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thless Regression RAW - chapter (181)
아르베스는 김종현의 손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아르베스가 이미 인형과 다름없는 거짓 육체를 떠나 혼체로 변해 있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굳이 그뿐만이 아니라 김종현의 행동이 워낙에 은밀했기 때문이다.
프레데터에 들어 와, 아르베스와 만났을 적부터 김종현은 지금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하여 머리를 숙이고 아르베스의 말을 따라왔던 것이다.
그는 운이 좋았다. 만약 아르베스가 혼의 교환 마법을 펼치지 않았다면, 김종현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많은 귀찮음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정말로 운이 좋아.’
상황은 김종현의 편이었다. 엔비루스와 이성민이 개입해 준 덕에 아르베스는 궁지에 몰렸고,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급박하게 혼의 교환 마법을 펼치게 되었다.
마치 모든 상황이 자신을 위해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김종현은 그것을 느끼며 웃음을 만개했다.
김종현은 보통의 흑마법사와는 다르다. 그와 계약한 칼라드라가 소멸하여 김종현과 칼라드라 사이의 계약은 파기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김종현은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늙지 않는 육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눈.
그리고 마왕의 권능.
자유롭게 사용할 수는 없다. 인간이면서 마왕의 권능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 자칫하다가는 혼이 소멸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스크를 감수할 값어치는 충분히 있었다.
파앙.
김종현의 손끝에서 검은 빛이 반짝였다. 영혼체로 변하여 아이네의 육체로 향하던 아르베스는, 일직선으로 쏘아진 검은 섬광이 전해 주는 섬뜩함에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배신!
아르베스의 영혼이 요동쳤다. 어떻게 대응을 하고 싶었으나 지금의 아르베스는 수인조차 맺을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해서 얌전히 당하지는 않았다. 아르베스는 혼체에 집약된 마력을 부풀리며 어떻게든 김종현이 쏘아낸 빛을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김종현이 쏘아낸 빛은 아르베스의 마력을 통과했다. 관통한 것이 아니다.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충돌조차 만들어내지 않고 그대로 통과해 버린 것이다.
그것을 본 아르베스의 혼이 비명을 질렀다.
[크어아악!]빛에 관통된 아르베스의 혼체가 바르르 떨렸다. 김종현이 쏘아낸 빛은 흑마법사에게 있어서는 천적과도 같은 공격이었다.
모든 흑마법사는 마왕에게 혼이 얽매인 존재다. 비록 다른 마왕이라고는 하나, 김종현 역시 마왕의 권능을 조금이나마 사용할 수 있다.
아르베스의 혼체가 감전된 것처럼 덜덜 떨었다. 흑마법사로서의 계약이 파기된 것은 아니지만 혼 자체에 타격을 주는 공격이었다.
체를 잃은 영혼은 라이프 포스 배슬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다시 영체를 구성하게 된다.
라이프 포스 배슬로 역소환되어 마력의 손실을 끌어안게 되겠지만 어차피 마력이야 넘쳐나니 리치에게 있어서 한 번의 죽음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김종현의 빛은 아르베스의 영혼 자체를 노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라드라가 가진 마왕으로서의 권능, 혼의 귀속.
흑마법사에게만 쓸 수 있고, 리스크가 워낙에 커서 잦은 사용은 불가능하지만.
‘아르베스의 혼이라면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는 있지.’
김종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빛에 꿰뚫려 바들거리던 아르베스의 혼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아르베스의 혼은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자석처럼 김종현의 손바닥 위로 끌려 왔다.
활짝 펼친 손바닥 위에 올라온 아르베스의 혼은 그를 닮은 칙칙한 흑색이었다.
아르베스의 혼은 설마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듯이 혼체를 비틀며 발악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아르베스의 혼을 모조리 취한다면, 김종현은 아르베스가 계약한 썩어문드러진 죽음과의 계약까지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양이었다.
기껏 칼라드라가 소멸하여 계약에서 자유로워졌는데 다시 마왕과 계약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김종현은 양손으로 아르베스의 혼을 붙잡았다. 이미 김종현에게 귀속 된 혼은 발악은 하여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김종현은 신중하게 아르베스의 혼을 훑었다. 혼 자체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혼이 가진 정보와 힘을 취한다.
“혼은 돌려 드리지.”
김종현은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돌려보낸 혼은 라이프 포스 배슬로 돌아가겠지만, 더 이상 아르베스는 위대한 마법사로 남지 못할 것이다.
마법에 대한 기억과 마력은 모조리 김종현에게 돌아갈 테니까.
김종현은 신중하게 혼에게서 마력과 정보를 뽑아냈다.
