상이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위지호연이 에리아에 소환되고서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잠들기 위해 누우면서. 잠들고 눈이 뜨면…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하는 걱정을 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안타깝군.”
위지호연은 입술을 열어 중얼거렸다. 그는 풀어 헤친 머리를 틀어 올려 묶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재능이 없어.”
위지호연은 창밖을 내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여관 뒤뜰에서는 이성민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자하신공은 마교가 가지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무공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절세신공이다. 천마신공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자하신공 하나를 제대로 익힌다면 한 지역의 패주로 군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공절학이 그러하듯, 자하신공 역시 천재를 위한 무공이다. 위지호연이 말했었다. 일류무공과 절정무공의 차이는 친절함에 있다고.
하지만 그 친절함이라는 것은 범인凡人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신공절학을 익혀 고수의 반열에 오르는 이들은 모두가 어린 시절 천재라는 소리를 숱하게 들었던 이들이다.
절정무공이 내포하고 있는 친절함보다 더한 것이 신공절학이고, 자하신공 역시 그것에 포함된다. 천재를 위한 무공. 천재라면 그 친절함을 친절함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범인에게는 아니다.
위지호연이 보는 이성민은 천재와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그것은 이성민도 잘 알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자하신공을 익혔다. 스킬로서 익힌 구결은 머릿속에 확실히 박혀 있었고, 매번 그것을 외우면서 운기조식을 했다.
처음에는 기대를 품었다. 신공절학을 익히게 되었으니,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전생에서 이성민은 신공절학을 익혔던 적이 없다. 그가 익혔던 것은 이류 내공심법인 영능심법이었다.
그 기대가 박살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류 내공심법인 영능심법도 13년을 매달렸는데 8성에 그쳤다. 자하신공… 이것은 틀림없는 신공절학이었지만
이성민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야.’
이성민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하신공의 내공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지쳤던 근육이 숨을 돌리고 호흡이 안정된다.
자하신공의 성취는 이성민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뎠다. 친절함… 그 친절함은 이성민에게 있어서는 불친절함이었다. 그는 천재가 아니었기에, 자하신공이 가진 천재를 위한 친절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하신공을 수련하는 한 편, 이성민은 추혼창법에 매달렸다. 자하신공이 이성민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고 한들, 추혼창법은 자하신공과 결합되어 큰 진전을 보았다. 여전히 내공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자하신공의 내공조율은 영능심법이나 천진심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내공을 늘릴 방법은 없는 거야?”
이성민은 숨을 돌리면서 물었다. 방에서 내려 와 그늘가에 앉아 있던 위지호연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영약.”
위지호연이 대답했다.
“내공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싶다면 영약을 먹는 것이 가장 빠르지.”
그것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은 이성민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서 질문했던 것 뿐이다.
“내공을 올리는 것에 영약 외의 편법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세계에 기가 무척이나 풍부하다는 것이야. 보통 내공의 크기를 말하는 것에 ‘갑자’라는 단어를 쓴다. 1갑자의 내공. 즉, 60년 분의 내공이라는 것이지.”
위지호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쿡쿡거리며 웃었다.
“1갑자의 내공을 얻기 위해서는 60년 동안 내공수련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상승의 내공심법이고 영약이지.”
결국은 성련단을 얻는 것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련단을 먹어서 얻을 수 있는 내공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먹는다면 내공이 부족한 지금의 처지를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숲으로 갈 것이냐?”
위지호연이 묻는다. 이성민은 담벽에 걸어 두었던 수건을 들어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아냈다.
“응.”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응. 너는 안 갈 거지?”
처음의 위지호연은 사냥터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부터 위지호연은 사냥터에 흥미를 잃었다.
사냥터라고 해 봐야 숲이고, 출현하는 것은 토끼와 맷돼지 따위. 가끔은 곰.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고블린과 오우거의 영역이 나온다.
하지만 이성민이 주로 다니는 것은 고블린의 영역이었다?. 지금이라면 오크 쪽도 건드릴 수 있을 법 하였지만, 이성민은 당장은 크게 무리하지 않고 있었다.