‘아니, 라이프 포스 배슬로 돌아가지도 못하겠군. 영체를 구성할 만한 마력도 남지 않았을 테니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김종현은 혼에서 뽑아낸 일렁거리는 빛을 자신의 입에 우겨 넣었다.
머릿속에서 환한 빛이 터졌다. 아르베스가 인간이었을 시절부터 쌓아 온 위대한 마법의 지식과 거대한 마력이 김종현의 몸을 가득 채웠다.
몸이 터지고 뇌가 타버리는 것 같은 고통도 잠시였다.
“하하……!”
김종현은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마법사로서 아르베스가 얼마나 뛰어난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본인 역시 흑마법사로서 꽤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고 자부하였으나, 수백 년을 살며 마법을 익혀 온 아르베스와 비교한다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멸혼 마법. 이건 굉장하군. 다행히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네크로맨시 마법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베스는 썩어문드러진 죽음의 마력을 사용해서 멸혼 마법과 네크로맨시 마법을 펼쳤지만, 그 마력은 칼라드라의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김종현은 아르베스의 기억을 확인하고서 빙그레 웃었다. 그는 초라하게 작아진 아르베스의 혼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잘 가시길.”
김종현은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이네의 육체를 취할 여력도 갖지 못한 저 혼체는 라이프 포스 배슬로 돌아갈 것이고, 영체를 구성하지 못하여 완전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썩어문드러진 죽음의 곁으로 가 영겁의 고통을 받겠지.
그것은 김종현이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과율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두 얼굴의 현자 아르베스.
그는 수백 년 전부터 수많은 인체 실험을 비롯하여 다양한 악행을 벌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죽음 이후라도 벌을 받아야 한다.
“무슨 짓을……!”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엔비루스는 김종현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직접 보았음에도 믿을 수 없었다.
죽은 망령도 아니고, 아르베스 정도 되는 리치의 혼을 착취하는 방법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아르베스가 흑마법사라는 것이 불운한 사실이었을 뿐이다.
김종현은 머릿속에 가득한 위대한 마법들에 대해 확인하면서 쭈욱 기지개를 폈다.
이것으로 김종현은 자신이 도달했던 마법사로서의 수준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김종현은 미소 지은 얼굴로 엔비루스를 보았다.
“당신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뭐……?”
“심한 상처를 입은 당신을 죽이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쉬운 일일 테지만 괜히 당신을 죽여 저주를 받고 싶지는 않군요.”
마치 과시하듯이.
김종현은 멸혼 마법을 펼쳐 보았다. 김종현의 등 뒤에서 시커먼 색의 검은 팔이 솟구쳤다.
술식은 파악했고 필요한 마력은 칼라드라의 것으로 대체한다.
김종현이 멸혼 마법을 펼치는 것을 통해, 엔비루스는 김종현이 아르베스의 모든 것을 취했음을 완전히 깨달았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김종현의 목소리에 만족감이 진하게 어렸다.
이것으로 김종현은 프레데터 안에서도 정점에 가까운 힘을 얻었다.
리치가 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김종현은 프레데터의 검은 별이 되어 모든 리치의 위에 서게 될 것이다.
다른 인외의 수장들도 김종현을 인정해 줄 것이다.
김종현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니었고, 인외의 수장들 중에서 아르베스와의 의리를 챙길 이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아아아악!”
엔비루스가 어찌할 줄 몰라 입술을 떠는 순간이었다.
아르베스가 소멸함으로써 복종의 각인이 지워져 축 처져 있던 아이네가 비명을 질렀다.
우우우우우!
시커먼 밤하늘이 아이네의 비명과 공명했다. 엔비루스가 흠칫 놀라 아이네를 돌아보았다.
“저런!”
김종현은 낄낄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일부러 아이네의 복종 각인을 취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았기도 했고, 괜히 손을 대어 개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명과 함께 아이네의 몸이 씰룩거린다. 엎어진 아이네의 몸뚱이가 실을 끌어당긴 마리오네트처럼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일어섰다.
“나는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지만, 저 가엾은 키메라가 어찌할 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김종현이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의식은 없다. 그럼에도 아이네는 움직이고 있었다.
아르베스의 마법진은 파괴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네가 받아먹은 토지의 요력은 무식할 정도로 거대했다.
또한 그 주인 없는 요력은 아이네의 것이 되었음에도 무차별적인 폭력을 바라고 있었다.
검은 심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요력은 그에 충실히 따라 형태를 보여주었다.
콰콰콰콰!
아이네의 몸뚱이가 폭발했다. 폭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으로 튀어나간 날카로운 칼날은 피아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휩쓸었다.
[빌어먹을!]고함을 지른 것은 허주였다.
주인 없는 요력을 너무 많이 받아먹은 여파로, 이성민은 의식을 잃고 있었다.
허주는 급히 요력을 일으켰다. 이전처럼 이성민의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으나, 요력을 일으켜 이성민의 몸을 보호하는 것은 가능했다.
콰앙!
허주가 부풀린 요력이 아이네의 공격과 부딪친다.
무력하기 짝이 없다.
허주는 빠득 이를 갈았다. 육체를 가지고 있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렇더라면 저깟 조잡한 힘 따위는 손짓 한 번으로 눌러버릴 수 있을 텐데!
“크으윽!”
무력함을 절감하는 것은 엔비루스도 마찬가지였다. 최상위 정령들이 줄줄이 역소환된 탓에 엔비루스는 방어 마법조차 간신히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방어 마법도 완전하지 못했다. 아이네의 공격에 얻어맞은 엔비루스는 방어 결계 채로 날아가 땅을 뒹굴었다.
정령 마법은 효율 좋은 마법이었지만 역소환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사실 최상위 정령을 셋이나 역소환 당하면 뛰어난 정령사라도 재기 불능의 폐인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남아 있던 대지의 정령도 엔비루스가 존재를 유지하지 못해 정령계로 돌아가 버렸다.
그만큼 엔비루스가 받은 타격은 컸다. 엔비루스가 폐인이 되지 않은 것은 그가 마법사로서 정점에 서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계약한 것이 다름 아닌 정령의 여왕인 덕분이었다.
“하하하!”
높은 곳으로 날아 오른 김종현은 날뛰는 아이네를 내려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를 들썩거리는 김종현이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성민이었다.
김종현은 이곳에서 이성민이 죽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민을 도와줄 생각도 없었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미 원하는 것을 취했다.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과연 이성민의 운명력이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방관하는 것도 운명인가?’
아니면 나서야 하는 것이 운명인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김종현의 눈도 스스로의 운명은 볼 수 없었고, 운명력이 어느 곳으로 흐를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종현은 방관자로서의 역할을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세계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주인공은 당신이야.’
김종현은 웃음을 참았다.
만약 이야기라면.
김종현은 스스로도 주인공이 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로 특별한 존재였고, 특별한 상황을 겪어 왔다.
하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여기서 당신이 죽는다면 이야기는 끝이 나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김종현은 확신했다.
[정신 차려라!]허주의 외침이 멀리서 들린다. 잠들었던 의식이 일어난다.
이성민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기분은 좋지 않았다. 므쉬의 산에서 끔찍한 맛이 나던 음식을 억지로 퍼먹었을 때처럼. 악취밖에 맡을 수 없던 호흡을 하는 것처럼.
이성민은 입꼬리를 내리면서 속에서 올라오는 구토감을 견뎌냈다. 술을 진탕 처마신 것처럼 시야가 흔들린다. 지면이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드냐?]허주가 반색하여 물었다.
이성민은 숨을 몰아쉬면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아직까지는 멍했다.
콰앙! 몰아치는 칼날을 허주가 대신해서 받아 주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모른다!]허주가 고함을 질렀다.
이성민은 텅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창은 없다. 아까 전에 아이네에게 던지고서 아직 회수하지 않은 탓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왼쪽 눈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아팠다.
그 이질적인 통증은 이성민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가슴을 붙잡고서 신음을 흘렸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괴리감.
욱신대는 통증이 머리를 때린다.
이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눈. 오른쪽 눈이 뽑히는 것만 같았다.
짐승 같은 울음을 흘린 이성민의 손이 얼굴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양쪽 눈은 모두가 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안 돼!]허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성민이 인간성을 버리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허주는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이성민의 뜻을 존중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성민의 양쪽 눈은 모두 찬란한 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순간 고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의식이 붕 뜬다. 단전의 내공은 침묵했고 마법진에서 취한 주인 없는 요력이 이성민의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뚜둑, 뚜두둑.
이성민의 몸 안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허주는 급히 이성민의 몸 안으로 들어가 요력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이성민이 가진 정신 결계가 허주의 침입을 거부한다. 마치 이렇게 되는 것을 바라였다는 듯이.
그러한 외침도 흩어진다.
이유 모를 편안함 속에서 이성민의 의식은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폭한 요력은 이성민에게 있어서 편안한 요람이 되었다.
자고 싶지 않다.
희미한 감정 속에서 이성민은 생각했다.
그런 의식과는 반대로, 이성민의 육체는 광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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