숲으로 향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이성민의 일과 중 하나였지만, 위지호연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흥미를 가지고 있었어도 일주일이나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것에 위지호연은 질려 버렸다.
대신에 위지호연은 다른 것에 취미를 붙였다. 이성민이 숲으로 사냥을 간 동안, 위지호연은 제나비스를 돌아다녔다.
“오늘도 도서관에 갈 생각이다.”
위지호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성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성민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지갑에서 1만 에르를 꺼냈다.
“지난번에 준 건 다 쓴 거냐?”
“사흘이나 지났는데 당연하지.”
위지호연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몬스터를 잡지 않는 위지호연 대신에, 이성민이 위지호연에게 돈을 주고 있었다.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위지호연이 매일 무공을 봐주는 것만 해도 이성민에게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위지호연을 내버려 두고서, 이성민은 잭의 여관을 떠났다. 그리고 일뢰주법을 펼쳐 사냥터로 뛰어갔다. 자하신공의 성취가 더디긴 하여도 내공은 확실히 늘었다. 그것보다는, 내공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한 달 전에는 10분 전력질주하는 것으로 내공이 바닥났지만, 이제는 적당히 여유를 가지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다고 잭의 여관에서 사냥터까지 멈추지 않고 경공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시체.
이성민은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 보았다. 숲에서 시체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숲의 초입은 조금 덜하지만, 숲이 깊어짐에 따라 시체의 출현 빈도는 늘어난다.
발견되는 시체의 대부분은 노 클래스의 것이다. 무림인과 마법사는 고블린과 오크들을 상대로 제 한 몸을 지킬 여력을 갖추고 있고, 그들은 제나비스에서 길게 머무르지 않는다. 제나비스에서 머물러 봤자 푼돈밖에 만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거렁뱅이 같은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나비스를 떠나 더 큰 도시로 향해야 한다. 제나비스 근처에서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를 때려잡아 봐야 벌 수 있는 돈은 별 볼 일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클래스는 다르다. 사실 이것은 노 클래스에게 있어서는 잔혹한 악순환이었다. 그들은 이 도시를 떠날 힘을 비축할 방법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제나비스에 긴 시간 머무르면서 졸업을 위한 준비를 갖춘다.
돈을 긁어모아 무공서를 구입하고, 마법을 익히고. 혹은 단순히 체술을 연마하던가.
단기간에 되는 것은 아니다. 전생에서의 이성민도 제나비스에서 3년 동안 살았었다.
‘이건… 인간이 한 짓이군.’
고블린의 영역까지는 아직 거리가 조금 남았다. 이성민은 몸을 낮춰 시체를 살펴보았다. 시체는 둘. 상흔은… 칼인가. 일단 눈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무기도 없고. 품속을 뒤졌어. 고블린 정찰병이 여기까지 나왔을 리도 없고… 사람이야.’
짚이는 것이 있었다. 이성민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게 이 시기였던가? 이성민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전생에서. 제나비스에는 잠깐 동안 ‘노 클래스 사냥’이라는 것이 유행했었다.
노 클래스 사냥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 일주일 정도쯤이었을 것이다. 고블린의 영역까지 진입한 노 클래스들을, ‘누군가’가 사냥했다.
목적은 노 클래스가 가지고 있는 돈과 장비였다. 노 클래스 사냥을 벌인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노 클래스만을 집요하게 노리면서 희생자들의 금품을 갈취하고 장비를 빼앗았다.
“쯧.”
이성민은 혀를 차면서 몸을 일으켰다. 전생에서 노 클래스 사냥이 벌어졌을 때, 이성민은 고블린 영역까지는 진출하지도 못했었다.
‘재수가 없어.’
우선 이 자리를 피한다. 시체의 피가 아직 굳지 않았다.
바스락.
이성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밝은 귀.’ 두 달 동안 숲에서 몬스터를 처 잡으면서 얻은 스킬로, 숲 안에서 청각의 강화를 얻게 되는 스킬이다.
‘재수가…’
없다.
이성민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